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비유다. 어쩌면 진보세력의 영원한 딜레마가 이것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이념이 있다. 그리고 이상적인 정당은 (적어도) 균질적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이다. 적어도 진보세력은, 그러한 이상적인 정당을 - 그것의 현실적 영향력은 전혀 이상적이지 않지만 - 갖고 있다.
이념의 실현은 세계적이어야 한다. 전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은 어린아이가 굶어죽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그 꿈은 반드시, 세계적 차원에서 관철될 때에만 비로소 완전히 실현된다. 만일 당신이, '당신 혼자(만) 잘먹고 잘사는 게 꿈' 이라고 주장한대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세상이 그 꼴을 곧이곧대로 봐 주어야만 가능하다. 자신의 유일한 쾌락을 꿈꾸는 자는, 곧 그런 불의가 가능한 세계 역시 같이 구상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당 역시 세계적이어야 한다. 정당은 적어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한도 안으로는 모든 가지를 뻗어나가야 한다. 정당의 활동은 국가나 지역의 틀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의 대소사는 정당 활동의 기본적인 관심사에 해당할 따름이다. 1
이념을 관철할 수 있는 현실적 힘이 곧 권력이다. 정당은, 그것이 과연 활동하고 있다면, 필연적으로 권력지향적이다. 우리는 그의 '권력지향' 자체를 비판하면 안된다.
대개의 사회에서 진보는 소수다.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게 봐 줘도, '의식화된 진보'가 희박한 상황은 부정할 수 없다. 덕분에 진보의 정당은 희미한 권력밖에 없다. 흔히 '아무 권력도 없다'는 말을 듣는다.
이 상황에서 어떤 전략을 짤 것인가? 여기서 현실 정당 개개를 어떻게 볼 것인지가 문제로 떠오른다.
한국의 경우 2개의 주요 정당이 있다. 둘의 차이는 어느 정도 분명하다. 하나는 야만적이고, 다른 하나는 그나마 상식적이다. 그러나 그 둘은 중요한 점에서 유사성을 지닌다.
민주당은 산업자본가들의 요구에 충실했고, 그들의 국가는 경영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이라크 파병을 지지했고, FTA를 지지했고, 타협적인 복지정책을 일관했고, 노동자들의 파업을 교묘하게 진압했다. 그들은 어쨌든 기층 민중의 편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경찰은, 적어도 일반 시민들에게만큼은, 곤봉과 욕설을 휘두르지 않았다. 정책결정에서는, 그것이 기만적이었다 한들, 많은 대화가 이루어졌다. 법제는, 그것의 정당성 여부는 의심스럽더라도, 꽤나 공정하게 집행되었다. 작금의 상황과는 지대한 차이다.
온건 보수와 연합하여 야만인들을 물리치느냐, 아니면 독자적으로 힘을 길러 야만인들을 물리치느냐. 진보의 길은 저 둘 중 하나다. 이것이 일명 연횡이며 합종이다. 물론 둘 다 쉬운 방법이 아니다.
어쨌든 제법 많은 이들은 주장한다.
이라고. 그러니까 좀 불만스러운 점이 있더라도 차악을 지지해야 한다고. 어떻게 생각하면 타당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최악'을 선택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고, 또 치룰 것이니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자신이 진정 어떤 꿈을 품고 있는가, 절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야 한다. 그런 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정치는 처음부터 아예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투표장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그 '차악'이란 걸 선택해야 할 것이다. 2
그런데 우리가 선택해야 할 '차악'은 대체 무엇인가? 위의 만화 링크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라. 그 '차악'은 민주당인가? 노무현의 후예들인가? 유감스럽지만 둘 다 아니다. 그것은 바로 - 영상대감이다.
냉정하게, 아니 그리 냉정하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다음 대통령이 되실 분은, 아니 백번 양보해서 다음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은, 바로 공주마마시다. 과연 마마께서 통치하는 국가는 어떤 모습일까?
위 링크 칼럼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악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 '최악'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세력은 누구인가?
바로 '현 대통령 각하와 그 도당들' 아니겠는가!
