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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

상군서


 법가의 저작은 의외로 잘 보존되어 있는데, 분서의 폭풍을 겪지 않아서로 대개 추정한다. 상군서는 상앙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체계가 분명한 편임에도, 여느 작과 마찬가지로 작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이론이 많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후대에 어느 정도 가필이 되었을 가능성을 거의 100%로라고 봐도 좋다.

 의외로 동시대의 저서 중 논리적으로 가장 간명한 건 손자라고 생각한다. 총론에서 각론으로 매끄럽게 이어져 나가는 모양이 더없이 교과서적이다. 다른 사상가의 편저는 아무래도 어록 수준이니까. 하지만 상군서도 나름 기민한 논증을 편다.

 상군서는 기본전제를 갖고 이론을 전개한다. 이 중 주목할 만한 것들을 꼽으라면,

 1. 빵이 최고다.

 2. 전체주의적 통제사회가 빵을 생산하는 데 가장 효율적이다.

 3. 인구압은 사회불안을 낳는다.

 정도다. 이것 외에 중요한 전제를 또 하나 들 수 있긴 하다. 4번째 전제는 나중에 설명하도록 한다.

1번 전제에서 모든 게 시작된다. 꽤 철학적으로, 이른바 대심문관의 논리다. 상군서의 이상은 인권이나 인의, 자아실현 같은 게 아니다. 오로지 빵이다. 빵이 생존을 책임지고 행복을 책임진다. 빵은 집단이 가져야 할 최상의 목표다.

 빵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개발독재를 해야 한다. 국가의 일방적인 통제가 개발에 가장 적합한 체제다. 전래된 관습이나 개인의 특성 같은 건 철저하게 무시되어야 한다. 상앙도 새마을운동 비슷한 걸 했다.

 개발을 하면 총생산이 증가하고, 생산이 증가하면 인구가 늘어난다. 특기할 만한 점은, 인구가 일정 수준 이상 증가하면 사회불안이 야기된다고 간주하는 점이다. 그리 쉽지 않은 발상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어쨌든 그는 불안을 무마시키기 위해 사회보장제도나 스포츠, 예술 같은 걸 도입하지 않는다. 넘치는 리비도는 전쟁으로 적절히 승화시켜야 한다.

 전쟁으로 땅을 얻으면 개발할 공간이 생기니 일석이조다. 이제 또 개발을 하면 된다. 이런 패턴을 무한하게 반복시키자.


 사회를 단순화시킨 모형을 만들고, 몇몇 전제들로부터 대안을 충실히 내놓는 자세는 매우 합리적이다. 물론 현실은 모형과 다를 수밖에 없고, 도출되는 이론적 과정이나 결과와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괴리들을 철저하게 무시할 수 있는 걸로 생각한다. 대단히 선구적인 마인드의 소유자다.

 이런 방식은 제국주의와, 어쩌면 나치즘과도 약간 닮았다. 김일성이나 박정희식의 개발독재와는 유사한 점을 상당히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모방을 표방하는 현 정부 체제와도 약간은 닮았다고 해야겠다. 하긴 이 '모방'은 수사적인 차원에 그치는 행위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실제 역사에서 이런 개발독재식 정부체제를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런 체제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사실 하나를 또 꼽자면, 이런 체제들이 그리 용케 영속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상군서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개발을 계속하고 계속해서 중국 전체를 개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고비사막이나 티벳 고원, 인도지나 밀림 지대나 태평양을 '개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기야 세상이 전부 균질한 농업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해도, 그리고 만에 하나 그 토지들이 '무한'하다 해도, 그런 엄청난 영역을 통제하는 정부조직을 상상하기는 또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무한개발'은 불가능하다.

 곧 4. 개발할 수 있는 자원은 무한하다 라는 전제가 이 모든 논리구조를 떠받들고 있는 중요한 기둥이며, 이는 도저히 긍정할 수 없는 전제다.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수도 없다. 여기서 개발독재의 논리는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 많은 개발독재자들에게 이런 먼 훗날의 문제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었던 모양이지만.


 확장이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성장에 익숙해진 사회는, 기존자원을 과다하게 돌려 성장을 유지시키려 한다. '그냥 적당히 먹고 살자'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하는 일이고, 사실 현상유지도 마냥 간단한 방법이 아니다. 결국 열심히 기존 자원을 착취하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끝이 보이게 된다. 자연을 착취하는 게 한계에 다다르면 인간을 착취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마저도 한계에 이르면 급격한 후퇴가 찾아올 것이다. 그러면 이런 체제는 비참하게 몰락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