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각하께서 이룩하신 '원전수주'의 위업을 신호탄으로, 대대적인 '신정공세'가 시작되었다. 여러 매체들이 전열의 선두에 서고, 온갖 잡다한 기관과 어용단체들이 속속 각개약진하고, 괴상야릇한 이름의 협회며 연구소들이 무자비한 지원사격을 퍼부었다. 새해, 장례식 타결이라는 화전양면전술이 이룩한 순간의 포근함에 젖은 저 무리들에게는, 폭설만큼이나 청천벽력같은 일이었으리라. 백화가 핀 빌딩의 정글과, 거세게 얼어붙은 우리 민중의 대지를 배경으로 펼쳐진 이 대공세에서, 소위 좌파세력은 궤멸적인 충격에 우왕좌왕했고, 시시각각 패퇴해갔다...
라는 훈훈한 이야기로 한 해를 시작할까 한다(저번 주까지 올린 글은 다 작년에 쓴 거다). 아무리 봐도 현 정부 내에 공산당이 파견한 간첩들이 암약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유사한 수법을 구사할 리 없지 않은가. 매카시 씨나 박홍 신부 같은 분이 하필 이 시대에 없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노릇이다.
어쨌든 보름이 훌쩍 지난 오늘까지 공세는 가열차게 계속되었고, 요 며칠간 소위 보수니 꼴통이니 하는 여러 분들은 어느 한 곳에 집중적으로 십자포화를 퍼부어댔다. 그 격전지는 바로 14일의 서울남부지법의 어느 판결문 위다. 이 판결에서 강기갑씨는 무죄를 선고받았었다.
소위 언론기관의 사설이며 칼럼은 탄도각을 바로 세워 이 판결을 난타해댔고, 온갖 '보수'단체니 뭐니 하는 양반들은 다투어 선언을 발표했으며, 몇몇 분들은 법원으로 직접 왕림하시어 퍼포먼스를, 심지어 몇몇 분들은 판사의 집에까지 행차하시어 소란을 피우셨다.
저 수많은 명문들의 홍수 속에서도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의 질타는 대단한 놀람으로 다가와서, 이 자리에서 차마 아니 소개하고 넘어갈 수 없을 명론이라 하겠다. 그분의 논설을 음미하고 있으면, 정말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인 것 같다! (기사 링크) 또한 다음의 중앙일보 사설 또한 우리에게 많은 것을 - 너무나 많은 것을 - 시사해주는 보석 같은 존재다. (기사 링크)
무슨 어떤 사건으로 매우 유명하신 주성영 의원은 웬 '기교판결' 인가 하는 독창적인 견해를 들고 19일의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하셨다. 돌연 무슨 상식을 이야기하시고(이런 건 갑자기 어디서 배우신 건지 모르겠다), 헌법과 법률 앞에 뭘 어쩌자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존경심이 우러나올 만한 논변이었다. 1(기사 링크)
이 매서운 '공세' 속에서, 어제인가는 대한민국의 온 변호사들을 대표한다는 변협의 여러분께서 '숟가락 하나를 올리는' 대단한 센스를 발휘하였다는 소식이 전하여졌다. 원전수주라는 다 된 밥에 당당하게 숟가락을 올리신 각하의 위대하신 행동을 거울삼은 것이라 생각하니, 참으로 기특하기 짝이 없다 하겠다.
나는 무릇 이 분들의 주장에 여러 점에서 상당히 동감한다는 사실을 일단 밝힌다. 다음의 성명서를 읽어보시라. (성명서 링크)
먼저,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독립하여”라고 하는 말은, 정치적 압력, 조직내부의 압력 등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독립하여야 함은 물론이고, 나아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독립”, 즉 “자기 자신의 개인적 성향이나 소신”으로부터도 독립하여, 오로지 “헌법과 법률의 정신”에 따라야 한다는 것도 동시에 의미하는 것"
이란 구절을 보자. 글자 하나 더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구구절절 타당한 말이다. 아이히만 만세! 이에 더해,
"이번 판결은... 시대정신에도 부합하지 않은 논리를 전개하였다"
라는 주장에도 매우 동감하는 바이다. 심히 안타깝게도, 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타의 문장들이 심심찮게 헛소리를 늘어놓기에, 내가 위에 지적한 고상한 문장들의 빛이 '약간' 바랜다는 '옥의 티'를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저런 고견들의 가치가 어찌 몇몇 사소한 궤변들로 인해 몰각될 수 있겠는가? 티가 있어도 옥은 옥인 것이다. 티가 옥의 85% 정도를 차지한다고 해도 말이다.
