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야기
돌아가자!
에포닌
2008. 12. 2. 00:36
민주당 대통령의 진가가 드러날 때는 후보자 시절도, 임기중의 그 어느 때도 아니다. 바로 그 다음 공화당 대통령의 임기중이다.
인간성의 측면을 완전히 배제하고, '수완'의 면만 놓고 보면 일본 근대화의 영웅들은 실로 위대하다.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정확히 꿰뚫었고, 분명한 목적의식을 지녔으며, 그 목적을 위해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았다.
흔히 실패자로 기록되지만, 청일전쟁의 라이벌이었던 리홍장도 꽤 스마트한 인물이었다. 전해지는 수많은 일화들은 그의 기지를 손에 닿을 듯 느끼게 한다. 서태후가 원체 부패하고 무개념했던 게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시모노세끼에서 험한 꼴은 당했지만, 전쟁 이후 깔끔하게 물러나 유유한 노후를 보냈다.
그런 면에서 민자영은 궁중의 이전투구에만 능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잠시 개혁개방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마치 근대화의 선각자마냥 찬양받지만, 그는 단지 눈앞의 권력을 위해 이리저리 쏘다녔을 뿐이다. 만만찮은 상대였을 대원군은 잘 잡았다. 그러나 나름의 잔재주는 있었을 그는, 중요한 걸 간과하고 있었다. 나라가 망하면 권력이고 나발이고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다는 걸. 그 결과는 개죽음이었다.
미국 상속세 이야기는, 미국 부유층들의 양심을 찬양하는 도구로 많이 이용된다. 때로는 한국의 경이로운 조세회피와 비교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미국 부자들이 딱히 양심적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들의 머리가 잘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일본 정객들이 정말 나라를 위해 분투했겠는가? 뭐 약간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까놓고 보면 다 권력욕이었다. 그들은 나라가 식민지가 되면 그들의 권력도 다 날아갈 것임을 알았고, 반대로 한국과 만주를 식민지로 만들면 그들의 권력이 더 강대해짐을 정확히 알았다. 그래서 유신지사들은 막부와 적절히 타협했다. 그리고 수십 년간 죽어라고 노력한 덕분에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경쟁도 좋고 카스트도 좋다. 물론 부자들에게 있어 그렇다. 하지만 그 권력구조를 공고히 하기 위해 너무 '오바'한다면, 권력의 기반이 되는 하부구조까지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생긴다. 바로 민자영의 예처럼. 시부를 쫓아내고 농민군을 까부순답시고 외국군을 멋대로 끌어들인 주제에, 정작 국가의 산업체제라던가 근대식 군제를 정비하는 데는 소홀했다. 외국의 사병(私兵)도 못 막는 엉성한 군대로는 제 목숨마저 지킬 수 없었다.
미국식 헤게모니를 위해서는 달러 찍으며 전 세계 금융시장을 교란해야 하고, 가끔 이라크에 폭격도 해 줘야 한다. 미국 맘대로였던 건 어느 대통령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클린턴은 정도를 지켰고, 부시는 도를 넘었다. 6년째까지만 해도 '미국은 바보가 대통령이 되어도 안 망하는 나라'라고 찬양했는데, 7년째가 되자 수습할 방법이 없게 되었다.
모범적인 우파로서, 노무현은 강성대국을 만들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이건희 말마따나, 정부는 99%기업 편이었다. 하지만 1%가 아쉬웠던 권력자들은 조금만 더 해먹기를 바랬다. 그 결과는 어떤가?
나라가 휘청했다. 그러자 부유층의 재산도 토막이 났다. IMF를 경제위기라고 떠드는데, 그렇게 무난하게 끝난 경제위기는 쉽게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일단 손해를 보자 그 1%를 먹어 손해를 메꾸려고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IMF때 기억을 살리며 어떻게든 해보려고 집요하게 노린다. 그 1%를, 1%를.
종부세가 바로 그것이다. 교육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비정규직법이 그것이다. 종부세는 땅값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고, 어지간히 병신으로 낳아놓지 않는 이상 돈 쳐들여 출세 못 시킬 애새끼도 드물다. 비정규직은 이미 산업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1%를 집어먹으려 안간힘을 쓴다. 과연 그걸 먹는다고 부유층의 생활이 나아질까?
기억하라. 환율장난을 쳐서 기업은 약간의 이익을 보았다는 사실을. 하지만 나라가 망할 지경이 되자 이제 기업들은 그 장난질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전봇대를 뽑고 회장님들과 청와대에서 만찬을 벌일 때, '기업인'들은 나름 기뻤으리라. 하지만 '노무현 때가 더 나았다'는 말이 이제 와서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
가진 자들은 확실히 알아야 한다. 해먹어도 좀 적당히 해먹어야 한다는 걸. 나라가 망하면 당신들의 자산도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 중남미 국가들을 쉬이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국은 서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유형의 국가지, 자원을 착복하여 돈을 버는 국가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산업구조와 노동계층이 날아가면 다 끝이다.
회장님들도 확실히 아셔야 한다. 솔직히 당신들의 목적은 돈푼에 있는 게 아니잖는가? 물론 여러분들은 나라가 망해도, 리홍장처럼 미국에서 주유할 여력이 된다. 하지만 권력은 다 내놓아야 한다. 당신들 성격에 시종 하나 두고 안빈낙도하는 삶을 견뎌낼 리가 없다.
그러니, 최고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냉정하게 자각해보아야 한다. 행복한 인생은 약간의 스트레스 없이는 이뤄질 수 없고, 모든 이상은 다 약간의 아쉬움을 포함하는 법이다. 단언컨대, 노무현이 기획한 가진 자들의 정부는, 한국의 부자들에게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최선의 유토피아다. 국가경제는 더 이상 가진 자들에게 베풀어줄 수 없고, 인민은 더 이상 착취당할 수 없다.
나는 노무현의 방법을 지독하게 혐오했지만,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고 나니 적절한 타협을 외치지 않을 수 없다. 회장님들이여, 강부자들이여, 강남 엄마들이여, 헌재 판관들이여, 그리고 조선일보여, 이제 그만 그 때로 돌아갑시다. 노무현을 신나게 까고 있을 때가, 그대들에게는 더없이 행복했던 시기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