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2002년의 월드컵을 환장하며 봤지만, 돌이켜 보니, 박노자의 지적(링크)이 옳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축구 그까짓 게 뭐나 된단 말인가.
브라질인들마저 월드컵에 반대하는 시위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굳이 축구 이야기를 하겠다. 지금 축구의 문제는 단순한 축구만의 문제가 아니니까 말이다.
지난 월드컵을 보자. 스페인은 안이한 전략과 인선으로 탈락했다. 이란은 노력했으나 힘이 미치지 못했다. 잉글랜드팀은 선수단의 경험과 감독의 재능이 부족했다. 우리는 이것들을 실패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축구-내적 문제이다.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몇 가지 예가 있겠다. 이를테면 94월드컵 볼리비아전에서 황선홍이 저지른 연이은 실축. 좀더 들어 보자면, 동일한 경기에서 감독이 보인 소심한 운영, 독일전 최인영의 삽질, 또는 98월드컵 하석주의 백태클 퇴장, 그야말로 탈탈 털렸던 네덜란드의 5-0 경기, 이어 감독을 맡았던 히딩크의 숱한 5-0경기들, 마침내 찾아온 월드컵 미국전의 실축이라든가 독일전 이천수의 묻지마 드리블, 그로부터 4년이 지난 독일에서의 온사이드 판정(이것은 그야말로 정확한 판정이었다) 따위가 있겠다. 이런 사례들에서, 우리 한국인들은 선수와 감독과 가끔은 심판을 무작정 비난하였다.
위 사고들은 선수나 감독의 단순한 능력부족이라든가 실수일 따름이었다. 이런 실수들에 소리를 지른다고 나아질 턱이 있는가? 우리는 학창 시절, 또는 아이를 기르며, 비난과 갈굼이 학업능력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무슨 사건만 터지면 덮어놓고 욕하기가 일쑤다. 허정무의 오범석 선발이나 이동국의 우루과이전 슛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열심히 그것을 지지고 볶았지만, 그 실수들은 사소한 것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는 다른 유형의 실패도 있다. 대표적으로 4년 전 프랑스 대표팀의 문제. 이 팀은 감독의 기이한 선수 선발과 선수들간의 내분으로 자멸했다. 결국 프랑스에서는 청문회가 열렸다.
단순한 졸전으로 청문회를 연다면, 그것은 그저 우스운 일이겠다. 브라질의 시위에서 보듯, 축구 자체는 공적인 관심사가 될 수 없으니까. 따라서 시민이나 그들의 대표자라고 관념되는 권력기관 - 정부나 의회 - 의 간섭은 불필요하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그들 대표팀의 문제가 청문회를 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감독의 기행과 선수들의 내분은 축구의 요소가 아닌데다, 국가가 규정하는 헌법적 가치와 충돌하는 까닭이다.
이제 한국의 문제로 돌아가자. 우리는 홍명보호의 여정이 실패로 끝나는 것을 목격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랬듯 감독과 스트라이커와 골키퍼를 열심히 까댄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그 정도의 공적 관심사가 될 수 있는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가 비난할 이유가 없는, 단순한 오류나 실수나 무능력의 결과일까?
홍명보가 지휘하는 한국 국가대표축구팀이 현재까지의 상황에 이른 경위를 서술해 본다. 국가대표팀의 예산은 한정되어 있으며 일급의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기란 쉽지 않다. 국가대표 감독이 사실 그리 인기가 있는 직종은 아니고, 비유럽-비남미권 국가의 감독이란 전성기를 지난 위인들의 노후설계쯤으로나 비춰지고 있다. 히딩크의 한국행은 개최국이라는 지위에 더한 파격적인 대우로 가능했다. 게다가 그는 연이은 실패로 인해 주가가 다소 떨어진 상황이었다.
감독이 자국인일수록 좋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남미 제국처럼 고도의 언어적-문화적 공통성을 공유하는 국가도 한국에게는 없다. 따라서, 지난 월드컵의 허정무의 성공 - 이는 어찌되었든 성공인데 - 을 발판삼아, 한국인 감독을 선택하자는 것, 이것이 그리 나쁜 결론만은 아니었다. 이는 축구인들의 어떤 '자존심'을 제껴놓는다고 하더라도 그러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변수가 등장했는데, 선수들 연령대에 따른 기량 격차였다. 축구팀은 25~30세의 선수들이 팀의 주축이 된다. 그런데 이 연령의 한국 선수들은 대체로 좋은 기량을 지닌 선수가 드물다는 평가였다. 따라서 싹수가 보이는 그 이하 나이대 선수들을 주축으로 장기적으로 대표팀을 이끌자는 견해가 가능했다.
말로는 얼핏 그럴듯하다. 하지만 조광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난관에 봉착했는데, 심지어 최종예선에 다다르기도 전이었다. 경기력이 아주 형편없었다. 그의 대단한 전술이란 무전술과 다름없었고, 팀 안에서는 내분의 징조가 보였다. 결국 약체라기도 민망한 레바논팀에게 패하자,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 전술은 실현가능성이 없는 소위 입축구요, 선수 선발은 일부 해외파 선수들에 대한 특혜에 지나지 않았다.
