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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이야기

제인 에어(2011)


 제인 에어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광기, 그리고 열정이다. 샬럿은 매우 솔직하게 이 두 가지를 추구했다. 그러나 그녀는 작가의 기본적 자질이며 태도 - 삶에 대한 통찰 - 를 저버리지 않았으며, 세상이 갖는 이치를 자신의 욕망대로 왜곡시키지 않았다.

 이전 시대 사람인 오스틴은 세상을 관찰하며 늘, 공리와 합리의 편에 섰다. 하지만 제인 에어는 전적으로 열정의 편이다. 덕분에 전개도 결론도 불온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솔직하게 그린 세계의 모습은 일반인의 눈에 오히려 어색할지도 모른다. 당연히 어둠 속에 있었어야, 그래서 보이지 않아야 할 것들이 광선 아래를 배회하고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소설은 악당들 - 바로 작가와 독자 - 의 공모에 가까운 게 아닐까. 그렇기에 작품에서 느끼는 재미는 약간 범죄적인 구석이 있다. 하긴 샬럿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 사랑이 곧 정의다.


 영화에서의 제인 역시 사랑을 추구한다. 하지만 열정은 딱 그에 미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제인은 격정이 제어된 만큼 섬세해 보이며, 뭐 이 쪽도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긴 한다(사실 그도저도 아닌 편을 예상했었으니).

 영화 전반에서 광기는 아무래도 상당히 희석되었다. 로체스터와 서인도제도의 청년에게서 괴인의 풍모를 염탐할 수 있을 뿐이다. 독특한 것이, 화면의 배경은 꼭 상상하던 그대로라서 사람들이 '생각보다 정상'인 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

 광기의 범인으로 자연이며 풍광을 탓하는 건, 확실히 공정하지 못하다. 이 작품의 경우, 유전을 탓하는 것마저 불공정해 보인다. 하지만 무엇이 히스[각주:1]만큼 고독을 대변하고, 오랜 저택만큼 부권을 상징하며, 눈과 폭풍만큼 비뚤어진 분노를, 어둠과 촛불만큼 파편으로 떠도는 사실들을 이야기할까.

 다른 것들은 다 자신의 비밀 - 사실 이제 너무 뻔해 비밀이랄 것도 없다 - 을 이야기하는데, 그만큼의 광기가 없는 건 확실히 이상하다.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이것은 소설이 낳은 역설이 된다. 제인 에어가 세상을 개혁하는 데 성공했기에, 적어도 세상을 바꾸는 데 작은 걸음을 보탰기에, 이제 그런 광기는 현대에, 적어도 우리들이 사는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닐까[각주:2] 하는.



  1. 이 장면이 오르가즘을 불렀다면 믿으시겠는가? 솔직히 나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본문으로]
  2. 생각해 보면 옛날엔 정말 미친 놈들이 많았던 것 같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