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이야기
편향이란 무엇인가
에포닌
2009. 8. 4. 23:30
내가 믿는 역사학의 가장 큰 전제 중 하나, '과거의 사실은 불변한다는 것'.
"터미네이터"에서는 시간여행이 등장한다. 터미네이터의 개입으로 과거의 사실은 바뀌고, 미래의 세상 역시 달라지게 된다. 단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여전히 전제한다면, 역사는 터미네이터가 깽판을 부릴 때마다 다시 쓰여져야 할 것이다. 영화가 가정하는 것은 단 하나의 세계니까.
한술 더 떠, '드래곤볼'의 '인조인간-셀' 에피소드에서는 무한개의 세계가 등장한다. 심지어 한 세계 내의 과거사마저 '개입'에 관계없이 유동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이건 유사과학적 '가설'은 원래부터 뒤죽박죽이었던 만화의 스토리 라인에 대한 변명일까? 어쨌든 이러면 역사학 따위는 별 의미 없는 게 된다.
하지만 나는 과거에 타임머신이 출현했다는 이야기 따위는 들어 보지 못했다. 사실 윗분들이 타임머신의 존재를 알면서도 쉬쉬하고 넘어가는지 또 모르겠지만, 이런 것까지 의심해 봐야 나오는 게 없으니 그분들의 의도대로 따라 주기로 하자. 최근의 물리학적 성과들은 대세에 지장을 주지 않으니 그냥 무시하자. 곧 세계는 하나고, 과거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잠정적으로 그렇다.
역사에서 진리는 단 하나가 되어야 한다. 관점에 따라 벌어졌던 사건들을 달리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관찰은 사건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이런 관점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니기에, 서술이란 수단은 명확한 한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들을 더 적절하게 서술하는 관점은 분명 존재한다. 적어도 덜 적절하게 서술하는 관점 정도는 수두룩하게 지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관점에 우열을 가릴 수 있다고 가정해도, 무엇이 더 올바른 관점이냐를 꼽는 건 어려운 이야기다. 무엇을 중심으로 서술하며 어떤 사실을 취사선택할 것이냐의 정답은 명확하지 않다. 역사를 '실용적'으로 바라본다면 더 그렇다. 역사적 사실은 무한한데, 역사책의 지면은 유한하다. 위키피디아의 정보도 가능성은 무한을 추구할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분량은 유한하다. 실제 정보의 양 역시 마찬가지다. 1
그러니 완벽한 관점이 없다면, 관점은 오히려 다양할수록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역사책도 단지 군주들의 연대기나, 국가의 흥망성쇠만 기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것이 더군다나 교과서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교과서에는 실록사가의 관점만 등장해선 안될 것이다. 예술가의 관점이, 들에서 일하는 민중의 관점이 있어야 한다. 세종은 과연 명군이었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여성, 서자, 비국교도, 사민당한 북부 정착민의 관점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다양한 관점을 접하며 진정한 그 시대의 본질에 접근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런 역사교육이 지금보단 훨 나으리란 건 분명하다.
정치적인 관점도 다양하게 포용할 필요가 있다. 책에서 순수사실만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쩌면 사료를 편집하는 것도 상당히 정치적인 행위니까 말이다. 파시스트와 주체사상가들만 빼놓고, 여러 사가들을 초대해서 역사책을 만들자.
노력을 기울이면 균형 잡힌 역사책이 등장할 것이다. 굳이 국정교과서를 만들 필요는 없다. 여러 형태의 교과서들이 있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정부는 지나친 일탈만 방지하면 된다. 다시 말해, 정부가 어떤 가이드라인을 잡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교과서가 나오려면, 집필자들의 자유로운 서술이 보장되어야 한다. 교과서가 다뤄야 하는 일정한 테마까지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지정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어떻게 서술해야 한다'는 것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 만약 특정한 내용까지 강요하면, 균형이 아니라 정반대인 독단이 된다. '균형 잡힌 관점'이란 말은 '일방적 강제'를 의미하는 용어가 아니다. 2
판단은 어디까지나 책을 읽은 학생들이 한다. 교과서를 해석하여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냐 판단하는 건 학생이다. 역사학은 정상적인 판단력과 도덕관념 이상을 요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애들이라고 얕잡아보는 건 어처구니없는 편견이다. 중학생 정도면 역사를 해석할 충분한 능력을 갖춘 나이며, 고등학생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오히려 선입견과 감정적 단언이다. 작금의 어른이라 불리는 인간들의 사고능력은, 애들에 비해 이런 오류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3
그러니 애들에게 어떤 '국가관', 즉 '특정한 관점'을 주입시키려고 하는 것은 그만두어야 한다. 지금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작태들이야말로, 진정한 편향이며 객관적이지 못한 사실왜곡이다. 현체제가 역사적 정당성이 있으면, 아이들은 아무 강제 없이도 현체제를 수긍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파벌의 역사적 정당성에 대한 판단 역시 그렇다. 꼭 자신 없는 인간들이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법이다. 이를테면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 청산에 노력했다'는 '집필기준'처럼 말이다. 이걸 역사적 사실이라고 한다면, '북한 정권은 인민의 복지향상에 노력했다'라는 따위의 명제도 긍정해야 한다.
물론 '북한 정권은 인민의 복지향상에 (거의 관심이 없었고 민중을 통제하고 때려잡는 데만 열심이었지만 겉으로는) 노력(하는 척)했다' 라고 부가해야만 참이 되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나를 괜히 국가보안법으로 엮지 말아달라.
- 어쩌면 이런 비유가 적당할까 모르겠다. 민수는 자기가 키우는 야옹이에 대한 정보를 친구 철수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민수는 야옹이의 사진을 보낼 것이다. 어느 방법이 가장 적절할까?
야옹이를 가장 완벽하게 묘사하는 사진을 보내야겠다. 그래서 전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각도로, 야옹이의 평소 행태와 습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a포즈로, 사진 A,A',A'',A''',A'''',A''''',A''''''를 만들었다. 그 중에서 가장 잘 나온 A''''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완벽한 사진 하나만으로 야옹이의 본질을 전달하려는 시도는 무모한 것 아닐까. 차라리 A, B, C, D, E의 방식이 더 낫지 않을까? 이것도 물론 한계는 있겠지만. [본문으로] - 혹자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집필자에게 지나친 자유를 주면, 극단적 사상을 옹호하는 교과서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느냐고.
하지만 별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현행 한국 교과서도 이미 극단적으로 민족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유념해 달라. 오히려 국가의 간섭이 교과서를 국가주의적으로 만든다. 집필진의 다양성만 보장하면 이념적 극단성은 해결된다. 만에 하나라도 범죄적 행동을 주장하는 교과서는 출판될 리가 없다. 그런 건 불법이니까. [본문으로] - 물론 매우 전문적인 영역에 들어가면 자료수집능력이 문제가 된다. 어학은 일반인이 쉽게 넘기 어려운 벽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