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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이야기

레진코믹스 레바툰 13화의 조야함에 관하여


 http://www.lezhin.com/comic/revatoon/13


 문제가 된 해당 웹툰의 주소다. 이 한심한 수준의 웹툰은 심한 논란을 낳았는데, 이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장동민 사건의 여진이라고 보아야겠다. 장동민은 내가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도 태연하게 잘 지내고 있다. 진중권 또는 허지웅의 어중간한 옹호까지 받으면서 말이다. 어째서 이 두 논객들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흔한 금언을 따르지 않았을까? 특히 허지웅은 언설의 가치보다 침묵의 가치 - 물론 이 가치란 그이의 경제적 이익을 말하는 것이 아닌데 - 가 대체로 더 높은 위인이었는데 말이다.


 대한민국의 대표 여성혐오 사이트 중 하나인 루리웹(나는 그간 이 남초 커뮤니티의 특수한 성향을 즐겨 예시하였는데)의 이 레바툰에 대한 반응을 보자.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default/news/521/read?articleId=1711186&bbsId=G003&searchKey=subjectNcontent&itemGroupId=28&sortKey=depth&searchValue=%EB%A0%88%EB%B0%94&pageIndex=1#commentFrame


 현대 한국 남성이 가질 수 있는 병리적 증상의 전형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이들이 일베에 크게 뒤지지 않는다. 따라서 루리웹이 개선의 과정에 있다고 추측한 나는 오류를 저지른 셈이다.


 레바툰 13화가 갖는 문제를 3가지로 나누어 논할 수 있다. 곧,


 1. 독자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작품인가.


 2. 작품 자체의 수준은 어떠한가.


 3. 작품이 반사회적인가.


 가령 장동민의 경우는 그것을 개그로 보아 주더라도(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개그의 요건을 결여하는데), 그 언설이 갖는 반사회성이 이미 명확하다. 여러 여성혐오의 동지들이 그 반사회성을 희석시키기 위해 여러 음모론과 정신분열적 주장들을 내놓아 왔다는 것은 이전 글 - 참을 수 없는 건 바로 그대, 장동민 - 에서 밝힌 바 있다.


 이제 해당 레바툰의 문제를 보자. 



1. 독자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작품인가? 대체로 논란의 핵심은 강간 시도 장면에 있었다. 즉 뺨을 때리고 성적인 발언 - 썸을 때리다 - 을 하며, 머리카락을 끌고 가는 장면. 몇 컷 위의 성적 호기심을 표하는 장면 - 반반하게 생겼다 - 과 부합하여, 해당 장면은 강간이 아닐 수가 없다. 법적으로 말하면 강간의 실행의 착수가 있었으며, 아직 기수에까지는 이르지 않은 단계다.


 위 루리웹 게시글은 바로 이 문제에 있어 대단히 병적이다. 애초에 글을 올린 게시자부터가 저것을 폭행으로 축소하여 보고하고 있다. 그 아래의 여러 유저들 역시 '남자는 죽었는데 여자는 맞기만 하지 않았느냐'는 성토로 수백 개의 댓글을 채우고 있다. 과연 저 숱한 사람들 중에 원 만화를 찾아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단 말인가?


 하지만 특기할 점은 저것이 강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댓글이 종종 보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옛날부터 여자는 전리품인데 사실이 그런 걸 어쩌나 운운. 그런데 누구도 이것들에 대해 논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실상이 아주 그로테스크해지는데, 저들은, 말 그대로, 강간이라는 부분을 부인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이것은 메타-심리적 차원의 일인데, 이렇게나 단합이 잘 되다니 기특한 일이리라. 목적은 이것이다 - 여성에 대한 혐오.


 어쨌든 강간 장면이 나오면 눈살을 찌푸릴 분들이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애초에 그냥 맞는 장면이 나와도 불편할 것은 마찬가지다 - 독자의 상당수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이에게, 이방인은 이방인에게, 여성은 여성에게.


 

2. 해당 레바툰의 수준, 즉 작품성을 논하겠다. 인물을 보자.


 작품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어떤 여성인가 하면, 개념없고 무책임하며 따라서 남성의 보호와 헌신을 필요로 하나, 그럼에도 보호자인 그 남성의 희생을 불러일으키는 여성이다. 이것은 일종의 스테레오타입, 즉 전형적인 인물인데, 정확히는 망상적 전형성에 해당한다.


 가령 고길동이나 꺼삐딴 리 역시 전형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에서 흔히 존재하는 그런 전형성 - 80년대 한국의 가장이자 회사원, 50년대의 기회주의적 인텔리 - 을 띈다. 하지만 레바툰의 저런 여성은 상상 속에서나 흔하다. 이를테면 왕자와 순간 사랑에 빠져 결혼에 골인하는 공주. 이런 캐릭터의 무비판적 사용은 필연적으로 작품의 조야함을 낳는다. 역사철학적 정당성으로 말미암아 즉위하신 엘사 여왕님께서, 아니나다를까,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가 되겠다. 이런 망상적 스테레오타입이 정치적으로 '유용하게' 사용된 유명한 예가 있었으니, 바로 복지 여왕(welfare queen).


