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야기
학생들을 자식같이
에포닌
2008. 8. 8. 00:46
안녕하십니까, 도전과 응전, 액션과 리액션으로 점철되는 '추측해 보자'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시간일 테니 유념해 주시길.
이번에 2만 표 차였나, 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되신 교육감님께서는 학생들을 자식처럼 여긴다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그 말씀을 듣노라면, 교육감님의 가정은 좀 유별난 모양새를 하고 있다는 걸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교육감님께서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로 미루어 보면, 교육감님은 자식들을 '선택'하는 부모의 권리를 매우 중시하실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애들이 무슨 기성품이야, 애 생기면 그냥 낳는 거지, 라고 말하신다면 교육감님의 교육철핡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랍니다. 낳고 싶지도 않은 애를 낳고, 의무적으로 키우라고 한다면 부모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부정하는 처사죠.
따라서 교육감님의 가정은 치밀한 계획에 입각한 입양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리라는 걸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애들이 전혀 없던가... 뭐 태아성감별이라던가, 유전자 조사 이런 방법도 있겠습니다만, 그건 불법이죠. 아무리 서울시교육청의 청렴도가 바닥을 긴다지만, 교육감님이 저런 불법적인 행각을 했으리라고 상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자녀들과는 영어로 대화할 것입니다. 잉글리쉬 프렌들리를 표방하는 대통령 각하의 교육철학과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교육감님이 당선되자 각하께서는 '정부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뛸 듯이 기뻐하시며 바로 시위대들을 개 잡듯 쥐어패시지 않으셨습니까? 솔직히 영어몰입교육, 이게 인프라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거지 공사판 막일처럼 뺑이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지 말입니다. 몰입교육의 전단계로 가정의 아메리칸화가 시급히 필요합니다. 영어 잘 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게 한국의 풍토기도 하니까요.
구체적으로 어릴 때부터 영어전용룸 - 이 방에서는 영어만 쓰는 겁니다? - 을 만듭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는 영어만 쓰게 한단 말이죠. 한국어는 언제 배우냐고...? 그거야 알 바 아니죠. 그런데, 교육감님의 영어실력은 얼마나 되려나... This is Dokdo Island!
또한 교육감님은 당신의 자녀를 '평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일단 단계적으로 3단계 서열화를 진행합니다. 초등학교부터 자체적으로라도 진단평가를 실시하여 자녀들의 성적을 평가하고, 거실 한가운데 성적표를 게시하여 자녀간의 무한경쟁을 부추길 것입니다.
서열화 정책이 완성단계에 이르면, 자녀들을 "신동", "뛰어난 유망주", "전도유망함", "가능성이 보이지 않음", "밥버리지", "좆병신" 등 여러 클래스로 세분하는 게 가능할 것입니다. 평가에서 상위 랭크를 받으면 밥을 더 많이 퍼준다던가, 용돈을 더 준다던가 하는 인센티브 정책을 구사합니다. 그리고 나쁜 점수를 받으면 지원을 대폭 삭감하고,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자녀들 그룹은 퇴출시킨단 말이죠.

저는 말이죠, 자식을 키워 본 적도 없고 앞으로 키울 계획도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 마음? 이런 거 잘 못 느끼겠고 잘 느껴 볼 가능성도 희박합니다. 하지만 여러 부모들의 이야기를 듣고, 부모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는 건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두 자녀를 둔 부모가 있습니다. 한 아이는 잘났고, 한 아이는 못났습니다. 부모들은 어떤 애를 더 좋아할까요?
공부 잘하는 잘난 아이를 더 좋아할까요? 사람 마음이 저마다 다 다르겠지만요. 예상대로 잘난 애들을 더 좋아한다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뒤처지는 아이에게 더 애정이 가고, 더 잘 보살펴 주게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더군요.
애정을 약간 더 쏟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열 손가락 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다 똑같은 자식 아닐까요. 때로는 웬수 같아도 어릴 때 기저귀 갈아 주고, 밥도 떠먹여 주고, 이웃집 철이한테 맞고 오면 철이네 찾아가 발칵 뒤집어도 놓고, 사교육비 대려 파출부도 뛰어 보고, 사고 쳐서 유치장 들어가면 합의금도 내 주고, 사업한다고 찌질댈 때 빚도 내고 보증도 서 주고, 이런 게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란 말입니다.

하지만 교육감님의 말하는 꼬라지를 보면 일반인들의 감수성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6억원 짜리 아파트 종부세를 간신히 낼 정도의 서민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는지 또 모르겠습니다만, 교육감님의 애들 생각하는 마음은 보통 사람들의 애들 생각하는 마음과는 너무도 다른 것 같습니다.
세상에 어느 부모도 아이들의 인격을 성적으로 재단하는 부모는 없을 겁니다. 만약 있으면 개새끼죠. 그런데 학생을 자식처럼 대한다는 교육감님께서는 점수로 자식을 줄세우고,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에 시달리게 만들고, 집구석에 돈푼이 있고 없고에 따라 차별받게 만들려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왜 이런 특이한 사고를 소유하신 분을 교육감으로 뽑아 주었을까요?
이거, 혹시 정말 요새 부모들이, 다들 교육감님처럼 애들을 점수기계쯤으로 취급하는 건 아닌가요? 교육감님의 자녀관은 사실 정확한 시대의 트렌드고요. 그렇다면 저는 처음부터 꽤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