주초에 나온 기사.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view.html?cateid=1010&newsid=20110525073017634&p=nocut
즉
“남자 검사는 집안의 일을 포기하고 일하지만, 여자 검사는 애가 아프다고 하면 일을 포기하고 애를 보러 간다”
그리고
“남자 검사는 출세나 사회적 인정을 첫째로 생각하는데, 여자 검사는 행복을 추구한다”
여러 다른 언론의 기사들도 대동소이한 내용이다. 직접 총장의 발언을 들은 것이 아니기에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어쨌든 이 발언은 어떤 방향으로 해석될 높은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논란'을 낳았고, 다음과 같은 신문사설이 나온다.
http://news.nate.com/view/20110525n30406
검찰총장은 아마 반박할 것이다. 이것은 그저 사실일 뿐이라고, 어쩌면 어떤 편견에 관한 사실일 뿐이라고. 따라서 총장의 말에서 여성비하의 목적을 찾는 것은 상상력을 발휘한 게 된다. 내 생각도, 솔직히 말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발언은 사실에 대한 서술 이상은 아니다. 곧 총장의 말 자체에 어떤 대단한 정치성 같은 건 없다. 그렇다면 정치성이 나오는 곳은 어디인가?
이렇게 생각해 보자. 당신은 대통령이다. 어차피 대통령이 국가를 운영한다는 신화는 폐기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일단 당신이 국가와 동일시되며, 그와 운명을 같이하는 어떤 왕 같은 존재라고 가정하자. 즉 당신은 국가의 위상에서 모든 일을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라나는 아이와 검찰의 일'
'개인의 출세와 행복'
'개인의 출세와 행복'
이 두 가지 질문에 있어서 어느 것을 택하시겠는가? 나 같으면, 내가 믿는 심리학적 가설에 따라, 당연히 아이의 정서와 국민의 행복을 택할 것이다. 여러분의 선택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버이가 보살피지 않는 자식은 비뚤어지며, 개개인의 출세는 국가의 수준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설령 위 두 가지 질문에서 꼭 그 편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만약 당신이 국가라면, 태연하게 일과 출세를 선택할 리는 없다.
그렇다면 위 발언은 오히려,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은 시민이다' 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 당연히 그래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총장의 말은 그 자체로 여성비하라는 비난을 산다. 이것을 볼 때, 우리는 총장의 말이 어떤 다른 맥락에서, 물론 지금까지의 논의와는 전혀 다른 어떤 지평에서, 이해되고 해석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조직의 관점이다.
열심히 짖는 개는, 만약 그곳이 밀집주거지역이라면, 이웃에게 소음공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충성스럽고 성실한 폭력조직의 일원은 열성적인 범죄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윤리가 있다. 그들은 그에 따라 행동한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 지역이나 사회 전체의 수준에서 볼 경우, 그들이 가진 가치관의 의미는 사라진다. 오히려 그 신념은 사회악에 가깝다. 1
즉 일부의 가치가 모두의 가치가 될 수는 없다. 소수의 이익이 꼭 공동선을 지향하는 건 아니며, 대개의 경우는 오히려 그와 반대다. 사회는, 내가 위에서 아이와 행복을 주장한 것처럼, 그에 대항하는 보편 문법을 요구한다. 그것이 우리가 공(公)적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들이며, 제도며 법(法)의 모습으로 기대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검찰총장의 발언에서 사람들은 한결같이 확신한다. 총장이, 총장 개인도 아니며, 검찰이라는 어떤 특정한 조직 차원의 관점을 취한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여기서의 검찰은 국가기관이 아니다.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겠지만, 사실 직원들은 어떤 단일한 목표를 갖고 행동하는 게 아니다. 물론 명분이야 대체로 회사의 이익이다. 가끔 '사회적 역할'인가 하는 걸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라. 속으로는 각자 자기 먹고 살 궁리에 여념이 없으며, 매우 높은 확률로 파벌싸움과 줄대기에 참여하고 있다. 이것이 회사의 이익인가? 대체로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사원의 목적이란 무엇일까? 회장님의 이익일 수도 있고, 계파의 이익일 수도 있고, 개인의 이익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의 가족의 이익일 수도 있다. 낮은 확률로 정말 사회정의를 고려하기도 하고, 뭐 종종 회사의 이익을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다. 대단한 일벌레라고 해도 어느 한 목적만 갖고 살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한꺼번에 나타난다.
