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것들(논픽션)/Note

참여정부의 허상

에포닌 2008. 4. 10. 05:37
 
 
 
 강의시간에 어떤 학생이 '참여정부는 정당제도을 너무 경시했다' 라는 말을 했다. 적절한 지적이었다. 그리고 교수가 말을 받아 약간의 설명을 했는데, 역시 적절했다. 그 적절한 지적들은 - 가려졌던 참여정부의 허상을 폭로한다.


 참여정부란 무엇인가. 노무현 행정부는 임기가 끝나며, 민주주의가 더욱 도약할 초석을 쌓았다고 자평했고, 자화자찬했다. 이름까지 참여로 지었을만큼, 참여정부는 '정책결정과정의 민주화'란 걸 이루는 데 많이 노력하긴 했다. 물론 노력했다는 말에 노력했다는 말 이상의 의미는 없다. 즉 '성과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국민의 대부분은 참여정부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노무현의 광신적인 지지자들은 알고 있었을까? 의심스럽다. 어쨌든 국민의 '참여'라는 것은 [기존의 정부 중심, 정부 독단의 정책결정을 지양하겠다]는 걸 뜻한다. 

 축제나 체육대회 같은 학교 행사를 떠올려 보자. 어떤 학교는 선생들이 모든 걸 정할 것이다. 의례껏 아침엔 구기를 하고, 오후엔 줄다리기를 하며, 마지막엔 계주를 한다. 몇 반과 몇 반이 몇 시에 축구경기를 하는지까지 위에서 다 결정한다. 매년 비슷비슷한 커리큘럼에 따라 학생들은 움직이고, 해가 서쪽에 걸리면 교장 선생님 말씀을 들은 다음 집에 가면 된다.

 하지만 이런 학교도 있었을 것이다. 학생의 자치적인 모임이 행사의 내용을 결정한다. 행사에는 무엇무엇이 등장할지, 가령 배구만 하지 말고 올해는 피구를 해 보자든가, 이인삼각 달리기를 하자든가. 또 어떻게 행사를 진행할지, 축구는 5분 연장전 골든골로 한다거나, 인기상 같은 걸 만들어 총점수에 반영한다거나, 일등팀은 다음주 청소를 면제시키자던가.

 점심시간쯤 막간 행사를 만들어, 옆 동네 여자 학교 댄스팀을 초청하는 건 어떨까. 스폰서를 어떻게 모아 폭죽을 사서, 불꽃놀이도 해 보자. 어때, 좀 더 나은 페스티벌이 되지 않을까. 

 참여정부가 선전하는 이상이란 대체로 이런 것이다. 국민의 참여를 통해 정부의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거다. 정부가 구축해 놓은 '공정한' 시스템 속에서 말이다. 얼핏 보기엔 매우 그럴듯하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것 같지 않은가? 좌파적이라는 느낌도 전혀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정책을 결정하는 시스템은 과연 공정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 보자. 

 

 누가 참여했는가? 그리고 정책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누가 참여했을까?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가했다. 하지만 선거장에서 투표하는 것처럼, 국민 모두에게 기회가 열린 게 아니었다. 전문가, 이해관계자, 시민단체 등등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의료분야에서의 정책결정과정을 예로 들자면, 행정당국자, 의사, 의료전문가, 법률자문, 검찰, 시민단체들이 참여했다. 로스쿨을 보면, 행정당국자, 법과대학 행정가, 변호사, 정책전문가, 자문,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식이었다.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참여한 건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을 국민의 참여라고 볼 수 있을까? 

 강남 아파트단지에 가서 종부세에 대한 여론을 알아본다고 하자. 그곳에서 1000명, 아니 100000명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고 치자. 만약 그 의견에 따라 부동산정책을 결정했다면, 과연 공정할까? 사람을 여럿 모았다고 해서, 더 균형적이고 합리적인 의견이 나오는 게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자. 의료정책을 결정하는 데 환자들의 목소리는 얼마나 반영될까? 로스쿨법은 어떨까, 법률서비스의 소비자인 일반 국민의 뜻은 얼마나 반영될까, 학생인 법학도들의 생각은 얼마나 반영될까?

  유감스럽게도 평범한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들은 시민단체 등을 통해 열려 있는 제한적인 통로를 통해서만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모든 시민의 뜻을 수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국민들을 다 참여하도록 초청하지도 않으면서, 이상하게도 그나마 대변자격인 시민단체의 자리는 비좁다. 


 정책결정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괴상하게 변질된 그 모습은, 절대로 이상적인 아고라의 모습이 아니다. 아무래도 돈이 걸려 있기 때문일까, 직접당사자들은 목숨을 걸고 사투한다. 사학재단의 공주님은 방탄국회를 열고, 변호사들은 물밑작업을 수행하고, 의사들은 파업한다. 

