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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

아버지의 이름


 요전에, 소위 주체사상에 대한 논문 몇 편을 보았다. 감상은 '역시 사람들은 쉽게 낚이는구나' 정도. 그런 이류 사기극에 인생을 팔아먹은 인간이 또 여럿이라니 참 안타까운 노릇이다.

 어쨌든 북한문제가 다시 어떤 방향으로든 급물살을 타기 시작하는 요즘, 다시 그 논문을 떠올린다. 사실 주체사상이야 봉건군주제에 루소-헤겔을 대충 엮어서 양념만 적당히 뿌린 것에 불과하다. 굳이 시간을 들여 논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오늘 말하려는 내용은 논문 안의 사상이 아니다. 그에 얽혀 있던 역사, 바로 세습에 관한 일이다.


 실적도, 경력도, 아무래도 실력도 없는 애송이에게 대권이 넘어간다는 이야기는 참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문의 실체를 의심했으며, 아직까지도 여러 가설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꺼림칙하다. 모르긴 몰라도 권력이 그대로 이양되는 사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 자리가 꼭 권력을 표상하지는 않는 일이니까.

 그런데 과거 김정일의 승계를 보자. 이 양반은, 그 아들의 경우와는 사뭇 다르게, 나름 '승계'를 위한 실적과 경력이란 걸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상당히 능력을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능력이란 게 어떤 것이었느냐다.

 김일성이 아무리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는 대단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것을 국가원수에 어울리는 자질로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중대 행보관에게나 어울리는 능력이다. 그런 주술적 권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꼴을 잠깐이라도 구경하노라면, 북한이 전근대적인 미개사회라는 걸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래도 김일성은 나름 무언가를 열심히 수행했던 인물이다. 항일 빨치산이라던가, 국가(국가 유사단체라고 열심히 주장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어쨌든 정치학적으로 보자)를 수립한다거나 하는 일들을 했다. 그 와중에 전쟁도 일으키고, 숙청도 자행했고, 뭐 여러 가지 일들을 했다. 북한인들은 어쨌든 그 모든 활동을 뭉뚱그려 '혁명'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물론 우리가 이야기하는 혁명이란 그와 다른 것이다. (참조 :  http://enc.daum.net/dic100/contents.do?query1=10XXX60307) 우리는 혁명을 여러 의미로 사용하지만, 김일성의 일을 우리의 범주에 포섭시키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설령 그의 일부 행위를 '혁명적'이라 평가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모든 행위가 무슨 그런 대단한 일의 연속이었다고 상상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북한인들은 대체로 이렇게 믿는 것 같다.

 1. 김일성은 혁명적 행동을 했다.

 2. 김일성이 한 행동이 혁명적이다[각주:1].

 사고는 1에서 2로 진행한다[각주:2]. 그런데 어차피 2가 그들에게는 '진리'기 때문에 1을 의심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애초에 북한인들 대부분은, 정신병적 사고에 매몰되어 있는 관계로, 1과 2를 구분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서 '수령'의 행동과 다른 일을 하는 인간들을 탄압하거나 한다. '혁명'은 정의를 소환하는 마법의 단어다. 각하의 '중도실용' 또는 '공정사회' 를 뛰어넘는 언어의 오염이다.

 김정일은 이런 모든 구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일부 공헌하기도 했다. 이 '참여와 공헌'을 보자. 물론 북한 일부에서는 김정일이 유아기에 무슨 구름을 타고 일본을 공격한다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다만, 그의 출생시기(1942년)을 생각하라. 잘해봐야 칼리굴라 같은 마스코트 수준, 그 이상이 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는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모든 '혁명적 활동', 바꿔 말하면 혁명이라는 '신화'에서 주연배우가 될 수 있었다. 대체 어떤 마술일까? 이 '방법'은 그가 정치생활 초기에 맡았던 직책의 이름에서 엿볼 수 있다. 그 직책들이라 함은 '당 선전선동부부장', '당 문화예술부장', 또는 '당 조직 및 선전비서' 따위다.

 바로 프로파간다, 곧 현실을 관념으로 대체하는 작업을 벌였다. 북한인들이 소위 '혁명가극'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는 데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 가극이 북한인들이 수십 년 동안 벌인 병신짓의 신호탄이 된 셈이다.

