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이야기
반성
에포닌
2011. 11. 2. 22:31
애공이 물으니, 제자 (중에) 누가 배움을 좋아하는가?
공자가 대답하여 말하니, 안회라는 이가 있어 배움을 좋아했는데,
노여움을 옮기지 아니하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아니하였다.
불행히 명이 짧아 죽었다. 이제 그래서 (그가) 없으니 배움을 좋아하는 이(가 있음)를 듣지 못했다.
대화의 세번째 대목에서 좀 뜬금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곧, 노여움을 옮기지 않으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대화는 학문에 대함이니만큼, 이 두 가지 덕목은 학문과 연관이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 관련일까? 학문을 좋아하면 올바름을 무릇 알게 되기에, 이런 덕목들을 실천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학문의 내용에 이런 덕목들이 포함되는 것일까? 후자가 조금 더 유력한 의견이기는 하다. 뭐 단순히 이런 식의 맥락일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다 -
"우리 반에서는 철수라는 아이가 제일 공부를 열심히 했답니다. 예습복습도 잘하고, 수업시간에도 성실했어요. 그것만이 아니라 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생활태도도 바랐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전달에 전학을 가서 없어요. 여태껏 그 아이만큼 착실한 학생은 보지 못했네요."
고대에는 USB는커녕 종이도 없어서, 기록은 매우 귀한 것이었다. 대체로 목간에 글을 적었는데, 거기에 글을 쓰는 것은 또 어지간히 귀찮은 일이기도 했다. 그 덕에 기록은 간략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텍스트를 축약하는 데 있어서는 부수적인 문장이나 표현들이 탈락되기 마련이고, 그 덕에 어쩌면 논리적으로 사람의 머리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전해졌는지도 모른다.
뭐 사실이야 어떻든, 이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행위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 나는 다정한 인간은 못 되겠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적어도 공정할 필요가 있다. 말을 가슴에 새겨서 착하게 살자, 그리고 바르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