조광래가 경질된 후, K리그 최고의 감독이라는 평이 자자했던 최강희가 선임된다. 최강희는 조광래와는 정반대의 감독이었는데, 원래 이 인물은 뻥축구의 달인이었으며, 해외파의 특권을 보장해 주지도 않았다. 문제는 그가 최종예선 때까지만 직을 맡은 시한부였다는 사실이었으니, 일부 해외파들은 드러내놓고 감독에게 반발하였다. 덕분에 국가대표팀의 경기력은 여전히 엉망이었고, 이기지 못하는 뻥축구는 관중들에게 심각하게 재미가 없었다. 어쨌든 간신히 브라질에 가게 되었지만, 짜증이 났던 최강희는 미련 없이 전북으로 돌아가버린다.
여기서 홍명보가 등장한다. 결과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이미 잘 아시는 바이다. 그리고 그것을 낳게 한 원인에 대해서도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 감독은 선수 발탁, 경기 선발 선정, 교체, 전술적 완성, 유연성, 상대팀에 대한 대비, 선수단의 정신력 유지 모두에 있어 실패했고, 당연히 패배했다.
한국인들은, 이로서, 대표팀의 연이은 실패를 목격하였다. 축구팬들이라면 입에서 화염을 내뿜을 만한 참담한 결론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을, 단순한 팬으로서만 비판할 것인가? 홍명보의 실패는 오늘 스페인과 잉글랜드, 또는 과거 대표팀이 겪었던 그런 단순한 오류나 실수나 무능력의 결과일까? 우리는 이것을 구분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최강희의 성적 역시 신통치 않았다. 이 결과로 인해 감독으로서의 그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축구감독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실패다.
조광래의 실패는 이와 약간 다르다. 그의 전술은 망상에 가까웠고 선수선발에 악영향을 초래했다. 조의 전술에 대해 잠깐 평하자면, 양 윙이 모두 박지성이고 윙백이 전성기 이영표 송종국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정도 체력적-기술적 수준에, 그것도 아직 한창 갈 길이 먼 어린 선수가 반드시 도달할 수 있을까? 물론 조광래는 그것을 장담하였다. 하지만 만약 하나라도 구멍이 날 경우, 그에 대한 대안은 있는가?
하긴 망상벽이 있는 감독이야 많고, 가끔은 망상이 현실로 구현되기도 하니, 망상이 반드시 결점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정상적인 양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조광래의 전술이 실현불가능한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이 선수를 언제나 관리할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것은 클럽팀들이 할 일이다. 그런데 조광래는 무슨 작두라도 탄 듯, 앞으로 대성할 선수들을 '점지'하였다. 잠시 성공의 전범 정도로 여겨지는 히딩크에 대해 비평하자면, 그는 일단 쓸 수 있는 선수와 전술은 모조리 써 본 양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여러 시도에서 부적절하다 판명된 것들을 히딩크는 폐기하였다. 대표적으로 4백의 수비라인.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는 특정 선수를 편애하지 않았다. 사실 편애한다는 풍문이 나돈 선수가 아주 없지는 않은데, 바로 박지성이다.
주술과 예언의 힘을 믿지 않는 합리주의자라면 조광래의 행각이 좀 독특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실 것이다. 그는 앞서 말한 프랑스 대표팀 감독이었던 도메네크와 이 점에서 아주 유사하다(링크 참조). 도메네크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라, 그의 별자리는 한 번의 성공 - 2006년 독일월드컵 - 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조광래에게 그런 행운이란 없었다.
그는 주장한다 - 주축 선수들이 부상이라 엔트리 짜기가 어려웠다, 자신은 한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조건에서 감독생활을 했다 운운. 하지만 이는 다분히 자업자득인데, 자신이 찍은 선수들만 머릿속에 들어 있는데 다른 엔트리가 짜질 리가 있나! 결국 그는 잘렸으며 잘렸어야 마땅하다. 일부 언론계 인사들은 그가 축구계의 아웃사이더라는 점을 들어 그가 권력다툼의 희생양이었다는 둥의 궤변을 지껄인다. 그들에게 이렇게 반문해야 한다 - 그렇다면 애초에 감독이 어떻게 된 것인가?
일반인들은 이미 잊어버렸으리라. 그런데 대체 이 축구 전문 '언론인'들은 뇌를 세탁이라도 한 것인가? 레바논전 패배는 국가대표 역사상 최악의 위기였다. 대표팀은 월드컵은커녕 최종예선에도 나가지 못할 뻔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조광래가 빌빌대던 3차예선 상대들은 그 동네북이라는 - 이번 월드컵에서 잔혹하게 증명되었듯 -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약체들이었다!
