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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것들(논픽션)/옛날

책임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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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카라과는 아메리카 대륙의 잘록한 허리에 걸려 있는 나라랍니다. 위에 그림은 니카라과의 국기구요.

 이름은 어디서 들어 본 것 같긴 한데... 뭐하는 동넨지 잘 모르겠다구요? 이 나라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늘어놓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답니다. 정글에는 보아뱀과 아나콘다가 기어다니고, 여름이면 허리케인이 찾아와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하고, 순박한 주민들은 커피와 면화 농사로 먹고 사는, 평범한 열대지방의 나라예요.

 20세기에 이 나라는 소모사 왕조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뭐 정식 직함이 왕은 아니었겠지만 소모사란 양반은 그냥 왕같은 존재였어요. 이 분께선 암살과 부정선거 등등으로 권력을 잡으셨습니다. 그렇게 한 20년 정도 해먹으시다가, 돌아가시고 나니 이 분의 아드님께서 자리를 이어받아 또 20년 정도 열심히 해먹으셨답니다.

 하지만 이 두 대왕님들께서는 너무 나쁜 넘들이셨습니다. 잔학한 독재자였고 부정축재에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지진피해에 대한 국제원조기금까지 삥땅을 치실 정도였어요. 그러니 나라 꼴이 그야말로 안습일 수밖에요.


 1979년 참다 참다 한계에 다다른 민중들은 혁명을 일으킵니다. 혁명을 통해 이룩된 신정부는 일련의 개혁 시스템을 통해 주목할 만큼의 발전을 이룩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빨갱이들이었어요!


 미국의 높으신 분들은 경기를 일으켰습니다. 미국의 앞마당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다니, 이건 절대 안 될 일이었습니다. 빨갱이 정권이 국민들을 잘 살게 하고 못 살게 하고는 논외의 일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니카라과 국민들의 삶이 나아지면 정말 안 될 일이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따라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러저러하던 차에 미국에선 레이건이 집권합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무척 평화로운 방법으로 니카라과 문제에 대처하기로 합니다. 일단 니카라과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지하고, 무역제재를 통해 니카라과 경제를 압박합니다. 그리고 콘트라라고 불리는, 니카라과 내의 반혁명 무장단체를 '비밀리에' 지원하기로 결정합니다.

 미국은 콘트라에게 엄청난 액수의 자금을 지원하고, 교관을 파견해 반군을 훈련시킵니다. 그리고 유용한 군사정보 역시 지속적으로 제공합니다. 이제 반군은 마음껏 국가시설을 공격하고, 민간인들을 학살하게 됩니다. 그렇게 니카라과는 완전히 지옥으로 변해버리지요.

 이후 CIA가 이란과 무기밀매를 하여 생긴 자금으로 콘트라 반군을 지원한다는 게 뽀록나지요. 이것이 레이건 행정부 최대의 스캔들이라는, 이란-콘트라 게이트입니다.


 니카라과는 이 사건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합니다. 니카라과는 미국이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으며, 콘트라 반군이 저지른 수많은 잔학행위에 대해 미국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이 정말 걸작입니다. 세기의 명판결 중 하나라는군요. 대강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미국이 반군에게 자금 지원한 것, 인정한다! 군사훈련 시킨 것, 무장, 조직화에 관여한 거, 맞다!

- 콘트라 반군이 민간인 농장 습격하고, 마을 불지르고, 민간인들 마구 강간하고, 살해한 거 인정한다!

- 하지만 미국이 콘트라 도와 준 건 맞지만, 군사작전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건 아니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어느 마을 불지르고 누구누구 죽이라고 미국이 명령한 건 아니다! 그런 건 콘트라 애들 자기네들이 알아서 한 거니 미국은 책임이 없는거다!


꽤 유명한 판례니 외교 쪽이나 국제법 공부하시는 분들은 다 아시는 이야기리라 생각합니다. 결론은 어쨌든 법적으로는 미국 책임이 아니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