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야기
Comedy
에포닌
2010. 3. 18. 22:48
더운 날 너무 무더운 날
그댈 만나게 됐어
반가운 마음에 안았겠지만
자꾸 나는 땀이 싫어
그냥 밀어 버렸어
무척 어색한 분위기
아~ 코메디 같아
이소라, 'Comedy', "꽃(4집)" 중
그댈 만나게 됐어
반가운 마음에 안았겠지만
자꾸 나는 땀이 싫어
그냥 밀어 버렸어
무척 어색한 분위기
아~ 코메디 같아
이소라, 'Comedy', "꽃(4집)" 중
물론 메인 호 사건이나 이라크 침공에 비할 비극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이 내렸던 두 개의 결단은 그 못지않게 나를 놀라게 했다. 둘 다, 다름아닌 성범죄건이다.
어떤 할머니 여선생이 남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는 이유로 추행죄로 처벌받은 사건이 하나,
일명 '핵주먹' 타이슨이 한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이유로 강간죄로 처벌받은 사건이 둘이다.
그리고 두번째 사건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아마 더 놀라게 될 거다. '그 여성'은 새벽 1시 반경에 타이슨의 초대전화를 받고, 타이슨의 리무진에 동승해서, 타이슨의 방까지 순순히 걸어들어가기까지 했다.
일명 '핵주먹' 타이슨이 한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이유로 강간죄로 처벌받은 사건이 둘이다.
그리고 두번째 사건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아마 더 놀라게 될 거다. '그 여성'은 새벽 1시 반경에 타이슨의 초대전화를 받고, 타이슨의 리무진에 동승해서, 타이슨의 방까지 순순히 걸어들어가기까지 했다.
이번 법무부 장관께서는 법치주의라던가, 또 형사정책이라던가 하는 분야에 앎이 약간 부족하신지라, 그 지위에 걸맞지 않는 한심한 발언을 일삼아 온 게 또 사실이다. 그런 경험에 따른 '면역'에도 불구하고, 장관님께서는 이번에 청송교도소를 방문하시어 하신 말씀으로 나를 엄청나게 놀라게 했다. 다음의 링크를 참조하라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00317104805330&p=nocut
그리고 이번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저지른 건을 보고, 나는 결국 경악에 떨어야만 했으니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10538.html
가 되겠다. 그들은, 일명 '회피연아' 짤방을 제작-배포한 네티즌을 고소했다.
논란이 커지자 그들은 '해명'을 내놓았는데,
http://www.breaknews.com/sub_read.html?uid=126162§ion=sc4
가 되겠다.
사실, 나는 이번 사건을 보고 약간 반성하게 됐다. 나도 반갑답시고 사람들 어깨를 툭툭 쳐 오거나 하잖았는가, 혹시 그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물론 나는 남의 집 여성의 어깨를 손으로 건드릴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고, 남자들의 어깨라고 해서 자주 토닥여 주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나는 스킨십, 곧 신체적 접촉을 별로 즐겨 하는 편이 아니다.
신체적 접촉은 사람들 사이의 친밀함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주 쓰인다. 이를테면 악수나 포옹, 키스 같은 거 말이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순재와 자옥은 연인관계다. 미국인인
줄리엔은 자옥의 집에 세들어 산다. 어느 날 자옥과 길을 걷던 순재는, 줄리엔과 자옥이 '만나서 반갑다'며 포옹과 '쪽쪽'을
하는 걸 목격하게 된다. 이와 유사한 사태는 이후로도 여러 차례 벌어지고...
라는 내용이 16화의 반(半)을 차지하는 에피소드다. 자옥과 줄리엔은 만나면 서로 포옹과 '쪽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그런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순재는 그런 건 절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우리는 이것으로
A. 친밀한 관계에서의 신체적 접촉은 용인되는 부류와 용인되지 않는 부류로 나뉜다
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B.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의 신체적 접촉을 용인할 수 있느냐, 에 대한 견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이것은 문화적인 차이(미국인-한국인)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세대간의 차이(젊은이-늙은이)일 수도 있고, 그냥 사람마다 기준이 각각 다른 것(자옥-순재)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아마 특수한 한국적 상황까지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사회변화가 극심했잖는가. 그래도 대개의 사회에서는, 적어도 그 안의 특정한 세대별로는, 신체적 접촉이란 것에 대해 일관적인 기준과 가치관이 있을 것이다.