조광래의 고난의 행군은 이러하였다. 대책이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이청용을 차출한다거나(다행히 실행되지는 않음), 기자에게 작전을 뿌린다거나 - 링크 참조. 이러니 퍽이나 이기겠다! - 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적어도 조광래의 경질건에 있어서는 축구협회가 참 많이 인내했다고 생각한다.
홍명보는 조광래의 이런 결점들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런던올림픽 멤버들에 대한 집착은 더 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다. 또한 홍은 이미 은퇴한 박지성의 의견을 묻는다는 둥, 박주영 대신 군대를 가겠다는 둥, 기성용과 최강희를 찾아갈 거라는 둥 쓰레기스러운 언론플레이를 일삼았다. 덕분에 홍명보는 결과가 명백한 재앙으로 드러나기 전까지 언론의 지원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 덕분이랄까 CF도 몇 개 찍었으니, 조광래보다 운이 좋은 셈이다.
보시다시피 조와 매우 비슷하지만, 홍명보는 심지어 그보다도 상태가 좋지 않다. 그나마 전술에 대한 뚜렷한 지향이라도 있었던 - 실현가능성은 말했듯 없는 거나 마찬가지일지라도 - 조광래에 비하면, 홍명보의 무전략은 빛을 발한다. 홍명보식 4-2-3-1은 세계적으로 지나칠 정도로 유행을 탔으며, 그 탓이랄까 이제는 유행이 지났을 정도다. 다시 말해 그 자세함에 별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고, 대응법도 이미 충분히 연구되어 온 전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홍명보는 그조차도 모자랐는데, 이는 알제리가 선사한 대패에서 잘 드러난다. 그나마 골을 넣은 것도 손흥민의 일탈적인 능력에 기인했다.
일명 '의리'로 통하는 인맥축구 역시 선도자 조광래보다 더 악화된 모양새다. 조광래의 예언이야 성립과 불성립을 그 시점에서 따질 수 없는 것이었지만(물론 틀렸음을 지금 우리는 알 수 있다), 홍명보는 이미 선수들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그의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눈 대신, 런던올림픽 때 1년 놀다 온 박주영이 결정적인 골을 넣었으니, 3년 놀다 온 월드컵에서도 잘할 거라는, 괴이한 확증편향을 선택했다.
이러니 괜히 조광래가 날뛰는 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를 용인한다면, 다른 많은 감독들 역시 날뛰어대는 꼴을 보아야 한다는 소리가 되는데, 홍명보에게는 아직 다른 어떤 감독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독특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홍명보 자신의 독창성은 아니다. 이 아우라를 다른 많은 사례에서 관찰할 수 있는데... 백문이 불여일견, 저기 맨 위의 김어준의 동영상을 보시라(대략 11분부터).
그의 얼굴만 보면 짜증이 나시는 분들을 위해(나 역시 그러하다), 김어준의 주장을 간단히 설명하겠다. 홍명보는 월드컵을 맞아 감독으로서 많은 결점들을 드러냈다. 하지만 홍명보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유임시켜야 한다, 이것이다.
이것은 여태까지 봤던 것 중에서 가장 괴이한 논리다. 그러니까 황박이 사소한 잘못을 하긴 했는데, 황박은 어쨌든 위대한 과학자이고 줄기세포 기술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으므로, 우리는 그를 지지해야 한다! 조광래의 소환술 따위는 이에 비하면 족탈불급이겠다. 하지만 이 괴이함은 김어준의 개인적인 증상만은 아니며, 즉 군대를 가지고 있다. 축협의 홍명보 유임 결정의 논리도 이러하지 않았는가. 1
숱한 축구계 관계자들, 또한 일부 기자들 역시 이런 주장에 동조하였다. 비록 적지 않은 수의 언론이 홍명보에게 등을 돌렸으나, 저 명백한 성적표에도 돌아서지 않은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다. 반면 4년만에 한 번 축구를 보는 소위 '국대충'들은 전혀 이러질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항해론을 떠올리며, 개념없는 우리 비-전문가의 무지를 자학해야 할까? 2
하지만 저 잘난 선장이 지휘하는 배는 이미 침몰하였다! 하지만, 줄기세포도 원천기술도 연구노트도 없지만, 김어준은 저 황박의 잠재력이 무한하다 했듯, 그가 다시 말하기를, 홍명보의 잠재력 역시 굉장한 것이란다. 나는 황우석에 대해 김어준의 백분의 일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그러나 황우석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에 간섭하지 않는다.
축구 관계자들일수록 더 괴이해진다! 여기서 상식인들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축구계의 권력이 똘똘 뭉쳐서 자기 이익만을 차리려고 하는, 요새 유행하는 말을 빌리자면 '축피아'의 속성을 갖지 않나 하는 의심이다. 우리는 세월호나, 몇 년간 녹조로 몸살을 앓는 4대강을 보며, 소위 '전문가' 분들의 전문성이 이익 차리기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음모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저 김어준씨가 축피아라면 좀 이상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나는 이제부터 축구 전문가라든가, 기자분들의 괴이함에 대해 감히 변명, 혹은 위안이 될지도 모르는 주장을 펼쳐 보이겠다. 즉 괴이함 너머의 어떤 공통성에 대한 것이다.