 토론장은 권력의 결투장이 된다. 의사들은 주군의 원수를 갚는 사무라이만큼이나 비장한 각오로 덤벼든다. 로스쿨법안 위에서 변호사들은 이권을 수호하려, 대학들은 학생수를 따내려 기동작전을 벌인다. 법안의 내용은 각개 전투의 향방에 따라 바뀌고 바뀌고 또 바뀐다. 난장판이 따로 없다.

 이런 난장판도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그런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더 문제인 건 여기에 정작 국민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의 의사가 반영될 통로가 사실상 열려 있지 않다. 권력다툼만 존재하며 공론은 이전투구의 각축장 속에서 튕겨나간다. 국민을 위한다는 간판을 내걸었지만, 참여정부의 시스템은 일반국민들의 몫을 전혀 남겨놓지 않는다. 정책에 참여하는 인간들은 오로지 권력자들뿐이다. 누구를 위한 참여정부인가 묻는다면, 자신있게 참여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참여정부라고 말할 수 있겠다.


 참여정부는 이상하게 국회를 경시했다. 하는 짓이 대체로 한심하긴 하지만, 국회는 대통령, 지자체와 더불어 그 구성에 국민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몇 안되는 공적 기구다. 국민의 의사는 선거로 표현되고, 정당에 대한 지지는 정당의 정책에 대한 지지로 생각해도 좋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선거에서 나타나는 국민의 의사를 깨끗이 무시했다. 그리고 대연정이니 뭐니 하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기형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정책결정을 이른바 정글에 법칙에 맡겨놓았다. 그러니 힘 없는 인간들은 완전히 무시된다. 빈민과 장애인들, 여러 소수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고,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참여정부는 이런 짓을 해놓고, 열심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국민들이 자기의 마음을 몰라준다는 둥, 의도는 좋았는데 일이 이상하게 흘러갔다는 둥 징징대는 소리를 일삼았다. 열성적인 지지자들은 말한다 : 우리 오빠는 열심히 음악만 하려고 하는데 주변에서 너무 흔들어대요! 

 참여정부가 너무 쓸데없는 비판으로 골머리를 앓았다는 건 인정한다. 그 덕택에 불쌍하게도 참여정부는, 마치 "찰리와 초콜릿공장"에 등장하는 윌리 웡카가 모든 직원을 해고시킨 것처럼, 비판에 아예 귀를 닫아버렸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의 원칙에 따라, 그들 나름대로는 공정하게 일처리를 계속했다. 이 '그들 나름대로의 원칙'을 간단하게 한 단어로 대신할 수 있는데, 바로 독단이다. 

 

  참여정부가 열심히 일했다는 건 맞는 말이다. 한국 경제는 괜찮은 성장을 이뤘고 여러 지표들도 양호하다. 하지만 그 성과를 어떻게 분배하느냐는 문제는 국민들 중 일부만의 참여를 통해 결정되었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살기 힘든 세상이 되고야 말았다.

 사실 노무현이나 주요 정부인사들의 정체성을 살펴보면 별로 서민적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중류계급 특유의 균형감각이라고 할까, 그런 생각이 상당히 국정에 반영된 것 같다. 서민들은 권력의 주체가 아닌 통제의 대상이었을 뿐이며, 참여정부는 영국의 시민혁명같이 젠트리 정도 계급까지만 포함하는 민주주의를 지향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도가 넘치는 희생을 강요당했다. 참여정부는 그것을 고려만 했을 뿐이고, 실질적인 대책은 몇 개 내놓지 않았으며, 그런 '선심성' 정책도 극우세력에 의해 좌초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길, 참여정부의 목표는 어느 정도 가진 자들을 위한 사회 만들기였다. 그렇다면 그들에 의한 제도정비는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서민들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더 효율적으로 착취하는 수단일 따름이다. 참여정부가 민주주의란 간판을 내걸고 벌인 극작은, 대단히 잘 짜여진 사기극에 불과할 뿐이겠다. 

 

 위정자들은 얼마나 사람들을 못살게 굴 셈인가! 여윈 말을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려대면, 결국엔 지쳐 쓰러져 죽어버릴 것이다. 참여정부의 관료들은, 그들에게 얼마나 얄팍한 걱정을 기울였을까. 하지만 요새 등극한 극우세력을 보면 그런 말조차도 나오지 않으니, 베리야의 명언처럼, 그들에게 '인민은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다음 날 다시 나타나는 존재' 로 보이는 모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