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닌 2007. 8. 31. 23:59

  알레르기가 심해 항히스타민제를 먹었다. 약은 1500원짜리, 일명 복제약이다. 원조는 무려 5000원, 사먹기에 좀 부담이 심하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의사들이 파업을 결행했다. 의사들의 말은 얼추 맞는 얘기다. 분명 약사들은 리베이트를 받아먹을 것이다. 동등성실험은 비리가 있다고 밝혀졌고, 문외한인 나는 동일한 성분의 의약품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동일하다는 걸 아직까진 증명할 수 없단다. 보건복지부는 당연히 믿을 수 없을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언제나 의사들은 파업하면서 "제도가 악용될 소지가 높다"라는 간판을 내건다. 구제도가 바로 그들에 의해서 충분히 악용돼 왔다는 사실은 간단하게 제껴놓는다. 그러니까 의사들의 불만은 제도가 남의 손에 악용되는 걸 두고 보지 못하겠다는 거다. 누가 이용해 먹든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중요한 건 바로 그곳에 돈이 걸려 있다는 것이겠다. 제도의 허점을 쥐고 흔들면 돈부스러기가 떨어지고, 돈부스러기를 긁어모으는 사람은 쥐고 흔드는 사람이니까. 돈부스러기라고 표현하기엔 좀 지나치게 많은 금액이겠다만, 어쨌든 그걸 줏어먹지 못하는 상황을 눈뜨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의사들의 생각으로, 그들은 상호불신이 팽배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사실 그들의 현실인식은 그 누구보다 냉철한 것일지도 모른다. 빈틈이 있는 제도는 유감없이 악용되고, 공익을 위해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이, 누구나 돈푼만을 노리고 토끼를 뒤쫓는 사냥개마냥 침을 질질 흘려대며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관점은 매우 객관적인 동시에 또한 사실적이다. 남들이 벌일 이기적인 행동을 매우 정확하게 예측하는 반면, 자기의 시야에 자기의 모습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매우 점잖게, 그리고 냉정하게 자신들에 대한 판단은 유보해 놓는 것이다.

 

  글쎄, 가령 성분명 처방과 약명을 병기하는 방법은 어떨까. 염산세리티진 - (지x텍), 이란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약국에 동등성문제와 복제약의 위험성을 환자에게 설명하는 의무를 부과시키고 말이다. 내가 이렇다고 해 봤자 문외한이 아는 게 뭐 있어서 의견 따위를 내냐고 까이겠지. 관두도록 하자.

 

  어쨌든 게시판 댓글을 보고 있으니 흥미롭고, 얼토당토않은 문법으로 무식을 휘갈기는 그 용기도 나름 대견스럽다. 요샌 엉터리 문장들을 보면 왠지 정감까지 간단 말이다. 이게 뭔가 세태를 반영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그러다 문득 현행 처방제도의 실태는 어떨까 하는 의문이 생겼고, 복지부 자료에 동일성분의약품처방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좀더 생각해 보니 당연히 있을 턱이 없다. 언밸런스x2를 보면서도 느낀 거지만, 역시 한국은 뭘 하든 안된다.

 

  좀 오래 전 일을 떠올린다. 90년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간호사들이 태업을 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환자관리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 인원관리를 한, 말 그대로 상징적인 의미의 쟁의였다. 물론 정부는 즉시 공권력을 바리바리 투입해서 박살을 냈다. 언론에선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한 간호사들의 비양심적인 집단난동을 질타했고 말이다. 그런 걸 떠올리면 역시. 게시판 댓글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멘트대로 "아니꼬우면 의사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