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혼용론 비판
교육부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할 것을 검토한단다. 이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논란거리가 되었는데 1, 한글전용론과 한자혼용론이 새 전장을 찾은 셈이다. 그리고 오늘 경향신문에 아래 칼럼이 올라온 바, 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3152040205&code=990304
혼용론의 문제를, 특히 위 "초등학교 한자교육 ‘반대’에 답함" 에서 드러나는 것들을 중심으로 비판하겠다.
해당 기고문의, 그리고 한자혼용론의 핵심은 아무래도 이것이다 - "한자어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전문적인 문장이나 대화는 물론 일상의 언어문자 생활에서도 무지와 오해로 말미암아 엄청난 소통장애를 가져오는 것", 즉 '한자를 모르면 문장을 정상적으로 독해할 수 없다'는 주장 되겠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견결히 한자혼용론을 견지하는 분 중 하나인 조갑제씨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3
"언어가 암호나 소리화되어 意識(의식)과 행태도 原始(원시)수준으로 회귀. 정확한 발음도 불가능해져 정보전달과 언어생활이 부정확해지고, 每事(매사)에 정확도와 완성도가 떨어진다. 이는 학문, 과학, 기술, 문화, 예술 수준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文書(문서)해독력이 文明(문명)국가중 최저. 그 결과로 事物(사물)의 본질에 대한 파악력이 약해지고, 眞僞-善惡-彼我(진위-선악-피아) 분별력이 흐려져 선동에 잘 속아 넘어간다. 이는 민주주의 발전의 결정적 장애물이다."
등등. 조갑제닷컴에 등장한 김창진씨의 칼럼 내용도 이와 대동소이한데, 다음의 문장이 인상적이다 - 4
"大韓民國(대한민국) 건국 이래 한글전용 정책을 편 결과 국민의 국어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이것은 수많은 연구에 의해서 증명되고 있고, 국민들도 잘 안다."
대체 저 '수많은' 것이 미심쩍어 보이는 이유는, 과연, 내가 그 '수많은' 연구에 관해 과문한 탓일까? 어쨌든 혼용론자들의 주장은 대체로 위와 같다.
조갑제씨의 정신상태에 대해 사람들은 갑론을박을 벌였으며 요새는 그마저도 좀 시들한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조갑제씨는 기자로서의 직분에 합당한 문장을 구사하는데, 이는 굳이 그가 한자를 섞어 써서가 아니다. 조갑제씨의 글은 분명하다. 그 덕에 우리는 그의 주장의 요점이 무엇이고 그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는 김창진씨의, 그리고 위 경향신문의, 필자가 대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 한 마디로 두루뭉술한 칼럼과 명확히 비교된다.
작년 "아렌델로의 여정"에서도 간단히 언급했지만, 조갑제씨는 언어를 뜯으면 사물의 본질을 알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를 신-신-플라톤주의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사실이 정말 조갑제씨 말대로라면야, 더 본질적인 언어가 어디 있기야 할 것이다. 조갑제씨는 그것이 한글이 아니라 한자라고 외친다. 여기서 조갑제씨는 어째서 사물을 더 본질적으로 소개하는 일종의 인공언어 - 즉 수학적 기호 - 를 주장하지 않는 것일까? 플라톤은 아카데미아의 정문에 이런 간판을 내걸었다 - "수학 못하는 놈은 안받아줌ㅇㅇ". 이를 보건대 어쩌면 조갑제씨 역시 수포자(수학포기자)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조갑제씨의 이런 '본질적'인 주장은 현대언어학의 트렌드와 전혀 동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언어는 잘해 봐야 사물의 그림일 따름이다. 그리고 단어의 뜻은 어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생활자들이 해당 단어를 대략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학문은 단어의 뜻을 찾는 여행이 아니다. 우리는 한자를 배워 봤자 자본주의(資本主義)에 대해 별로 알지 못한다.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책을, 마르크스나 피케티를 읽어야 한다.
이런 학문적인 것들과 동떨어진 분들을 위해, '패러다임'이라는 용어가 준비되어 있다. 모든 지배적 주장은 정상과학의 난동에 불과하니, 아웃사이더들에겐 실로 대단한 위안이리라. 그런데, 보라, 패러다임이라는 말 자체가 원래 영어가 아닌가? 조갑제 씨의 주장대로라면, 패러다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반드시 배워야만 할 것이다. 물론 영어를 배우는 것이 패러다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영어의 국제학술어로서의 성격 때문이지, 영어에 본질이 내재되어 있는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패러다임의 어원을 더 파고든다면, 더욱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많아진다. 패러다임의 어원은 그리스어 "παράδειγμα"이다. 조갑제 씨의 주장을 그대로 일관한다면, 우리는 그리스어를 배우지 않으면, 그리고 심지어 패러다임이란 말을 저 희랍문자로 쓰지 않으면, "과학혁명의 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 하긴 토마스 쿤의 저 책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다소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책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작자의 탓이거나 역자의 탓이거나 우리 자신의 지적 능력의 탓이지, 언어 자체의 탓은 아니다.
