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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것들(논픽션)/이야기에대한

디워


  디씨 디워갤.. 이 아니라 축갤에서 누군가가 한 말입니다.

  좋은 영화란 뭐냐? 별 생각 없이 봐도 재미있고, 진지하게 봐도 재미있는 영화, 라고요.


  저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이게 정답이다!" 적어도 90%정돈 맞는 소리 아닐까요.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냐는 건 말예요.


  그 '누군가'씨가 말한 좋은 영화는 "쇼생크 탈출". 저도 생각합니다, 쇼생크 탈출, 그거 좋은 영화라고. 가볍게든 무겁게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 간단하게나마 영화를 평가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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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



 사람들은 영화 같은 작품을 감상하며 나름대로 생각에 잠깁니다. 그리고 감상평을 던질 겁니다. 남에게 이야기하든지, 이야기하지 않든지간에요. 사람들은 누구나 평론이란 걸 합니다. 굳이 직업이 평론가가 아니라도 말이지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에게 "영화 어땠어요?" 물어본다고 해보죠.


  그 사람은 대답할 겁니다. 좋았어요, 또는 별로였어요, 라고. 어떤 부분이 좋았냐고 물으면 어떤 부분이 좋았다고 답할 겁니다. 어떤 부분이 나빴냐고 물으면 어떤 부분이 실망스러웠다고 답할 겁니다. 어느 부분이 기억에 남아요? 라고 물으면 어느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라고 답할 겁니다. 가령 저 같은 경우는 "쇼생크.."中 교도소에 어떤 소프라노의 아리아가 울려퍼지는 부분이 기억에 남더랍니다.


  부분 부분을 파고들어 볼까요. 그 장면은 왜 좋았느냐, 연출이 어떤 점에서 뛰어났을까, 이렇게 이유를 찾아보는 게 어떨까요. 감독과 스탭들은 엄청 고민했을 겁니다. 노래가 흘러나오기 직전의 확성기 잡음 소리 같은 자잘한 것부터. 사고가 터진 후 몰려오는 간수들의 모습은 어때야 할까. 어떤 구도로 아리아를 듣고 있는 죄수들을 찍어야 좋을까. 책상에 구두를 올려놓고 음악을 듣는 앤디의 표정, 이런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스탭들의 그런 노고를 떠올려 봅시다.


  이제 그 부분이 전체 작품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봤으면 합니다. "쇼생크.."에서 소프라노의 아리아는 무엇을 상징할까요. 또 그 뜻은 영화 전체적인 내용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영화는 부분과 부분을 치밀하게 짜맞춥니다. 사건들에 인과가 있고, 의미가 있고, 인물들의 감정과 기억이 섞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끈질긴 노력 덕분에, 그 장면을 보는 관객은 누구나 죄수들이 느낄 기분을 조금은 얻어 가질 테지요. 지극히도 인간적인, 삶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세심함을 기울인다면, 평범한 일반인들의 머릿속에서도 썩 독창적인, 평론가 못지않은 괜찮은 평론 하나가 튀어나올 겁니다. 단순히 '공화국 최초의 CG괴수영화'니까, 라는 단순한 소리는 좀 치워두고 말입니다.



  누구나 이런 평론을 합니다. 그런 개인적인 생각들을 체계화시키고 일반화시키는 게 직업적인 평론입니다. 평론가들은 일반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것을 알 것이며, 작품의 세부와 이면을 파악하는 훈련을 더 많이 거쳤을 겁니다. 평론가의 평론을 상대적으로 더 신뢰할 수 있는 건, 평론가 양반이 범인들보다 더 똑똑하고 잘나서가 아닙니다. 짐꾼이 쌀가마니를 더 쉽게 드는 것처럼, 그들은 단지 비평 쪽에 좀 경험이 많아 수월하게 할 뿐입니다.



  "쇼생크.."는 더할 수 없이 뛰어난 작품입니다. 너무 훌륭해서 감히 비평 따위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작품들을 보다 보면 어떤 안타까움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세상에 명작만 존재하진 않으니까요.



  예전에 간단히 평한 것 둘을 꺼내들어 보겠습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같은 경우. 일단 그럭저럭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상당히 세심하게 만들었다는 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쓸데없는 흥행요소가 등장하면서 그나마 좋던 것마저 다 망쳐버렸습니다. 덕분에 인물들과 이야기는 작품 속에 갇혀, 독자들의 삶에 어떤 의미도 전달하지 못합니다. 카메라의 흔들림을 동화상에 연출하는 세심함에 감탄하면서도, 그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아깝지 않느냐고 절로 묻게 됩니다.


