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이야기
셀러브리티
에포닌
2009. 4. 2. 23:53
고 있다오. 그러니 부디 날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하지 말아주세요.
김연아가 오늘 고려대학교에 왔다. 그녀의 얼굴은커녕 뒤통수도 보지 못했다(몇몇 사람은 그녀의 묶은 머리를 1 보았노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나는 매우 기뻤다. 오늘만큼, 내가 다니는 학교가 자랑스러웠던 적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집에 와서 인터넷에 뜬 사진을 보니 더 자랑스러워졌다. 고려대학교 만세! 총장님 만세! 이명박 대통령 각하 만세! 2
서론은 이 정도로 끝내자. 사실 '예상대로'의 일이라 그리 놀랍지도 않았으니까. '출교생들'한테 또 무기정학을 때릴 거란 계획을 들었을 때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학사행정은 나름대로 학생들에게 상당한 신뢰를 얻고 있는 셈이다.
김연아에게, 솔직히 나는 별 관심이 없다. 피겨라고 하면 토냐 하딩의 쳐 울던 모습만 떠오를 뿐이고. 가장 최근에 피겨스케이팅을 본 게 작년이었나, 재작년이었나, 우연히 TV에서 하던 이벤트성 공연이었다. 김연아는 나오지 않았고, 아사다 마오가 나왔다. 감상평은 몸이 참 유연하더라, 가 전부다.
국민의 절반이 피겨스케이팅 전문가가 되었다는데 내 일은 아니다. 사회면 뉴스를 매일같이 쳐 보지 않았으면, 아마 김연아가 누군지도 몰랐을 거다. 미디어에서는 여왕이네 여신이네 떠드는데, 나의 국가에서 그런 원수(元首)나 우상은 섬기지 않는다.
그러니 내게 김연아는 평범한(아니, 사실 좀 대단한) 셀러브리티일 뿐이고, 이번에 고대에 들어왔다니 그저 한 명의 대학생, 굳이 더 세분하자면 유명한 대학생으로 여길 뿐이다. 사랑스러운 후배니 동문이니 이딴 말은 예의로라도, 아니면 농으로라도 지껄이지 않겠다. 나는 원체 위아래가 없는 놈이다.
나는 '평균인'에 비해 부산스러운 걸 매우 싫어한다. 시선을 받는 건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이고, 유명인사가 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물론 나에게도 부와 명예에 대한 양가적 감정이 있다는 건 인정한다. 가령 나도 '내가 쓴 글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한다. 그런데 만에 하나 정말 유명해져서, 이곳이 방문객들로 들끓는다면, 나는 글을 내리거나 블로그를 폐쇄하거나, 어디론가 잠적해 버릴지도 모른다. 실로 '미네르바'의 배짱에는 감탄한 바가 있다.
그러니 내가 김연아에 따르는 '부산스러움'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말하는 건 편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 옆에서 부산을 떠는 여러 사람들이야 뭐 다 '그녀를 위해 그렇게 한다'는 '선량한' 마음가짐일 테니, 굳이 꼽아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이건 너무 요란하지 않나. 딱히 학생 중에 연예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화제거리가 된 예는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다른 연예인들 - 이를테면 성시경을 예로 들어 보자. 인간성에 대해서는 마초부터 신사까지 다양한 '소문'이 떠돌았지만, 학생으로선 무난하게 업을 꾸렸다는 평가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정도가 딱 적당하다. 적어도 무리는 없는 수준이다.
뭐 굳이 그게 정답이 아니라고는 해도, 그냥 관계자 하나 정도만 대동하고 학교를 둘러보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가뜩이나 요새 사고의 연속이라 일도 많을 텐데, 굳이 여럿 나와 인파를 늘릴 필요가 있었을지 싶다. 기자는 한둘만 나와 학관 앞에서(그 앞 조경은 매우 뛰어나다. 다 학생 돈으로 한 거긴 하지만) 기념삼아 사진이나 몇 장 찍게 했으면 어땠을까. 학우들은 지나치며 '와 김연아다'라는 찬탄 정도로 그녀를 맞이하고, 김연아는 원하는 사람에게 사인이나 한 장씩 해 주며 우애를 나누는 건 어땠을까. 결과적으로 그게 학교 이미지에도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나는 나의 관점을 말하고, 학우들을 말하고, 학교의 이미지를 말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빠졌으니, 역시 김연아 자신이겠다. 사실 나는 그녀에게 그 무엇도 아니니(설령 '그 무엇'이라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지만) 김연아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참견할 권리가 없다. 내가 아니라 총장님이라고 해도 마찬가지고, 행여 대통령이라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그녀의 생활은 그녀의 것이고, 그녀의 인생은 그녀의 인생인 것이다.
그녀가 이런 걸 아예 싫어한다면, 언론 앞에 나오지도 않을 거라는 억측도 가능하겠다. 혹 그녀는 이런 셀레브리티로의 인생을 퍽 즐기고 있는 것은 또 아닐까. 굳이 패리스 힐튼 정도는 아니더라도. 옆에 따르는 군중이 없으면 심심하고, 플래시가 안 터지면 쓸쓸하고, 과도한 관심을 받지 못하면 우울하고, 사람들이 떠받들어 주지 않으면 실망하거나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사람 마음이야 사실 알 수 없는 거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순순히 그것을 수용한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의 태도'가 곧 올바른 것이 되고 무한대로 정당화된다고 넘겨짚으면 곤란하다. '공인은 사생활을 포기한 거나 마찬가지' 라는 괴론은, 돼먹지 못한 스포츠신문 기자나부랭이들이나 지껄이는 소리다(사실 이건 미국 법이론이기도 한데, 어떤 멍청한 놈이 발명해냈는지 모르겠다). 김연아 자신은 여론에 이리저리 쓸려가면서 '괜찮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표정이나 말이 꼭 진심은 아니다. 그녀의 인생을 결정할 권리는, 개개의 구체적인 행동 양식 전부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소유란 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녀가 평범한 대학 생활을 원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당연히 존중해 줘야 한다. 잡다한 상술에 휘말려 그저 좋은 게 다 좋은 거라고 여기기에, 김연아는 너무 어린 나이다. 3
요새 세상이 좀 괴악하다는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솔직히 말해, 김연아에게 보이는 관심은 너무 과도하다. 때로는 광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니 때로는 하루쯤 자제하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 김연아는 세계적인 스타이니,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한 곳은 대학 말고도 넘치고 넘쳤다. 그리고 김연아에게 대학은,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주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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