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진보당은 통합진보당을 지칭하는 것으로, 진보신당과는 연관이 없음을 일단 짚고 넘어가는 바이다. 1
문제는 일단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누구나 그것을 대체로 인식하고 있다. 나는 이 현상 자체를 좋게 여긴다. 나스따시야가 진실을, 어쩌면 그것보다 진실의 '드러남'을 좋아하는 것처럼. 물론 '드러남'은 현실의 행동을 요구하며, 그 행동이 없을 때 폭로는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각하의 사찰건이라든가, 서울시 교육감의 '선의의 증여' - 물론 그의 주장대로라면 - 와 같은 경우.
이 사건들에서, 우리는 목격한다 - 정치적으로 정확히 반대편에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또 그들이 날뛰는 광경을.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놀랄 정도로 동일하다 - 그들은 그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자기네 편이 정당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오늘의 이, 소위 진보당의 당권파니 하는 자들의 행동도 정확히 동일하다. 이런 정형적 현상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논한 바 있고, 굳이 덧붙일 말이 없다.
이제 여러분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진보당 내 당권파, 자주파, 어쩌면 주사파, 경기동부 등으로 불리는 파당을 계몽할 것인지, 고사시킬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절제'할 것인지. 물론, 그 답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쩌면, 현실을 그 답으로 이끌 방법론이다. '나가수'에서 생방송이 돌파구였다는 건 누구나 인식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디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방송을 어떻게 하느냐다.
이런 것은 적어도 나의 일은 아니다. 나는 그런 방면의 기술에 별 관심이 없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어떤 사건의 역사적 구성이다. 따라서 단지 그에 얽힌 행위들에 대한 논리적 비판에 그친다.
구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합당을 둘러싸고 많은 추측이 있었다. 이 추측들은 어떤 전체로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즉 1.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사회주의적 성향이 퇴색되는 상황에서 2. 민주노총 등 현장 조직의 보수화 경향이 겹치고 3. 야권연대로 말미암아 대중정당 - 즉 행사할 권력을 소유하는 정당 - 으로서의 가능성이 열렸으며 4. 유시민의 국민참여당과의 상호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시점에서 5. 적대적 '친족'인 진보신당계 세력을 견제 또는 분쇄할 기회를, 민주노동당 지도부, 소위 '자주파'가 맞이했다는 것.
이를 간단히 해설해 본다.
1. 사회주의적 성향의 퇴색은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도 없다. 애초에 정치한 이념이 없던 양반들인데다, 동거하고 있던 진보신당 계의 '브레인'도 빠져나가 버렸으니까. 물론 어떤 정치적 노선의 변화를 마냥 나쁘다고 여길 이유까지야 없다. 하지만 변화에는 치열한 내적 비판이 요구된다. 무작정 현실적응을 추구한다면, 영국의 '제3의 길' 따위는커녕 김문수나 이재오, 뉴라이트들의 꼴이 기다린다.
2. 90년대 이후 하류층이 고착화되고 중산층이 단계적으로 몰락하면서 일명 '근로자'는 어엿한 중류계급이 되었다. 그들은 현실의 그 중류계급만큼 보수적이어야 하며, 게다가 점점 늙어가고 있다. 물론 역사가는 그들이 한때 위와 같은 사회적 추세에 대해 격렬히 저항했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된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어떤 이유도 없는데, 아시겠지만 최남선 같은 작자들도 한때 독립운동을 했었다.
3. 생략.
4. 간단히 말해 조직과 대중정치(선거)다. 후술.
5. 한국의 좌익은 워낙 적어서 한줌거리도 안된다. 선거제도 역시 소수당을 압살하는 형식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이룰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제파의 연합 형식을 이루게 되는데, 어디서나 그렇듯 이 중에 권력욕이 강렬한 분들이 계실 터이다. 하기야 어차피 공자 말마따나 동이불화(同而不和)인 법이기도 하다. 이웃들은 원수지간이 되기 쉬우며, 현재 상황 역시 그렇다.