  "허니와 클로버" 같은 경우. 역시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세심하지요. 여기까지는 똑같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좋은 평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상품성에 얽매이지 않았고, 지어낸 이야기지만 묘하게 현실감이 있습니다. 꿈과 현실이 공존하며, 실재하지 않는 인간들이 감정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지요. 그래서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는 독자의 삶과 연결고리를 갖게 됩니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두 작품. 둘 다 재미있으면 됐지 무엇을 바라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작품에 무모한 기대를 걸어 보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공감이 갔으면 하고, 기억에 남았으면 하고, 나중에도 이야깃거리가 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아무 의미 없는 소비재보다는 소중한 의미를 가지는 무언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품에 대한 무책임한 찬사는 작품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뛰어난 작품이 적당히 재미있는 작품과는 다르다는 걸, 그리고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보는 사람들이 바라는 게 있어야, 만드는 사람들이 작품들을 개선시켜 나갈 것입니다.


  어떻게 해나가야 하느냐를 알려면, 현재의 작품을 냉정하게 평가하는 게 필요합니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뒤떨어지는지 알아야 합니다. 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한국에서도 "쇼생크.." 못지않은,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고 믿습니다. 굳이 쓸데없는 애국심을 위에 얹어놓지 않아도 높은 수준의 작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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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좋은 영화?




  전 왠지 더 나은 물건이 될 가능성이 충분한 작품을 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습니다. 최고급 목재를 땔감으로 쓰는 기분이랄까, 싱싱한 활어를 통조림에 집어넣는 느낌이랄까, 아인슈타인이 노량진 수학강사 하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런 거 있잖아요.



  자, 이제 "디워"에 대해 이야기해 보죠. 일부는 불공정함을 이야기합니다. 왜 다른 졸작들은 안 까이고 "디워"만 까이느냐.


  조폭영화 같은 경우는 굳이 면적을 하사하여 깔 필요도 없습니다. "이건 쓰레기입니다"라는 간단한 표현으로 필요충분합니다. 스탭들을 길가에 나도는 전단지 따위와 함께 모조리 시베리아나 태평양 한가운데 무인도로 발송해버리는 건 어떨까요. 그래도 별로 아깝지도, 아쉽지도 않을 겁니다. 그들에게는 일말의 가능성도 없으니까요. 그들이 쓰레기 말고 뭘 만들 수 있을까요.


  "디워"는 CG란 물건을 어떻게 써먹느냐는 테마를 던졌습니다. 이제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디워의 CG가 수준 이하였으면 아예 까이지도 않았죠. 디워에서는 그나마 가능성이란 게 발견된 겁니다.


  "디워"의 CG는 수준급이랍니다. 자, 이제 그 CG가 어떻게 쓰였는지를 보면,


  슬픕니다.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배우의 연기, 휴우... 연출을 보면, 하아... 스토리 이건 뭐, 어휴...  좀 더 제대로 된 각본과 연출과 배우가 있으면 훨씬,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멋진 작품이 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요.



  서사구조 같은 어려운 말은 집어치우도록 하죠. 어차피 저나 여러분이나 그런 말 알아먹지도 못하잖습니까? 간단히 말해 디워의스토리는 많이 부족합니다. 그냥 좀 부족한 수준이 아니라 완벽하게 낙제수준입니다.


  초등학생에게 "너 여행가서 뭐 했니?"라고 물어봐도 그보다는 나은 이야기가 나올 겁니다. 적어도 여행이란 틀 내에서 연관이 있는 일화들이 엮어질 테니까요. 적어도 갑자기 해변가에서 포졸들과 전장 수십 미터의 괴수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오늘 데이트해요, 깔깔~(부럽지? 부럽지?)" 따위 내용의 노래가사만 봐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녀를 만나기 100M전이랍니다. 연애질에 관련된 사실들 (저기 보이는 노란 찻집, 오늘은 그녀를 세번째 만나는 날; 새로 산 구두가 어색해, 자꾸 쇼윈도에 날 비춰봐도) 을 조합하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하늘의 구름이 솜사탕이 아닐까; 머릿속에 가득한 그대 모습이, 조금씩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아)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것이 인간이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이며 인간이 이야기를 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디워"는 이야기란 게 완전히 실종되었습니다. 전혀 연관이라고는 없는 파편과 파편의 나열이며 CG와 CG의 조합입니다. 일전에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란 영화에 "2시간짜리 CF"라는 평이 달렸었는데, 이런 개연성의 종말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합니다.


  덕분에 "디워"는 관객들에게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합니다. 애초부터 내용이 없으니 배우들의 연기 역시 손톱만큼의 호소력도 없습니다. 원래 연기력이 있는 양반들인지도 사실 의심스럽지만요. 그렇다면 다른 상업영화는 어떨까요.



  "트랜스포머"의 경우. 로봇들이 튀어나와 지구를 지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꽤 유치하지만, 적어도 내용은 제대로 이어집니다. 자동차란 물건이 갑자기 변신로봇이 되어도 위화감이 발생하진 않아요. 주인공은 찌질한 성격에 웃기는 놈이지만, 그의 생각과 감정은 무리없이 관객에게 전달됩니다. "아놔ㅋㅋㅋ저새키ㅋㅋㅋㅋㅋ" 라는 반응이 자연스레 튀어나오죠.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주인공은 어쨌든 멋진 녀석일 수밖에 없겠어요.