김어준의 '논리'을 앞서 말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한때(지금도 아마 여전히) 노빠였고 황빠였고 디빠였던 김어준이 저 노무현 정권과 황우석과 심형래를 옹호하던 논리도 바로 이것이었다. 여전히 세상에는 황빠와 디빠가 있다. 그리고 노빠 또한 필요 이상으로 많다. 김어준의 증상이 유달리 심각하긴 하나(그리고 갱생될 가능성도 없어 보이나), 이런 멘탈리티는 의외로 매우 흔한 것이다. 즉 축협과 허정무만의 잘못은 아니다.
이런 멘탈리티를 단순히 좋은 미래를 바라는 기복적 사고라거나, 흔히 분출되는 애국심의 발로라고 보기에는 약간 부족함이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최강희의 신도들은 없는 것인가? 최강희의 행동이 말했듯 실패로 끝나긴 했으나 정상적이었기에, 정신병자들에게는 매력이 없는 것이겠다. 이에 추정할 수 있으니, 홍명보에게는 이런 것들을 넘어선 독특한, 어떤 아우라가 존재한다.
이 아우라는 황우석이나 심형래, 노빠 후계자들에게서도 관찰되는 그 무엇이다. 무엇이 신도들을 이끄는가? 무엇이 한낱 예비역 상병을 왕으로 만드는가?
황박은 과학계의 메시아적 존재였고 심형래는 영화계의 메시아적 존재였다. 노무현은 정계의 메시아겠다. 물론 노무현은 대체로 정상적인 사고를 한 합리주의적 인간으로 보이나, 노빠들의 멘탈리티는 어제나 오늘이나 그런 상식적인 영역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어쨌든 이런 류의 영웅설화를 김어준적 인간은 너무도 사랑한다.
이와 같은 형식의 영웅담은 독자를 영웅과 한 배에 태워(물론 이것 역시 환상에 지나지 않는데), 역시 영웅과 마찬가지로 고양되는 경험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하지만 이에는 그에 필수적인 끌어내림이나, 그와 거의 유사하게 동작하는 운명적 조건(가령 아킬레우스를 묶는 예언)이 없다. 따라서 이 '김어준적인 것'은 현실적으로는 물론이요 문학적으로도 아주 저질이다. 다시 현실은 온갖 지어낸 이야기들이 모두 허상이었음을 가차없이 폭로하지만, 신도들은 그것을 직시하느니 눈을 감아버린다. 4
상식을 운운하는 여러 '빠'분들이 별다른 지적-윤리적 소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짚어본다면, 이런 영웅 설화가 단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음을 쉽게 알아챌 것이다. 오직 자신이 높은 수준에 오르는 (그리고 절대 내려가지는 않는) 것 같은 느낌뿐이다. 이것은 바보들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이러한 영웅담의 독특한 하나의 사례를 보자. 항공우주연구원은 2008년 대망의 '한국 우주인' 계획을 발사하였는데, 지금은 유감스럽게도 한국인이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이 되어 버리신 이모 씨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언론의 미친 듯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우주여행을 갔다 오셨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태도가 돌변했다. 5
이 분은 예상대로 여러 강연회의 인기 강사가 되었는데, 친히 말씀하시길, 프로레슬링 몰락의 신호탄이 되었다고 회자되는 "이건 다 쑈다" 의 배리어블한 버전이었다. 간단히 말해, '여행 잘 갔다 왔으니, 영웅 노릇은 그만 하겠다'는 폭탄선언 되시겠다.
여기서 항우연을 무작정 비난하기 전에, 우주과학의 특수성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30년 후의 일쯤이야 대개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100년이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우주과학은 대체 언제쯤이나 이익이 날지 감이 안 잡하는 분야이지만, 엄청난 예산을 요구한다. 프로젝트가 인적-물적 피해만 남은, 완전한 실패로 끝날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인류의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꼭 필요한 사업이다.
우주계획의 마스코트로 나선 스누피. 아폴로 1호 사고가 계기였다.
따라서 홍보가 매우매우 중요하다. 좋게 말해 홍보고, 그럴듯한 사탕발림으로 유권자의 세금을 뜯어냄이다. 물론 나 개인적으로는 우주탐사에 얼마를 투자하든 찬성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시민들 모두가 그리하지는 아니하리라. 한국인 우주인 사업은 이 예산따내기에 따른 홍보사업이었다. 하지만 한 기략가가 그 예리한 눈을 번득였으니,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희극 시나리오뿐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정확히 이런 내용 아닌가. 물론 이모 씨에 투자한 세금을 생각한다면 여러분의 웃음이 싹 달아나겠지만.
