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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야기

반여성주의의 관

이 글은 이선옥 씨의 7월 21일 경향신문 기고글, 페미니즘, 지성의 무덤이 되다​에 대한 반박인 동시에 보충이다.


이선옥 씨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1. 극단주의가 대한민국 여성운동을 지배하고 있으며, 2. 여성운동은 반인권적이며, 3. 여성주의자들이 반지성적이라 공론장을 통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1. 여성운동은 극단주의에 지배당하나

이선옥 씨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 극단주의자들, 이를테면 워마드는 페미니스트이며, 즉 페미니스트는 워마드이며, 워마드의 속성이 페미니즘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논증이다 - 오사마 빈 라덴은 무슬림이다. 무슬림은 오사마 빈 라덴이다. 곧 무슬림은 테러리스트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이렇겠다. 4은 자연수다. 자연수는 4이다. 모든 자연수는 2의 배수이다.

이선옥 씨의 기고에서 소위 극단주의자들은 어떤 부분에서는 천 명의 여성주의자들 가운데 하나고, 어떤 부분에서는 주목할 만한 일부고, 어떤 부분에서는 주류고, 어떤 부분에서는 페미니즘의 전부다. 이런 증명이 어떤 공론장에서 가능한가?

우리는 공론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런 방식을 목격한 적이 있다. 교실에서 누군가가 떠들었다. 교사는 전체의 책임으로 돌려 학생들에게 단체기합을 준다. 유격훈련장에서 pt체조의 마지막 구호를 외치는 병사가 나타났다. 조교는 모든 병사들을 처음부터 다시 굴린다.

이선옥 씨의 주장은 공론장의 논리로서는 철저히 모순이지만, 그것이 사회적 행동임을 감안하면 매우 설명하기 쉽다. 이선옥 씨는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단체기합을 주고 싶은 것이다.


2. 여성운동은 반인권적인가

이선옥 씨의 초점은 워마드에 있지 않다. 전체주의적 조직에서 기합을 주는 이유가 ‘마지막 번호 말하기’와 무관한 것처럼. 이것은 워마드의 문제성을 오히려 사소하게 만든다.

대신 이선옥 씨는 ‘넷페미니스트’라는 ‘젊은’ 집단을 설정하여 그것을 때리는 데 열중한다. 이선옥 씨에 따르면 이들이 반인권적이라는 것인데, 여기서 반인권의 이유가 좀 특이하다.

성범죄자들의 처벌을 위해 노력하는 게 반인권이다! 물론 이선옥 씨는 근거를 든다. 첫째, 평등에 반한다. 둘째. 범죄자에 대한 혹형을 요구한다. 셋째. 근대법의 원칙들에 반한다.

첫째 주장을 보자. 이선옥 씨에 따르면, ‘성범죄에 한해 여성에게는 무고죄의 적용을 예외로 둔다’, 그래서 불평등하단다. 

무고가 되려면 고발이 허위임이 밝혀져야 한다. 즉 무고수사는 원래 사건의 판단 이후다.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이란 이 당연한 순서를 공지하는 것이다. 성범죄에 한해 예외도 아니고 여성에게만 예외도 아니다. 따라서 위 주장은 애초에 사실조차 아니다. 그저 떠도는 이야기다.

이선옥씨의 셋째 주장을 보자. 범죄 피해 사실을 떠들면 왜 안 되나? 왜 성범죄 피해자는 그것을 자제해야 하나? 이선옥 씨는 범죄 사실의 폭로가 사적인 형벌이며 죄형법정주의 위반이며 무죄추정의 원칙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JTBC가 태블릿 PC를 폭로하여 박근혜의 명성에 치명상을 입힌 것도 사적 형벌이며 죄형법정주의 위반이며 무죄추정의 원칙 위반이다. 실제로 박근혜의 변호인들은 헌법재판소에서 그런 식으로 주장했다.

