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감정이란 건 참 복잡하고도 어렵다. 수학 공식처럼 딱딱 맞아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통계 도표처럼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감정 속에는 언어로 도저히 표현하지 못할, 끝모를 편면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딱 잘라 "어떻다"고 정의내릴 수 없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증오와 사랑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알아차려라, 타케모토! 아픈 건 배가 아니라 가슴이야!
처음에 타케모토는 이렇게 '자기가 사랑에 빠졌다' 라는 자각이 없다. '사랑'을 알아차린 건 한참이나 지나, 모리타가 라이벌로 등장하고 나서였다.

..혹시 너도냐? 라이벌 등장!
우리가 자신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도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그럼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건, 확실히 불가능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여기서 적절하게 등장하는 'H2' 중의 양호 선생.

극의 중심에서 미묘하게 비켜선 듯하지만, 삼각관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마야마.

자신의 페이스는 놓치고 싶지 않으면서.
등장인물들 중 가장 철이 들어 보이는 마야마는, (하나모토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사람 되겠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는 네가 제일
타인의 복잡한 부분에 끼어들지 않고,
능숙하게 도망쳐 다닐 수 있는 타입으로 보였으니까.
마야마는 머리도 잘 돌아가고,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마야마에게도, 어느덧 들이닥친 열정이 풀기 어려운 고민거리를 남긴다.

조수 아르바이트를 하던 마야마는 교수의 친구인 여자분을 '사랑'하게 된다. 그렇지만... 몇 년 전의 교통사고가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남편의 사망과 자신의 불구. 색이 시들어버린 표정으로, 그녀는 죽음을 향해 힘없이 걸어간다.

상처입은 손에 구원을 바라다니!
그녀는 마야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말한다면, 마야마는 최악의 상대를 고른 셈이다. 마야마는 두 가지 불확실한 사실들 사이에서 힘든 고민에 빠진다. 사람의 감정은 이해하기 어려운 물건이니까. 그것이 자신의 감정이든, 타인의 감정이든.
하나 - 그녀가 바라보는 자신은 어떤 모습일까?
자신은 그녀에게 어떤 존재일까?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무심한 그녀의 두 눈에.그녀에게 단순히 동정을 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편리하게 이용당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녀에게 단지 거추장스런 존재일 뿐일까. 혹시 꼴사납게 보이는 건 아닐까?보답받을 수 있을까, 자신의 사랑은?
둘 - 자신의 사랑은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일까?
보답받지 못할지도 모르는데, 사랑의 감정을 계속 지녀야만 하는 걸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랑이 그렇게 순수한 것인지, 영원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도?
사랑이란 감정은, 사실 별 쓸모 없는 열정일 뿐인지도 모르잖아?
자신은 그녀를 계속 사랑해야 하는 걸까?
그냥 포기해 버리면 어떨까? 괜찮은 방법이다. 그러면 모든 게 간단해진다. 힘든 문제들은 모두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깨끗이 잊은 다음, 새롭게 시작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런 치명적인 유혹이 달콤하게 속삭인다. 긴장은 그렇게 한계에 다다르려 한다.

사랑하는 소녀, 야마다씨.

예쁜 얼굴과 환상적인 몸매, 활달한 성격, 거기에 약간 맹한 구석까지. 상점가의 아이돌이자, 학과의 마스코트다. 너무 잘난 나머지 제대로 연애 한번 못 해본 경험 부족 탓으로, 이 여자분 역시 최악의 상대를 골라 버렸다. 리카씨만 집요하게 쫓는 마야마를.

수많은 '수호기사'들 속에서 유기되어 왔군요.
마치 '알을 깨고 나온 새' 처럼, 연애감정이 생기자마자 보인 게 하필이면 마야마였다는 것. 계속 주변을 맴돌기만 하다, 제대로 고백하기도 전에 채여 버린다.

졸업날. 마야마는 취직이 결정됐고, 야마다는 학생으로 남았다. 홧김에 과음을 한 야마다는 쓰러지고, 마야마가 야마다를 부축해 집으로 데려간다.

옆으로 풀숲이 나고, 강이 흐르는 교외의 한적한 길. 달이 뜨고, 멀리 별빛과 도시의 불빛들이 희미하게 반짝인다. 야마다를 업고 걷던 마야마는, 야마다에게 중얼거린다.

왜 나 같은 걸 좋아하는 거야?
마야마는 야마다를 생각한다. 가망 없는 사랑에 매달리는 야마다의 모습은, 똑같은 아픔을 겪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녀의 모습은 자기가 혹 이럴까 걱정하던 꼴사납다거나, 한심한 모습이 아니다. 안타까워 가슴을 아프게 만들지만, 그 모습은 순수하고 아름답다.

"좋아해"라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이야기한다. 사랑은 어떻든 아름다운 것이고, 언제까지라도 소중히 간직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비록 가슴아프더라도, 설령 영원히 보답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야마다는 마야마가 고민하던 두 가지 문제에 답을 주었다. 얄궂게도 야마다가 있었기에, 마야마는 리카 씨에 대한 어렵고 고달픈 사랑을 이어 갈 수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