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것들(논픽션)/요즘
관심이 있으신가요
에포닌
2006. 10. 21. 16:30
점점 사악한 히로인들을 등장시키는, 아다치 미츠루씨의 최근 완결작인 '카츠!'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주인공은 여주인공의 아버지가 권투도장을 운영한다는 말에 넘어가 권투를 시작한다. 물론 히로인의 부모는 이혼해 아버지와는 따로 산 지 오래, 게다가 그녀께선 권투하는 남자는 질색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 네, 낚이셨습니다.
글쎄, 아마 많이들 그러리라 여긴다.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 무심코 한 번 더 틀어 보려고 하고, 그녀가 지나다니는 길거리 따라 걸으려고 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 배우 포스터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눈길 주지 않았을까, 당신은.
바다 건너 어느 가수의 목소리가 좋다 한들 나와는 관련없는 이야기였으리라.그녀가 아니었으면 말이다. 솔직히 당신 수준있는 노래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럼 그녀를 제외한 세상사에는 얼마나 관심이 있으신가?
신문에서는 연일 세상 사람들의 희비극을 말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그들에게 별관심이 없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신 언제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진심으로 감싸안으려 한 적이 있는가? 아니면 적어도 눈여겨보려고 노력한 적은 있는가? 만약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성자 아니면 지독한 사기꾼일 것이다.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은 고작 몇 센트짜리 알약이 없어 병들어 죽어간다. 나는 잠깐의 군것질로 낭비하는 푼돈이라도 그들에게 적선해 보려고 했을까? 답은 물론 아니다, 이다.
극단적으로 지금 옆집에서 누가 목을 매고 죽어 내일 아침에 발견되도 나와는 상관없다. 어차피 모르는 사람이니까. 내 인생에 하등의 영향도 주지 않았고 손톱만큼의 관련도 없는 사람이니까.
나는 언제였던가 내가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지만, 곧 그런 생각은 수그러들었다. 어차피 나 빼고 다른모든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모든' 이라는 말이 불만이면 '99.9%'라던가 '극히 대부분'이라고 고쳐 읽어도 좋다.
가끔 TV화면 왼쪽 위에 수해지원금이 얼마 모였다는 표시를 보면, 사람들이 어째서 이런 '평소엔 별 관심도 없던'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지 의아해하기도 한다. 희사하기가 매우 간단하니까? 아니면 금액이 알량하기 때문에 부담이 적어서?
어쨌든 사람들은 자신의 선량함을 확인할 수 있어 좋을 것이다. 또 이렇게 간단히 푼돈을 긁어모으는 메커니즘을 발명했다는 건, 수재민한테도 좋은 일일 것이다 -물론그 돈이 전부 그들에게 가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여기에 수해에 좋이 비견할 만한 건수가 있다. 이벤트의 지속성이나 영향력이나, 물난리에 감히 비할 바가 아니라고들 한다. 이번에 이 공연의 스탭들 중 하나가 핵실험으로 상대성이론를 재증명했다고 자랑스레 밝히지 않았는가?
북한 사람들 사는 데 관심이 있으신가요?나와 전~혀 관련없다는 전제하에서라면, 북한 애들이 뭘 하건 말건 아무래도 좋은 거 아닐까? (유감스럽게도 나는 예비군 1년차라 얘들이 전쟁을 벌인다면 좀 겁나긴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일상성에 충실하여야 된다. 그들은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지 말든지 신경쓰지 않아야만 정상이다. 아니, 자국인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기울일 관심도 모자랄 지경인데, 국토를 무단점령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의 주민들이 어떻게 살든지 말든지 알 게 무언가?
라고 생각하지만, 몇몇 분들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바다 멀리 건너 아메리카 분들은 너무나도 북한 주민들에 관심이 많은 나머지 청문회를 열고 결의안을 상정하며 매일 펜을 들어 부도덕하고 무신경한 대다수 한국인들에 대한 질타를 아끼지 않으신다.
반년인가 전에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묵사발로 짓밟히는 게 가슴이 아프신 나머지, 대한민국의 지각 있으신 분들이 시청 앞에 모여 노란 손수건을 흔들어대셨다. 대체 이건 뭘 함의하고 있는지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파악이 불가능하긴 하지만, 어쨌든 감동적인 이벤트임에는 틀림없었다. 아아, 한국에도 적지 않은 분들이 북한 주민들을 보살펴주시고 계시는구나.
그런데 이상스러운 건 이런 분들은 평소인권이란 것에 대해선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으셨던 거다. 이런 분들이 국가인권위가 예산만 잡아쳐먹는다고 항상 까대고들 계신다. 우리 나라의 수많은, 그리고 계속 늘어나는 빈곤층들의 생활에도, 그들의 기본적인 권리에도 전혀 관심이 없으시다. 대열에 당당하게 앞장서고 계시는 어느 당 총재님인가 당수인가 공주님인가 하는 분은, 당신의 아버지가 저지르셨다던 수많은 탄압의 기록들이 최대의 유산이자 자랑거리다.
그분들의 요구사항들도 나에게는 심각한 미스테리다. 이라크 인민들을 수호하러 간 자랑스런 자이툰부대의 막사를 이라크인들이 경비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미스테리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어째서 식량지원을 멈추어야 하는가? 거기다가 어째서 경제재제를 때려야 하는 건가? 안 그래도 궁핍한데 더 못살게 굴면 진짜 여럿 죽어 나가지 않을까? 일부 독실한 신자들께서는 "그러면 그런 순교자들은 주 여호와께서 구원해 주십니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예수같은 건 안 믿거든요.
이분들은 항상 북한에 퍼주기만 한다며 말씀이 많다. 그걸 다 전쟁준비에 써먹어서 지금 이 꼬락서니라는데, 나는 어떻게 쌀로 핵무기를 만들고 비료로 미사일을 만드는지 도통 알 도리가 없다. 아마 그동안 퍼준 게 GDP의 0.1%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서독의 이야기를 꺼내면 아마 이분들은 경기를 일으키며 쓰러질 것이다. 사실인 게 독일 애들은 우파나 좌파나 아주 대단한 빨갱이들이니까. 만약 노무현이진짜좌빨이라면 말이다.
Please, Let It Be. 제발 그냥 내버려두길 바랍니다. 유감스럽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분들이 전혀 신경 안 쓰는 편이, 북한 주민들에게 더 유익할 것 같다. 그냥 솔직히 "우리들은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를 까고 싶어요", 라고 말하길 권한다. 그편이 분명하고 좋아 보인다. 괜히 말 돌리다 진짜 생사람 엄청나게 잡아버릴까, 심히 두렵다.
마치며 : 만화책이 허기를 채워주지는 않는다(배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