순재는 자옥이 줄리엔과 키스하는 것(정확하게 말하면 키스하는 흉내를 내는 것이지만)은 바람을 피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줄리엔의 관점에서라면, 오랜만에 만났을 때 반갑게 포옹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무례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자옥과 줄리엔이 만나서 반갑다고 딥 키스를 나누거나 하진 않을 거다. 만약 그렇다면, 줄리엔의 문화적 세계에서도 문제가 된다. 어느 사회나 접촉의 한계는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일정 수준 이상의 신체적 접촉은 꼭 금지되는가? 좀 삐딱하게 보자면, 성과 연관이 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남녀가 대학 캠퍼스 안에서 팔짱을 끼는 건 공연음란에 해당했다는 전설이 있다. 사실 어쩌면, 모든 신체적 접촉은 성적인 암시가 어쩔 수 없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또 어쩌면, 서양인들의 가벼운 포옹이나 인사 키스는 바람기를 가볍게 해소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심지어 동성간에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순재의 분노는 일정 부분 정당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순재의 생각대로 그래야 한다면, 삶이 너무 삭막해진다. 어쩌면 그런 소소한 애정결핍이, 순재의 가정까지 삭막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을 해야 할 것이다. 기준은 되도록이면 관대할수록 좋지 않을까.
별 쓸데없어보이는 걸 가지고 고민하는 순재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태연자약한 줄리엔과 그 식구들은 순재보다 더 즐거워 보이고, 순재의 까칠한 행동은 그에 대비되어 희화화된다. 이것으로 극은 관객에게 웃음을 준다. 그리고 희극은 웃음과 더불어, 관객이 우리 세상 안의 여러 사실들을 깨달을 수 있게 하고, 어쩌면 몇몇 발전적 교훈까지 선사한다. 이것이 코메디의 가치다(에코의 주장에 따르면).
자, 이제 우리 현실의 사건을 보자. 한국 사람은, 순재의 경우에서 보다시피 스킨십에 지나치게 까다로운 편이다. 그렇다면, 되도록이면 우리 모두 상대에게 더 '접촉'하는 게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 그렇다면 장관님의 행동도 '친밀감의 표현'이라고 좋게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다시 글의 맨 위쪽까지 기어올라가야 한다.
미국은 스킨십에 관대하다. 관대한데, 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선생은 처벌되었는가? 여기서 우리는 스킨십이란 한 단어로 표현되는 두 가지 다른 의미를 관찰할 수 있다. 곧
1. 상호 합의된 관계 아래에서의 신체적 접촉.
2.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신체적 접촉.
이 두 가지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타이슨의 경우에서도 이를 유념해야 한다. 여자가 방까지 따라온 상황이라면, 성행위를 할 거란 합의가 있었다고 보는 게 맞겠다. 그러나 (성적) 자기결정권은 자기가 항상 갖고 있는 것이지, 무슨 자동차처럼 일시 임대하거나 팔아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 라던가 '지금은 하기 싫고 한참 있다가 할 거다', 또는 '분위기가 별로니 무효' 라는 주장도 충분히 가능하다.
따라서 그 시점에서 상호합의가 없으면 남성 쪽에 의한 일방적 성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니 강간이 될 수밖에. 타이슨은 결국 콩밥을 먹었다.
여기서 한국과 미국의 차이점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한국은 위 1번, 상호 합의된 관계 아래에서의 신체적 접촉 의 경우에는 매우 까칠한데, 2번,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신체적 접촉 의 경우에는 상당히 관대하다는 것이다. 뭐랄까, 폭력 사건이 빈발할 것 같은 사회적 환경이다. 이런 면에서 작년 부산지법의, 부부간의 강간죄를 인정한 판결 - 링크 - 는 환영받아야 마땅하나, 어처구니없게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친할수록 바람직하겠다. 그러나 그 친밀감의 표시가,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인가 아니면 일방적인가, 이 둘 중 무엇이냐를 우리는 먼저 생각하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 만약 후자라면 그것은 어쨌든 폭력, 또는 그에 가까운 행위라고밖에 말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여기까지 짚고 나서 다시, 일명 '회피연아' 사건을 관찰해 보자.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행위가,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느냐, 아니면 장관의 일방적인 행위였느냐
이다.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기 위해
장관의 행위가 상대와의 친밀감을 고려했을 때 적절한 수준이었느냐, 아니었느냐
의 조건이 필요할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초점을 단지 '어느 정도의 스킨십인가'에 맞춰서는 안된다.