창 밖에서 “도둑이야” 라는 소리가 들리면, 이선옥 씨는 박근혜와 함께 “그건 무죄추정의 원칙 위반이야” 라고 답할 것이다. 저런 법학적 개념들은 사법공무원들이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따라야 할 준칙이다. 범죄 피해자들의 행동에 갖다 붙이라고 만든 게 아니다.

이선옥 씨는 범죄고발 르포 프로그램, 이를테면 ‘그것이 알고 싶다’도 똑같이 비난할 셈인가? 그렇다면 이선옥 씨는 <의자놀이>사건에서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법적으로 ​조용히 처리하라며 하종강을 비난했어야 마땅하지 않았나!

이선옥 씨는 왜 성범죄 피해자들한테만 이상한 요구를 하는가? 혹시 성범죄 피해자들한테도 단체기합을 주고 싶은가?

오직 둘째 주장, 범죄자에 대한 가혹한 형벌의 요구가 반인권적이라는 점, 그것만은 타당하다. 그런데 이선옥 씨는 어떤 집단의 혹형주의를 공론장에서 설득하려거나 개선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혹형주의는 그 집단과 절연해야 한다는 근거가 될 뿐이다.

문제는 넷페미니스트들이라고 다 혹형주의를 지지하는 아니고, 더 큰 문제는, 혹형주의는 대중이 가진 고질병이라는 것이다. 이선옥 씨의 논리를 일관하면 우리는 자연인이다. 속세의 공론장이 아니라 산으로 가야 한다.


3. 공론장은 왜 엉망진창인가

이선옥 씨의 소개에 따르면 넷페미니스트 집단은 충동적이고 이분법적이며 곧 반지성적이다. 나 역시 워마드와 아울러 ‘자칭’ 래티컬-페미니스트 그룹은 반지성적인 성격이 상당히 강하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다. 이선옥 씨야말로 전형적인 반지성주의자다.

반지성주의의 특징적인 점은 권위, 또는 권력에의 호소다. 인권, 민주주의, 근대법질서의 수호자로서의 사법기관의 권위를 이선옥 씨는 끌어온다. 하지만 살펴보았듯 그것들은 부정확한 인용들이다. 심지어 여성에게만 무고죄가 예외다, 등의 사실과는 전혀 황당하게 무관한 ‘이야기’들도 있다.

이선옥 씨가 가장 기대는 힘은 ‘대중’이다. 여기서 대중이란 지식인의 상대항로서의 그리고 ‘넷페미니스트’의 상대항으로서의 의미밖에 없다. 일베를 위시한 남초 사이트들의 반여성적 경향이 무슨 대중이 되는 것이며, 설령 그게 쪽수가 가장 많아서(그렇지도 않지만!) 대중이라고 치더라도, 공론장에서의 토론을 다수결로 하는가?

이선옥 씨의 행동을 정리하면 이렇다. 특정한 적군을 상정하여 그들에게 모두 한 가지 색의 페인트를 뿌리고, 여기에 대항하는 피해자-서사로 아군을 모집하고 결속하며, 이 아군에 ‘진짜’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적들을 전체 공동체에서 배제하자고 주장한다. 전형적인 반지성적 전체주의다.

워마드랑 다를 게 없다.

우리는 80년대에 이미 대학사회의 공론장이 한 번 박살나는 광경을 보았다. 주사파들은 ‘이념대립’을 부정한다는 명목으로 흑백논리와 자가서사를 수단으로 하는 반지성적 푸닥거리 끝에 김일성주의라는 괴물을 소환했다. 하기야 주사파들은 남들을 반지성주의자라고 도리어 비난하지는 않았다.

이선옥 씨는 ‘지식인’이 아닌 뭔가 다른 존재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이선옥 씨야말로 다른 무엇도 아닌 먹물이며 지식인 사회의 문제성을 다른 분들과 함께 대표하는 분이다. 지식인들이 권위주의에 부역하고 반지성에 부역하며 공론장을 앞장서서 엉망으로 만든다.

이러니 한국에서 반지성적 대중-운동을 비판한들 먹히질 않는다. 애초에 지성이라고 자처하는 분들도 찾아보면 대체로 정념의 관 안에 계시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