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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이야기

파블로프의 진중권

 진중권이 12월 초에 중앙일보에 칼럼을 썼으니, "지지자를 파블로프의 개로 만든 여권…檢개혁, 야바위판 됐다"

 되시겠다. 논지인즉 여권 지지자들이 파블로프의 개떼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칼럼을 세심하게 읽는 독자께서는 파블로프가 키울 만한 강아지적 인간이 더 있음을 발견하시게 되리라. 그것은 바로 진중권 본인이다. 

 누가 이렇게 말한다고 가정해 보자.
1. 독일인은 사람이다. 2. 여성은 사람이다.
결론. 독일인 여성만 사람이다. 곧 한국인 남성인 진중권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다.

 또는 누가 이렇게 말한다고 가정해 보자.
1. 절도는 범죄다. 2. 폭행은 범죄다.
결론. 절도와 폭행이 같이 일어나야 범죄이다. 곧 윤석열의 장모의 사기행각은 범죄가 아니다.

 위 두 주장의 멍청함은 명백하다. 아주 기초적인 수학과 논리학을 몰라도 우리의 기초적인 경험이 그것이 틀렸음을 말해 준다. 여기서 진중권의 똑같은 수준으로 멍청한 중앙일보 칼럼을 보자.

 진중권 :
1. 민간인을 대상으로 사찰하면 불법이다. 2. 합법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사찰하면 불법이다.
결론 : 민간인을 대상으로 합법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사찰해야만 불법이다.

 한국 학생들은 자기가 경험적으로 잘 모르는 영역에서도 이렇게 진중권처럼 멍청한 사고를 하지 않도록 교육받아 왔다. 학생들은 현행 교육과정에서는 고1, 과거에는 중학교 1학년에 들어가자마자 기초적인 수리논리학을 배웠으니, 이른바 '집합과 명제' 되시겠다. 진중권의 주장을 한번 우리가 사랑하던 직관적인 도식으로 옮겨 보자. (수식화된 논리학을 잘 몰라도) 동그라미만 몇 개 그려 보면 어떤 주장의 멍청함이 쉽게 드러난다. 일명 벤 다이어그램.

 보시다시피, '독일인은 사람이다'와 비슷하게, '민간인을 대상으로 사찰하면 불법이다' 라는 말은 [민간인 대상 사찰]이 [불법사찰]보다 더 의미의 범위가 작다는, 최소한 크지는 않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A→B / A⊂B). 곧 그 자체로 민간인 사찰이 아니어도 불법일 수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살펴보았듯 중학교 1학년 1학기 수준의 논리학 중 기초 중의 기초다. 어지간한 수포자들도 이 정도는 어려워하지 않는다. 어지간하면 참고서의 집합과 명제에는 그래도 손때가 좀 묻어 있는 것이다. 신문계에서는 흔히 '기사를 중학생 수준에 맞추라'라는 금언을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라는 뜻이지, 진중권의 것처럼 중학교 수준에 미달하는 글을 실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진중권은 왜 이렇게 멍청할까? 심지어 진중권은 미학철학을 전공한 교수였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멍청한 글을 기고할 일인가? 심지어 진중권의 글은 사람들에게 수십 년 전 한때 '논리학의 교과서'라고 평가받기도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멍청해질 수 있는가?

 진중권이 어떻게 이런 멍청한 주장을 신문지상에 싣게 되었는지의 경과를 살펴보자. 진중권은 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그렇다. 우리의 파블로프는 바로 신동욱 씨 되시겠다.

 살펴보니 신동욱 씨는 직업도 파블로프처럼 의사시다. 적절하다.

