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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야기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터뷰 비판



 나는 학생같은 백수인가, 백수 같은 학생인가? 늘 백수에 더 가깝긴 했다. 어쨌든 백수같은 학창시절에, 교수들은 늘 말하였으니, 판례를 먼저 이해하려고 해야지 그에 앞서 비판하려고 하면 안된다나 뭐라나. 어쨌든 나는 그간 헌법재판관들을 열심히 비난해 왔다 - 그러나 나는 이제, 그간 재임하셨던 재판관 양반들에게 무릎 꿇어 사죄해야 마땅하다. 그 정도의 거물이 나셨다.

 이 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떠도는 기사를 보면 아실 것이니, 이쯤 되면, 이 분이 그간 헌법재판관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대한민국은 막장이다. 오늘 또 대단한 인터뷰 기사가 납셨는바,

 http://news.nate.com/view/20130206n01321?mid=n0207

 대체 뭐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법학은 역시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학문이었다. 그게 학문이라면 말이다. 따라서 이 인터뷰에 대한 비평은 현실의 법학이 아니어야 하겠다.

 일단 기사의 제목을 보자. 


 [단독] 이동흡 "딸들이 출근길에 상해 당해…"

 제목부터 막장이다. 이것은 인터뷰의 핵심도 아닐뿐더러, 논리적으로 사실로 기능한다고 볼 수도 없다. 이유는 이하에서 설명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착잡하다."

 각하의 경우에서 정확히 목격하듯, 열심히 사는 것과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아마 김정일씨도 저승에서 후보자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청문회 원칙은 무죄추정이 아니라 유죄단정이었다."

 예전에도 논한 바 있지만, 이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건 법률적 요청일 뿐이지, 사실의 판단기준이 아니다. 청문회는 재판정이 아니다.


 "(특정업무경비의 사적 유용에 관한 질문에)이 문제는 기관의 운영에 관련된 시스템 문제다."

 모든 범죄는 사회라는 시스템의 소산이다.


 "내가 통장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바람에 기획재정부가 최근 특정업무경비 지침을 개선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스티브 유 덕분에 병역법이 개정되었다고 말해야 할까?


  "(청문회를 치를 공직자들은) 관례라고 용인되던 부분도 작심하고 문제 삼으면 비난받을 수 있으니 한 번 더 되돌아보고 아예 논란의 소지를 없애길 바란다."

 관례라고 해서 범죄가 아닌 것은 아니다. 가령 연휴 때, 또는 운동경기장 앞에서 늘 암약하는 암표상들을 보자. 이들에게는 이것이 관례를 떠나 일종의 생계수단이다. 만연한다고 범죄가 아니라면, 가령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살인과 마약밀매가 범죄가 아니어야 한다. 그런데 후보자는 그 와중에서도 좀 작작 해먹었어야 하는 게, 경비를 공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자들이야 뭐 대부분이고 사적으로 유용하는 자들도 감히 셀 수 없을 지경이지마는, 후보자처럼 통장에 적립하는 괴인들은 흔하지가 않다. 


 "관행의 문제를 한 개인이 다 책임지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가."

 지적했듯 모든 범죄는 사회가 낳은 자식들이다. 가령, 요새 문제가 되는, 학교폭력이나 집단따돌림의 문제를 보자. 과연 우리는 '일진'이나 '왕따 가해자' 같은 아이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 어차피 그들의 폭력은 지금 우리가 저지르는 폭력의 반영일 따름이다. 어떤 범죄도 개인만의 책임은 아니다.

 반면 법학은, 특히 형법은 이를 국가 대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킨다. '어떤 방법론상에 따른 축소된 관점'이라고 해야 할까? 간단히 말해, 형법[각주:1]은 대체로, 법의 역할은 그저 범죄자의 처벌이고, 그러니 다른 요소들은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고 여긴다. 하긴 대부분의 법률가들은 그 이상의 것은 상상하지도 못한다. 가령 기업이 노조에게 때리는 불법행위책임을 보자. 판사들은 이 '불법행위'의 외연을 벗어나는 사태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각주:2].

 하지만 일반적인 관점은, 개인과 사회, 둘 다에게 책임을 요구한다. 따라서 사건이 발생하면 범죄자를 비난하고, 그것을 낳게 한 사회 - 이를테면 경찰의 허술한 수사라든가, 어쩌면 범죄자의 부모형제라든가 - 적 요인들을 비난한다. 우리는 범죄자에게 '다 책임지라'고 하는 것이 아니며, 또 그래야만 한다.

 따라서 후보자의 주장은 일단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우리는 관행과 후보자 둘 다를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후보자는 저기 위 단락에서는 마치 죄가 없는데 죄가 있다고 누명을 쓴 듯 발언하다가[각주:3], 여기에 와서는 죄는 있는데 책임이 과하다는 듯 말한다. 그쯤에서 끝나면 오히려 다행인 게, 후보자의 발언은 결국 범죄자로서 전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소리로 귀결된다.

 즉, 범죄가 없다 -> 위법하지 않다 -> 책임이 과하다 -> 책임이 없다.

 이 점에서 후보자 양반의 주장은 대단히 탈-법학적이다. 과연 그는 판사 시절 형법을 다루며, 어떻게 범죄자에게 책임을 지라 하겠냐며 범죄자를, 이를테면 무죄방면해 본 적이 있었겠는가?


 "내가 소수의견을 많이 내다보니 (법원 내부에) 안티 세력도 생겼다고 들었다. 국민기본권과 국가공권력 중에서 내가 공권력 편을 든다고 비난했다."

