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야기

비평 - 오바마 친구 만들기

에포닌 2008. 11. 7. 16:29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1/05/2008110501863.html


 솔직히 조선일보에 대한 비평은 쓸데없습니다. 기사에 대한, 순수한 의미의 비평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그들의 정치, 사회면 기사는 정말 실용적이지 못하죠 - 다시 말해
그 자체로는 읽어 볼 가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전개하는가, 는 두고 볼 만한 가치가 약간이나마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인간들의 인식이 그들에 의해 지배되는지, 는 확실히 연구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텔미'나 '디워'와 비슷할까요.



 어쨌든 여기서는 자주 했던 방식대로, 문단과 문장을 줄줄이 훑으며 시비와 미추를 논해 보기로 합니다. 위의 칼럼 링크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뭐 읽기 싫으면 말구요...


 칼럼의 제목은 "오바마 친구 만들기", 일단 말은 좋아 보이죠? 제목에 대한 평은, 본문을 끝마치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흑백 간 결혼은 미국의 절반에 가까운 주에서 아예 법으로 막았던 그 시절, 한 아프리카 유학생과 백인 여대생이 낳은 아이(1961년생)가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


 이 부분부터 짚고 넘어갑시다. 한국어문에선 아직 문장부호 쓰는 법이 제대로 안 박혀 있어서인지, 애매모호한 문장이 난무합니다. 오바마는 그 시절 대통령이 되는군요. 세상에... (쉼표는 숨쉬라고 찍어 놓는 게 아닌데 말이죠!)


 '
여기까진 미국의 이야기다.' 좋습니다. 우리가 공들여 해야 하는 건, 남들의 이야기보단 우리 이야기겠지요. 그런데?


 '1976년 대선에서 압승한 지미 카터는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하고 실제로 한국에서 지상군을 모조리 빼려 했다. 그의 집권기는 한미관계의 측면에선 최악이었다.'

 어째서 최악이었을까요? 한미관계가 최악이었던 게, 전 정부의 실정 이후 대선에서 압승한 민주당 출신 대통령 때문일까요?

 물론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한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분명 이겁니다. 카터가 한국의
인권에 관심을 가진 사려 깊은 진보파(노무현도 좌빨인 세상에서, 그냥 오바마도 카터도 진보라고 하죠.) 였기 때문입니다.

 개념 없는 독재자였던 박정희는 종신독재를 선언하고, 반대파, 특히 민주주의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습니다. 그리고 밖에서 뭐라고 하니 핵개발! 아주 김정일 같은 놈이죠? 그런데 이 칼럼에서는 그런 맥락이 완전히 상실되어 있군요.


 '오바마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미 간 자동차 교역의 불균형을 들어 한미 FTA를 비판했다. 자동차노조의 표를 의식한 측면이 있지만, 그의 머릿속에 한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나라 중의 하나로 각인돼 있지 않고선 한국을 그렇게 자주, 구체적으로 거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선거가 끝났으니 오바마의 말이 바뀔 것이란 기대는 일찍 접는 게 낫다.'

 한국이 미국의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닙니다. 자유무역협정이 제조업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죠! 마치 미국이 아닌 FTA가 한국 농민의 생계를 위협하는 것처럼요. 유감스럽지만, 오바마는 FTA에 관심이 있지 한국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다 자기 일이 우선이지, 남 일이야 뭐... 세상 사람들이 모두 누구처럼 피해망상에 쩔어 살지는 않는다는 걸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오바마는 미·중관계에 대해서도 "가장 큰 난제가 있다면 그건 군사적인 게 아닌, 경제적 과제일 것"이라고 말해 왔다. 부시의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힘을 쏟았다면, 오바마의 미국은 무역전쟁에 나설지 모른다.'

 옳으신 말씀. 오바마는 보호무역에 치중할 것입니다. 시장만능의 시대는 이미 종말을 고했잖습니까?


 '대북정책은 잘못 다루면 한미관계의 근간을 뒤흔들 더 핵심적인 뇌관이다. 오바마는 김정일과도 만나겠다고 밝혀 왔다... ...부시 때보다 더 큰 그림을 갖고 북한에 접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 큰 그림이 무엇이든 오바마 진영이 정부에 들어가서도 이런 식으로 북한에 접근하면 의도적으로 이명박 정부를 왕따시키려는 북한과 손뼉을 마주치는 꼴이 된다.'

 김정일과 만나면 안 되나요? 미국 대통령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시려구요? 적과도 대화하는 건 정치의 기본 중 기본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정상'으로 알고 있던 부시가 사실 미친 놈이었죠.

 오바마가 '이런 식으로' 나가면 북한과 대화를 트게 되는 되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이명박 정부를
'현재 시점에서' 왕따시키는 건 맞는데, 북한은 애초에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게 된 건 예전에도 누차 지적한 대로 99% 각하의 책임이죠.

 '손뼉을 마주치다'는 짝짜꿍이 맞는다는 뜻입니다. 대화한다고 다 뜻이 맞나요? 그럼 소개팅 나가면 100% 애인 만들게? 용어 사용에 좀 신중을 기해...


 '조만간 우리는 동맹인 한국과는 얼굴을 찡그리고, 불량국가 북한과는 악수하며 낄낄대는 미국을 구경하게 될지 모른다.' 

 라고 생각한 찰나, 아뿔싸, 맙소사, Oh, my god! 아무래도 이 부분에서는 칼럼 쓰신 양반이 잠시 머리가 뱅글 돈 것 같습니다.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낄낄대는'이란 천박한 표현을 쓸 수 있겠습니까. 아니, 이거 무슨 북한놈들도 아니고..... 죄송합니다, 여러분.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오바마가 한국에 별 관심이 없기에 망정이지, 행여라도 신문지상에서 이런 막말을 갈겨댄 걸 알면 기분나빠할 걸요.