이 사건을 우리는 어떤 전형적 사례로서 새길 수 있다. 이는 스포츠계에서도 빈번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아니, 위에서 말했듯 스포츠는 항공산업과는 또 다르게 그 자체로 전혀 공적이지 아니하기에, 어떤 '홍보'의 유혹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은 실상 아무 필요도 없는, 어떤 단순한 유흥거리에 불과한 야구 구경 따위에 수조 원을 쏟아붓는다.
'코리안 우주인' 해프닝에서 보듯, 이벤트와 그에 따르는 영웅이란 홍보의 중요요소이며, 그것은 사업이 시민에게 직접적 이익이 없을수록 중요하다. 스포츠에서 이벤트의 예를 들어 보자. 2002년 월드컵은 축구의 도약에 무시무시한 역할을 해주었다. 국민의 돈으로 운동장을 짓고 유소년 축구의 기틀을 마련해 줬으니 말이다. 월드컵이 없었다면, 지금 국대의 저 멍청하기 짝이 없는 자들도 유럽 땅을 밟아 보지 못했으리라.
월드컵은 또한 박지성이라는 영웅을 낳았다. 박지성은 실로 영웅이었으며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모든 것을 갖추었다. 고난의 학창 시절, 히딩크라는 은둔고수, 아니 은사와의 만남, 4강의 신화, 선진 제국에서의 한국 알리기(두유노 박지성?), 성실하고 활동적인 플레이 스타일, 팀에 대한 헌신, 깨끗한 사생활. 보라, 박지성은 한국 축구에 얼마나 많은 공헌을 했는가? 그 덕분에 사람들이 공을 차고, 경기를 보았으며, 축구 스폰서에게 이익을 주지 않았는가?
박지성은 이제 은퇴하였다. 하지만 축구는 아직 목이 마르다. 나는 위에서 누차 지적해 왔다 - 축구 자체는 공적인 관심사가 될 수 없다. 야구는 사실 운동이라고 볼 수도 없는 레포츠 수준의 게임이지만, 어차피 앉아서 맥주나 빨고 있는 관객에게는 축구나 야구나 별 차이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운동경기는 일종의 오락으로서, 사회적으로 모두 동일하다(물론 모든 취미생활이 서로 동일하다는 건 아니다). 따라서 축구가 흥행하건 농구가 흥행하건 시민들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겠다.
축구는 사업이며, 영웅은 사업의 흥행에 명백히 중요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영웅을 고대한다. 그런데 영웅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영웅은 김연아처럼 아무 물적-인적 기반도 없는데 갑자기 튀어나올 수도 있다. 우리는 그에게 얼마나 많은 '숟가락'들이 달라붙었는지 지켜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피겨계에는 기반이 없고, 김연아라는 초신성 이후에는 대체 그곳에서 무엇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기반을 쌓으면, 높은 기량을 갖춘 선수가 나올 수도 있다(가령 일본의 아사다 마오). 하지만 이렇게 나온 선수들을 영웅으로 만드는 데는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업계의 '포장'기술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 차범근이 박지성보다 급이 약간 더 높은 선수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영향력만큼은 박지성이 우월하였다. 박지성이 한국인이 좀더 좋아할 만한 요소를 갖추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결정적인 요인은 이것이다 - 위성방송으로 해외축구를 더 생생하게 시청할 수 있다는 점, 미디어의 조력도 훨씬 다양해지고 세련되어졌다는 점.
축구계는 영웅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한국 축구의 유소년 시스템은, 그에 비하면 엉터리에 지나지 않는 타 종목들을 보면 아시겠지만, 대단히 선진적이다. 이 부분에서 축구계가 대단히 합리적이며 또 성실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박지성의 영웅화에서도 말했듯, 축구계는 저 '허황된 것'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현실로 믿게 될 터이니까.
글라우콘 : 가히 쭈뼛거리며 얘기할 만한 거짓말입니다그려.
소크라테스 :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닐세... (중략) 과연 다른 시민들이 이런 (꾸며낸) 이야기를 믿게 할 수 있겠나?
홍명보의 선임은 영웅화 사업의 일부이다. 주장으로서 4강 신화를 쓴 국대의 '레전드'가 성공적인 감독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감미로운 일인가. 단지 그 설레발만으로도 홍명보는 수십억의 CF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만에 하나 '성공'했으면, 대체 얼마나 굉장한 환희의 물결이 터져나왔을까! 어게인 2002!
