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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야기

11일 한겨레 인터뷰 비판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532511.html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한겨레신문 인터뷰 비판. 차근차근 짚어 보자.


1.

 "‘원래 그랬잖아, 또 그랬을 거야’ 한마디로 정리되는 상황이다. 뭘 그랬는지 드러나지 않았는데도. ‘하던 대로 했겠지’ 하는 의심이 당 진상조사 과정에도 상당히 많이 작동했다고 본다."

 이 문장의 전제는 다음과 같다. 당권파는 그런 짓 - 부정선거 - 을 늘 저질러 왔다. 여러분들은 이제 그들, 당권파의 역사를 굳이 깊게 파고드는 수고를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사실은 명확해졌다. 항상 그런 짓을 저지르던 인간들이었다. 어머나 세상에.

 그러니까 이 문장은 간단히 말해 이런 의미다 :  "마을 사람들, 이번에는 진짜 늑대가 나타났어요."


2.

 "솔직히 지난달 29일부터 2일까지는 더 조사하지 말자는 입장이었다. 왜 그랬냐면 사건을 낱낱이 밝히게 되면 노동자·농민의 조직이 상처받을 게 두려웠다."

 이것으로 이번에 일어난 부정의 외연 - 예전에 있었던 부정은 어차피 인정되었으니 - 이 분명해진다. 각하께서 '사찰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듯, 이정희씨도 부정의 존재 자체는 부인하지 않는다. 이 분이 승부를 걸려고 하는 것은 그 아래의 영역에 놓여 있다.

 어쨌든 부정의 존재 자체는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을 은폐하려고 시도했던 것 역시 명확하게 드러났다.


3.
 
 "4일 아침 사실관계를 하나하나 확인해가면서 보고서를 읽었는데, 나는 많이 분노했다. 국민들 앞에서 잘못이 많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없는 사실까지 지어내면서 ‘이것이 잘못이다’ 말하는 건 옳지 않다."

 대통령 각하께서도 청와대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사찰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하지 않은 사찰까지 지어내면서 '이것이 사찰이다' 말하는 건 옳지 않다.'

 어쨌든 '잘못은 많다.' 한 마디로 확인사살.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4.

 "너무 법률가적 태도라 할 수도 있지만 100명의 범죄자를 놓쳐도 한 사람의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면 안 된다, 이게 근대의 상식이고 원칙이다."

 "법률 영역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이란 두 가지다. 내용의 측면에서는 실제 유죄를 확증할 근거가 없다면 무죄라는 것이고, 절차의 측면에서는 정해진 법적 절차를 거치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것이다."

 아주 포스트모던한 세상이다. 저쪽에는 종교적 계시를 받았다는 분께서 계시질 않나, 어쨌든 이 무죄추정의 원칙은 하기야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법이란 어떤 한정된 영역을 갖는 언어들의 다발이다. 우리는 그것의 전제들과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각주:1]. 그래야 그것을 일상언어의 차원에서 올바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이 경우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국가공권력에 대한 요청이다[각주:2]. 공권력이 현실의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단지 그것뿐이다. 그 외에는 아무 직접적 연관이 없다.

 가령 잠실운동장에서 야구 경기를 하는데, 3루석에서 어떤 관중이 물병 하나를 던져서 포수가 맞고 쓰러졌다. 누가 그것을 던졌는지를 알 수 없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범인은 없다. 정확히 말해 모른다. 따라서 공권력은 누구도 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을 당연히 이야기할 수 있다 - 3루석에 물병을 던진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포수가 그것에 맞았다.

 이 경우도 동일하다. 피해자 운운하는데, 우리가 이 사건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의 요점은 어떤 놈이 부정을 저질렀느냐가 아니다. 그 놈들을 처벌하느냐 마느냐도 아니다. 부정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만 이야기할 수 있으면 된다. 이 사실을 판단하는 데 무죄추정의 원칙 따위는 아무 관련이 없다.


5.

 "다만 통합진보당의 민주주의 수준은 그동안 신라시대 화백제도였다."

 OMG. 화백제도는 선사시대 족장들 모임이다. 그 이후로는 귀족들 협의기구고[각주:3]. 거기서 어떤 본받을 만큼 높은 수준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6.

 민주주의는 그 조직이 화합해서 앞으로 분쟁이나 분란이 없도록 갈 수 있게끔 하는 절차다.

 당연한 듯 이야기하셨지만, 이것은 민주주의의 정의나 속성이 아니다. 물론 민주주의가 이상적으로 동작하면 그렇게 - 분쟁이나 분란이 없게 -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체제나 마찬가지다.
 

7.

 "내가 집회 및 시위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 원칙이 있다. 명백하게 급박하거나 현실적 위험이 아니면 사전에 제한하면 안 된다는 것이 내 원칙이다. 그들이 나를 비판하는 사람이든, 옹호하는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당시 현장에서 그들은 나를 옹호하는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이것 역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현행법상 어떤 집회 또는 시위의 범주에도 포섭되지 않는다. 회의에서 일어난 일종의 의사진행방해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각주:4]. 물론 이게 항상 나쁘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법적으로는 어떻게 여기든 나쁘다).

 문제는 이정희씨의 태도다. '옹호하는 모습으로 비쳤을 것' 따위가 아니라, 그냥 옹호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정희씨는 의사진행을 방해했다, 또는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행위에 가담했다. 헛소리는 필요없다. 왜 의사진행을 방해했는지에 대한 답변이 필요하다.


8.

"통합진보당 안에서 나는 명예를 버리는 걸 감수했다."










  1. 그것들은 땅에 발을 디디고 있는가? 내 생각은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공중정원이다. 물론 우리는 그것을 상상할 수는 있다. [본문으로]
  2. 좀더 엄밀히 들어가 보자. 이것은 원칙으로서 기능하는가? 현실의 법, 즉 사법기관의 행위를 보면 역시 전혀 아니올시다다. 이것은 원칙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 나는 그에 대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이것은 요청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본문으로]
  3. 로마 시대 원로원과 비슷하다. [본문으로]
  4. 이 몇몇 분들의 모임을 어떤 별개의 집회로 상상해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경우 이정희씨는 그와 구분되는 집회 - 운영위원회 - 에 참여하는 셈이 되고, 따라서 소속된 집회의 당사자로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어야 한다. 따라서 결론은 동일해진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