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진단

에포닌 2011. 10. 31. 19:09

 한명숙씨가 오늘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의 트위터를 인용하자면

 무죄 판결을 받아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지난 2년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끝까지 저를 믿어주시고 지켜주신 국민 여러분이 계셔서 버텼고 결국 이길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후략)

 그의 발언에서 간단히 두 가지 점을 지적해 보자.


 논리적으로 3번 문장의 국민은 국민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보아도 국민 모두가 한명숙을 믿은 건 아니며, 그를 지키려 한 것은 아니다. 문언 자체만 보아도 그렇게 해석해야 타당하다. 그러나 물론 화자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다. 이 간단한 국민이라는 말은, 곧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 물론 '적'은 빼고 - 그를 지지했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흔히 쓰는 수사다. 하지만 이 언어적 기교는 종종 실제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마술을 부린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라고 흔히 착각되는 현 대통령 각하의 득표를 보자. 과반수는커녕 국민의 1/3정도에 불과하다[각주:1]. 만장일치는 커녕이다. 하지만, 설령 그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대체로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퇴임할 날을 손에 꼽으며 살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한다면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언어는 현실 세계와 확실한 괴리가 있다. 다수결은 인민의 모든 의사를 표현하지도 못할뿐더러, 국민의 총의를 표상하지도 못한다[각주:2]. 그저 적당한 타협일 따름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특정한 방식일 뿐이다.


 비슷하게 '무죄판결을 받아 진실이 밝혀졌다'는 문장도 철학적인 비평이 가능하다. 진실을 밝혔다는 말은 그것이 진실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사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의 주장처럼, 정말 의자가 돈을 받아서 한명숙씨에게 전달했을 수도 있기야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 않는가? 어쨌든 한명숙씨의 주장이 진실이라면[각주:3], '밝혀졌다'는 표현은 매우 적절한 면이 있다.

 흔히 착각하지만, 법원은 진실을 결정하는 기관이 아니다. 교황청이 뭐라고 하든 지구는 돈다. 진실은, 적어도 우리가 딛고 서 있는 현실 세계의 진실은, 단일하고 확정적인 것이다[각주:4]. 법원은 진실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러나 꼭 법원이 진실을 찾는 전권을 가질 이유는 없다. 누구나 그것을 탐구할 수 있고, 그 능력에 있어서 각각의 사람들은 판사나 검사보다 딱히 못하거나 나을 것은 없다. 사회는 단지 개별적 사실에 따른 법적 분쟁의 최종적 결단을 법원에게 맡긴 것이다. 이것은 법적 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이지, 객관적 사실의 성립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는 일이다.

 어쨌든 한명숙씨의 고통에 안타까움을 표하고, 그의 무죄에 축하를 보내는 바이다.





  1. 이번 무상급식건을 보면 이런 추정도 가능한데, 1명을 제외하고 유력하지 않은 후보가 모두 불참해 버린다면 대통령이 영원히 선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 [본문으로]
  2. 이런 '일반의지'를 갖고 제대로 사기를 쳐먹은 게 바로 김일성주의자들이다. [본문으로]
  3. 정말 논리적으로 말하면, 무죄판결은 아무것도 밝히지 않은 게 된다. [본문으로]
  4. 단일한 진실이 없다는 독특한 주장대로라면 법원은 아예 존재가치가 없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