하나의 영웅을 만들기 위해, 축구계는 홍명보를 지속적으로 '배려'해 왔다. 그런데 이 배려에는 문제가 있었으니, 홍이 감독으로서의 실력을 쌓는 데는 도움이 전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는 대신, 축구협회가 '꽂아' 주는 자리를 거치기만 했다. 이는 성인팀 감독으로서의 경험이 전무하다는 치명적인 오점을 낳았다. 결국 홍은 알제리의 기민한 전략에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하며 완패한다. 6
협회와 일부 언론들과 홍명보 자신은 주장한다 - 경험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 감상은 홍이 지금 무자격자임을 실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체 이런 어처구니없는 무식이란, 논문을 베끼는 게 뭐가 문제냐고 일갈하던 문대성과 비할 만하다. 홍명보의 날림 커리어가 실패로 드러난 이상, 그는 적어도 형식적으로라도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맞다. 사실 백의종군도 홍명보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처사이다. 7
홍명보와 그 지지자들은, 홍의 능력에 대한 숱한 의문에 맞서, 결과를 두고 보라고 외쳤다. 그러나 능력이 없었음이 이제 드러났으며, 지금 이 시점에서도 물론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공산이 크다. 이번에 홍이 보여 준 무능력은, 그것도 거의 모든 면에서 보여 주었던 철저한 무능력은, 경험을 쌓아 봤자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 홍명보 영웅 만들기는 이미 명백히 글러먹은 것이다.
이 시점에서 김어준식 사고의 모순은 극렬하게 드러난다 - 그는, 그가 늘, 노짱과 황박과 심감독이 영웅임을 절규하며 또 선언하며 그러하였듯, 이미 침몰한 배에 타고 있는 것이다. 원인은 앞에서 말한 확증편향에서밖에 찾을 수 없다. 확증편향이란,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이 확증편향은, 위에서 말한 바 있듯, 다름아닌 홍명보 자신의 선택 - 즉 선수 선발 - 에서도 발견되었다. 8
박주영은 실로 이에 상징적인 존재다. 월드컵에서 박은 그의 현재 경기력이 형편없음을 잘 드러내었다. 원래, 누구나 인정하듯, 박주영이 그렇게 형편없는 선수는 아니었는데, 프랑스에서 약 2년간은 그럭저럭 준수한 활약을 보여 준 바 있다. 하지만 3년을 허송세월하고 잘 하는 선수란 대체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홍명보에게는 오직 박주영밖에 없었다. 박이 당연히 주전이라는 암시를 공공연히 내보였으며(외국에서는 이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여겼다. 일부에서는 페이크가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으니.), 경기경험이 없는데다 부상중인 박을 선발하고, 그 개인에게만 특별 훈련을 시켜주고, 끝내 선발로 출전시켰다. 물론 고려대학교 선후배 관계와 런던올림픽으로 다져진 '의리'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건 홍과 박을 둘러싼 함수의 유사성이다.
박주영은 대단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선수이다. 선수 경력 전반적으로도 그렇고, 유망주 시절만으로 한정하면 한국에서 박에게 쏟아진 언론의 관심을 넘어설 자가 없다. 당시 별다른 커리어도 없는 선수가 박지성과 거의 동급의 인기를 자랑했는데, 이 이유는 당연히 저 위에서 언급한 '포장'이다(링크).
90년대까지만 해도 축구의 꽃은 중앙 공격수, 스트라이커였다. 가장 재목이라고 평가되는 유소년들은 스트라이커의 길을 걸었다(요새는 유행이 미드필더로 바뀌었단다.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좋은 스트라이커가 적다는 평이다.). 한국은 최순호나 황선홍 등이 있었지만, 이들이 세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한국인은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이들 정도면 감지덕지이지만.
2002년 월드컵 이후 황선홍이 은퇴하고, 안정환은 무적선수가 되고, 이동국은 군대를 간다. 차세대 스트라이커를 발굴해야 한다는 요구가 매우 높았던 시절이다. 여기서 '발굴'된 게 바로 박주영 되시겠다.
개인적으로는 90년대의 '미우라 쇼크'가 크지 않았나 추측한다. 당시 일본 축구는 갑자기 급상승한 경기력으로 한국인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한국 축구인들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본 선수는 아무래도 마에조노겠지만, 미드필더였던 그는 너무 일찍 몰락했으며, 그 점을 제쳐두고라도, 스트라이커는 여전히 막강한 상징성이 있었다. 아직까지도 한국인들이 덮어놓고 스트라이커만 욕하는 걸 보면, 이 증상은 아직까지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미우라가 '스트라이커로서' 유럽 빅리그 팀에 '진출'한 이후, 20세기 한국인들의 습관 하나 - 일본의 성공 따라하기 - 가 도지게 된 것이겠다.
박주영은 이에 탈아입구의 중책을 짊어지게 된다. 김어준의 옛 칼럼글 - http://spacebeam.net/8708 - 을 보라!
"그(박주영)는 이전의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다. 우린 이런 유형의 선수를 지금까지 가져본 적이 없다. 그는, 스스로 테제다...(중략)... 박주영 만세!"
박은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 과정에서 흔히 '통수'라고 일컬어지는 일탈이 있긴 했지마는. 성인무대에 오르자, 그는 막강한 언론의 지원 속에 한국 축구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에 와서야 웃음거리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아래 '짤방'들은
당시로서는 다분히 진지한 것들이었다. '독일리그보다 빅리그'를 운운하는 다음 발언 - 링크 - 은 어떤가?