 '지금까지는 한미 두 나라 정부가 적어도 FTA에 대해선 한목소리였는데 이젠 북핵, FTA 모두 삐걱거린다는 푸념이 들릴 수 있다.'

 북핵문제는 쭉 멀쩡하다가 각하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계속 삐걱거렸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삐걱대도록 고사라도 지내죠.


 '생각과 기질 모두 부시와 판이한 오바마는 이명박 정부에 훨씬 더 까다로운 상대일 것이다.'

 그래, 각하는 딱 부시 수준입니다. 안타깝습니다.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다행히 오바마는 진보파들이 칠레의 인권 상황을 비난하면서 철의 장막 뒤의 인권엔 왜 침묵하는지를 의아해하고, '좌와 우의 공감'에 관심을 가져 온 사려 깊은 진보파다.'

 이건 짚고 넘어갑시다. 물론 철의 장막 뒤의 인권에 '침묵'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진보파들은 칠레의 인권 상황에 '되도록이면' 더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러는 편이 아무래도 낫습니다. 왜냐구요?

 칠레의 참혹한 인권 상황이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 첫째 이유입니다. 그리고 미국인들의 노력으로 칠레의 인권 상황을 더 쉽게 개선시킬 수 있다는 점이 둘째 이유입니다. 체코의 인권실태는 직접적으로는 소련놈들의 탓이지 미국이 벌여 놓은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미국인들의 노력으로 어떻게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칠레의 인권 상황을 더 많이 비판하는 것이죠.

 그런데 꼭 자기 집구석 안에서는 바가지 질질 새는 주제에, 딴 동네 일에 신경 엄청 쓰는 인간들이 한국에는 수두룩하단 말입니다. 그리고는 고작 한다는 일이 애드벌룬 띄워 보내는 일이고요. 진보건 보수건간에,
사려 깊은 인간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겠죠.


 '게다가 오바마가 넘겨받을 금융위기 이후의 미국은 국제사회에 대한 의존을 늘려가야 한다. 동맹으로서 오바마의 미국과 함께 나눠 질 우리의 몫이 있고, 그에 따른 우리의 목소리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 오바마를 한국의 친구로 만들어 갈 지렛대도 있다.'

 자, 이제 마지막입니다. 이 칼럼의 제목이 기억나시나요? 까먹으면 좀 곤란합니다. 곤란할 것까지는 없나, 어쨌든 제목은 '오바마 친구 만들기' 입니다. 2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1. (우리와) 오바마를 친구 관계로 만들기. 2. 오바마를 (우리의) 친구로 만들기.


 교우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자, 제가 벌써 '관계'라고 말씀드렸죠. Relations (between people, groups, or countries) are contacts
between them and the way in which they behave towards each other - 라는군요. 접촉, 소통의 상호성이 전제되는 겁니다.

 그러니 친구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지, 누가 누구의 친구로 끼워맞춰지는 건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러면 (적어도 제 입장에선) 이미 친구관계가 아닌 거죠.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렛대 같은 걸 동원해서, 오바마를 친구로
만들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친구’는 이해와 신뢰로 다져진 친우겠습니까? 아니죠! 단지 어떤 꼼수를 획책하는 패거리일 뿐입니다.


 따라서 '오바마 친구 만들기' 를 번역하면 이런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오바마를 우리 패거리로 만들기'. 무엇을 하고자 하는 패거리일까요? 이 칼럼을 읽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무한경쟁으로 이미 부자인 인간들의 배만 불려 주자는 패거리입니다. 북한을 고립시켜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더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뜨리자는 패거리입니다. 그런 참담한 세상이 펼쳐지는 게, 이 칼럼을 쓰신 분이 속한 '패거리'의 더없는 소망 아닐까요! 이 칼럼은 FTA와 북한문제를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테마로 다루며, 그런 소망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바마를 '패거리'로 만든다 해도, 어떻게 '패거리'로 끌어들일지가 좀 문제입니다. 미국은 대국이고 강력한 국가이며, 전 지구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며 세계의 문제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지적했듯 오바마는 'FTA'나 '핵 문제'에 관심이 있지 '한국'에는 별 관심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산'이 '마호메트'에게 갈 수 없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칼럼니스트의 ‘패거리’는 오바마에게 다가가는 걸 거부합니다. 그들의 시장만능주의, 광신적 반공주의를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렛대' 같은 거라도 이용하여 미국을 그들 편으로 끌어오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받침대만 주면 지구를 들어 보이겠다' 고 말한 아르키메데스라도 되려는 것일까요?


 하지만 그들은 또 틀렸습니다. 역사를 읽은 우리들은, 외교에서 작은 나라나, 미약한 나라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지렛대라도 이용한 양, 강대국들을 움직이는 데 성공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이용한 '받침대'는 얕잡아 볼 만한 게 아니었습니다.


 상황에 대한 냉철한 현실 인식이 첫 번째 받침대였습니다. 난국의 돌파구를 찾아낼 창의와 기지가 두 번째 받침대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가나 공동체에 대한 지극한 헌신이 세 번째 받침대였습니다. 그런 치열한 노력 없이, 그 어디에도 성공은 있을 수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면 과연, '오바마 친구 만들기' 라는 기적은 가능할까요? 수작과 아첨, 위선과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기에만 급급한 이 '패거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