 두번째 문장은 중의적이다. 이것을 사실상 3개의 문장으로 나눌 수 있는데[각주:4],

 1. (법원내부) 안티세력은 후보자가 국민기본권과 국가공권력 중에서 공권력 편을 든다고 주장한다.

 2. (법원내부) 안티세력은 공권력 편을 드는 것을 옳지 못하다고 여긴다.

 3. 나(후보자)는 안티세력이 옳지 못하다고 여긴다.

 여기서 3번 문장이 지칭하는 것이 애매모호하다. 1번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후보자는 기본권의 편이고, 2번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면 후보자는 공권력의 편이다. 둘 다일 수는 없다 - 그렇다면 후보자는 공권력 편도 들고 기본권 편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예상되는 비판에 대한, 정략적으로는 매우 적절한 대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이 전체 문장은 전혀 쓸데없다. 따라서 재판관이 할 말은 아닌 것이다.


 "법관이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자세로 하면 부화뇌동(附和雷同)이다."
 
 그렇다. 살펴본 대로 후보자는 부화뇌동하고 있다.


 "재임 기간 6년간 받았던 전액(3억원)을 사회에 환원할 용의가 있다."
 
 사회환원이 아니라 국고에 귀속시켜야 한다. 어디 또 재단이라도 만드시려고?


 "딸아이들이 출근길에 (취재 경쟁하던 언론에 의해) 상해를 당하고 가족 모두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죄형법정주의라는 게 있다. 이 형법원칙에 따르면, 형법은 조문의 문언 이상의 행위를 처벌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전에 이야기한 대로, 법적 원칙이 다 그렇듯이 이 원칙도 그저 요청에 지나지 않으며, 현실에서 확고부동하게 적용되는 원칙도 아니다.

 가령 감금죄를 보자. 이 경우 감금이란 '사람이 특정한 구역에서 나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또는 심히 곤란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대로라면 가령 수업 시작 후 밖에서 강의실 문을 잠갔다가 수업 종료 직전 열어놓아도 감금죄가 성립하게 된다. 실제 판결도 그런 식으로 나온다. 우리는 '감금'이란 단어에서 이런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는 문언 이상의 행위를 처벌하는 게 아닌가? 물론 법은 그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현실의 법 적용에 있어서는 법리보다는 형사정책적 필요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

 어쨌든 이 법률가 양반이 말한 게 법적인 의미에서의 상해는 맞을 수도 있다. 솔직히 그것도 약간은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상해'라는 게 우리가 예상하는 그런 정도의 피해는 아무래도 아닐 것이다. 앞서 말한 '감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는 갑자기 후보자가 '법학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일까? 그렇다면 바로 다음에 나오는 '마음의 상처'는 대체 뭐란 말인가!


 "(청문회가)도덕성 검증뿐 아니라 해당 직무에 적합한지를 결정하는 자질 검증의 장으로 개선되길 바란다."

 마치 자신이 도덕성에는 문제가 있지만 자질에는 합당한 듯 말하고 있다. 그러나 후보자의 발언은 윤리를 떠나서 일단 법적이지도 않고, 심지어 논리적이지도 않다. 이는 헛소리의 모음집에 불과하다. 헌법재판소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기관인가? 나는 이런 포스트모던한 접근에 찬동할 수 없다.


 "인사청문회를 경험하니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가면 이런 식으로 심판하나 싶었다."

 여담으로 잠깐 이야기하고 끝내도록 하자. 찾아보니 후보자 분께서는 무려 불교신자시더라! 이 '염라대왕의 심판'에 관한 위키백과 주소를 링크한다. 

http://ko.wikipedia.org/wiki/%EB%B6%88%EA%B5%90%EC%9D%98_%EC%A7%80%EC%98%A5

 가령 이런 것들이다 - 

흑승지옥

흑승지옥(黑繩地獄)은 사람을 죽이고 도둑질하고 사악한 의견을 설법하거나 자살하는 사람을 돌보지 않은 이가 떨어지는 지옥이라고 하며, 죄인이 이 지옥에 들면 타오르는 불꽃속에서 온몸을 뜨거운 검은 쇠줄로 얽어매고 뜨겁게 달구어진 도끼, 톱, 칼 등으로 몸을 베고 끊어내는 형벌을 받게 되고 험한 언덕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풀처럼 무성히 솟아있는 뜨거운 땅으로 떨어져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진다고 한다. 이 지옥 중생들은 수명이 1천 세이며, 그 1주야는 '도리천'의 1천 세나 되고, 도리천의 1주야는 인간의 100년이 된다고 한다.


 물론 후보자께서 사람을 죽였다는 소리는 아니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1. (법해석으로서의) [본문으로]
  2. 그런데 가령 재벌회장을 간단히 감형해 주는 근거들을 눈여겨보자. 아니면 새만금사업을 합법으로 판정한 사례라든가. 어떻게 이 법관들은 갑자기 '법학 이상의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일까? 답은 둘 중 하나이다 - 그들은 정신병자들이거나, 아니면 사기꾼들이다. [본문으로]
  3. "혐의를 덮어씌우고 단시간에 당사자에게 해명하라고 압박하면 억울한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겠다고 절감했다." [본문으로]
  4. 물론 "법원 내부에 후보자에 대한 안티세력이 있다" 라는 검증할 수 없는 명제가 전체 구조의 대전제가 된다. 이러면 너무 복잡하기에 생략함.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