뭐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박주영은 세계 4대 스트라이커로 성장하지는 아니하였다. 하지만 그냥저냥한 재능을 보였는데, 말했다시피 모나코에서는 특히 잘하였다. 빅리그 주전 스트라이커(프랑스는 빅리그의 말석이며 당시의 모나코 역시 강팀과는 거리가 멀기는 하였으나)의 야망이 어찌되었든 실현된 셈이었다.
하지만 모나코에서 아스날로 이적한 후, 박주영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아스날은 박주영을 중앙 공격수의 3번째 옵션으로 영입했는데, 더 잘하는 선수가 이상하게도 부상을 당하지 않는 바람에 박은 출전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하였다. 뭐 가끔씩 출전할 때도 별로 잘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결국 박주영은 1년을 그저 허송세월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군대에 가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쯤 되면 어지간한 합리주의자라도 운명적인 무언가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 그러니 홍명보 따위들이란 어떠했겠는가? 이것으로 믿음은 완성되었다. 홍명보는 이 기적을 바탕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에 취임한다. 한편 박주영은 앞서의 1년에 더해 2년을 놀고 있었다.
홍명보와 축구계 인사들과 언론들은 오직 박주영뿐이라며 합창을 하였다.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팬들은 많았다 - 하지만 전문가들이 더 잘 알 거라는 기대에, 결과를 두고 보자는 신중함에, 그리고 어쩌면 런던에서의 저 '기적'에 압도되어, 사람들은 대부분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가끔씩 여러 커뮤니티에서 논쟁이 벌어지곤 했으나, 가령 국내 최대 축구커뮤니티인 아이러브사커에서는 박주영의 신도들이 다소 우세했다고 한다.
이로써 축구라는 세계에서 박주영의 포지션은 아주 이상해져 버렸다. 박은 세간의 이목을 더없이 끌긴 했는데, 그것은 축구계가 원래 기대하던 영웅적인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앞서 잠깐 지적하였듯 박주영은 행실에 문제가 있었고, 축구선수로서의 성실성 역시 영 아니올시다였다. 한창 때의 3년을 급여만 타 쓰며 허비하는 영웅도 있겠는가? 여기서 박은, 앞서 말했던, '우주인 중 최초의 코리안이었으나 이제는 아닌' 이모 씨와 매우 유사한 아이덴티티를 보인다. 즉,
1. 특정 집단의 지원에 힘입어 국민적 영웅으로 추대되었으며(물론 국민 누구나 그렇게 여기지는 아니하더라도),
2. 그 지위를 일단 부정하지는 않고 그에 따르는 과실은 열심히 따먹지만,
3. 정작 영웅으로서 기대되는 책임감은 전무하다.
결국 박주영에 대한 팬들의 입장이란, 광신도들과, 그 반발자들과, 다수의 자포자기한 부류들, 일부 축구팬으로서의 정체성을 반쯤 망각하고 불구경이나 하며 낄낄대는 몇몇으로 나뉘게 되었다. 여기서 항우연은, 아니 축구계의 여러 인사들은 어찌해야 했겠는가? 홍명보가 일단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는 선발하지 않겠다며 일침을 가했지만, 박주영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기색이 아니었다. 결국 홍은 자기가 말한 원칙을 자기가 깨고 박을 브라질로 데려가게 된다.
첫 경기 선발로 나왔던 박주영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두 번째도 선발로 나왔으며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 경기는 아시다시피 4-2로 대패하였다. 두 경기 모두 박이 빠지자마자 공격진은 조직적인 모습을 보였다. 박이 아예 빠진 3번째 경기로 박의, 적어도 현 시점에서의 무능력함은 완전히 증명되었다. 물론 마지막 경기 역시 괴이한 교체로 말미암아 결국 패했지만 말이다.
홍명보와 이렇게 닮을 수가 있는가? 그야말로 실패 속의 작은 실패요, 확증편향 속의 확증편향이요, 창조된 영웅 속의 창조된 영웅이다. 이것은 이를테면 마뜨료쉬까이다. 영웅 만들기의 그릇된 결과물들이 뚜껑을 열 때마다 하나씩 드러나는 셈이다.
이런 어이없는 결과에 대해 홍과 박은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더 비판받아야 할 것은 이런 괴이한 영웅을 창조해 낸 축구계이겠다. 그들은 업계의 이익을 위해 무리한 홍보를 강행했으며, 더 노력해야 할 감독과 선수를 간단히 신으로 만들어 냈다. 이는 팬들에게, 그리고 저 거짓 영웅들에게, 그리고 축구계 자신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쳤다.
몇몇 팬들은 아주 박과 홍의 광신도가 되어 버렸다. 이에 짜증이 난 다른 일부의 팬들은 염세적인 태도로 변하였다. 또한 홍과 박에게도 나쁜 결과이니, 로이 킨은 이렇게 말하였다.
"자신감과 자만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런데 조 하트(잉글랜드의 골키퍼)는 아무래도 후자이다."