몇몇 분들이 갖는 직관이 '민주당을 찍어야 한다' 라면, 그것을 위한 논리가 일명 '차악론'일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직관을 부연하기 위한 논리는 직관 자신을 배신하게 된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 차악을 민다, 이것은 딱 권익위 위원장 수준의 사고방식이다. 친박과 친이의 전투를 '구경'하는 일명 '국개'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세계관인 것이다. 3
과연 다음 대선에서 지금 통치세력이 재집권하는 꼴을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금 달리 생각해야 한다. 과연 민주당이, 대안적 지지라도 획득하면서 집권할 가치가 있는 세력인지를 명확하게 따져봐야 한단 말이다. 그들은 지금 무슨 주장을 하며,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가? 민주당은 지금 이 시점에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위 링크 기사의 "김재철 사장이 청와대에 불려가서 조인트 까였다는 게 핵폭탄이거든요..." 부터의 두어 단락을 참고하라. 민주당은 정치적 역량을 부여할 가치가 있는가? 어떤 대안세력이 될 수 있는 정당인가? 이근행씨의 의견에 따르면 민주당은 그럴 자격이 전혀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지사적 정신의 완전한 결여다.
현 민주당은 허구헌날 욕 처먹고 까이는 YS만도 못한 존재다. 그들의 문제는 어떤 '차악'이라도 될 역량과 그럴 의지, 두 가지의 동반상실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최악'에 대항할 능력도 없고, 별로 대항하고픈 생각도 없는 것이다. YS가 누군가에 대해 엄청난 비교우위에 서는 날이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역시 계속 살아남는 자는 언젠가는 이기게 되어 있는 법인가.
어째서 민주당은 입으로는 연대를 이야기하면서, 행동으로는 저들의 안위를 꾀하고, 심리적으로는 작금의 상태에 더러 만족하는 모습마저 보이는가? 진보정당의 무조건적인 협력을 골자로 하는 시대적 청구권을 쥔 양 행세하면서, 민주주의의 몰락을 저지해야 할 진정한 시대적 사명은 애써 외면하는가?
어쨌든 제법 많은 이들은 주장한다.
'정치는 최선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것'
이라고. 그러니까 좀 불만스러운 점이 있더라도 차악을 지지해야 한다고. 어떻게 생각하면 타당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최악'을 선택한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고, 또 치룰 것이니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자신이 진정 어떤 꿈을 품고 있는가, 절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야 한다. 그런 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정치는 처음부터 아예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투표장으로 우르르 몰려가서 그 '차악'이란 걸 선택해야 할 것이다. 2
그런데 우리가 선택해야 할 '차악'은 대체 무엇인가? 위의 만화 링크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라. 그 '차악'은 민주당인가? 노무현의 후예들인가? 유감스럽지만 둘 다 아니다. 그것은 바로 - 영상대감이다.
냉정하게, 아니 그리 냉정하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다음 대통령이 되실 분은, 아니 백번 양보해서 다음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은, 바로 공주마마시다. 과연 마마께서 통치하는 국가는 어떤 모습일까?
위 링크 칼럼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악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 '최악'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세력은 누구인가?
바로 '현 대통령 각하와 그 도당들' 아니겠는가!
몇몇 분들이 갖는 직관이 '민주당을 찍어야 한다' 라면, 그것을 위한 논리가 일명 '차악론'일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직관을 부연하기 위한 논리는 직관 자신을 배신하게 된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 차악을 민다, 이것은 딱 권익위 위원장 수준의 사고방식이다. 친박과 친이의 전투를 '구경'하는 일명 '국개'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세계관인 것이다. 3
과연 다음 대선에서 지금 통치세력이 재집권하는 꼴을 바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금 달리 생각해야 한다. 과연 민주당이, 대안적 지지라도 획득하면서 집권할 가치가 있는 세력인지를 명확하게 따져봐야 한단 말이다. 그들은 지금 무슨 주장을 하며,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가? 민주당은 지금 이 시점에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위 링크 기사의 "김재철 사장이 청와대에 불려가서 조인트 까였다는 게 핵폭탄이거든요..." 부터의 두어 단락을 참고하라. 민주당은 정치적 역량을 부여할 가치가 있는가? 어떤 대안세력이 될 수 있는 정당인가? 이근행씨의 의견에 따르면 민주당은 그럴 자격이 전혀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지사적 정신의 완전한 결여다.
현 민주당은 허구헌날 욕 처먹고 까이는 YS만도 못한 존재다. 그들의 문제는 어떤 '차악'이라도 될 역량과 그럴 의지, 두 가지의 동반상실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최악'에 대항할 능력도 없고, 별로 대항하고픈 생각도 없는 것이다. YS가 누군가에 대해 엄청난 비교우위에 서는 날이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역시 계속 살아남는 자는 언젠가는 이기게 되어 있는 법인가.