과연 언어와 현실의 관계가 이렇다면, 일반인의 문해력이 한글전용 탓에 추락했다는 주장은 갸우뚱하게만 느껴진다. 토인비는 영어가 저질이라며 라틴어로 일기를 썼다지만, 언어도 아니라 표기 방법에 따라 문해력이 좌우된다면 비할 수 없이 괴이한 일이 아니겠는가? 패러다임을 그리스 문자로 쓰면 더 잘 이해되는가? 范式이라고 쓰면 더 언어의 본질에 더 다가갈 것인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해야 할 것은 학문이고 경험이지 단어의 본질의 이해가 아니다. 그리고 그 이해를 지식과 판단으로 이끄는 것은 글자들이 아니라 합리적 사고다. 가령 법률가들은 한자 자체를 연구하는 직군을 제외하면 가장 한자를 열성적으로 사용해 왔다. 그들은 한자를 사용하지 않으면 무슨 해석상의 문제점이 있을 것처럼 주장했지만, 예컨대 형사소송법을 한글전용한 이후에 그런 착오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들어 보지 못했다. 소송법의 오류와 내적 모순과 실무상의 난점들은 오히려 판결문이 한자로 쓰이던 시절이 더 심각하지 않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저 인용되지 아니한 '수많은'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의 언어해석능력이 한글전용으로 인해 정말로 떨어지기는 하는 건가 하는 의심에 휩싸이게 된다. 아니나다를까, 현실의 문제를 정확히 관통하는 기사가 있다. 바로
[취재후] 한글은 쉬운데 중장년 ‘실질 문맹’은 왜 많나?
되겠다. 요약하면,
1. 한국의 젊은 층은 독해력이 OECD 최고 수준이다.
2. 한국의 중장년층의 독해력은 하위권에 맴돌고 있다.
3. 한국 중장년층의 독해력은 개인차가 크다.
4. 한국은 연령에 따른 독해력의 차이가 조사 국가들 중 가장 심각하다.
5. OECD보고서에 따르면, 4의 차이는 한국 교육의 수준이 급격하게 개선된 결과다.
6. 4는 또한 정규교육과정 이후의 교육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다.
7. 독해력은 독서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는 한자혼용론자들의 주장과 완전히 배치된다. 기고문은, 한자어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전문적인 분야는 물론이고 일상언어생활에서도 엄청난 장애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한자교육을 중요하게 여겼던 세대보다 그렇지 않은 세대의 문해력이 압도적으로 높다. 국어교육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으며 이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적어도 문해력에 있어서만큼은 한국은 모범적인 교육을 하는 나라이다.
이 사실을 놓고 본다면, 모든 것이 한글과 한자의 전용이냐 혼용이냐의 문제라고 가정했을 때, 기고문이 '잘못'이며 '거짓'으로 매도하는 한글전용론이 오직 진리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물론 젊은 세대의 문해력의 상승은 한자교육을 하지 않는 까닭이 아니리라. 기사에서 지적하고 있는 대로, 젊은 세대가 전보다 나아진 교육제도의 수혜를 입어서이며, 또한 한국의 중장년층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이다.
어쨌든 우리가 문해를 말하려면, 젊은 세대에 통탄하기보다는 중장년층의 교육과 독서에 집중해야 함을 간단히 알 수 있다. 위 KBS기사에서도 나오듯, "낮은 독해력은 새로운 직무 지식을 익히거나 재취업 하는데 장애가 되"며, "독해력이 낮으면 의미 있는 의사소통이 힘들어지니까, 정치적인 참여나 정치적인 발전에 이르는 데도 저해가 되"는 까닭이다. 이는 위에서 인용한 조갑제 씨의 지적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물론 조갑제씨가 개선하고자 하는 대상은 한글전용을 한 '젊은 애들'이지만 말이다! 대체 이 어처구니없는 오류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이것은 실로 신기하기까지 한 일이다. 혼용론자들은 무슨 종교라도 믿는 듯 이런 잘못된 신화 - 말귀 못 알아듣는 어린애들 - 를 공유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이 분들의 '진정성', 즉 5"잘못하는 자식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는 부모의 마음"까지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사실은 어찌됐거나 사실인 것이며, 그것이 불편하다 한들 사실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선생은 광주에 나타났다는 북한군이나 다이빙벨 같은 괴소문에 더없이 꿋꿋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는가?