(http://www.itv.com/sport/football/article/2012-10-16/keane-hart-guilty-of-cockiness/)
역시나 조 하트는 이번 월드컵에서 참혹한 경기력을 보였다. 마찬가지로, 실력에 걸맞지 않은 찬사를 보내고,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보전해 주는 통에, 홍과 박은 교만하였으며 발전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사실 홍의 감독능력은 말한 바대로 굉장히 의심스러운 수준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박주영은 그럭저럭 가능성이 있는 선수였다. 아직까지 박주영의 재능을 운운하며 찬사를 보내는 언론인들이 있다 - 그러나 그들은 다름아닌 자신이 박을 망친 장본인이 아닌지 돌이켜봐야 한다!
그리고 축구계의 현실은 어떠한가? 여러 관계자분들은 월드컵에서의 실패가 별 것 아니라고 애써 자위하지만,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한들, 이 변명은 그들이 쏟아부은 노력이 순전히 엉터리였다는 사실만을 입증해 준다. 그리고 그들이 밀던 영웅들은 오늘 몰락하였으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선수들은 날개를 펴고 있다. 가령 손흥민은 - 아마 많은 관계자 분들은 이 선수를 까탈스런 아버지를 둔, 따라서 괜히 기분나쁜 애 정도로만 생각했을 터인데 - 여러 몽상가들이 박주영의 미래를 상상하며 단꿈에 젖게 만들었던 그 수준 이상에 올라가 있으며, 앞으로의 전망 역시 밝다. 이는 여전히 불을 밝힌 LG전자의 광고판이 더없이 잘 드러내주는 것이다.
축구계의 몇몇 분들 - 아무래도 이런 분들이 대다수인 것으로 추정되긴 하는데 - 이 앞으로도 이런 사고방식을 이어간다면, 똑같은 모습의 실패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의 앞날을 낙관하지 않는 바, 다름아닌 김어준씨 역시, 아니나다를까, 박주영에게 여전히 기대를 품고 계시다니 말이다(링크1, 링크2).
나는 김어준씨가 정신을 차리리라는 기대 따위는 품지 않는다. 이 분은 이제까지 말한 사고유형 일체의 아주 전형적인 사례니까 말이다. 만약 김어준씨가 정신을 차린다면 나는 좋은 실례 하나를 잃는 셈이다. 그러나 김어준씨가 아닌 당신이 여전히 황빠이거나 디빠이거나 홍명보나 박주영, 또는 노무현이나 그 양반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도당의 빠라면, 나는 그대가 부디 개심하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그러나 설령 당신이 영원한 노빠임에도, 곧 갱생할 의지가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이 글에 매우 분노하실 필요는 없다. 영웅 만들기와 싸구려 이벤트와 확증편향과 실무의 무능함과 그에 따르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실패들, 이런 최악의 어리석음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대표하는 분은 다름아닌 지금 대통령, 박근혜씨니까.
2016년 11월 27일 추가.
이후 언론보도를 통해 저는 알게 되었으니, 곧 이소연 씨에게는 (홍명보나 박주영과는 달리) 업계 종사자로서의 책임의식 또는 성실성의 문제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보도내용에 따르면, 이소연 씨는 자신의 경력을 활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어진 직무에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계약기간을 성실히 이행하였습니다. 저는 위 본문에서 이소연 씨가 항우연의 '최초 한국인 우주인' 이라는 기획을 고의적으로 이용하였다고 판단하였으나, 그것은 저의 편협함에 따른 잘못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소연 씨에게 사과하며, 본문 내용의 잘못을 앞서와 같이 바로잡습니다.
- 논리란 엄밀하게는 사유의 타당한 형식만을 일컫는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편의상 모든 형식을 논리라고 부르겠다. 이 용어가 실제 언어생활에서도 그렇게 사용되기도 하니까. [본문으로]
- 이번 시즌 아스날팬들은 아론 램지의 대성을 보며 회개해야만 했다. [본문으로]
- http://www.ddanzi.com/index.php?mid=ddanziNews&search_target=tag&search_keyword=%EA%B4%B4%EB%B2%A8%EC%8A%A4&document_srl=2428370 에서 인용. 엔하위키에 출처 없는 동일한 문장이 있다. [본문으로]
- 가령 『변호인』은 주인공이 한계를 지니며 또한 일정 부분 실패함으로써 성공한 영화가 되었다. 따라서 영화의 맨 마지막 부분은 사족이다. [본문으로]
- http://www.ytn.co.kr/_ln/0105_201406291401212899 [본문으로]
- http://ko.wikipedia.org/wiki/%ED%99%8D%EB%AA%85%EB%B3%B4#.EC.A7.80.EB.8F.84.EC.9E.90 [본문으로]
- http://news.donga.com/ISSUE/2014WorldCup/News?m=view&gid=64726072&date=20140627 [본문으로]
- Elliot Aronson, 《사회심리학》, 탐구당, 2002, p.161, 위키백과 페이지에서 재인용.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