 진중권은 이 주장이 올바르다고 판단하였다. 그리고 댓글이 17개, 좋아요가 1천 1백개가 달렸다. 그리고 요새 늘 그러하듯 진중권의 이 페북 글은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에 조국 전 법무장관이 경악하여, 진중권 거 참 멍청하기 짝이 없다고 고상하게 이야기(고상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하여튼 멍청하다는 소리다)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진중권은 조국이 Legal mind가 없다고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진중권의 이 멍청한 인신공격에 좋아요를 찍은 사람이 1천 8백 명이고, 댓글은 26개가 달려 있으며 진중권에 대한 찬양일색이다. 그리고 진중권은 기어이 이런 멍청한 내용을 그대로 중앙일보 칼럼에까지 썼으니, 댓글들을 보라. 또는 네이버로 송고된 기사의 댓글을 보라. 이곳이 대한민국의 멍청함의 최전선이다.

 왜 이렇게 집단적으로, 진중권의 표현을 살짝 빌리자면, '지능'이 하락한 걸까? 이 지능의 대재앙은 무엇인가, '대깨문 탈출은 지능순'이라더니, 지능이 낮은 순서대로 탈출한 것인가?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선천적 지능의 문제는 아님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진중권의 칼럼 그 자체에서.

 칼럼 중간에 이런 구절이 있다 -

 "그의 변명을 들어보자. “불법사찰의 방법에 영장 없는 도청, 이메일 수색, 편지 개봉, 예금계좌 뒤지기만 있는 게 아니란 점은 한국 사회 평균 보통인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인으로 생각해도 구글로 검색을 하고 공판검사에게 전화하는 것은 불법사찰의 방법이 아니다. 검색과 통화를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도 있던가."

 그렇다. 진중권은 적어도 칼럼을 교정할 때에는 자신이 논리적 오류를 저질렀음을 안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진중권은 자기의 멍청한 오류를 정정하지 않는다. 대놓고 거짓말을 좀 해도 굳이 상관없다는 이 자세, 그렇다, 문제는 양심이다. 그리고 또 하나 꼽자면 지적 불성실이다. 이 태도가 사람을 아주 지독한 수준으로 멍청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처럼 진중권이 멍청한 데다 사람도 못 되어먹었다는 조국의 주장을 진중권은 자신의 온몸으로 증명한다. 파블로프의 개를 논하지만 실제로 지극히 조건반사적으로 행동하는 자는 본인이며, 타인의 지능을 논하지만 가장 멍청한 것은 본인이며, 타인의 법률적 자세를 논하지만 가장 반법치적으로 사고하는 것 역시 본인이며[각주:1], 타인의 양심을 논하지만 가장 비양심적인 것 역시 본인이다.

 그야말로 신경증적 주체이다. 진중권을 파블로프에 비유하는 것은 파블로프에게는 그래서 좀 기분나쁜 일일지도 모른다. 진중권 선생은 결국 무속인이 된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대한민국의 정신성의 정확한 반영일지도 모른다. 진중권 선생님이 관리하는 SNS와 언론이라는 초대형 개농장들을 보면 말이다. 그렇다. 믿는 것이 중요하다. 박근혜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리고 전적으로 믿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지성이 필요하지 않다. 그들은 지적 사고를 정지시킨다. 그래서 SNS의 전문직이니 학자니 보리수니 기자니 하는, 아주 잘났다고 자부하는 분들마저 지극히 기초적인 논리적 오류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의 오류를 발견해도 대부분은 진중권처럼 무시하는 것을 선택한다. 지적 불성실과 지적 비양심을 선도하는 진중권의 길을 그들은 레밍들처럼 질주하는 것이다.

 

 

 

  1. 여기서 잠시 Legal하게, 즉 법률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사찰을 하려면 법에서 정하는 요건을 갖추어야 정당하다. 즉 그래야 합법이다. 다시 말해 사찰에 불법의 조건 자체는 없다. 합법의 조건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진중권의 멍청함은 단순히 필요충분조건을 모르는 수학적 멍청함을 넘어서는 법학적인 모자람 역시 암시한다. 간단히 말해 진중권의 관심은 검사들이 법을 지켜야 함에 있지 않다. 검사들이 불법으로 걸리지만 않으면 됨에 있다. 이 둘의 차이는 크다. 단지 후자처럼 생각한다면 Legal mind의 결여를 논하기 전에 민주시민의 자세부터 좀 의심해봐야 하는 것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