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동안이란 말이 유행했다. 젊어 보인다는 말은 어쩌면, 오늘 우리가 꺼낼 수 있는 최대의 찬사 중 하나다.
나이를 먹는 것도 싫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신의 올곧은 뜻이니 거스를 수 없다. 그렇다면, 얼굴이라도 안 늙어 보일 수는 없을까. 그래서 사람들은 열심히 '투자'를 한다. 그래 봤자 가는 세월이 은폐될 따름이겠건만, 어쨌든 요새 사람들은 옛날 이야기 주인공들이 저지르는 실수를 절대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요정 : 님 완전 착함! 나 감동해버렸음. 보답으로 소원을 들어 드릴께요. 뭘 바라셈?
주인공 : 안 죽고 영원히 사는 거요!
요정 : 그걸로 OK?
주인공 : ㅇㅇ
요정 : 알았음ㅋ
그 이후 주인공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 하지만 계속 늙어간다. 그는 점점 쪼그라들고 쪼그라들어...
주인공 : 안 죽고 영원히 사는 거요!
요정 : 그걸로 OK?
주인공 : ㅇㅇ
요정 : 알았음ㅋ
그 이후 주인공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된다. 하지만 계속 늙어간다. 그는 점점 쪼그라들고 쪼그라들어...
이제 나는, 여러분이 절대 기쁘게 듣지 못할 사실을 하나 전달하려 한다. 시간이 차마 정지하길 앙망하는 여러분께.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 각하의 임기는 아직 반도 지나지 않았다.
2년하고 2달밖에 안 됐다.
그러니까 무려 2년 10개월 남았다.
정확히 1036일 08시간 51분 기다리면 된다.
2년하고 2달밖에 안 됐다.
그러니까 무려 2년 10개월 남았다.
정확히 1036일 08시간 51분 기다리면 된다.
사건이란 사건은 모조리 일어난 것 같은데 고작 2년 깨작. 앞으로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나, 실로 판타스틱한 세상이 펼쳐지고야 말 것 같다. 각하가 이 페이스를 올곧게 유지한다면야. 앞으로 1000일 동안 우리는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천일야화, 셰라자데의 이야기는 왕을 만족시켰다. 이야기가 계속되는 동안 바그다드 주민들은 참수형을 관람할 기대를 접었고, 덤으로 딸들 걱정 역시 미룰 수 있었다. 앞으로 각하가 베풀어 주실 천일의 이야기 또한 얼마나 흥미진진할지, 기대가 몹시 대단하긴 하다. 그것이 아라비아의 경우처럼, 민중의 평안을 보장해 줄지는 약간 미지수겠지만. 어느 중국제 찻잔이 수성과 금성 궤도 사이를 공전하고 있을 가능성이랄까.
어째서 이런 차이가 생겨나는가? 셰라자데의 이야기는 허구다. 허구이지만, 그 지어낸 이야기들은 삶의 진실을 (적어도 약간은)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영화를 관람하며, 심지어 동화책를 보면서도, 그것으로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각하의 말을 보자. 그것은 국가기관의 행위이다. 국민은 대통령이 사실을 말하고 올바른 대책을 제시할 것이라 기대한다. 적어도 대통령의 말은 응당 사실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 그것은 현실의 모사가 아니라, 오히려 방어 기제에 가깝다. 즉 그것은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 이것은 기대에 정확히 반하는 것이다.
사실 그런 허위의식은 노무현 역시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무현의 허위의식은 일관성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의 말은, (자기네들 나름대로의 재정의를 거쳐) 실제로 실행에 옮겨지기도 했다. 따라서 노무현의 웅변을 경청하는 것은, 그의 수완으로 말미암아 나름 재미도 있었거니와, 현실적으로도 일정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하지만 각하의 말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인사말에 가깝다. 우리는 늘상 안녕하세요, 란 말을 건넨다. 하지만 대개는 타인의 안녕에 별 관심도 없을뿐더러 그들의 안녕을 굳이 바라지도 않는다. 인사말은 그 상황에 적절한 몸짓일 뿐이다. 현실에 대한 치열한 성찰 같은 게 아니라. 1
각하의 말이 그렇다. 그것은 그 상황에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개별 발화들의 모음집이다. 그 수많은 라디오연설은
"님들 안녕하셈? 나 좀 잘 봐 주세염ㅋ"
에 불과할 뿐이다. 어쩌면 모든 성명이란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냐고 우기실 분들이 몇 계시겠다. 그러나 모든 성명은 나름대로 현실 세계와의 연관을 갖고 있다고 기대된다. 각하의 경우처럼, 모조리 수사로 환원할 수 있는 성명을 늘어놓는 분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러니 오늘날의 경우 정신위생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예언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였는데도 그 말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언자가 제멋대로 말한 것이므로, 너희는 그를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신명기 18:22)"
이곳이 알프스가 아니라면, 장군은 나폴레옹이 아니다. 따라서 병사들은 장군이 나폴레옹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든지, 자신의 세계상을 부정하여 이곳이 알프스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각하의 경청자들, 즉 국민은 저 대통령이 (제대로 된)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든지, 대통령이 대통령이라고 인정하고 자신의 세계상을 개조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현실적 권력을 무시할 수 없다.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정신병과 유사한 단계에 진입한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 이들은 매우 독특한 화법을 가지고 있다. 그 화법이란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특히 다른 사람들도 응당 그 화법을 이해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심각한 정신병적 기질이 관찰된다. 그런데 그나마 조금이라도 다행스러운 점은, 인내심을 갖고 화술을 뜯으면, 추후 행동을 적어도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이나 기타 '선진 문명국'에 비할 성실성은 찾기 힘들겠지만.
따라서 나름대로 그들의 언어들 관찰해보기를 기대한다. 어쩌면 '분석'이라고 표현해야 옳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것 역시 현실적으로는 무의미하게 여겨질지도 모른다. 북한은 우리 국민들이 선출한 정권에 대한 기대를 계속 접고 있는 모양이니까. 문제는 어디까지 접을지 감이 안 잡힌다는 거겠다.
- 적어도 그 자체로는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