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야기

반성의 여지

에포닌 2009. 10. 14. 19:51

 상상하는 무언가와 비슷한 사건이 현실에서 터지면, 그 상상을 풀어 쓰기는 껄끄러워진다. 그것이 혹 주제가 아니라도, 그저 지나가는 배경 어디엔가 깔린 잔돌 같은 소재일지라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가볍게 다룰 수도, 애매하게 넘겨 버릴 수도 없기 때문' 이다.

 이것은 나를 위한 변명이다. 내 머릿 속에 든 것을 나 외에 누가 알겠는가...


 어쨌든 뉴스 토막을 보고 몇 자 적어본다.

 나는 기본적으로 판사가 '평균인'보다 그나마 약간은 나은 판단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판사사회는 역시 그나마, 아니 어쩌면 한국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청렴한 사회일 것이라 추측한다. 그들에게는 물론 오판을 저지를 현실적 가능성이 있다. 또한 그들 중 누군가는 오늘도 어디선가 오판을 저질렀을 것이다. '약간 낫다'는 건, 그들이 항상 옳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약간 나은 판단을 할 가능성이 조금 높다는 정도다.

 누구의 말도 마냥 맹신할 수, 그렇다고 무시하기만 할 수도 없다. 우리는 일단, 누구의 말이든지 진지하게 들어 봐야 한다. 나는 현실을 왜곡한 사실이라도 아예 없는 것보다 낫다고 믿는다. '모든 이야기는 나름의 사정을 가졌기에 태어났다' 고 생각하기에, 설령 얼토당토않은 변명이라도 변명자의 심리를 추론할 또 다른 증거라도 된다고 생각하기에.

 판사는 '사실 범인이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하는 사람이어서 무죄선고 가능성까지 있었다' 라고 말했다. 이것은 말을 잘하면 곧 무죄판결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말을 잘하는 것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증거를 댈 수 있고, 또 그 자체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에 관한 합리적 의심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본질적인 건 이거다. 해당 사건은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 여러 정황증거로 꽤 개연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유죄판결이 났을 뿐이다. 증거가 명명백백하면 말을 잘하고 말고가 심리에 별 대단한 영향을 미칠 리가 없다.

 그런데 또 어떻게 생각하면 결정적 증거가 없는 게 이런 유형의 사건의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 타당성'을 위해 판사는 원칙을 이리저리 일탈하기 시작하고, 어쩌면 또 그럴 수밖에 없다. 과연 이 사건에서도 그렇다면, 그 각종 법규정과 법이론들을 들이대며 도출해 낸 12년형이란 '논리적' 결과는, 사실 판사들 마음 속에서 찾은 적절한 '타협점'에 불과한 게 아니었을까, 또 모르는 일이긴 하다.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하지만 결정적 증거는 없다. 가만 놔둘 수는 없으니 일단 유죄를 선고한다. 하지만 구실을 붙여 감형한다. 라는 식의 판결은 뭐, 지금도 흔하디 흔하게 내려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을 보노라면, 역시 법학의 논리란 그저 논리의 허울을 쓴 일종의 '서술양식'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려되는 건 이거다. 형사사건의 기소율이 낮고 유죄율이 높은 상황은 이를 부채질한다. 검찰의 주장에 대항하고, 가능한 소송법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피고인의 당연한 권리다. 하지만 저 '타협'이란 과정에서, 범죄사실[각주:1]과 인정(즉, 정상참작 또는 '개선의 정')이  동가화될 위험이 있다는 거다. 아마 그 동가화의 위험은, 단순한 위험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마주치고 있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묵비권을 행사하면 '개기네?"가 되고, 항변하면 "반성의 여지가 없네?"라는 법적 결론이 나오는 세상은 그리 긍정적일까. 여론은 '반성'을 강요하고, 사법제도도 자연스럽게 그런 여론대로 작동한다. 어쩌면 이런 '자아비판 강요하기'는 범죄 그 자체보다도 더 큰 위협일지도 모르겠다.


  1. 범죄의 '실체적 진실' 파악이 소홀해지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