  스파르타.. 아니 "300"의 경우. 페르시아군과 싸우는 스파르탄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관객은 대체 왜 300명의 갑빠들이 테르모필레로 몰려가는지, 왜 대왕님하가 인상 쓰며 "This is 스파르타" 라고 소리지는지 의아해하지 않습니다.


  두 상업영화의 '이야기'는 칭찬할 정도까진 아닙니다. 하지만 작품을 뒷받침할 정도의 수준은 됩니다. 연출에는 적절한 템포 - 긴장과 이완이 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만족스럽습니다. 컴퓨터그래픽뿐만이 아니라, 이런 것들이 관객들을 영화에 몰입시키는 데 나름대로 공헌을 합니다.


  하지만 "디워"에서는 이어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기대감이 없습니다. 인물들의 감정이 전해지지 않아요. 다음 CF가 뭐가 나오든 상관없듯, 내용이 어떻게 전개돼도 상관없습니다. 배우가 눈물을 흘리면 우는구나. 근데 왜 울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명 디빠들에게 융단폭격을 당하는, J씨 같은 사람은 말합니다. 아무리 이걸 씹어 보려고 노력해도 전혀 맛이 나지 않는다고요. 디워의 '이야기'는, 솔직히 이야기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긴장감을 분해시키는 역할 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혹자는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런 것으로도 만족한다"고. 내가 좋아하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이들 봤으면 됐지 왜 그런 걸 트집잡냐고요.


  그런데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내용있는 SF영화"를 볼까요, "CG모음집"을 볼까요?


  "디워"와 "트랜스.."나 "300" 을 비교했을 때, "디워"의 낮은 수준은 확연합니다. CG만 그럴듯하고 나머지는 전멸입니다. 사실 그 CG마저 외산보다 떨어집니다. 하지만 왜 "디워"는 엄청난 흥행성적을 올릴까요?


  "디워"속에 정말 뭔가 상식을 초월하는 숨겨진 매력이 있어서 그렇다면 좋겠지만요. 냉정하게 말하면 '한국 최초'라는 간판에 크게 기대어 있습니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재미 같은 걸 떠나서, 관객들은 '한국 최초니까' 보고, 그래도 '한국 꺼'니까 보고, '심아무개씨의 노력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보고, '심아무개씨가 영웅이 되었으면 해서' 보고, 결국 '남들이 많이 보니까' 본 게 사실 아닐까요.


  사실이 이렇다면 "디워"는 작품의 퀄리티보다는 사람들의 애국심이나 인정에 호소하여 흥행을 낚아챈 겁니다. 뭐 운이 좋아서, 우연히 국민의 애국심과 끈끈한 정(情)이 결집되어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한숨을 쉬고 말 일입니다. 하지만 감독인 심아무개씨의 행보라던가 그동안 작품의 홍보광경을 보면 그런 작품 외적인 흥행요소를 부추겼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디워"는 좀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첫번째로 작품 수준에 대한 공정한 평가로서 비판을 피할 수 없겠습니다. 다음으로 작품성을 도외시한 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일반정서에 편승하여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는 점 또한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후에 나올 작품들이 이런 결점들을 답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디워"에겐 냉정한 비판이 필요합니다.








  ..사족.


  무턱대고라는 기분이 들 정도로 일단, J씨를 옹호하고 들긴 했지만, 나도 평론가들의 말이 곧 진실이고 정의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다. 미학이 꼭 절대적인 것이라고 믿지도 않고, 충무로가 쌓아온 '담론'이란 것도 약간 의심스럽다. 나는 영화를 별로 즐겨 보지는 않는다. 디워에 대한 팩트들도 간접정보일 뿐, 직접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지는 않았다. 예상대로 별 가치없는 작품일 게 뻔한데 굳이 비난할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 번거로이 영화관을 찾아 제작사와 배급사의 수익을 올려주는 것도 그렇지 않은가. 어쨌든 상당히 수준높은 '담론'이란 걸 쌓아 왔다는 걸 믿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믿더라도 좋게 받아들여야 될지 말지 혼란스럽다. '담론'은 어쨌든 소품일 뿐이다. 그런데 정말 '담론'을 위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그게 어느 영화제에서 비평가에게호평을 받아 상을 타서 '흥행요소'로 삼아 돈을 버는 꼴도 역겹긴 마찬가지일 것 같다. 사실 평론가들이란 게 그들만의 세계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대화를 하며, 일반인들이 알아먹을 듯 말 듯한 글을 써놓고는 식자로서의 허영심에 겨운 나머지 교성을 질러대는 존재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뭐 어쨌든, 일단 적어도 '올바른' 평론은 필수불가결하다는 게 나의 잠정적인 견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