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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야기

신년사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은 상사, 또는 거래처 임원과 내기바둑을 두려고 한다. 저녁 술값 쳐서 한 10만원쯤 걸었다고 하자. 과연 무엇이 이 게임에서 중요할까?

 일차적으로 당신의 바둑 실력이 중요할 것이다. 게임을 운용하고, 더 나아가 게임에서 이겨야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당신이 진정 주목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게임 자체가 아니다. 게임을 둘러싼 현실[각주:1]에서 당신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가령 당신은 월등한 실력을 갖췄음에도 상대에게 아쉽게 승리를 내줄 수도 있다. 그것으로 당신은 현실의 이익을 기대할 것이다.

 "어이쿠, 제가 실수를 했군요! 큰일났네! 박 부장님, 에이, 이거 한 번 물러 주실 수 없겠습니까? 이야, 역시 박 부장님 예리한 건 알아 줘야 한다니까, 헤헤헤!"

 라는 식으로.

 우리는 법률, 혹은 외교에 있어서도 유사한 모델을 가정해볼 수 있다.

 물론 외교는 바둑처럼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작동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외교의 문법, 혹은 외교관의 문법은 분명 현실과 약간은 다르다. 가까운 예로 이번 FTA건을 보자. 여러 사람들은 이 FTA에 관련한 외교 관료들이 단순한 매국노라 주장한다. 이 주장의 설득력과 현실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면서도, 사태의 약간 다른 면을 관찰할 수도 있다. 위 바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극단적으로, 외교적 성과가 국가적 이익과 상반되는 경우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법률가들이 법의 문법에 따라 행동하고 그를 의심하지 않듯[각주:2], 외교관들도 외교의 문법에 따라 행동하고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 외교의 문법을 초월한 현실의 진정한 모습은 외교관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김종훈씨의 '손녀' 드립은 나름대로의 진정성을 획득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로스쿨이 이름-법학의 이런 무의미함을 보완할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여겼다. 지금 보면 그저 한숨만 나올 따름이지만. 애초에 '문법 이상의 사고'를 개개의 법률가가 할 수 있는 것일까[각주:3]도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과연 그렇다면[각주:4] 관료제의 이런 괴리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바로 정치다.

 어쩌면 대통령이며 장관의 의의란 그저 이런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은행은 통화량만 고려하고 재무는 성장률만 고려하고 노동은 고용만 고려할 수 있다. 이것들 사이의 충돌, 혹은 그것들과 국민의 '이익'사이의 충돌을 조정하는 역할을 바로 장관과 대통령 같은 정치가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는 현 정부하에서는 오히려 사치스러운 고민에 지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는 관료의 문법을 그대로 따랐기에 문제였다. 어쩌면 대통령 각하의 집권 초기 반-관료적 스탠스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어떤 의의를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각하가 관료의 문법을 부정하고 행하신 일은, 지금 우리의 논의에서 요구하는 정치가 아니었다.

 각하는 사업가의 문법을 갖고 정부를 굴리려 했던 바, 행정기관의 작동은 인민의 실상과 더욱 동떨어지게 되었다. 이 방식을 '한국형 기업가 모델' 정도로 부를 수 있겠다. 이것은 한때 거의 모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었으나, 지금 시점에서는 사기극으로 판명나 있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한국의 소위 '보수'들은 현실을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왜곡과 선동질을 일삼았다. 그들의 선전이란, 재벌의 독점, 그리고 소위 'CEO' 중심의 권위주의적 회사 지배가 국가와 인민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내용이었다. 어쨌든 이 헛소리는 국민에게 솔깃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각하께서 대통령이 되셨다. 각하께서는 그 문법을 충실히 따르리라 기대되었다.

 이것은 일종의 주술에 해당한다. 각하는 말 그대로 주술사다. 이것으로 한국은 2천년 전으로 퇴행했으며, 실로 북한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CEO론에 합리적 근거는 없다. 단지 행위가 행위를 낳는다는 종교적 믿음만 있다. 한국적 기업가의 행동이 기업의 성공 - 곧 부 - 을 낳는다는 믿음이 있다. 이것의 관념적 유사성을 매개로, 대통령이 한국적 기업가의 행동을 하면 국가의 부를 낳는다, 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제 각하는 대통령직에서 한국적 기업가의 행동을 해야 한다. 예전에도 지적한 바 있듯, 한국의 재벌이란 소위 '보수'에 의해 거의 성서적 무오성을 부여받고 있다. 이 상황에서 재벌의 모든 현상들은 그 자체로 정당화된다. 그런데 보자. 한국적 기업가의 특성은 무엇인가?

 공적 기구의 사적 소유가 가장 큰 특징이다. 적어도 실정법적으로, 기업은 기업가의 것이 아니다. 기업은 법적 구속에 따라야 하고 합리적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가는 사적 조직을 동원하여 기업을 지배할 비실정법적 권리가 있다. 그리고 기업 재산을 빼돌려 축재를 할 권리도 있다. 그리고 현실의 법적, 도덕 규범을 위반할 권리가 있다. 이런 '권리'들은 심지어 법원에서 확인받을 수도 있으니 권리가 아닐 수 없다.