어째서 민주당은 입으로는 연대를 이야기하면서, 행동으로는 저들의 안위를 꾀하고, 심리적으로는 작금의 상태에 더러 만족하는 모습마저 보이는가? 진보정당의 무조건적인 협력을 골자로 하는 시대적 청구권을 쥔 양 행세하면서, 민주주의의 몰락을 저지해야 할 진정한 시대적 사명은 애써 외면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사실, 과도하게 많은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그들은 부모를 뜯어먹고 사는 니트족이다. 그들은 대단한 야망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현재의 상태를, 적어도 당분간은 유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고작 무언가를 하는 4시늉만 내고,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 따위 짓거리를 자행하게 만든 모태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그 빌어먹을 '차악론', 그리고 호남의 무조건적인 지지다. 이것 때문에 어떤 병신짓을 일삼아도 80석이 넘는 의석이 국회에 보장되었고, 지방에서 나름 호족 행세를 즐길 특권이 떨어졌던 것이다. 애초에 그런 기득권을 굳이 내걸면서까지, 그들은 '최악'과 대결해볼 생각이 없다.
비유하자면 그들은 부모를 뜯어먹고 사는 니트족이다. 그들은 대단한 야망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현재의 상태를, 적어도 당분간은 유지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고작 무언가를 하는 4시늉만 내고,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 따위 짓거리를 자행하게 만든 모태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그 빌어먹을 '차악론', 그리고 호남의 무조건적인 지지다. 이것 때문에 어떤 병신짓을 일삼아도 80석이 넘는 의석이 국회에 보장되었고, 지방에서 나름 호족 행세를 즐길 특권이 떨어졌던 것이다. 애초에 그런 기득권을 굳이 내걸면서까지, 그들은 '최악'과 대결해볼 생각이 없다.
물론 그 두 가지 원인으로 인한 득표 - 차악론과 호남의 몰표 - 는 민주주의 발전에 나름 공헌을 했다고 여겨진다. 더러 차악론은 민주세력의 승리를 위해 불가피했다 옹호되기도 하고, 호남에서의 몰표는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열망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 한들 바로 지금, 이 시점에서 그런 지지가 민주주의의 발전에 공헌하는가? 절대 아니다!
그것은 1야당의 현실에 대한 안주를 부추길 뿐이다. 그들은 전략적 지지로 인해 오히려 게을러진다. 그리고 그 알량한 기득권에 더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부동층은, 심지어 민주당에게 '전략적 지지'를 보냈던 사람도, 그들을 지지하지 않게 된다. 냉소가 세상을 지배하면 민주당은 더더욱 무력해질 것이다. 차악에 대한 지지가 최악을 부른다, 이것이 차악론이 낳는 두 번째 역설이다.
여러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그 '차악'이 과연 안 된다면 대체 무엇을 선택해야 하냐고. 이성적인 답은, 과감히 사표(死票)를 던지라는 것이다. 사표는 단지 그 선거의 당선자를 결정하는 데에만 무력할 뿐이다. 사표는 선거 이후, 그것을 얻은 후보자나 정당의 자산이 된다. 교활한 유시민이, 실제 가능성 자체는 그리 높지 않음에도, 경기도에 목을 매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물론 나도, 여느 진보정당 지지자처럼, 막상 투표장에 가면 고민을 할 것이다. 아니, 사실 지금도 아주 약간은 고민하고 있다. 몇 년 후의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고, 사람에게는 눈앞에 닥친 고난을 헤쳐나가는 일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니까 말이다. 따라서 딱히, '전략적 투표'를 감행하는 사람들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건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차악론에서 거의 완벽하게 자유로운 지역이 있으니, 바로 호남이며, 특히 광주다. 그 지역이 '차악'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하여, '최악'이 당선될 리는 전혀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들이야말로 진정 사표방지의 절절한 심리에 휩싸이지 않고, 한국 정치의 미래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어쩌면 오히려 민주당을 위해, 자유롭고도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것은 1야당의 현실에 대한 안주를 부추길 뿐이다. 그들은 전략적 지지로 인해 오히려 게을러진다. 그리고 그 알량한 기득권에 더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부동층은, 심지어 민주당에게 '전략적 지지'를 보냈던 사람도, 그들을 지지하지 않게 된다. 냉소가 세상을 지배하면 민주당은 더더욱 무력해질 것이다. 차악에 대한 지지가 최악을 부른다, 이것이 차악론이 낳는 두 번째 역설이다.
