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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이야기

아스카는 츤데레인가?



 이 포스트에는 『신세기 에반게리온(TV판)』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포일러가 있음.




 서두에 '김희철에게 헌정함' 이라는 문구를 넣을까 했으나,
그는 이미 안나빠로 전향했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주제의 무게가, 물론 개인적인 차원에서, 매우 가벼워졌음이다. 이제 어찌된들 어떠하랴, 담담한 마음으로 키보드를 두들긴다.


 아스카를 아는 이가 '츤데레'라는 말의 뜻을 설령 모를 리야 없겠지마는, 예의상, 츤데레의 정의를 설명하고자 한다.

 네이버 일어사전의 츤데레 항목의 첫째는 이렇다 - 처음에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후에는 우호적인 태도로 변화하는 것. 링크

 한국어 위키백과의 설명은 좀더 자세하다.

 츤데레(일본어: ツンデレ)는 2002년경에 등장한 재패니메이션이나 일본의 미소녀 게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등장인물의 인격 유형 가운데 하나를 일컫는 일본어 인터넷 유행어이다. 이 말은 ‘새침하고 퉁명스러운 모습’을 나타내는 일본어 의태어인 츤츤(일본어: つんつん 쓴쓴)과 ‘부끄러워하는 것’을 나타내는 일본어 의태어 데레데레(일본어: でれでれ)의 합성어다. 즉, '츤데레'의 뜻은 처음엔 퉁명스럽고 새침한 모습을 보이지만, 애정을 갖기 시작하면 부끄러워하는 성격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링크

 대한민국 국어교육과정에서 배우는 소설 중 등장인물이 정확히 이 성향을 보이는 작품이 있다 - 다름아닌 동백꽃. 바로 점순이가 그러하다.

 '츤데레'는 빠르게는 90년대 말부터, 적어도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 만화-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주요한 성격 유형이었다. 이 유행은 십수 년이 지난 현재에 와서도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과연 현실의 여성이 그렇게 변모해서인가?

 라고 물으시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아니올시다'이다. 이는 남성의 자신감 상실의 필연적인 결과물인데, 그들은 여성의 '퉁명스러움'을 감내할 심리적 기제를 필요로 했을 뿐이다. 이는 몇몇 유행어들, 가령 '초식남'이나 '김치녀(아시겠지만 이 용어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발화자에 대해 말해 준다)' 따위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현상이다.

 대체 퉁명스러움 따위가 다 뭐람! 어쩌면 여러분은 투덜댈 것이다. 저런 것에 깊이 상처받는 인간이라면, 일 주일만 여자의 삶을 줄 때 그들은 미쳐 버릴 것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조그마한 아픔에도, 거대한 고통에 역시 당연하겠지마는, 차분한 이해를 베풀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남성의 소심함을 조금만 인내해 주시라.


 이제 다시 논쟁의 주제로 돌아간다. 아스카는 츤데레인가? 말했듯 이것은 논쟁거리로서, 에바가 도래한 지난 세기말 이래, 입 있는 '덕후'라면 응당 이 주제를 놓고 한 마디씩 뱉었으리라. 문제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 아스카가 신지를 하대하며 갈구는 상황은 명백하다. 그런데 아스카는 내심 신지를 좋아하는가?

 아스카가 신지에게 갖는 애정을 긍정한다면 츤데레이고, 부정하면 츤데레가 아닐 것이다. 아마 에반게리온을 전혀 모르시는 분이라도 - 정말 모르신다면 이 글을 여기까지 읽어 오셨을 턱이 아무래도 없겠지마는 - 쉽게 추측하실 것이니, 작중 아스카의 행동은 단언을 내리기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명백하게 드러나는 제2사례를 도입하여 길을 열려 한다. 그것은 오늘날 북한(!)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미제 소설[각주:1],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다.

 스칼렛은 누구를 사랑하는가? 소설을 읽은 분은 아마 높은 확률로 말씀하실 것이니, 레트에 대한 사랑이 진짜 사랑이고 애쉴리에 대한 사랑은 허상이었노라. 그러나 실로 덧없다 한들 그 지향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곧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애쉴리에 대한 사랑이 가장 강력했으며 레트에 대한 사랑은 가려져 있었다. 애쉴리가 1번이고 레트가 2번이다. 그 이하 프랭크 케네디나 스튜어트 탈레턴 등등.

