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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대한 이야기

그는 편집장이다 : 정체성 서설




 억울한 심정이 사무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노래 가사를 조용히 이야기한다. "...속상해 하지 말아요, 미움이 그댈 화나게 해도 짜증내지 마세요..." 그러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때로 갑갑한 기분에 어찌할 줄 모를 때가 있다. 그러면 책을 본다. 무슨 대단한 책도 아니고 만화책, 《NANA》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 만화를 찬양하기에 여념이 없다. 처음에는 스토리텔링을 찬양했고, 나중에는 인물 심리의 짜임을 찬양했고, 이제는 만화가 표현하는 현실성[각주:1]을 찬양한다. 물론 인물들의 개성도 늘 높게 평가해 왔다. 하치와 렌은 뛰어난 캐릭터다. 하지만 캐릭터를 논한다면 마땅히 한 명을 더 꼽아야 할 테다. 《나나》를 읽은 분도 꼭 기억하실지 모를 그는 바로, '서치[각주:2]'의 편집장이다[각주:3].

 이제, 어째서 그라는 캐릭터를 높게 평가하냐고 물으실 테다. 간단히 답하면, 그의 인격에서 드러나는 '독창적 전형성'이다. 풀어 설명하자면 대체로 아래와 같다. 일단 장면 하나를 들어 보자. 이 단편만으로도 편집장의 인격을 꽤 그려 낼 수 있다. '특종' 전날, 편집장과 그의 취재원의 대화다[각주:4].

 취재원 : 하지만 가이아[각주:5]는 데뷔시킬 생각도 없어 보이던데요?

 편집장 : 내가 시켜 주지.

 취재원 : (중략).....설령 데뷔한다 쳐도, 팔리질 않는다구요.

 편집장 : 무슨 평론가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짜증나게! 어느 시대든 서민이 미디어에 요구하는 건 변함없어! 자극적인 화제라구! 헌데 요샌 예술가인 양 착각에 빠진 놈들뿐이잖아. 트라네스[각주:6] 같은 우등생 밴드가 군림하는 세상은 지겨워서 견딜 수가 없단 말야. 타쿠미[각주:7]의 높은 콧대를 꺾어놓고 싶다니까. 아무튼...

 (중략)

 편집장 : 기사감 절반은 TV에 팔았거든. 내 시나리오에 혹한 덕에 지갑이 두둑하다네.

 취재원 : 또 자기 잇속을 채웠군요. 스쿠프[각주:8]가 목적이 아니라. 결국 돈입니까?

 편집장 : 내 목적은 업계를 활성화시켜서 잡지 매출을 증가시키는 거야! 열애발각 보도로 세간의 흥미를 부추겨야, 결정적 사진에 다들 덤벼들 거 아냐!


 일단 편집장의 행동을 보자. 만화를 읽은 독자는 사정을 쉽게, 그리고 간단히 표현할 수 있다[각주:9]. 이를테면

 "편집장은 이 시점까지 줄곧[각주:10] 어떤 이들 - 곧 만화의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 - 의 신상을 파헤쳤다."

 라는 식으로. 그런데 편집장이 그런 행동 - 신상캐기 - 을 수행했는가를 묻는다면 어떨까. 이것은 상대적으로 답하기가 쉽지 않다. 설령 편집장의 저 모든 발언을 솔직한 것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행동의 동기를 어느 한 서술로 분명히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불가능하다.


 일단 장면 안의 상황을 정리해 보자.

 편집장의 물리적 행동은 명확하다.

 1. 신상털기.

 2. 기사감을 TV에 팔기.

그 행동과 관련하여, 편집장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한다.

 1. 어느 시대든 서민이 미디어에 요구하는 건 변함없다 : 자극적인 화제.
 2. 신상털기는 대중의 욕망에 부응하는 것이니 옳다.
 3. 반면 우등생 밴드는 대중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니 옳지 않다.
 4. 기사감을 판 핸동은 잡지의 이익에 부합하니 옳다.

 일단 대전제를 보자 - 미디어의 목적은 서민의 관심이며, 서민은 자극적인 화제를 원한다. 인상적이지만, 꼭 그렇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게다가 어떻게 대중적 수요가 존재한다[각주:11] 한들, 꼭 그에 응해 '자극적인 화제'를 양산하는 게 올바른 일인가, 이것 역시 물어야 한다.

