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한 달에 얼마나 버시나요? 벌면 또 얼마나 남습니까?
먹어야 산다
아무리 씀씀이가 빠듯해도 먹긴 먹어야 한다. 엥겔이란 사람이 이에 착안해 엥겔지수란 걸 만들었겠다. 먹는 데 들이는 지출의 비율이 높을수록 가난한 사람이리라.
요새 돌아가는 걸 보면 '사교육비지수'같은 거 만들어도 괜찮을 법하다. 생필품 가격의 미칠듯한 상승으로 가계는 더 빠듯해졌는데, 사교육비는 오히려 늘어났다. 한국 가정에서 사교육비 지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모양이다.
뭔가 불가피하게 빠지는 돈이 많을수록 실질소득은 줄어든다. 만약 사교육비 지출이 이런 추세로 나가면, 국민소득이 4만불이 된다고 하더라도 - 물론 요새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럴 리가 없겠지만 - 국민들의 생활이 풍족할 리는 없을 거다.
사교육비뿐이랴, 한국은 집값도 겁나 비싸잖는가. 10억짜리 집에 살든 1억짜리 집에 살든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런데 쓸데없이 집값이 비싼 관계로 퍼부어야 할 돈이 괜히 또 늘어난다. 청약통장에 저축을 하든 모기지론을 끌어다 쓰든, 다달이 몇십 몇백씩 부어야 집장만을 한다.
살다 보면 예상 외의 급전이 필요할 가능성이 있다. 가족 중에 누가 혈압으로 쓰러지면 어쩌나. 병원비를 대야지요. 죽게 놔두는 경우도 있기야 있지만... 이걸 보험으로 대비하든지, 아니면 저축을 해놓아야 한다. 역시 돈이 나간다.
노후문제도 있다. 노후가 되면 노동을 할 수가 없다. 지하철에서 폐지를 주우면 줍는다지만, 하루 14시간 일하고 2만원이다. 당연히 젊을 때 대비를 해야 한다. 여기에 또 여유자본을 투자해놔야 한다.
빼고 빼고 또 빼면 남는 게 거의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해 모자란다. 그냥 두고 보자니 영 불안하죠? 교회 나가서 기도하면 1주일 동안은 잊어버리게 됩니다. 1주일 지나면 또 생각날 테니 교회에 꾸준히 나가셔야 할걸요.
세금, 보험, 연금
국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면 매우 안전하다. 아프면 의료보험으로, 사고나면 산재보험으로, 교육은 공립학교로, 노후는 연금으로 대비하면 된다. 물론 소득에서 세금이 더 빠진다. 보험료와 납입금이 나간다. 하지만 세금만큼, 그보다 보험료와 납입금만큼 확실한 환급이 보장되는 투자는 드물다. 아니, 없다. 그리고 확실히, 서민들은 돈 덜 내도 된다.
그런데 세금의 환급은 꽤 추상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돌려받는다는 느낌이 잘 오지 않는다. 그러니 괜히 싫어한다. 왠지 국가가 보답 없이 돈을 뜯어가는 것 같으니까. 보험회사가 얼마를 남겨먹고 얼마를 남겨준다고 선전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 경우엔 뜯기는 부분이 있다는 걸 인지하면서도,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 눈에 잡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히려 안심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세금이나 연금, 이런 거에 적대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부자들은 돌려받는 것보다 훨씬 더 떼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을 최대한 선동하여 세금제도를 교란할 충동을 느끼게 된다.
부자들만을 위한 실용정부가 출범했다. 종부세는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았고, 상속세도 상당한 수정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인세 등도 인하될 것이다. 세금을 까고, 특히 부자들이 내는 세금만 왕창 까먹었다. 모자라는 돈은 서민들에게 돌아갈 복지혜택을 깎고, 간접세를 올려 해결할 게 뻔하다. 총통 각하를 찍은 우민들은 뭐 죽어도 싸다. 기왕이면 다른 사람 등에 지게 될 짐까지 다 떠메고 죽었으면 좋겠다.
다른 부분을 살펴보자. 의료보험은 목숨이 간당간당한 형편이고 - 이제 아프면 다 알아서 해결하시라 - 교육비는 천정을 꿰뚫으며 치솟으리라. 그렇다면 노후대책, 국민연금은 또 어떨까?
국민연금의 종말
그냥 다 까놓고 이야기하자. 정부는 애초부터 사기를 쳤다. 산수가 가능하다면 연금기금의 인풋보다 아웃풋이 압도적으로 많으리라는 걸 간단히 알 수 있다. 애초에 김대중정부가 '아웃풋을 못박아버린 다음 나아~중에 인풋을 알아서 올리게 만들려는 생각' 이었는지, 대충 파탄만 안 내게 만들어 놓고 '세금으로 땜빵하는 방법으로 운영하려는 생각' 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처음에 했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게 잘못이었다.
처음부터 일반인들에게 삘(感; Feel)이 안 올 만한 제도를 운영하면서 사기를 쳤으니,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하늘을 찌를 건 당연지사다. 의외로 복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노무현정부는, 한참이나 지나서야 그냥 인풋을 늘리고 아웃풋을 끌어내리는 방법을 대충대충 구사해 보려고 했다. 현실대처에만 치중하고, 사상이란 게 결여되어 있었던 노무현정부의 특성이 그럭저럭 잘 드러난다.
노무현정부는 그래도 관성이란 게 있었던지라, 정착되어 가는 제도를 아예 말아먹으려고 작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총통 각하의 이번 정부는 어디로 튈지 감이 안 잡히는 판국이라 무섭기까지 하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강만수장관의 말을 곱씹어 보자면, 현 정부는 연금제도에 대해 회의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지나친 무관심, 말하자면 '연금? 이거 있어서 뭐 하나' 정도의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http://www.joseilbo.com/news/news_read.php?class=1&uid=76056
그저께 등장한 이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정년을 단계적으로 늘리고 종국적으로 정년을 없앨 것", "나이 들어서까지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고령화 시대에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드는데 대응할 것", 그리고 "노령연금이 근본적인 대책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라는 발언이 있었다.
강만수에겐 늙으면 일에서 은퇴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자기는 60넘어서까지(다음 인물정보에 따르면, 강만수는 45년생이다. 참고로 각하는 41년생) 잘만 일하는데 어째서 '국민'들에겐 정년이 필요한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연금 같은 건 필요없다. 늙어서까지 폐지를 줍게 만들든 경비원을 하게 만들든, 인생 종말까지 국민을 굴려먹으면 간편하니까.
덕분에 이 '무의미한' 연금기금은 이곳저곳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주가 빠진 거 땜빵하는 데에. 만에 하나 강만수가 짤린다고 해도 - 물론 그럴 리도 없지만 - 연기금을 무슨 자기 주머니 속 쌈지돈으로 생각하는 실용정부의 '마인드'가 바뀔 리는 또 만무하다. 그러니 이대로 5년만 지나면 연기금은 다 거덜날 거고, 국민연금제도는 형해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파멸의 순간이 다가오면, 소위 '언론'들은 쓸데없는 제도를 만들어낸 김대중과 노무현을 욕하면서, 사태를 무난하게 마무리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