이 나이 드신 혼용론자들이 배울 만큼 배운 인텔리들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정말로 중장년층에 대한 교육에 총체적인 문제가 있는 것인가, 하고 우려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위 기사 요약본 3에서 나왔듯, 소개한 혼용론자 분들은 그럴 분들이 아무래도 아니다. 이 분들은 독서가들일 것이며, 높은 수준의 문해력 - 물론 반드시 독서가 문해력을 보장한다는 것은 아니긴 하나, 어쨌든 이 분들은 기고가들이다 - 을 갖고 있음이겠다. 한자혼용과 같은 주장에 꼭 필요한 책들은 유감스럽게도 읽고 계시지 않는 듯하다만.
어쩌면 오히려 이들이 평균에 비추어 상당히 유식한 분들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인텔리들은 일반인들의 이해력에 과도한 기대를 품곤 한다. 젊은 세대 일반이 아무리 독해력이 좋다 한들, 이들의 문해력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 인간관계가 고착화되고, 잘 맞거나 적어도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교제하게 된다. 가령 교수라면 만나는 사람들은 대체로 교수들이다. 교수들에 비해서야 일반 학생들의 이해력은 한심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다면, '한글전용이 문해력 하락을 낳았다'는 주장은 아주 기초적인 오류가 아닌가? '수많은 연구'가 망상이었으며 '잘 아는 국민'은 고작 주변인에 불과하다면, 한글전용이 의사소통의 문제를 초래하지 않았다는 단순한 사실이 이처럼 간단히 입증되는 것이었다면, 한자혼용의 여러 주장의 오류들은, 그 수준의 연구자이며 기자로서, 저질러져서는 안 되는 것들이 아니었는가?
그럼에도 기고문은 한글전용을 어떤 일부 세력이 주도한 몰지각한 운동쯤으로 매도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혼용론도 어쨌든 운동이며, 지적으로도 전용론보다 더 지각이 있어 보이지 아니한다. 이는 어떤 특수한 가설을 시사한다 - 즉 일종의 적대감, 그리고 그것의 거울이다.
가령 한국의 종교적 현상인 박정희교를 보자. 새정치민주연합의 대구시장 후보인 김부겸은 이에 편승하여, 박정희기념관이라는 일종의 종교적 시설물을 건립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고도 낙선했지만 말이다. 이 박정희기념관 '드립'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주목할 이유가 있는데, 바로 광주의 김대중컨벤션센터의 거울-시설로 기획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굳이 감출 것도 없는 게, 김부겸 자신이 신나게 떠들고 다녔으니까.
이것은 일종의 거석신앙 - 가령 투르크 제 민족의 그것이나 아랍의 카바 신전 - 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 아니나다를까 이 종교인들은 박정희의 대형 동상을 건립한 바 있다. 그것도 저 이북의 김일성동상과 아주 비슷한 형식으로 말이다. 어쨌든 이 기념관은 광주의 김대중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광주의 김대중 따위가 다 뭐란 말인가?
김대중은 박정희교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김대중은 일종의 안티-히어로, 기독교 식으로 하면 박통교의 사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컨벤션센터는 대항 종교의 종교시설물이 된다. 아니나다를까 모 일베인이 이곳에서 땅밟기의 역사를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저 해당 종교를 믿는다고 여겨지는 광주인들이다. 정작 이들은 대구에 별 관심도 없다. 또한 그들은 김컨벤션센터에 종교적 의미 역시 전혀 부여하고 있지 않다. 6
김대중의 신도들은 어디에도 없다. 김대중은 역사적 인물이며 비평과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노무현교의 신도들은 불행히도 (노무현 자신에게도 역시 불행이겠지만) 매우 많다. 이것이 박정희교의 주 타겟이 노무현 쪽으로 옮겨간 결정적인 이유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쨌든 박정희교도들은 김대중교 역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상상하곤 한다. 그런데 존재하지도 않는 김대중교의 형식이며 내용이란 대체 어떠해야 하는가? 예술적 능력이 뛰어나다면 전혀 독창적인 무언가가 나오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 결과란 뻔하다. 바로 자신의 익숙한 모습이다. 그것을 모사해서 악마를 그리는 것이다.
