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야기

오늘을 기록하다

에포닌 2009. 6. 24. 19:43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희화적이며, 동시에 절망적이다.

 로마자 표기법이 또 바뀐단다. 잃어버린 10년을 찾았다. 국정원은 민간을 사찰하고 외압을 일삼는다. 역시 잃어버린 10년을 찾았다. 간첩사건이 터졌다. 15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갔다. 언론법이 '선진화'되어 신문 방송의 겸영이 허용되었다. 이건 잃어버린 20년이다. '대한늬우스'가 부활했다. 30년 전 이야기다. '존엄사' 시킨 할머니는 여전히 살아 숨쉰다. 국민학교 때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 3일장을 치루는 이유는, 죽은 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나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 거란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그리고 오늘, 소위 '보수단체'가 대한문 앞의 분향소를 부서뜨렸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불법 시설물을 '치운' 것이라 잘못이 없다. 오히려 해당 시설물을 놔둔 경찰관이 직무유기를 했다..."

 하긴 경찰들이 '치우는' 걸 눈만 껌뻑껌뻑 뜬 채 보고 있었다니, 어떤 식으로든 직무를 유기하기는 한 모양이다. 어떻게 된 게 이번 정부 들어서 무슨 일만 터지면,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무능을 만천하에 광고해댄다. '경황이 없어서 그랬다'나 뭐라나.

 시설물이 불법시설물인가에 대한 판단은 공공기관이 한다. 설령 불법시설물이라도 그것의 철거는 법적인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현행법은 공공기관 아닌 사인(私人)이 물리력을 행사하는 걸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흔히 인용되는 사례가, '사인이 사형수를 살해했을 때 사인은 어떤 법적 평가를 받느냐'다. 답은 물론 '살인죄의 죄책을 진다'가 된다. 사람에 대한 법적 근거 없는 폭력은 린치고 폭행이며, 물건에 대한 권원 없는 집행은 절도고 주거침입이고 손괴다. 공사의 명확한 구분이야말로 근대법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근대적 국가라고 할 수 없다. 정치깡패들이 활보하는 꼴을 보며, 어느 누가 이를 법으로 작동하는 국가라고 하겠는가. 린치가 정당화되면 공무원은 무엇 하러 있는가. 법은 대체 무엇을 위한 장식품인가? 그나마 그 장식품 안의 서열도 엉망이라, 집시법이 헌법의 상위에 있고, 내규가 법률의 상위에 있고, '상부의 지시'가 규정의 상위에 있는 게 오늘날의 법질서다. 패륜이 예의가 되고, 역모가 충정이 되는 세상이다.

 나치는 그 누구보다 법과 질서를 강조했지만, 그들이 세운 국가를 법치국가로 기억하는 인간은 없다. 파시스트들의 허무맹랑한 수사보다, 유태인 상점을 습격하는 돌격대의 사진기록이 그 시대의 진실을 더 명확히 반영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의 진실 역시 별다른 데에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