 복지 여왕에 대한 경향신문 기사


 를 참조하라. 이 '복지 여왕'은 흑인이며, 또한 여자였다(한국에 아주 비슷한 허수아비가 있으니, 바로 이자스민 의원이다). 그리고 레바툰에서 무개념과 무책임을 현시하는 것도 여성이다. 간단히 생각하면 남녀 개개인의 개념없고 무책임함은 비슷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에 사회적 현실을 적용해야 하는데, 남자에게 주어진 권리가 많고 여자에게 주어진 제약이 더 크다. 따라서 해당 레바툰의 여성은 망상적이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여자는 (남자만큼) 흔하지 않겠지만 존재하기는 존재한다. 하긴 설령 존재하지 않더라도 등장시킬 수 있기야 한데, 그런 캐릭터는 작가가 각별히 제대로 다루어야 한다. 가령 "카우보이 비밥"의 페이 발렌타인 정도면 준수하며, 또는 "건축학개론"의 수지 정도만 되어도 양호하다. 이렇게 다룰 자신이 없으면, 엘사의 말대로, 적어도 주연으로는 등장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해당 레바툰은 어떤가? 가령 만화에 등장하는 '아몰랑'은 여성의 무책임함을 표상하는 여성혐오적 신조어이다. 이런 여성의 무개념은 남자의 희생을 낳았고, 만화는 강간으로 돌진하였다. 강간 자체보다, 강간이라는 결과를 낳을 만한 인성과 행동의 소유자로 바로 그 여성이 묘사되는 점이 각별히 위험하다. 간편하게 선악의 경중만 놓고 보더라도, 남성에 대한 악행보다 여성에 대한 악행이 덜 사악해진다. 어쩌면 여성에 대한 악행이 그이의 행동에 따른 필연적인 보복으로 정당화될 염려마저 있다.


 이것은 성차별적이다. 비근한 예를 들어 보자. 여느 액션 영화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감초 역할을 하다가 일찍 총에 맞아 죽는 주인공의 흑인 친구. 또는 옛날 서부극에서 주인공이 탄 열차를 습격하는 인디언 마상강도떼들. 이런 영화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인종차별적이다. 설령 백인이 이십 명씩 죽어 나가더라도 인종차별적이다. 레바의 해당 웹툰은 그만큼이나 구린 작품이다.


 일상툰에 대체 얼마나 높은 기준을 요구하느냐고 투덜대실 분도 있을 테다. 그러나 이말년이나 조석을 보라. 이 인간들은 소위 '병맛'계의 창시자들인데, 성폭력으로 문제될 만한 작품을 그린 적이 없다. 조석은 절제력을 보여 주고 있고, 이말년은 앞서 논한 문제를 최소한 직관적으로는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편집의 문제를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레진코믹스의 편집진은 실력미달이다.



3. 여기서 레바 만화의 반사회성의 문제로 들어온다. 여기서 우리는 박근혜씨의 씨크릿 드립과는 달리, 비슷하지만 다른 것을 다르다고 분명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나는 위에서 독자의 기분과 작품의 수준을 따로 떨어뜨려 논했다. 이것 두 개는 서로 전혀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저것들이 연관이 있다면, "보바리 부인"은 분명히 나쁜 작품이어야 할 것이다. 과거 많은 신사분들이 그것에 기분이 상했고, 심지어 현대에도 프랑스의 이슬람교도 학생들이 그 소설을 읽기 거부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따지면 기안의 이번 오바마 등장편도 틀림없이 나쁜 작품이리라.


 여기서 나는 레바툰을 비난하는 모든 여성들이 이 '비슷하지만 다름'을 확실히 구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며, 그런 기대 역시 품지 않는다. 남녀의 지적 수준은 아마 비슷할 터이며, 남성이 그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은 저 루리웹에서 증명된다. 즉 저 허다한 여성혐오자들이 작품 속의 강간이 사회적 비난과 직결되는 것으로 오해한 나머지, 강간을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루리웹이 지적으로 그리 괜찮은 동네가 아니긴 하다. 하지만 확실히 여러 발언들을 보면 앞서 말한 미분화 경향이 여성에게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이는 양비론이 아닌, 그 구분이 더 확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근거가 될 뿐이다. 반사회성 역시 작품성, 또는 독자의 기분과 분명히 구분된다. 가령 리펜슈탈의 나치 찬양 영화들은 영화사에 남을 수작들이지만 매우 비윤리적이다. 또한 "국제시장"은 중장년층의 애호를 얻었지만 형편없는 작품일 것이며, 그럼에도 그것의 반사회성까지를 논하기는 무리이다.