 물론 편집장의 기자적 정신에는 비판적 성찰이 없다. 그는 다른 주장들을 산발적으로 제기하고, 그것으로 자신을 정당화시키려 한다. 대화의 주제가 징검다리 뛰듯 옮겨다니는 이유다. 곧,

 서민이 미디어에 원하는 건 자극적인 화제다 -> 자극적인 화제를 양산하지 않는 뮤지션은 악이다 ->타쿠미를 까자 -> 아무튼...

 편집장의 이 말들은 어쨌든 공적인 주장이다. 겉으로는 윤리적 판단이며, 따라서 이성적인 근거를 지녔으리라 기대된다. 하지만, 얼핏 보기에는 그럴듯하더라도, 따져 보면 각각의 근거가 대단히 허술하다. 과연 편집장은 온전히 진심으로, 이런 빈약한 논리만을 기초로, 그의 행동을 이어나가는 걸까? 단언하건대, 그는 그 정도로 단순한 인간이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마치 샌델의 책처럼, 인간의 행동과 공적 정의, 두 가지 소재를 갖고 이야기했다. 이제 여기서 무언가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었다고 가정하자.

 이성은 삶의 일부만을 대변할 뿐이다. 그러나 욕구라는 것은 삶의 모든 국면들의 표현이다.

 -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 中

 이 명제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욕망을 고찰하는 게 이 시점에서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하실 것이다. 나는 그것으로 우리가 찾으려는 다른 국면들을 이해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제 편집장의 사적 욕망을 살펴보자.

 행간에서 분명히 드러난 사적 욕망이 2가지가 있다.

 1. 예술가들, 그러니까 꼭 집어서 말하면 트라네스와 타쿠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곧 질시.

 2. 기사감을 TV에 팔아서 지갑이 두둑하니 기분이 좋다. 그러니까 돈.

 이제 이것을 편집장의 물리적 행동과 비교해 보자. 곧

 질시 -> 신상털기

 물욕 -> 기사팔기

 이제 우리는 편집장의 사적 욕망이 행동의 진정한 원인이 아닐까 하는 강한 의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만약 그 의심이 사실이라면, 욕망과 행동과 도덕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욕망 -(추동)-> 행동 -(정당화)-> 도덕

 곧 욕망이 행동을 낳는다. 사람이 내세운 도덕은 행동을 변명하는 핑계에 불과하다. 물론 편집장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도덕 -(판단)-> 행동
                        |
                       욕망

 그에 따르면, 도덕적 판단이 행동을 낳고, 그것이 우연히 욕망과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흔히 가정하는 이상적인 사고다.


 이 두 그림 중 무엇이 진실에 가까울까? 통념적인 두번째 그림보다는, 첫번째 그림이 매력적이다. 그러나 내 결론은 제 3의 것, 위 두 모델의 통합이다.

 욕망 => 행동 …> 욕망 => 행동
        ↗          ↘  ↕  ↗
 도덕                 도덕

 곧 욕망은 행동을 낳는 강력한 원인이다. 도덕은 대체로 부차적인 것이며, 때로 결과에 불과하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행동과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도덕이란 걸 변형시킨다. 그리고 다음 단계에 이르면, 이 왜곡된 도덕원리가 행동의 동기로 작용한다.

 일명 '고발 프로그램'들을 보자. 여기에는 많은 악당들이 등장한다. TV화면에 보이는 이 '악당'의 모습은 뻔뻔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 악당들을 대면한 방송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이 악당들은 단순히 겉으로만 뻔뻔한 게 아닌 것 같단다. 부인과 아이들을 학대하는 가장에게,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타인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화면을 보여 준다. 그러면 그 악당은 '어떻게 저런 나쁜 놈이 있느냐'라며 참으로 스스럼없이 말한다는 것이다.

 이 악당들이 도덕적이지 않아서 이런 염치없는 행동을 하는 걸까? 반대로, 오히려 도덕적이기에 그런 행동을 태연자약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즉 그들의 도덕이란 자신의 문제에 있어서, 자기 좋을 대로 상당히 변형되고 왜곡되어 있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어쨌든 마누라를 패는 건 좋지 않다. 하지만 나는 마누라를 팼다. 그런데 마누라는 뭔가 잘못을 한 것 같다. 아니 잘못을 했다. 하긴 마누라가 잘못을 했을 때는 패도 될 거 같다. 따라서 나는 옳다(적어도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제 마누라가 잘못을 하면 마음놓고 패자.'

 라는 식으로 도덕이 변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은 행동의 원인이며 때로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좀더 분명히 편집장의 사고를 그릴 수 있다.

