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닌 2008. 3. 20. 07:50

 노자가 말하길, 지극한 선(善)은 물과 같다고 했다(上善若水). 왜? 온갖 것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 때문이다(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바로 총통 각하의 사상이며, 원칙이며, 행동이시다. 각하께선 마치 물과 같음이라! 고로 님의 일거수일투족은 바로 지극한 선이며, 곧 진리이다. 어째서 그러한지 이하에서 설명하겠다. 시작하기 전에 각하를 좀 찬양하고 넘어가자. 미천한 중생들이여, 인왕산 아래 파란 기와집을 향하여, 모두 경배드릴지어다!  

 '만물을 이롭게 한다(利萬物)'는 모토는 '경제살리기'라는 표어와 일맥상통한다. 이 표어는 우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각하께서는 무려 50%가 넘는 지지율을 획득하시지 않으셨는가? 바로 이것, 이롭게 함(利)은 일명 '비지니스 후렌들리'라는 친기업 정책으로 구체화된다. 

 기업들의 이익(利)을 위해, 각하께서는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다. 당선되자마자 다짜고짜 기업 총수들의 예방을 받으시고, 회장님들의 집무실과 핫라인을 설치하였으며, 전봇대를 몇 개 뽑으시기까지 하지 않으셨는가. 혹자는 물을지도 모른다 - 왜 다른 것들은 쑥 빼놓고 기업 이야기만 하느냐? 이런 멍청하긴. 기업의 이익, 그 중에서도 대기업의 이익이 전부(萬物)다. 나머지는 안중에도 없다. 적어도 각하의 머릿속에서는 그렇다.


 '다투지 않는다(不爭)' 라는 테마를 보자. 역시 각하는 다투는 걸 매우 싫어하신다. 국회에서 싸우는 걸 보다못한 나머지, 후보자 시절부터 '탈여의도 정치'를 버럭버럭 외치시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권좌에 등극하신 연후에도, 불가피하게 월권적 발언을 하시게 되었다. 최근 각하께선 결연히 '정치안정'을 강조하시며, 총선에서의 싹쓸이를 온 국민에게 종용하시었다! 이게 다 국회에서의 정쟁(政爭)을 막기 위해서다. 민주주의?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자.

 노사문제에 대해서도 각하의 이념은 단호하시다. 싸우는 건 두고 볼 수 없다. 쟁의(爭議)행위는 결단코 일어나서는 안된다. 역시 경영자적 마인드가 돋보이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불법파업, 불법시위는 엄단한다. 무엇이 불법이고, 무엇이 합법인지는 물론 각하께서 결정하실 일이다. 뭐 대충 다 불법이 될 것이다. 백골단을 부활시키고 중장보병들을 급파하여 시위대를 사정없이 때려부숴야 한다.


 막간을 이용해 각하를 마저 찬양하기로 하자. 각하는 올바르시다. 모두 기도할지어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마지막으로 '뭇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한다(處衆人之所惡)'는 구절을 살펴보자. 바로 이 부분에서 각하의 위대함이 자못 분명하고, 매우 강력하게 증명되고 있다. 부디 이 점을 느껴 보았으면 한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모자란 부분을 채운다. 마찬가지로 각하께서는 우매한 인민 대중의 한심한 수준에 부합하는, 위대하고도 또한 위대한 모습을 보여 주시고 계시다. 언뜻 보기에, 각하가 무식한 것 같다고? 사실 그게 다 컨셉이다. 각하의 이런 모습은, 유식하고 고상한 척만 하던 이전의 뭇 정치인들(衆)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각하의 후보자 시절 공약을 다시금 음미해 보자.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매우 간단명료하다. 747계획, 즉 7%성장에 GDP 4만$, 7대강국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시었다. 물론 거기에 대한 세부설명은 없다. 하지만 각하의 이 밑도끝도 없는 공약은 매우 경제적이다. 정책 같은 건 아예 보지도 않고, 애당초 복잡한 말 해 봐야 무슨 소린지 알아먹지도 못하는 국민들에겐 딱 적절한 수준이다.

 각하의 발언들을 보자. 너무 벌여 놓은 게 많으시니 최근 것 두어개만 읇겠다. 그저껜가 그끄저껜가 하신 '50개 물가지수'발언. 국민들의 관치경제에 대한 얼토당토않은 향수를 아련히 자극하는 발언이시다. '50개'라는 구체적인 숫자는 충동적이며 동시에 허무맹랑하지만, 역시 국민들의 수준에는 적당히 어울리는 대목이다. 이래야 국민들이 정부가 뭐 좀 하고 있구나, 하고 느낄 거 아닌가.

 오늘 각하의 말씀을 보자. '국민 '떼법' 없애면 GDP 1%상승' 발언. 역시 각하께선 국민들이 GDP상승이란 말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알고 계신다. 어떻게 올라가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으시다. 주절주절 설명하면(애초에 이런 헛소리에 대해 설명이란 게 불가능하긴 하지만) 국민들이 싫어한다는 걸 유념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모름지기 지도자는 말을 아껴야 하는 법이라, 굳게 믿고 있다. 국민을 배려하는 각하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놓고 보면 각하는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각하가 존나 무개념하다고 비난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영 헛짚은 게 아닌가 한다. 각하는 나름대로의 원칙과 신념에 비추어 국정을 운영해 나가고 계시다. 그분의 원칙과 신념은 국민의 수준낮은 정신상태와 아주 잘 부합한다. 다시 말해 각하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더없이 걸맞는 대통령이신 거다. 이 대단한 몰상식의 시대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