어쨌든 그렇다. 바로 시대정신이다. 곧 이 종합적인 난동은 이 시대의 특질을 명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또 사실이 정녕 변협의 잘나신 분들의 의견대로 그러하다면, 반드시 이 판결과 그에 따른 온갖 잡설들을 상세히 고찰하여야 할 역사적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하겠다.
곧 이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은 판결'이 어떤 논리를 폈는지 우선 살펴야겠으나, 그에 앞서, 다음의 두 사례를 보자.
1.
<자갤 적절한보아빠 히드라사건>
"적절한보아빠 2가 자갤 3에서 놀다가 누구랑(이름이 기억안남) 시비가 붙었음. 결국 분당 모 마트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누구는 보아빠를 기다렸음. 보아빠는 저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재빠르게 다가와서는 상대방에게 침을 뱉고 바로 도망침. 상대방은 매우 당황해하며 경찰에 신고. 경찰이 뭐 이런거 가지고 경찰을 부르냐 하며 훈방조치."
지금까지 여러 번 인용했고, 앞으로도 가끔 언급할 것 같은 사건이다. 요는 특정한 행위(폭행)가 형법의 문구(폭행은 처벌받는다)에 해당되더라도, 언제나 형법적으로 처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형법은 남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경찰의 이 조처는 적절하다.
2.
<대법원 선고 2006도2732 판결>
사실관계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경찰이 형사소송법상의 요건을 갖추지 않은 채 피고를 체포하였고, 피고는 경찰관을 가격한 다음 도주하였다. 법원은 "경찰관의 현행범 체포행위가 적법한 공무집행을 벗어나 불법하게 체포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 현행범이 그 체포를 면하려고 반항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에게 상해를 가한 것은 불법 체포로 인한 신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위로서 정당방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 고 판시.
불법에 약간의 폭력으로 저항하는 것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 불법한 공무집행에도 마찬가지로 대항할 수 있다.
이제 슬슬 판결문을 해독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는 법원이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했는지를 먼저 살피고, 그 사실에 적용할 법조를 올바르게 선택했는지, 법조의 실제 적용에서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는지를 살피면 된다.
법정에서 사실관계의 파악은 판결의 기초가 되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사실이 진정 어떠했나에 대한 논란은 없다. 따라서 법원의 판단이 올바른 것으로 추정해도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다음 기사 - (기사 링크) - 로 참고 정도만 삼자.
이제 법의 적용이 남았다. 검찰 나으리들의 주장은 이러하다. 강기갑씨는 이 사건에서
1. 국회 방호원과 경위의 집무집행에 대한 공무집행방해.
2-1. 국회사무총장실의 무단침입.
2-2. 사무총장실에서의 공용물 손상.
2-3. 국회사무총장에 대한 공무집행방해.
3. 국회의장에 대한 공무집행방해.
2-1. 국회사무총장실의 무단침입.
2-2. 사무총장실에서의 공용물 손상.
2-3. 국회사무총장에 대한 공무집행방해.
3. 국회의장에 대한 공무집행방해.
로 판단할 수 있는 행위들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사실을 관찰해야 한다. 과연 강기갑씨의 일련의 행위들은 저런 범죄유형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인가?
위 1, 2의 과정에서 강기갑씨가 일명 유형력이란 것을 수차례 행사한 건 맞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과 연관을 이루는 사실을 도식하면,
a. 사무총장의 질서유지권 행사 -> b. 경위들의 현수막 철거
-> c. 강기갑과 경위의 몸싸움
-> d. 강기갑이 사무총장실로 찾아가 항의 ->...
-> c. 강기갑과 경위의 몸싸움
-> d. 강기갑이 사무총장실로 찾아가 항의 ->...
라는 식으로 된다. 수많은 정의로운 논객들은 침을 튀겨가며 c와 d, 특히 d에서 벌어진 강기갑씨의 '폭력적 행위' 를 질타하고 있다. 검찰 나으리들께서는 이게 폭행이 아니면 대체 뭐가 폭행인 거냐고 외치며 절규하고 계신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분들에게 위 장면을 보여 드리면, "이게 폭력이 아니면 대체 뭐가 폭력인가! 처벌해야지!" 라고 외치시지 않을까 걱정된다. 님들의 넘치는 정의감을 가만 내버려 두면, 권투는 물론이거니와 영화나 연극도 금지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어 뵌다. 이 빵꾸똥꾸야! 라며 신애를 때린 해리양은 정말 폭행죄로 구속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덜떨어지는 짓을 자행하지 않으려면, 이게 폭행이 용인되는 특수한 경우가 혹시 아닌가 의심해봐야 한다.