 뭐 어쨌든 그것이 적법하건 아니건, 이런 행위들이 적어도 아무 제재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각하는 국민들을 데리고 사기를 친 게 아니다. 거짓말을 워낙 잘하시긴 하지만, 심지어 거짓말 자체도 한국형 기업가의 덕목이 아니던가[각주:5]. 이것이 아마도 각하와 노무현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노무현은 상당수 국민의 '기대'와는 다르게 행동했으니까.

 여느 재벌 회장이 회사 안에서 사조직을 운용하고, 법령을 일탈하여 사적 이익을 챙기고, 반대 세력를 독창적 수단을 동원하여 배제하는 것처럼, 각하도 그렇게 행했을 뿐이다. 이것은 국민의 기대 - 재벌 회장의 행동 - 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것이다. 사실 국민은 각하를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 만약 우리 보수의 주술이 정말로 효험이 있었으면 말이다. 각하는 여느 주술사처럼 좀 운이 없었을 따름이다. 주술이 원래 다 그렇다.


 이런 주술들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1년이 안 되어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종료되었다. 경제관료들은 그냥 예전 하던 짓들을 그대로 하고 산다. 그런데 외교는 아무래도 치명적인 분야가 아니었던지, 그냥 계속 헛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지난 4년 동안 한국은 그냥 외교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문적인 양반들은 사라졌고, 자리를 차지한 것은 낙하산들이었다. 말단에서는 줄타기에만 여념이 없다. 각하의 도당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외교를 할 의지도 없고 애초에 그럴 능력도 없었다. 그들은 줄곧 각하처럼, 기업가의 흉내를 내기만 했다. 이는 어쩌면 다행인 게, 이 인간들이 정말 장사를 하려고 든 경우가 몇몇 있었고, 이런 사업들이 모조리 심각한 손해만 남기고 끝난 까닭이다.

 북한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대북정책의 실패니 뭐니 하는데 실상은 정책이라는 게 없었다. 조갑제 선생 류의 광신도들의 '색깔'만 있었을 따름이다. 북한을 압박하면, 쉽게 말해 못살게 굴면, 재벌이 하청을 압박하면 결과가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되리라 믿기는 했다[각주:6]. 하지만 단지 관념으로는 정치를 할 수가 없다. 권력은 소멸하지 않고 국가는 파산하지 않는다.

 장관이 바뀌었지만[각주:7] 실상이 이럴진대 뭐가 그렇게 바뀌리라 기대하는 것은 사실 어렵다. 어제(2일) 각하의 담화가 나왔지만 역시 무슨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중국이 괜히 전화를 안 받는 것도 아닌 셈이다.

 물론 북한의 이번 대응은 좀 상궤를 벗어난 것이긴 하다. 뭐 줄창 납득할 수 없는 일들만 저질러 왔으며, 그간 각하께서 북한에 해 온 일들과 별로 달라 보이지도 않은 것 같지만. 조문을 문제삼는 건 핑계다. 막말로 자기네들은 보낼 것인가 말이다[각주:8]. 이번 건에서. 각하는 각하의 상상력의 한계 내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봐야 한다. 사실, 다른 누가 대통령이라도 이 이상의 대응은 어렵다.

 그러니, 어쩌면 예전 조문정국의 재판을 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본질은 엄연히 다르다. 우리가 보는 외교에서 외교 자체는 장식에서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추동할 수 있는 권력이다. 그 동안 한국은 많은 것을 잃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의 경계적 이득이라든가, 충분히 리쉬로 이용할 수 있는 개성공단이라든가 금강산이라든가, 북한 내부의 '민족주의자'들이라든가. 북핵문제는 사실상 '소멸'되었는지도 모르는 판국이고, 북한경제는 중국에 더욱 기대고 있다. 이 상황에서 북한이 한국에 기대할 것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뭐 변수라면 김정은이나 장성택의 인격을 들 수 있기는 하다. 과연 그들은 김정일처럼 교양이 풍부하고 계산에 능한 악당이 될 수 있는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굳이 정탐을 하기 위해서라도, 대거 조문단을 - 그것이 굳이 정부의 차원이 아니더라도 - 보낼 필요가 있었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여러 가지 것과 마찬가지로, 그저 쓸데없는 일들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니 오늘 북한의 무례함만큼 한국의 무력함을 증명하는 현상도 그리 많지 않다.









  1. 어떻게 생각하면 인생이라는 게임. [본문으로]
  2.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view.html?cateid=1010&newsid=20051012195419321&p=YTN 참조. [본문으로]
  3. 금태섭씨의 경우를 기억하자. 조직은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4. 즉 이 문제가 관료제 자체에서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본문으로]
  5. 그러니 이런 거짓말은 오히려 문법을 착실히 따르는 행위다. [본문으로]
  6. 하긴 제대로 못살게 굴지도 않았다. 이것은 사실 너무 위험한 일이라, 각하의 정체성에도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본문으로]
  7. 아마 '제대로' 청문회를 했으면 현 장관 양반은 낙마했을 것이다. 이 사실은 민주당의 여러분들이 그나마 애국적이라는 다른 사실을 웅변해 준다. [본문으로]
  8. 물론 그들은 이번에 김근태씨에게 예를 표하긴 했다! 의도는 이제까지의 논의로 보아 뭐 분명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