 1. 질시 => 신상캐기 …> 질시 => 신상캐기
                          ↘        ↕        ↗
          대중의 요구 정당화 -> 신상털기 정당화&예술주의 연예인 비난

 2. 물욕 => 기사감 팔기 …> 물욕 => 기사감 팔기
                                   ↘   ↕   ↗
                                  잡지의 이익

 이것으로 이 부분에 있어 잠정적인 정리가 나왔다. 이제 여기서 좀더 나아가 보자.


 정리된 편집장의 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도덕이 주장의 앞에 서고, 욕망은 그 뒤로 숨는다는 것이다. 가령 언젠가 다른 글에서 언급한 건 - 가수의 음주운전 - 과 비교하면 확실히 다르다. 편집장의 사고와 발언은 아이의 도덕률보다는 분명 높은 수준에 이르러 있다[각주:12].

 욕망을 전면에 내세우면 그것의 허점이 눈에 분명히 보인다. 곧 얻어맞기 쉽다. 하지만 도덕적 판단을 전면에 내세우면 그것을 반박하는 데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게다가 욕망은 개인적인 문제지만, 도덕은 사회적인 문제이기에, 반드시 옳지 못한 도덕도 정치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가령 연예인의 신상을 터는 것은 정당하다, 같은 것들.

 따라서 몇 가지 행동지침이 나온다. 욕망에 걸맞는 도덕을 선택하라는 것. 되도록이면 우군이 많은 도덕일수록 좋다는 것. 도덕에 합리적 근거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오히려 도덕을 나열하는 게 그에 대한 비판보다 유리하다는 것. 욕망은 부차적인 것으로 보이게 꾸미라는 것. 이것이 편집장의 정당화 기술이다.

 이런 기교들은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자신을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편안할 뿐더러, 일을 하는 데도 더 능률적이기 때문이다. '서치' 안을 관찰하면 더 분명해진다.  이런 '도덕'을 받아들이는 직원들이 더 업무에 대한 열의가 있고 동기부여가 확실히다. 몇 걸음 떨어져서 보면, 나쁜 짓을 즐거이, 또 열심히 하는 것과 다름이 없지만.

 이제 편집장의 '삶의 모든 국면'을 그려 보자. 물론 우리는 그의 인생 전체를 그릴 수 있는 정보까지는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삶의 국면들이 대체로 이런 모습을 띈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며 누구나 불합리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부분 부분을 놓고 보면 멀쩡해 보인다. 전체의 그림 역시 당신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는 아니다[각주:13]. 단지 그 구성이 삶의 이치와는 동떨어져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그림처럼, 그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어떤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추론으로 그것을 입증하려 시도할 수 있다.


 하지만 추론이 늘 들어맞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이해하는 대로라면, 편집장이 저지르는 이런 악행의 메커니즘은 그다지 유별난 게 아니다. 나는 방송에 등장하는 악당, 심지어 유명한 범죄자의 경우에도, 그들의 사고가 인간답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좀 지나칠 뿐이다.

 곧 편집장의 사고는, 사고의 어떤 일반론으로도 제시할 수 있다. 다음 인터뷰 기사를 참고하라.

 http://www.hani.co.kr/section-021023000/2000/021023000200009270327078.html

 너무 솔직해서 탈이었을까? 어쨌든 이것으로 방법론 서설을 끝내고, 다음 글에서는 본론인 "나는 가수다"의 문제로 진입하겠다.






  1. 그러니까 만화 세계의 사태들과 우리 현실 세계의 사태들 사이의 유사성 [본문으로]
  2. 작중 등장하는 연예계 가십 잡지. [본문으로]
  3. 비평을 제쳐놓고, 그저 마음으로 좋아하는 캐릭터를 물으신다면 레이라라고 답해야겠다. 성격이 개떡 아니냐 물으신다면,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요? 라고 답해야겠다. [본문으로]
  4. 10권. [본문으로]
  5. 작중 등장하는 음반회사. [본문으로]
  6. 작중 등장하는 밴드의 이름. [본문으로]
  7. 작중 트라네스의 일원이자 프로듀서. [본문으로]
  8. scoop. 특종. [본문으로]
  9. 만화가 그의 행동들을 충분히 드러냈으니까. [본문으로]
  10.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본문으로]
  11. '자극적인 화제'의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 여길 수도 있지만, 반대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본문으로]
  12. 물론 여기서 높다는 것의 의미는 '더 바람직하다'가 아니다. [본문으로]
  13. 아니, 반대로 당신은 이 그림을 적어도 대체로, 아무래도 그 자체로 이해하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