나의 경우를 함부로 일반화시켜도 될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원본'과 '프레임 조작' 두 개를 보고 별 큰 감정적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중요한 건 장관의 행동이 적절하냐 부적절하냐다. 우리는 더 부적절하냐 덜 부적절하느냐를 놓고 싸우는 게 아니다. 물론 더 부적절하면 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1
원본과 '프레임 조작' 사이 약간의 차이를 중시하는 몇몇 주장은, 분명 약간은 타당한 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주장들은 장관의 '원본' 행동의 문제를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무엇을 주목해야 하는가? 한 개인의 장난인가, 국가조직의 공적 행위인가? 사건 전체를 놓고 전자를 언급하는 이는 후자를 반드시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그것이 언론이나 공적 기관이라면 특히 그렇다.
어깨를 5회 두드렸으니 괜찮다는 주장이 문화부의 것인데, 황당한 발상이다. 솔직히 김연아와 장관이 개인적으로 잘 알고 친한 사이라거나 하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딱 봐도 안 친하다. 그렇다면 둘 사이는 공무원과 개인의 사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환영의 표시로는 꽃 목걸이 이상의 것은 전혀 불필요하고, 친밀감은 굳이 표시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혹시나 한국에 '개선' 하는 금메달리스트에게 장관이 각별한 '친밀함'을 표시해야 하는 괴상한 풍습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장관의 앞뒤 행동을 관찰해 볼 때 전혀 그런 게 있는 것도 아니다. 둘 사이에는 잘해 봐야 악수가 모쪼록 적당하다. 굳이 친(親)해 보고 싶었으면, 이야기를 잘 해 보거나 성공한 남자로서의 어떤 분위기(?) 뭐 비슷한 걸 보여 주면 그만인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손을 대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너무 보수적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괜히 시집도 안 간 여인네(갔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건 없다만) 어깨를 - 그것도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 두드리는 건 무례한 행동이다. 만약 내가 학교에라도 온 김연아에게 장관과 똑같은 짓을 했으면, 나는 매일매일 살해위협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장관은 개념없는 행동을 했다.
이 개념없는 행동은 여지없이 '과장' 되어 희극이 되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막은 그것을 끝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문화부가 당당히 2막을 개시했고, 아무래도 법정에서 제 3막이 펼쳐질 것이다(이것은 일명 삼일치 법칙의 위반에 해당한다).
나는 "지붕뚫고 하이킥"의 경우와 비슷하게, 이 희극에서도 몇 가지 사실과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역시나 상당수의 한국 남자들은(특히 '성공'하고 나이 먹은 남자들은) 자기 멋대로 행동하며 남들에게 불편을 끼친다는 어떤 사실. 그리고 왜 그걸 사람들이 싫어하는가도 모른다는 사실. 나는 절대 그렇게 살지 말자는 교훈.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이 희극의 지나친 현실성에서 찾아온다. 한니발 렉터는 잘 만든 캐릭터지만, 현실에서 그 같은 인간은 절대 사절이다. 나는 하치를 좋아하지만, 실제 하치가 내 주변에서 실제 인물로 존재한다면 피곤해 죽을 것이다. 극은 그것이 현실이 아니기에 비극이든 희극이든 재미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영되는 극작은 - "양들의 침묵"이나 "나나" 와는 달리 - 현실을 무대로 하고 실존인물들이 그대로 그 무대 위에 서 있다. 이것은 나름대로 깨달음을 주지만, 깨달음을 주는 사이 세상 꼬락서니를 아비규환이 되도록 휘젓는다. 뭐 후세 사람이 보면 나름 재미도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조정은 왜인의 목에 현상금을 내걸었는데, 정작 현상금과 바뀐 목들을 보니 상투가 달려 있더란 거다. 어쨌든 재미있는 이야기는 재미있는 이야기 아닌가. '목'들도 그 상황을 재미있어했는지는 의문이지만.
관념이 현실을 지배하는 시대는 그래서 좀 피곤하다. 괜히 내가 상상력이 지나치게 풍부한 양반들에게 비평보다 창작을 권유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장관님께서는 유달리 상태가 심각하셔서, 기자들 앞에서 최민수 흉내를 내지 않나, 아무래도 자신이 배우인지 공직자인지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계신 모양이니, 나까지 같이 돌아 버릴 지경이다.
바로 그 "보다 품격 있는 문화" 를 위해서다. 장관님, 아무래도 2막에 등장하는, 주제 파악 안되는 문화부 직원들을 좀 공직에서 내쫓으셔야겠습니다. 연극은 홍대에서 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장관님, 반성을 좀 하셔야겠습니다. 그 조두순도 반성을 하는데, 장관님이 반성을 안 하시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