여러분은 역사에서 흔히 보았을 것이니, 두 파벌이 있어 내분을 벌이다 어느 한쪽이 외세를 끌어들이곤 한다. 통합진보당의 성립은 이와 정확히 같다. 물론 분당 이전 민주노동당에서 벌어진 분란의 원인은 잔류한 자들, 즉 현 당권파 또는 자주파, 구 민주노동당 계열에 있다. 그들은 규정을 무시하고 수시로 어겼으며, 늘 강압적이고 공세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따라서 단순히 다툼이라고 표현하면, 그 때나 지금의 상황에서나, 소위 자주파들을 과도하게 옹호하는 셈이겠다.
문자 그대로 이 자주파들이이야말로 외세를 배격해야 한다고 외치는 자들이며, 또한 역사를 운운하며 신라가 당을 끌어들여 민족의 고난을 불렀다는 소리나 지껄여댔던 것인데, 어째서 자신들이 어런 이율배반적인 짓을 저지르는가? 물론 우리는 그들의 논리모순을 지적해야 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 모순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유시민과 그의 세력을 불러 통합을 이루었으나, 이것은 누구나 예상하듯 한계가 자명한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구 민주노동당은 우경화되었다 한들 엄연한 사민주의 정당이었고, 유시민은 전형적인 우익 정객이었기에 그러하다. 정계에서 유시민만큼 실제 이념과 이미지의 차이가 강렬한 양반은 흔하지 않다. 물론 참여당에 계셨던 평범한 분들은 중도적인 성향이 강하긴 했다.
이들은 어쨌든 단기적인, 적어도 단기적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프로젝트에 동참한 것뿐이다. 이것은 구 민노당과 구 참여당의 강점과 약점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명확했으며, 또 서로 대비되는 면이 있었다. 이것이 작금의 정치공학적 통합을 낳았다고 본다.
일단 앞서 말했던 규모의 경제를 보자. 2.5%의 정당에게는 국회의 한 자리도 없다. 5%의 정당은 4~5석을 얻을 것이고, 10%의 정당은 보시다시피 13석을 얻었다. 36%의 정당은 127석이다. 규모의 효과는 지나칠 정도로 명백하다.
그리고 조직을 보자. 구 민노당은,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당적과 당비의 수입이 가장 투명하며 또한 안정적인 정당이었다. 물론 이는 기성 정당이 우리가 학문적으로 예상하는 그런 일반적 정당이 아닌 탓일 따름이다. 어쨌든 민노당에게는 연계하는 현장 조직의 지원까지 확실하다. 조직으로 보면 국내 제일이다. 바로 그 조직에서 자금이 나온다. 물론 이것은 정당한 정치자금이다. 차떼기나 뭐 이런 수법으로 획득하는 게 아닌.
그런데 이번에도 다들 절실히 느끼셨다시피, 구 민노당의 여러분들은 대중정치적인 감각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사람들이다. 내세울 만한 인물이 도무지 없어 얼굴마담이라도 영입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전까지는 강기갑씨나 권영길씨가 간신히 대표를 했지만, 이들의 이미지는 급속하게 소모되었다. 여기에 혁신적인 대중정치인이 납셨으니 그가 곧 유시민씨다. 2
유시민씨는 현재 와서 완전히 피해자처럼 되었고, 사실 내용을 보아도 피해자인 게 맞기에 굳이 또 흠을 잡기는 가혹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과정을 고찰한다면, 유시민씨는 이념이야 뭐 애초부터 융합할 수 없는 것이었고, 단지 구 민노당의 조직을 보고 들어간 것이 아니었는가? 물론 뒤통수를 갈긴 협잡꾼들을 옹호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유시민씨가 그런 뻔한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고 민노당과 연합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말이다.
가령 코에이 삼국지 하는 것마냥 능력치를 매긴다고 하자. 그렇다면 유시민의 정치력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여러분은 어떤 숫자를 떠올렸겠지만, 사실 이 시도는 전혀 무의미하다. 정치라는 능력은 양화시킬 수 없으며, 애초에 단일한 척도도 아니다.
우리는 정치란 말을 흔히 쓰는데, 이 단어는 의미의 폭이 꽤 넓다. 나는 대체로 노력하는데, 내게 있어 정치란 국가적 의사결정과정으로서의 정치다. 이와는 사뭇 다르게, 흔한 게임에서의 정치란 대체로 행정으로서의 정치를 의미한다. 반면 사람들이 정치란 말을 듣고 흔히 떠올리는 사태는 당의 의사결정과정으로서의 정치, 그리고 선거운동으로서의 정치다.