검찰조직도 마찬가지다. 스웨덴의 국가기관이라고 해도 다들 뭔가 괴상한 꿍꿍이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공무원은 명목상으로는 국민 모두에 대한 봉사자다. 우리는 그들에게 공적인 업무에서 공적인 행동을 요청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여러 음험한 동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적절히 가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다시 검찰총장의 발언을 둘러싼 맥락를 보자. 문제는, 어느 기자도 검찰총장이 국가기관의 장으로서 그런 발언을 했다고 여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공적 문법은 완전히 실종되었다. 그리고 오직 드러나는 것은 사적 조직이다. 검찰은 무슨 연탄회사나 호남향우회 수준의 조직으로 전락해 있다. 조직의 장이, 심지어 대학 강연에서 한 발언도 오직 조직의 관리자라는 직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된다. 총장을 공무원답지 못하다고 비판하기 이전에, 오히려 공무원처럼 발언하는 것조차 기대하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사건은 기자들의 편견에 따른 어떤 '설레발'일까? 혹시, 그들이 어떤 선입견으로 총장을 과도하게 비판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위의 글을 읽는 독자마저도 극히 대부분, 총장의 발언이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라 이해하고 있다. 일부 소수는 그에 반박한답시고, '애가 아프다고 범죄자 안 잡을 거냐'라는 식의 전형적인 조직논리, 즉 '개와 건달의 도덕'을 들이대고 있다.
이런 사태들은 오히려 조직논리가 얼마나 사람들의 정신에 깊게 투영되는지를 명확하게 한다. 총장 발언의 도식적 해석은, 사람들이 그동안 뼈저리게 체감해 왔던 인생의 경험에 따른 것이다. 곧
“남자 검사는 집안의 일을 포기하고 일하지만, 여자 검사는 애가 아프다고 하면 일을 포기하고 애를 보러 간다”, “남자 검사는 출세나 사회적 인정을 첫째로 생각하는데, 여자 검사는 행복을 추구한다”
라는 류의 발언들은, 그 동안 너무 정형적으로, '여자는 조직에 안 맞으니 아웃'이라는 주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사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야 한다. 한국은 사적 집단의 각개약진 상태이며, '개와 건달의 도덕'을 신봉하는 사회다. 공적 조직도 사적 집단과 별 차이가 없다. 아니, 몇몇 경우를 보면 오히려 한 술 더 뜨는 것 같지 않은가? 이쯤 되면 법제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나는 위에서 말했던 대로, 총장의 억울함에 어느 정도는 동감하는 편이다. 그 자체로 대단한 문제가 있는 발언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이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검찰조직의 평소 행태에 결정적인 근거를 두고 있다. 사람들이 보는 검찰은 사적 이익집단과 다르지 않으니까. 설마 국민들이 평소 검찰조직을 대단히 오해하고 있다는 불평을 늘어놓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조직만을 위해 (공적) 직위를 거는 것은 조폭과 다름이 없다! 이것은 어디에서 나온 말일까? 다음 기사를 참고하라.
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67&newsid=20110527145409235&p=newsis&RIGHT_SOC=R6
여기서 총장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공직자가 직위를 걸 때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야 하는 것"이라며 "조직만을 위해 직위를 건다면 공직자의 바른 자세가 아니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어째서 이 정리(正理)가 검찰에게는 적용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아래의 기사를 보자. 2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95
위 기사의 마지막 단락은 매우 인상적이다. 곧 "과연 까칠한 사람은 조직을 불편하게 만들지 모르지만, 사회에는 ‘소금’처럼 이로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