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야기

행군, 행군, 행군하는 거야 - 1. 행군에 대한 추억

에포닌 2008. 6. 15. 13:48

출처 : 연합뉴스


 오늘(게을러 글을 완성하는 덴 며칠 지났습니다만) 천리행군 부활에 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국방부장관께서 "편한 군대보다 싸워 이기는 군대를 만들자" 라는 발언을 하시고 얼마 되지도 않아, 장성분들께서 장거리행군을 빨리도 기획하셨죠. 병기를 짊어지고 며칠 동안 수백 킬로미터를 걸어가는 게 오죽 힘들까요. 제가 겪은 행군 역시, 어지간히 힘들었다는 추억을 상기시키고, 더불어 좀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한국전쟁 때 중국이 참전하자 한국군은 도망가버렸습니다. 오죽하면 미군 장성이 '한국인들은 선천적으로 짱궈들을 무서워하는 게 아닐까' 라고 투덜거렸을까요. 미군 제1해병사단은 열심히 싸웠지만, 강추위가 그들을 박살냈습니다. 이 전투 이후로 미군의 동계훈련이 강화되었다는데요, 뭐 줏어들은 이야깁니다.

 한국에도 혹한기훈련이 있습니다. 제가 체험한 혹한기훈련 얘기를 해 보죠. 한 마디로 아주 빌어먹을 훈련이었습니다. 일단 날씨부터 꽤 추워서,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는 이상 그보다 더 추운 날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수면부족인 상태에서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 산중에서 텐트 치고 노숙하다 보면, 그냥 돌아 버릴 것 같습니다.

 일주일 동안 고위 장교분들이 장기말 굴리는 대로 이리저리 움직이기만 했습니다. 물론 실제 전쟁이 일어나면 - 일어난다면 말이지만 - '예상하지 못한 전력 손실'에 장교분들이 당황하실 테지만요. 군장을 메고 터덜터덜 걸어가노라면 이게 '전쟁에서 패배한 상황'을 예정하는 건지, '전쟁에서 패배하기'를 기원하는 의식인지 헷갈릴 노릇이었죠.


 다행히도 그랬던 훈련이 끝이 나긴 났습니다. 예스럽게 대규모훈련이 끝나면 행군을 합니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행군은 거의 요식행위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장교들도 이거저거 다 빼고 '가벼운 차림'으로 나오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행군 대열을 갖추고 출발을 기약하는 찰나... 대대장님께서 출동하시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몇몇 사병의 배낭을 들어 보이는 '성의'까지 보이시며, 규정대로의 - 일명 FM대로의 - 장비를 갖추기를 종용하시었습니다! 원칙대로인 건 좋은데, 그러면 상당히 짐이 무거워집니다.

 배낭만 30kg정도에 총이 또 k201 - 유탄발사기, 유감스럽게도 훈련받은 적이 없어 사용법을 몰라요 - 이라 4kg이 넘습니다. 이걸 짊어지고 '훈련'으로 피로한 상태에서 몇십 킬로 걸으면 당연히 무리가 갑니다. 하급장교들은 그런 걸 알고 규정준수를 자제하기 마련인데, 소위 '유학파'인 대대장께서는 그런 측면을 깨끗이 무시하셨던 겁니다.


 저는 지구력이 의외로 뛰어난 편입니다. 덕분에 훈련에서도 낙오하거나 한 적이 없었는데, 당시 행군에서도 남들이야 뒈지건 말건 그럭저럭 건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개인적으로 친했던 고참병 하나가 제게 말했습니다 -

               "보폭이 커서 따라가기 힘드네. 하하."

 그런데 그 말은 부메랑이 되어 이상한 궤적을 그리며 돌아왔으니,

 분대 중간 서열이었던 병사가 말했습니다 -

               "야, C병장 걷기 힘들게 만들래? 똑바로 안 걷냐?"

 아니, 이런 미친 놈들이 있나요. 어떻게 똑바로 걸으라고요?


 똑바로 걸으라는 말을 세 번째 듣고, 보폭을 억지로 좀 줄였습니다. 그러다 균형을 잃어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습니다. 오른발로 간신히 몸을 지탱했는데, 하중이 좀 과하게 실린 모양이었습니다. 발에 통증이 생겼습니다.

 간신히 행군을 마무리하고 부대에 돌아왔습니다. 통증 때문에 군병원에 가고는 싶었는데, 환자들이 너무 많아 사소한 발병신으론 엑스레이 순번이 돌지 못할 판이었습니다. 결국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진단결과 골절로, 한 보름 가까이 입원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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