 소설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어장관리를 낙으로 삼던 스칼렛이 진정 사랑하는 이는 애쉴리이다. 애쉴리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자, 빡친 스칼렛은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린다. 그 뒤는 여러분이 아시는 바이다 - 스칼렛의 남편은 죽고, 멜라니는 애쉴리의 아이를 낳는다. 스칼렛은 인내심이 결국 바닥날 것만 같았지만 - 적절한 타이밍마다 레트가 나타났다 또 홀연히 사라진다 - , 의외의 사건이 일어난다. 멜라니가 더 이상 출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애쉴리와 멜라니는 섹스리스 부부가 된다. 이것은 스칼렛이 간신하게나마 인내할 만한 것이 아닐까? 애쉴리의 결혼을 가장결혼으로 가정하고, 그와의 어떤 플라토닉한 사랑을 공상할 충분한 동기가 그에게는 존재한다. 아니나다를까, 스칼렛도 명목상의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이 역시 그리 오래가지는 아니하지만.

 세 번째 결혼 상대는 레트다. 둘 사이에는 아이가 하나 생기지만 오직 그뿐이다. 스칼렛은 이제 이상할 정도로 섹스를 거부하는데, 나는 예전까지 이를 작가의 편협함으로, 그러니까 아줌마들이 흔히 보이는 그 집요한 보수성으로 이해했다. 이는 어쩌면 어느 정도는 여전히 사실일지 모른다. 이는 또 당당한 - 그리고 아무래도 심성이 사악하기 그지없는 -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것의 방어막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점을 반드시 눈여겨보아야 한다. 섹스리스를 고리로 한 가상의 유대감, 그러니까 '바람은 피우지만 우리 섹스는 안한다구요, 애쉴리'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주관적 망상을 말이다.

 하긴 망상이 객관적이면 이미 망상이 아니겠지. 어쨌든 여기서 저 인상적인 장면, 레트가 붉은 스칼렛을 안고 계단을 오르는 신이 등장한다. 이 관계는 결국 연이은 추락으로서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스칼렛의 플라토닉한 사랑 역시 끝나고 만다. 멜라니가 아이를 낳다가 죽은 것이다. 그렇다, 애쉴리는 부정을 저질렀던 것이다!

 아니, 하지만 스칼렛, 그대가 틀렸다. 부부관계가 어떻게 부정이란 말인가. 그것이 진짜였으니, 실로, 그대가 믿던 것은 허상이었노라! 이제 그 귀족적이었던 것들에 작별을 고해야 할 것이다. 보시다시피 누구도 진정 귀족적이지는 사실 아니하였음에, 안녕이란 말을 건네리니 오직 저 노스탤지어의 편이겠다.

 이제 아스카에게 물을 때이다. TV판 15화에서 아스카는 스칼렛과 유사한 행보를 - 그러나 상당히 압축적인 방식으로 - 보인다.

 아스카는 카지와 미사토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름을 눈치챈다. 둘이 만나는 날에 맞추어 소개팅을 나가지만, 상대를 말 그대로 만나기만 하고 도중에 돌아와 버린다. 집에 돌아와서 그는 신지를 유혹한다(반쯤 열린 미닫이문으로 발이 까닥이는 장면). 미사토가 늦자 - 더없이 명백해지는 상황이다 - 그는 신지에게 키스를 제안한다. 키스가 끝나자, 아스카는 곧장 혐오감을 드러낸다.

 섹스가 없다고? 여러분은 너무 바라는 게 많다. 청소년간의 섹스는 사업상 매우 난감하다. 게다가 심리적으로도, 아직 그런 건 선택지에 없을 법한 시기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저지를 만한 부정을 모조리 저질러 버렸다는 게 아스카에게 중요하다. 자, 아스카에게 있어 신지는 어느 정도의 위치인가? 솔직히 레트 정도 쳐주기도 쉽지 않다. 물론 프랭크보다는 훨씬 나은 듯하지만.

 이렇게 놓고 볼 때, 에반게리온에서의 문제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으니, 그것은 카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읽으며 우리는 애쉴리에 대한 스칼렛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에반게리온에서는, 1위로 자리매김해야 할 카지에 대한 아스카의 심정이 사실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표현은 넘치는데 깊이가 없다. 이것은 어쩌면 작품의 결함으로 보인다.

 굳이 에반게리온을 옹호하자면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도 그러했으니 - 이렇게 될 것이다. 아스카는 사실 누구도 열심히 사랑하지 않는 상태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지의 상대적 위치는 제법 올라갈 수도 있겠다.

 따라서 결론은 이러하다 - 아스카는 츤데레가 아니다. 적어도 사랑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길이 멀다.








  1. 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1210/h2012102421092991560.htm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