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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야기

(서간) 조선의 마름 김광일에게



 侊日(광일)이, 내 편지를 보아주게나. 나는 오늘 아침 자네가 조선의 젊은 노비(奴婢)들에게 준엄한 꾸중을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네 - 나는 자네의 그 포고를, "늙는다는 건 罪가 아니다" 라는 강직한 제목을 보았네. 그 아래에서 자네는 저 미욱한 젊은 것들을 다그치고, 훈계하고, 꾸짖었다네.


 아아, 지금 바깥에서는 노비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네. 확실히 요새 상것들은 참을성이 예전만 못하네. 잡다하게 무언가를 원하고, 주제에 맞지 않은 물건들을 사고, 일하는 대신 불평을 내뱉으며, 불만을 전파하지.


 광일이! 나는 자네가 그동안 저 재벌이라고 불리는 높으신 양반들의 마름으로 봉직하며, 얼마나 그분들에게 충정과 노고를 다하였는지 그저 모르고만 있지 않다네. 혹자는 자네 같은 사람을 곡학아세의 『져널리스트』라 불렀고, 또 다른 이들은 자네에게 친미파네, 친일파네 하는 근거 박약한 비난을 일삼았고, 일부는 자네와 자네 동료들을 군정과 장사치들의 사냥개라고 욕했네. 하지만 그들이 제대로 모르는 것이 있네 - 주구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그 자명한 사실 말일세.


 무릇 사냥을 하려면 눈이 매섭고, 다리가 날쌔고, 의지가 굳건해야 하네. 그것들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네 - 거리에서 자네를 보며 짖어대는 잡견들에게 목을 채우고, 줄을 당기며, 저 토끼를 쫓아 흙을 차며 달리라 한들, 자네나 자네 동료들 반의 반만이라도 빠르게 달리겠는가? 이 점에서 자네들의 입지는 아주 독보적이란 말이지.


 가령 동아의 기자입네 하는 자들은 논설은커녕 문장조차 제대로 못 쓰는 엉터리들이네. 꼴에 자네들 흉내는 열심히 내려 한다마는. . .  곧 자네의 글이라면, 주제를 모르고 무작정, 마구잡이로 지껄이고 보는 허튼 잡문일 리가 없으며, 응당 어떤 깊은 심사와 높은 목표를 가지고 정교하게 기획된 작품, 곧 마스타피-스로 여겨야 옳아. 내 이런 조그만 찬사를 광일이 자네는 부디 기쁘게 받아주게나.


 광일이, 자네의 일이라는 것이 이렇게, 실로 예술에 가까울 정도로 숭고(崇高)한 것이네. 그것은 지난하고, 또 그 길은 고단하기 짝이 없을 터이네. 그 노정은 광일이, 자네의 출발이 저 천하디 천한 잡것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는, 아니 심지어 더 나빴을지도 모른다는 것으로 여실히 증명되는 것이라네.


 그렇네. 자네의 말대로 자네는 철제 계단 타고 올라가는 이층 양옥의 북쪽 모퉁이에, 헛간 같은 지하 단칸에서 시작하였네. 자네 물고 태어난 수저가 황금도 수정도 청옥도 금강석도 아니었네만, 자네는 이제 제법 누리고 산다네. 한낱 상것에서 조선의 마름이 되었네.

 보게. 당신의 어릴 적 친구들을. 다들 자네처럼 소위 마이-홈을 가지고 있던가. 자네의 아비나 아저씨뻘 되는 어르신들을 보게. 오이시디(OECD) 최빈의 노인들이 아닌가. 단칸방에 살며 폐지로 연명하지나 않으면 다행인 팔자가 아닌가. 자네는 그에 비하면 얼마나 안락한가. 이게 다 자네가 努午力하고 또 努汚力해서 마름에 위치에 올라온 덕이 아니겠는가. 그렇네. 자네 말대로 젊은 애들은 자신들의 努娛力이 부족한 게 아닌지 곱씹어봐야 옳다네.


 잡-셰어링! 이명박(李明博) 통령 치세, 당신의 상전 되시는 분들은 노비들의 새경을 깎기로 결심하시어 자네들에게 그 선무를 권하시었네. 자네들은 자리를 늘려 준다는 달콤한 약속을 노비들에게 전달하였으나, 결국 줄은 것은 입뿐이요, 젊은 노비들의 일거리들은 반짝만 하고 늘지 않았네. 한화(韓火)의 김승연(金昇淵) 회장이 고졸 인터-언을 생색으로 뽑고 나서는 곧장 잘라버린 것이 대표적이지. 이 작업에서 보여 주었던 자네들의 재주는 아주 치하할만하네. 물론 내가 치하한다는 것은 아니고 높으신 분들이 그럴 것이겠지만. . .  이는 심지어 고사마저도 능가하는 것이 아닌가?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원숭이 주인은 그래도 저녁에 도토리 세 개는 던져줬을 테니 말이야!