김대중이나 김영삼은 흔히 정치 9단이라 불렸다. 이는 대체로 당내 권력관계를 돌파해 당을 장악하는 재능을 의미한다. 반면 이들은 대중적 인기가 매우 좋기도 했다. 그들이 조직을 장악한 이유는 약간은 권모술수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순수한 대중성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사태를 매우 거칠고 단순하게 왜곡시켜, 정치란 능력을 간단하게 표현해 보자.
김영삼과 김대중의 조직, 그리고 대중정치의 능력을 각각 100과 100으로 설정하자. 여러분들은 이를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위 '자주파'와 유시민씨의 능력은 어떻게 될 것인가? 확실히 자주파는 조직장악에 뛰어나고, 유시민씨는 대중정치에 능하다. 내 생각으로는 자주파는 100점 만점에 각 50, 1, 유시민씨는 15, 35 정도나 될 거 같다. 둘 다 너무 평가가 박하지 않냐고? 이게 그 경제학에서 말하는 비교우위이론인가 그렇다. 3
내 생각으로는, 따라서, 그저 올 게 왔을 따름이다. 만약 세력균형이 무너진다면, 둘 다 당권을 독점 또는 독점에 가깝게 장악하려고 시도했을 것이다. 작금의 사태로 결론지어진 이유는 단지 통합진보당이 대중적으로 너무 인기가 좋지 않아서인 탓이 크다. 조금만 더 지지율이 나왔으면 유시민씨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소위 '자주파'와 비슷한 세를 점했을 것이다. 4
당의 지지율을 깎아먹은 데에는 이정희씨를 필두로 한 구 민노당의 여러분들의 온갖 삽질이 결정적이었다. 이 점에서, 그 많은 병신짓들은 어떤 선견지명이었다고 여겨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경험으로 일명 '자주파'들이 당 지지율을 어떤 '적정한 선'에서 유지시키기로 결정했는지도 또 모를 일이다. 뭐 보시다시피 그들이 대체 무슨 술수를 꾸미는지 밖에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어쨌든 현 시점에서 유시민씨를 비롯한 참여당계, 있는지 없는지도 감이 안 잡히는 기타 이런저런 분들이 피해자인 것은 다시 한 번 명백하다고 말할 수 있다. 피해자인데 피해자 행세를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쩌면 열심히 그러라고 응원해 줄 필요성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우스운 건, 가해자들이 무슨 피해자 흉내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슨 검찰조사가 나오면 해당행위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모양인데, 누가 범인인가? 누가 '부정의 정황'을 만들었는가? 투표를 온라인에서 '관찰'한 작자들은 유령이란 말인가? 대리투표를 자행한 일당들은 대체 어느 기관의 프락치인가? 명부보다 투표수가 많은 투표함은 어느 행성에서 지구로 이동했는가?
해당행위를 저지른 자들은 누구인가? 누가 경선에서 사기를 쳐서 연대를 무너뜨렸는가? 누가 자신이 종북임을 만천하에 증명했는가? 누가 당의 명부를 팔아넘긴 세작에게 면죄부를 내주었는가? 누가 위장전입을 하고, 누가 당비를 대납했는가? 실체 없는 조직은 어째서 해체하기도 하는가? 군자산은 또 어디에 처박혀 있는 지명이란 말인가?
마누라와 자식을 두들겨 패고서, 경찰이 달려오면 집안 망신이라고 외쳐대는 인간들이다. 전형적인 범죄자의 마인드다.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고, 대통령 각하에게 인천공항을 맡기는 꼴 아니겠는가? 유시민과 노심조가 아무리 얄밉다 한들, 당연히 이들을 아니 지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러분이 어떤 정치적 신념을 가졌든 이를 수긍해야 하리라.
이것으로 이제까지의 모든 사태들이 명확해진 것 같다. 명확함은 곧 바람직한 일이니, 나 역시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가의 습관을 가진 관찰자이나, 그저 사회주의자로서, 세태에 못내 가슴만 아프다. 민주는 간데없고, 노동도 간데없고, 오직 수익구조만 나부끼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