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비정규직법이 1년을 맞았다.
고난은 곧 그것을 극복할 의지를 마련해주는가? 역경은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드는가? 때로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니라는 생각을 하라. 고통은 계속되어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보답 없는 고생이 사람의 감성을 메마르게 만든다.
세파에 찌든 사람들은 무력하다. 무력해진 사람들은 강권의 제물이 된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오늘 아침에 양희은이 진행하는 라디오를 들었다. 비정규직에 대한 테마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수많은 문자들이 도착했단다. 8개월 계약직이라는 어떤 사람이 보낸 장문의 편지를, 양희은이 읽었다. 힘내잔다. 좋은 날이 올 거란다.
나는 떠올렸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의 마지막 장면을. 함락 직전의 콘스탄티노플이 무대다. 대포가 굉음을 울리며 천지를 가로지른다. 성벽에는 적의 깃발이 오르고, 터키 병사들이 시내로 돌입한다. 도시는 공포에 몸을 떤다.
사람들은 성당 안에 모여든다. 떠올려 보라, 수많은 얼굴들을, 수천의 마음들을. 그 겁에 질린, 결백하고, 울먹이는, 소박한 인간들을. 신부는 차분하게 사람들을 타이른다. 그리고 마지막 미사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못내 빌었을 것이다. 그리고 믿으려 했을 것이다. 성화에 그려진 수많은 기적들을 보며, 그것들이 부디, 현재에 재림하기를.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차오른다. 그런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들이, 어느 무심한 사가가 적어 놓은 활자들 위에서.
나는 이 이야기를 좋아한다. 청일전쟁 때 북양함대 수병들에 대한 이야기 못지않게. 어찌 아름답지 아니한가? 잔혹한 운명을 마주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