 위에서 나는 레바툰이 독자의 기분을 나쁘게 할 부분 - 강간 시도 - 이 있으며, 작품성에 있어서도 그리 좋은 평가를 내기 어렵다는, 아니 그냥 수준이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앞서 말했듯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반사회적이거나 뭐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레바툰에는 문제가 있다. 바로 성차별적이라는 점.


 레바의 여성 캐릭터는 남성들의 망상에 따른 것이며, 이는 우리의 현실에서 여성을 무능하고 어리석은 존재로 관념하려는 어떤 충동과 직결된다. 심지어 레바는 '아몰랑'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데, 그것의 진정성을 인정한다면, 망상의 전형성은 더 강력하고 심각한 것이다. 레바툰의 강간은 말했듯 작품 내적으로 굉장히 부적절하며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강간 피해자들에 대한 양비론이나 심지어는 일방적 비난, 즉 네가 처신을 잘못해서 범죄를 당했다는 얼개가 만화의 전개와 같기 때문이다.


 문제는 레바가 이것을 그다지 의도하고 그린 것은 또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레바의 해당 만화의 여성은 망상의 스테레오타입이다. 이것은 남자들의 잘못된 믿음에 기인하는 것인데, 이것이 저 앞서 루리웹의 경우와 같이, 어떤 집단 안에서 일반적으로 공유되는 수준에 이르러야 스테레오타입으로 기능할 수 있다. 진중권은 일반적으로 개인에게 주어지는 이런, 잘못된 인습을 '오염된 공기'라고 정의하였다. 물론 진중권의 이 말 자체는 장동민의 '악의 평범함'을 암시하기 위한 것으로, 졸렬한 편들기에 지나지 않지마는.


 바로 이런 망상의 전형성 중 하나, 즉 상상-꼴페미들을 현실로 착각한 소년 하나가 얼마 전 IS로 떠났음을 우리는 안다. 김 군이 홈스쿨링을 해서인가? 아니, 여성혐오의 일베인들은 현실교육제도 안에서 성장하였을 터이다. 물론 한국에서 성평등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긴 한다. 하지만 이런 집단적 망상의 원인은 교육 빼고도 분명 여러 가지가 있다. 즉 가정환경의 영향, 또래집단의 영향, 종교의 영향, 한국에서 특히 군대의 영향, 최근 들어, 그리고 김 군의 경우에서 더 크게 드러나는 인터넷의 영향이다.


 진중권 말대로 오염된 공기는 누구나 마실 수 있다. 문제의 장동민은 특히 오염되었으며, 또한 자신의 오염을 반성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아주 극악하다. 게다가 희극의 목적을 그 오염, 즉 인습성의 극복으로 본다면, 장동민의 웃음으로 보답 운운, 또 진중권의 "웃기려다 보니...." 운운은 언어도단에 지나지 않을 것들이다.


 누구나 인정할 것이듯, 장동민에 비해 이번 레바툰의 문제는 사소하다. 레바툰의 성차별성은 어쨌거나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는 것이다. 이것은 말했듯 할리우드 영화의 인종차별성과 비슷한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개인에 대한 제재보다는 작품 내적인 비평이나 그에 부응하는 사회운동으로 해결하려는 입장을 취해 왔다. 또한 레바 본인도 사과를 하고 개선하겠다는 자세는 보이고 있다. 심지어 레바의 사과 - http://mister1315.tistory.com/98 - 를 보면, 레바는 저 루리웹의 여성혐오자들보다 확실히 더 양심적이까지 하잖은가!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모르는 듯하지만.


 따라서 어쩌면 장동민에 대한 진중권의 진단은 이번 레바툰에 적용되어야 할 만한 것이다. 물론 서로 조심을 하려는 노력 따위에 그쳐서는 아니되고, 오염된 공기를 개선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여러 고까움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 (이후 이어지는 일상생활의 한심함에도 불구하고) 또 선언해야 하는 이유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레바의 미래의 작품성이나 작품의 사회적 윤리성에 대해 큰 기대를 품지는 않는다. 말했듯 '오염된 공기'를 인식하지 못하며 희극을 쓰는 사람이니까. 여러분이 믿거나 말거나지만, 나는 레바의 트위터를 얼마 전부터 지켜보며, 이런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을 느꼈다.


 레바가 하겠다는 고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의심의 여지 없이 욕설과 명예훼손은 사법적 청구의 근거가 된다. 아니, 좀 욕설을 지껄이는 자들에게 심판을 내려 주기를 개인에게 권유하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레바가 소송과정에서 설령 불법과 정당한 비판을 분리한다고 하더라도, 숱한 여혐분자들이 그것들을 분리할 수 있을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이미 저 여성혐오자들은 이른바 여초 커뮤니티의 사악함을 망상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진중권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 진중권의 어중간한 트윗글은 적어도 음모론을 일시적으로 박살내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던 것이다 - 로서도 극복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래 레바의 트윗에 달린 멘션들을 보라.


 https://twitter.com/twit_reva/status/595920072197025792




 

 자, 보라, 저들은 레바를 장동민을 능가하는 여성혐오의 아이콘으로 여기고 있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