 70년대, 김정일은 총대를 메고(이것이 비유적인 표현이란 걸 잘 아실 것이다) 어떤 공연기획에 매진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작품을[각주:3] 북한의 원로들 앞에서 공연했다. 공연이 끝나자, 그것을 관람하던 김일성과 군 장성들이 눈물을 쏟으며 기립박수를 치더라는 것이다.

 "할렐루야" 초연에서 조지 2세가 기립한 것에 대해 여러 가설이 떠도는 것과는 다르게, 이 '피바다'의 경우 상대적으로 분명한 설명이 가능하다. '피바다'의 내용은 항일 빨치산 투쟁이라고 한다. 그것은 관객, 정확히 말하면 김일성 그룹의 과거이며, 다른 흔한 과거도 아닌, 그들의 경력의 시작이었고 고생이 많았던 시기의, 즉 가장 애착이 쌓인 과거였다는 것이다. 그것을 재현하고, 게다가 적절하게 미화도 시켜 놓고 영웅시하고 있으니, 어찌 몰입하고 기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감동하고 끝났으면 뭐 단순한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을 테다. 나도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낼 이유가 없었다. 아마 정말 그것뿐이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문제는 단지 재현했다는 것만으로, 다름아닌 김정일이 초창기의 '동지'처럼 되었으며, 그 모든 '혁명' 과정에 동참한 것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여기서 일약 스타로 급부상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단순한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내러티브를 소유한, 아버지와 동일시할 수 있는 아들로 여겨졌던 것이다. 물론 아들은 아버지와 같지 않다. 여러분들은 설령 그가 딱 '아버지' 라고 해도 좋아하시지 않을 테다. 하지만 북한인들은 원시인의 군주제에서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

 가극은 소수의 기억을 다수의 기억으로 치환한다는 점에서 역시 매우 위험했다. 공동체, 곧 국가의 역사가 개인의 역사와 혼동되고, 아버지의 역사가 아들의 역사와 혼동된다. 곧 짐은 곧 국가요, 내 아들은 곧 나이니, 국가-아버지-아들(이들은 심지어 매우 성스럽다!)의 삼위일체가 성립되었다. 이것으로 어떤 한 개인에 대항하는 자를 모두의 이름으로 탄압할 수 있는 심리적 기제가 완성된다.

 김정일은 이후로 영 실질과는 동떨어진 기획을 일관해 왔고(천리마운동이나, 소위 주체사상에 대한 얼토당토않은 논문[각주:4]을 쓰는 등의), 어쨌든 최고지도자가 되긴 되었지만, 그 결과는 여러분이 다 아시는 바다.

 황장엽이 강변하는 사상이 김일성주의, 일명 주체이즘의 이론적 측면이라면, 나의 이야기는 그를 표방하는 체제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현실적으로 동작하는지에 대한 정치사회학적 고찰 정도가 될 것이다. 김정일이 왜 '혁명유적지' 따위를 열심히 들르는가에 대한 답도 역시 되리라 생각한다. 그들의 내세우는 '혁명' 이란 참 고리타분한 것이다. 어쨌든 간단히 정리하자면, 김일성은 소위 '혁명'을 주먹으로 했지만, 김정일은 주둥이로 한다, 정도.


 이것으로 역사가 고대 이후로 얼마나 발전이 없는지를 살펴보았다. 우리는 쉽게 북한을 비웃곤 하지만, 우리도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는 있다. 과연 현 대통령 각하는 개발독재시대를 향한 망상을 그린 드라마가 없었으면 과연 집권하실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자. 또 공주마마는 어떻게 최소 30%의, 일명 콘크리트 지지율을 획득하고 계시는지도 눈여겨보자. 게다가 공주마마는 김정일처럼 애써 대단한 사기극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이름만 열심히 불렀을 뿐이다.


  1. 여기서 좀더 나가면, 김일성이 한 행동'만' 혁명적이다, 가 된다. [본문으로]
  2. 물론 1이 설령 진리라 하더라도 2가 논리필연적으로 도출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북한인들에게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본문으로]
  3. 보지 않은 관계로 예술적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본문으로]
  4. 심지어 이 '논문'이 강령이 되고 수업 교재로 쓰인다고 한다. 끔찍한 일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