 자네들의 감언이 없었으면 어찌 저런 사업이 가능했겠는가? 자네들은 이미 다방면에서 이런 재주를 보여 준 바 있다네. 가령 녹물탕으로 변한 저 낙동강(洛東江)도 자네들의 업적이요, 저 채산성이 없다는 지리(智利)의 광산이나 이랍극(伊拉克)의 유정도 자네들의 공헌일세. 꼭 자네들만의 힘으로 이루어 낸 결과들은 아니지만, 자네들이 없이는 또 이룰 수 없는 것들이었단 말이지.


 그래, 이것이 자네의 일이네. 마름으로서의 일이네. 그리고 이제 광일이 자네는, 자네의 오늘 논설을 보아하니, 세대전쟁(世代戰爭)의 첨병을 맡고 있는 모양이로군. 이 전쟁은 박근혜(朴槿惠) 통령이 자네들의 주인이신 재벌 분들의 중지를 모아 실행하고 계신 것이지. 실로 현대는 신자유주의의 시대로, 이 사상의 가장 큰 적이라면 곧 민주(民主)와 법치(法治)일세. 그래, 자네의 주인들은 민주국가가 제정한 법(法), 즉 '규제(規制)'라고 부르는 것들을 없애려고 혈안이시라지?


 하긴 재벌들처럼 높으신 분들에게 규제라니 가당키나 할 소리인가! 하지만 노비들은 규제를 받아야 마땅하네. 이것이 노비들은 휴대전화(携帶電話)를 싼 값으로 못 사게 정한 단통법의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번 '취업규칙변경'도 마찬가지로군. 나이 든 노비들이 임금을 적게 받을수록, 아니 어떤 노비든지 보수를 적게 받을수록, 자네들 주인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겠지.


 하지만 저 노비들은, 그간 너무 속아 온 탓인지, 아니면 자네들의 수법이 벌써 뻔해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노비로서의 본분을 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네. 그러니 광일이 자네가 말한 대로 '화산처럼 분노할지도 모르'는 자네의 심정을, 나는 십분 이해하는 바이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선다면 자네, 지금까지 마름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겠는가? 하층민들을 지배하는 방식을 저 영국인들은 '분리하여 통치하라'는 금언으로 적절히 요약한 바 있네. 자네들은 역시 현명하게도 젊은 머슴들을 핑계로 끌고 왔다네. 그들은 힘드네 - 하긴 어느 노비들이나 힘들고, 그 힘든 건 굳이 말할 것도 없지. 심지어 자네 같은 마름조차도 나름의 고충이 있을진대!


 그래서 자네들은 한편으로는 젊은 노비들의 가면을 쓰고 노인들을 공격하였네. 또 한편으로는 자네처럼 노인의 가면을 쓰고 젊은 자들을 공격하였네. 이는 아주 멋진 연극이야! 그것도 아주 고전적인, 클래식한 연극이네. 자네들은 어디서 이런 기이한 연기력을 배운 것인가? 정말 자네 말마따나 자네는 못하는 것이 없네. '무거운 것을 들고, 너희보다 오래 뛸 수 있다. 밤샘 일도 너희보다 자신 있다', 광일이, 자네야말로 진정 만사에 자신이 있다고 말할 자격이 있네.


 이제 나이 든 노비들은 젊은 노비를, 젊은 노비들은 나이 든 노비들을 탓하게 될 것이네. 노비들은, 실로, 어느 노비도 지금까지 나이 든 노비들이 받는 노동의 대가를 줄이자고 말한 적이 없지 않은가. 이것은 다름아닌 자네가 잘 알고 있을 테지! 자네의 주인께서 뜻하는 일이니까. 자네는 정말 좋은 마름이네.


 물론 나나 자네나 사실 천것임은 분명하네만. . . 이는 저 노비 대상의 임금피-크제가(이 제도는 자네도 잘 알다시피 장관 등 높으신 분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네) 자네한테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잘 증명하지. 하지만, 광일이 자네, 자네는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서 늘 이웃을, 친구를, 같은 계급을 배신해 오지 않았는가? 그런 노오력의 결과로 말미암아, 오늘도, 마름으로서, 저 천것들에게 따가운 훈계를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이겠고 말이지. 확실히 이것은 기분좋은 일이네 - 옛말에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侊日이. . . 자네만큼은 부디 징징대지 말게나! 자네는, 마름으로서, 제법 축복받은 생을 누리고 있으니까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