전용론자들에 떨어지는 비난들을 보자. 편협하고, 비문화적이며, 비역사적이고, 국수주의적이며, 옹고집이다. 물론 전용론자들에게는 그런 경향이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이 (그리고 어쩌면 어느 나라 인간들이나) 대체로 그러하듯이. 일명 486들은 대체로 편협하고 민족주의적이며 마초적인 성향을 보였지만, 당시 한국 사회의 풍토란 게 이미 그러했던 데다, 박통이 만들어낸 병영-민족주의적 교육제도들 탓을 아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실 기고문의 저런 주장들은 여느 욕설 - 바보! 멍청이! 똥개! 해삼! 말미잘! - 이 그러하듯 별 의미란 게 없다. 굳이 따지자면 '저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자들이야' 이라는 발화자의 감정만이 드러날 뿐이다. 그렇다. 소통.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아침이슬"에 눈물을 흘리며 마음에 되새겼다는 그 소통! 혼용론자들의 여러 글에서 '젊은 애들의 독해력 하락'의 가장 큰 폐해로 지적하는 것 역시 소통장애 아니었는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이며, 위 KBS기사에서나 조갑제 선생이나 모두 일치하여 이에 합의하고 있다. 그런데 기고문에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그 의사소통이 어떤 의사소통이냐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제각각 다르다. 그리고 욕망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다. 여기서 공동체의 방향을 어떤 방식으로 결정할 것인지, 즉 정치제도에 대한 문제가 등장한다. 헤로도토스의 유명한 이야기에 따르면, 페르시아인들은 그들의 정체를 민주정으로 할지, 과두정으로 할지, 군주정으로 할지를 두고 토론하였다. 그들은 결국 군주정을 택하였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선택하였다지만(하지만 우리의 체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두정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민주주의인지에 대한 답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뭐 지금은 한자전용이나 혼용이냐를 두고 토론이라도 할 수 있으니, 식민지 시절이나 군사정권보다는 분명 나아진 점이리라. 어쨌든 정책은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이런 원론적인 이야기를 부정하는 분은 없을 것이다. 물론 실천적인 면에서 문제를 보이는 분들이 많다. 귀를 닫고 일방적인 주장만 쏟아내며(또한 공부도 전혀 하지 않으며), 표결에서 온갖 꼼수와 작전을 동원하여 당파의 이익만 차리려는 분들이 소위 진보들의 영역에서도 허다하다는 사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통진당의 NL들이 그러했으며, 노빠들도 이에 결코 뒤지지 않는 작자들이다.
그런데 경향신문의 기고자를 위시한 혼용론자들은 과연 제대로 소통이 되고 있는 것인가? 전용론자들의 불통을 비판하며 그들에 대한 우위를 가져가려면, 그리고 저 거울론에 대한 의심을 불식시키려면, 자신들은 소통이 되고 있는 사람들임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나는 위에서 혼용론의 핵심 전제들이 모두 오류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제 혼용론자들은 혼용론을 버려야 할 것이다. 설마 저 '부모의 마음'이 애들 보고 무조건 말을 들으라는(또는 듣는 척하라는) 소위 꼰대이즘은 아니리라 믿고 싶다.
물론 한자교육은 필요하다. 하지만 한자는 언어가 아니라 표기의 양식일 뿐이다. 따라서 조기교육이 꼭 필요한 것인지는 심히 의심스럽다. 중국어 교육을 운운하는 분도 여럿 계신 걸로 아는데, 중국어 교육이 정 필요하면 중국어를 제1.5외국어로 지정해야 할 것이다.
초등학교 한자 병기는 실효성도 보이지 않으며 교육적 목적에도 어긋난다. 학습부담을 늘리는 것은 둘째치고, 그 나이대의 단어들을 굳이 한자를 병기해서 구분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설령 구분이 필요한 단어가 있다 한들 문맥으로 분간할 수 있다. 조갑제 씨는 인간의 이런 능력을 너무 경시한다! 아이는 책을 읽으며, 그리고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로, 크게는 전체 지식의 총체와 작게는 문장의 문맥 안에서, 단어의 의미를 더 풍부하고 또 분명하게 가꾸어나간다. 이는 한자의 도움으로 될 일이 아니며, 한자교육보다 더 중요한 과정이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3102110065&code=940401 [본문으로]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878121&plink=ORI&cooper=NAVER [본문으로]
-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49699&C_CC=BB [본문으로]
- http://www.chogabje.com/board/column/view.asp?C_IDX=58152&C_CC=BC [본문으로]
- 이와 상당히 유사한 - 물론 혼용론 같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상태가 심각한 - 종교적 증상이 있긴 하다. 일명 성경침례교회. [본문으로]
-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588356.html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