법률용어로는 '위법성 조각 사유' 라고 하는데, 한 마디로 '정당방위' 같은 거다. 다음 기사는 이에 대해 매우 적절한 소개를 하고 있다. (기사 참조) 이것이 이번 판결의 법리적 핵심이다. 곧,
판결에 따르면, 질서유지권은 다음과 같은 두 요건,
1. 발동 장소 : 회의장이나 그 인접 지역
2. 발동 시간 : 회의중, 회의장의 질서를 문란하게 한 경우
2. 발동 시간 : 회의중, 회의장의 질서를 문란하게 한 경우
을 갖추어야 적법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사무총장이라는 박모씨의 행각을 자세히 살펴보면, 회의가 개최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인데도 질서유지권을 발동시켰다. 따라서 이 판결은 박모씨의 질서유지권 행사 자체가 불법하다고 보았다. 논란의 여지는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는 이와 다른 판결에서도 동일한 결론이 난 문제다. 곧,
a. 사무총장의 질서유지권 행사(불법) -> b. 경위들의 현수막 철거(불법)
-> c. 강기갑과 경위의 몸싸움
-> d. 강기갑이 사무총장실로 찾아가 항의 ->...
-> c. 강기갑과 경위의 몸싸움
-> d. 강기갑이 사무총장실로 찾아가 항의 ->...
이 된다. a를 불법이라고 판단하면 사건 전체의 결론 대부분이 논리필연적으로 따라나온다.
이 경우, 강기갑씨와 경위의 몸싸움은 설령 강기갑씨가 경위를 '폭행'했다고 할지라도 정당방위로 무죄가 될 거다. 유감스럽게도 법원은 '폭행'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실랑이하다 멱살 잡은 게 무슨 유형력의 행사냐는 거다. 사소한 유형력의 행사까지 폭행으로 관념하면, 언젠가 '옷깃만 스쳐도 폭행' 이란 신조어가 나올지도 모른다.
사실 이 경우 문제되는 것은 강기갑씨가 벌인 사소한 소동이 아니다. 더 심각한 '유형력'을 행사한 건 오히려 국회 경위들이다. 실제 강기갑씨는 손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다른 의원인 이정희씨는 잠시 실신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현수막을 가져간 것은 불법한 권원에 의한 집행이다.
즉 경위들의 행동은,
절도 + 불법폭행 + 그 폭행에 의한 상해
곧 얄짤없는 강도행위다. 이 경우 사무총장의 불법한 권한행사는 교사행위가 된다. 그렇다면
a. 사무총장의 질서유지권 행사(범죄의 교사) -> b. 경위들의 현수막 철거(강도)
-> c. 강기갑과 경위의 몸싸움 = 강기갑의 경위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정당방위) + 경위의 강기갑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강도치상)
-> d. 강기갑이 사무총장실로 찾아가 항의 ->...
-> c. 강기갑과 경위의 몸싸움 = 강기갑의 경위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정당방위) + 경위의 강기갑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강도치상)
-> d. 강기갑이 사무총장실로 찾아가 항의 ->...
의 논리적 결과가 성립한다. 물론 경위들은 '전 그게 불법인지 몰랐어요'라고 변명할 수 있다. 하긴 당시 사무총장님도 '저도 사실 멍청해서 헤헤' 라는 등 변명할 수 있긴 하다. 이 경우 형법적으로는 일명 '금지착오'가 될 텐데, 너무 복잡한 이야기니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어쨌든 두 무리 다 잡아놓고 심문하면 껀수가 어떻게든 나오는 케이스다. 검찰은 신속히 이를 수사하여, '법이 범죄자를 옹호한다' 는 작금의 근거없는 원성에 답하여야 할 것이다.
뭐 어쨌든 각설하고, 이 논리대로라면 위 녹색 박스 안에 담긴 검찰의 주장 중 1번은 자연스럽게 탈락한다.
이제 2-1을 보자. 사무총장이 불법을 저질렀으니, 아니 설령 불법이 아닌 정당한 직무라 하더라도, 강기갑씨는 사무총장의 행위에 관련하여 그를 면담할 권리가 있다. 또한 사무총장실에 들어갈 때 어떤 놈이 막거나 한 것도 아니다.