여러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그 '차악'이 과연 안 된다면 대체 무엇을 선택해야 하냐고. 이성적인 답은, 과감히 사표(死票)를 던지라는 것이다. 사표는 단지 그 선거의 당선자를 결정하는 데에만 무력할 뿐이다. 사표는 선거 이후, 그것을 얻은 후보자나 정당의 자산이 된다. 교활한 유시민이, 실제 가능성 자체는 그리 높지 않음에도, 경기도에 목을 매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물론 나도, 여느 진보정당 지지자처럼, 막상 투표장에 가면 고민을 할 것이다. 아니, 사실 지금도 아주 약간은 고민하고 있다. 몇 년 후의 미래는 불확실한 것이고, 사람에게는 눈앞에 닥친 고난을 헤쳐나가는 일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니까 말이다. 따라서 딱히, '전략적 투표'를 감행하는 사람들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건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차악론에서 거의 완벽하게 자유로운 지역이 있으니, 바로 호남이며, 특히 광주다. 그 지역이 '차악'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하여, '최악'이 당선될 리는 전혀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들이야말로 진정 사표방지의 절절한 심리에 휩싸이지 않고, 한국 정치의 미래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어쩌면 오히려 민주당을 위해, 자유롭고도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다.
만약 호남 사람인 당신이 파병도, FTA도 싫어하고, 민주당의 친기업적 정책을 탐탁찮게 생각해 왔다면, 그럼에도 딱히 뽑을 정당이 없다고 생각하여, 단지 한나라당만을 막아야 된다고 생각하여 민주당을 지지해 왔다면, 이번 선거는 다시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전쟁과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반대하고, 각하의 집권 이후 수구세력과 가장 치열하게 맞서 온 정당이 당신 지역에서 후보자를 낼 테니까. 작금의 국회를 보았다면, 진보정당 의원 하나가 민주당의 열의 역할을 해 왔음을 깨달았을 테니까.
그리고 만약, 호남 사람인 당신이 진정 민주주의자이고,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나, 딱히 너무 진보적인 건 싫어 민주당을 늘 지지해 온 분이라고 해도, 조금 달리 생각해 볼 여지가 남는다. 나는 바로 그런 당신에게, 진보정당에 대한 '전략적 지지'를 요청하는 바이다.
민주당의 무능력함과 무성의함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설령 당신이 더없는 민주당 지지자라 할지라도, 이는 언제까지나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 독재의 종말과 민족의 통일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지금 민주당에게는 지지보다, 오히려 채찍이 필요하다.
어째서 민주당은 선거에서 연거푸 참패하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는가? 역설적으로 그것은 호남의 안정적인 기반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 기반에 매몰되어 민주세력은 나약해지고 말았다. 그들은 4대강에 알랑대던 도지사를 설마 유임시키려고까지 한다. 과감하게 집에서 그들을 내쫓을 때다.
수 차례의 대선과 탄핵정국 때 보여 주었던 진보정당 지지자들의 '전략적 지지'를 기억하시리라 믿는다. 굳이 그것의 빚을 갚으라는 것은 아니다. 사실 민주당이 호남에서 모조리 퇴출된다고 해도, 민주당은 진보정당이 겪었던 반의 반만큼의 시련도 겪지 않을 터이니까. 오히려 그것이 자성의 계기가 된다면, 어찌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민주당을 지지하려 하지 않겠는가? 민주당에게는 역사에 당당히 공헌할 기회가 다시 한 번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다른 지역은 접어두고라도, 호남 사람들은, 특히 광주 사람들은 민주당을 거부해야 한다. 진보정당을 결연히 지지해야 한다. 과연 그들이 앞서서 나간 이들의 용기를 본받고 싶어한다면 그렇다. 그들이 여지껏 해 온 선택이, 단순한 지역주의의 발로로 매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싶어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들이 지역과 국가를 넘어, 세계로 펼쳐져 나갈 민주주의의 이념을 품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나의 뜻이 정녕 호남의 여러분 모두에게 전해진다면,
6월 2일 투표함을 열었을 때, 민주당의 것은 단 한 표도 나오지 않아야 할 것이다.
- (법은 현실에 대한 서술이 아니다. 따라서) [본문으로]
- 그렇다면 곧 선거는, 궁극적으로 정치는 '차연'의 계속, 어쩌면 차연 그 자체가 되지 않겠는가? [본문으로]
- 어쩌면 북한인들에게도, '수령'은 '미제'에 대한 차악으로 여겨지지 않겠는가? 어쩌면 꼴통들에게도, 한나라당은 북한에 대한 '차악'인 것이다! [본문으로]
- 나라에서 정한 의무교육을 마친 뒤에도 진학이나 취직을 하지 않으면서도,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Not currently engaged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두문자어이다.(한국어 위키피디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