다음으로 2-3를 보자. 강기갑씨는 사무총장의 불법적인 행위에 격분하여 사무총장을 찾아갔다. 당시 사무총장은 무리에게 강도짓(고의 여부는 접어두고, 일단 현상적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을 하라는 지시를 내려 놓고는, 차를 마시고 신문을 보고 있었다. 이게 공무집행인가가 문제된다.
여기서 통상적인 판례해석과 그 전제가 될 부분에서 약간 차이점이 발견되는데, 판례는 직무의 범위를 상당히 넓게 보아 근무중의 부작위상태뿐만이 아니라 어떤 대기행위까지도 경우에 따라 공무집행으로 보는 사례가 왕왕 있다. 하지만 그런 판례 4에서도 행위와 직무내용과의 연관성은 요구하고 있으며, 직무행위 자체는 존재해야 하며 반드시 적법해야 한다. 5
사무총장 박모씨의 행위를 보면, 차를 마신다. 신문을 본다. 딴청을 피운다. 이것으로 끝이다. 물론 이것을 휴식으로 보고, 휴식을 직무와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 공무집행으로 엮을 가능성이 있다. 자리에 앉아 있으니 근무중, 같은 멍청한 소리는 일단 좀 집어치우고 말이다. 그런데,
박모씨는 경위들에게 권원 없는 불법적인 지시를 내려 현수막을 절취하게 했고 의원들은 폭행당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사무총장실에서 근무'라는 박모씨의 행위는, '그 직전에 공무원들에게 내린 지시에 대한 지휘감독을 계속하고 있는 상태'라고 볼 여지도 충분히 있다. 앞서 소개한 링크에서 주성영 의원이 적절하게 지적한 바대로니 참조하기 바란다. 이 부분에서 주성영 의원의 주장을 수용한다면, 당시 박모씨의 행위는 불법한 업무집행이 계속되는 상태다. 즉 공무집행방해죄가 보호하는 공무라고 볼 수가 없다. 6
또한 지적한 대로, 강기갑씨는 사무총장의 행위에 관련하여 그를 면담하고 해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고 봐야 할 거다. 박모씨는 이에 성실히 답할 직무상 의무가 있다고 해야 한다. 자신이 저지른 불법행위 때문에 찾아온 사람에게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의도적 무시다. 설마 차를 마시는 게 너무 바빠서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과연 사실이 그렇다면, 박모씨는 직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상태다.
검찰분들의 법만능주의적 사고를 일관한다면, 바로 이 때 박모씨에게 직무유기죄를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강기갑씨는 그 어떤 공무집행도 방해한 게 아닌 게 될 테고 말이다.
또한 강기갑씨가 사무총장실에 체류한 시간은 고작 40초다. 설령 박모씨의 행위와 어떤 보호할 만한 공무와의 연관성이 손톱만큼이나마 발견된다 한들, 박모씨에게 어떤 직접적 유형력을 행사하지도 않은 강기갑씨의 행위가 공무집행방해가 수호하는 법적 이익을 위협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곧 현행판례의 법해석대로라도, 강기갑씨에게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해야 옳다.
2-2를 보자. 법조경합이 뭐냐면,
A는 B를 살해할 의도로 칼로 찔렀다.
칼로 찌르는 과정에서 칼이 B의 옷을 찢어 옷이 망가졌다.
칼로 찌르는 과정에서 칼이 B의 옷을 찢어 옷이 망가졌다.
법정에서 A의 행위가 손괴(즉 기물파손)죄가 되느니 마느니 논할 필요가 있겠느냐다. 쓸데없는 일이다. 이것의 이론적 근간이 되는 형법적 행위론은 별로 잘 알지도 못하고 잘 안다고 동감할 내용도 아니니 생략한다. 정말 강기갑씨를 처벌하고 싶었다면, 검찰이 기소를 좀더 기교적으로 했어야 했다. 기교적으로 했다고 반드시 처벌할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검찰 주장 중 3번을 보자. 국회의장실 앞에서 시끄럽게 한 게 음향에 의한 폭행이란다. 사실 음향에 의한 폭행,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여기서 따져 볼 가치는 없을 것 같다.
여기까지, 이번 사건과 그에 따른 판결을 살펴보았다. 법적으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사무총장의 질서유지권 행사가 적법하느냐다. 이 쟁점에서 불법의 손을 든다면, 거기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법리적 전제에 따라 검찰의 모든 기소내용들은 기각의 길을 밟게 된다. 물론 어떻게 생각하기에 따라 유죄사실이 인정될 수 있는 사안들도 한둘 나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도 기껏해야 벌금 몇만원이 나올 사소하기 짝이 없는 위반에 해당한다.
이제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았다' 는 판결의 특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판결은 법리를 평범하게 일관하며 확정된 사실관계에 따라 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약간 판례와 어긋나는 부분도 있지만, 하급심이 꼭 판례를 따를 이유도 없을뿐더러 판례를 그리 심하게 일탈하지도 않았고 결론에 있어서 판례와 별 차이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이기에 별로 비평하고 싶은 흥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모슬린 같은 판결에 대한 비난은 끝도 없이 괴상망측하다. 대체 법률적 지식이 전혀 없는 분들은 왜 그렇게 당당하게 떠들어대는지 대체 알 수가 없다. 하긴 전직 판사니 검사니 하는 분도 무식하긴 피차일반이지만 말이다. 한술 더 떠서 사실관계를 전혀 고찰하지 않거나, 사실을 취사선택하여 되는 대로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사실 자체를 적극적으로 왜곡하는 정신병적인 작태가 만연한다. 7
그렇다면, 바로 그 분들이 처절하게 수호하는 이 시대의 정신이 무엇인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몰상식이다. 그 분들은 그저 법리에서 패배했을 뿐이다. 월권이 월권이라는 결론을 받아들었을 뿐이다. 국회에서 대놓고 날치기를 하는 것도 모자라, 심심찮게 불법적 폭력을 자행한 전과가 이제 명백하게 드러났을 따름이다. 양심이 정말 눈곱만큼이라도 있다면, 그 분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으며 만인에게 사죄함이 옳다.
하지만 적반하장도 차마 그 분수를 잃어, 실낱같은 구실을 잡아 의인들을 핍박하질 않나, 정상적인 결정이 나오기만 하면 마구잡이로 공갈을 일삼고, 개들은 그 와중에 이빨이 부러져라 짖어대고 있으니 제정신인 사람들은 전부 미쳐 버릴 지경이다. 정말 나라 꼴이 이렇게 가관이었던 적이 또 있었으랴 싶다.
나는 분명 강기갑씨와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 하지만 그는 분명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이며, 의를 위해 분연히 일어설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조금은 기원해도 좋을 듯싶다, 그가 다시 비상하기를, 이 엄혹한 현실을 뚫고.
- 유명하다는 건 어쨌든 좋은 일이다. 내가 이름을 아는 국회의원은 20명도 채 안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본인께서는 이 '사건'을 언급하는 걸 매우 싫어하셔서, 언뜻언뜻 고소할 뜻까지 내비치시는 게 아닌가 싶은 지경이다. 따라서 '내가 이분을 어째서 잘 아는가'를 상세히 풀어 쓰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문으로]
- 유저네임이다. 고유명사. [본문으로]
- DCinside 자전거 갤러리.
DCinside는 원래 디지털 카메라 유저들의 커뮤니티로, 자전거 갤러리는 자전거에 관한 사진을 게시하고 공유하는 장소로 기획되었다. 그런데 현재는 그런 '원래의 취지'를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이트의 성격이 변형되었다. [본문으로] - 솔직히 정치성 이야기는 하지 않고 싶지만, 노동사건에는 형법이 무지막지하게 적용되는 경향이 막강하다. [본문으로]
- 선고 2000도3485 판결 [본문으로]
- 이 부분은 충분히 '예견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본문으로] - 위에 소개한 중앙일보 사설의 고견을 음미해보자.
1. 분절의 오류.
구조적으로 가해자는 국회 사무총장이고 피해자는 강기갑 외 민노당 의원들이다. 강기갑씨는 폭력적인 행위를 하긴 했지만 그것은 더 큰 불법적 폭력에 대한 정당방위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몇몇 분들은 강기갑씨의 행위만 딱 떼어내어 '이게 폭력이다!' 라고 외쳐대고 있다.
2. 은밀한 재정의의 오류.
강기갑씨는 경위와 실랑이를 벌였다. 몇몇 분들은 그 행동 자체를 폭행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실랑이는 법적 의미의 폭행이 되고, 법적 의미의 폭행은 사전적 의미의 폭행으로 순차적으로 재정의된다.
이런 말장난으로 강기갑씨가 저지르지도 않은 행동을 저지른 것으로 일반에게 인식된다.
3. 셋째는 논리적 오류라기보다는 마술에 가깝다...
뜬금없이 '우리법연구회'가 출현하고, 갑자기 노무현이 부활했다. 이 사건과 무슨 사실적 또는 논리적 연관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게 다 어쨌든 노무현 때문이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