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야기
노무현을 위한 변명
에포닌
2009. 4. 2. 00:02
- 노무현에게 '부패와 무능'의 멍에를 씌우는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이 글을 쓴다.
지인 중 하나는 우파 내셔널리스트였다. 대개 우파가 내셔널리스트고 내셔널리스트가 대개 우파다. 하지만 한국에서 우파 내셔널리스트를 찾으면 30명도 채 안 나올 것이다. 한국에서 우파라는 인간들은, 온통 사기꾼들과 그들을 맹종하는 얼간이들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걔들이 전국민의 30%나 된다. 어머나.
나는 노무현을 까고 또 깠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그의 탓이긴 했다. 청년실업, 양극화, 물신주의와 배금주의, 원더걸스의 가요차트 1위 등극, FTA, 막장 드라마의 성행, 지지부진한 인권 상황 등등, 그의 잘못으로 세상이 더 비참하게 돌아간 걸 꼽으라면 이루 셀 수도 없다. 노무현은 사실 아주 나쁜 놈이다.
하지만 나는 왜 지금, 노무현을 위해 변명하려는가? 그것도 한창 뒷조사가 횡행하고, 측근과 친척이 감방에 가느냐 마느냐 하는, 이런 개구린 상황에서 말이다. 조선일보는 무려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 이라는 타이틀까지, 아주 신이 나서 달고 계시잖는가!
일단 변명의 동기는 미리 말해두어야 할 것 같다. 이건 이를테면 - '균형감각' 때문이다. 링컨을 보자. 내가 보기에 링컨은 그냥 흔한 악당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위대한 대통령이다. 나는 링컨을 이야기하며 이 간극을 메우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 '추적자'에 대해 비평한다고 해 보자. 나는 이걸 10점 만점에 5점 정도 줄 만한 영화라고 봤다. 하지만 대종상을 탔다. 나는 이게 '객관적으로' 대종상을 받을 만한 영화가 아니란 걸 증명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노무현은 부패하지 않았다. 적어도 가장 덜 부패했다. 무능하지 않았다. 적어도 정부수립 이래 그 어느 대통령보다도 더 유능했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이며, 노무현을 위한 변명이다.
청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물론 나는 그가 절대적인 기준에서 - 깨끗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차피 한국은 정상인이 정치하기가 힘든 나라다. 괴상하게도 한국인들이 후보자를 고르는 기준에는 청렴이 없다. 아마 오늘날 대중적으로 유력한 정치인을 일렬로 나열하면, 가장 부패한 인간들이 인기 수위를 다툴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저 '다 썩었다' 는 말만 내뱉고는 가장 썩은 인간들에게 면죄부를 던져준다. 이 상황에서 정치인에게 절대적 청렴이란 거의 초인적 의지를 요구하는 행위가 되고, 상대적 청렴마저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만 세워주는 쓸데없는 간판이 된다. 우월감에서 나오는 자의식은, 오히려 대중에게 좋게 어필하지 못하는 요인 중 하나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얼마를 먹었는지를 기억 못 하는 사람은 없다. 그 전 대통령들은 나라가 다 자기네 꺼였으니 굳이 축재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으리라. (물론 주변 분들께서 열심히 잡아잡쉈지만) 김영삼과 김대중은 아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인 노무현은 조카사위가 있다.
강도도 낮고 축재액의 절대액도 적고, 무엇보다 스케일이 협소하다. 물론 해먹었다는 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구 말마따나 1/10이다. 다 썩긴 썩었는데 덜 썩었다는 거다. 나처럼 청렴하기 그지없는 사람은, 이놈이나 저놈이다 다 개새끼라고 비판해도 꿀리는 게 없다. 하지만 조선일보 쪽에서 '부패했다' 말을 할 자격은 없어 보인다.
능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능력'은 좀 명확하게 정의내릴 필요가 있다. 가령 김일성은 강국을 만드는 데엔 무능했고, 인민들이 행복하게 살 환경을 만드는 데도 실패했고, 군사대국을 만드는 데도 별 능력이 있었다고 못하겠지만, 신개념 신정국가를 만드는 데엔 비상한 재주가 있었다. 능력이 있는 양반일까, 없는 양반일까? 어디에 포커스를 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능력을 정의내리기 위해 한국인이 '지도자'에게 원하는 자질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참고를 해 보자.
이솝우화 중에, '왕을 원한 개구리들'이란 이야기가 있다. 개구리들이 제우스에게 왕을 달라고 했다. 제우스는 나무토막을 던져 줬다. 개구리들은 민원을 냈다. "이건 왕같지도 않다!" 빡이 돌은 제우스는 물뱀을 던져 줬다. 그래서 물뱀이 개구리들을 모두 잡아먹었다는, 훈훈한 이야기다.
개구리들은 그저 슈퍼에고를 맛깔나게 닦아 줄, 폼나는 왕을 원했다. 권위란 개구리들이 왕에게 요구했던 유일무이한 능력이다. 하지만 '모든 걸 아는' 제우스는 왕같은 건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권위에는 대가가 따른다. 권력을 가진 자는 100%그것을 남용한다. 개구리들이 그걸 알 턱이 없었다.
개구리들은 권위를 원했다.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로 권위 비슷한 걸 원했다. 이를테면 황우석 같은, 심형래 같은, 김연아 같은 기꺼이 열광하고 찬사를 보내고 무릎을 꿇을 위대한 지도자를 원했던 거다. 그런 위대한 지도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가경제를 발전시키고, 군대를 막강하게 키우고, 정부조직을 통솔하여 효율을 극대화하고, 법과 질서를 확립하여 사회를 통제하고, 결과적으로 위대한 나라를 만들어 국민의 자긍심을 고취시켜야 했을 것이다. 국민들은 그것을 원했고, 바로 그것이 국민들이 현 대통령에게 원했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대단한 '자질'들은, 오직 '권위'를 제외하고 노무현이 모두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의 '실적'은 경제지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국의 성장률은 OECD 최고 수준이었으며, 국가의 기타 지표들도 막강했다. 심지어 물가상승률도 낮았다. 젠장... 한국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첨단기술의 소유국이기도 했다. 전 세계의 자본주의국가들에게 한국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군비는 얼마나 쏟아부었는가. 복지예산을 깎아 무지막지하게 군 장비에 투자한 결과, 노무현의 임기가 끝나자 국방부의 사기꾼들도 더 이상 남한이 북한보다 전력이 뒤떨어진다는 개소리를 지껄이지 못하게 되었다.
정부조직은 매우 '효율'적으로 구성되었다. 솔직히 노무현 반만큼이나 정부조직의 능률에 관심을 기울인 인간 있으면 찾아보라. 직제는 '민주주의'보다는 완벽한 성과를 내도록 개편됐고, 행정이 정치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차기 대통령감이라던 고건은 완벽하게 이상화된 관료였다. 참여정부는 관료의 시대였다.
법질서의 확립에 있어 노무현의 수완은 막강했다. 최루탄 한 발 쏘지 않고 그는 모든 파업을 제압했다. 농민들의 절규는 미디어에 완벽히 가려졌고, 사람 몇 때려죽이는 거야 예사였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완벽한 민주국가에 살고 있는 양 착각하게까지 만들어버렸다!
결과적으로 국민이 얻은 건 무엇인가. 막강한 국가였다. 한국은 유엔사무총장을 냈다. 노무현은 '밥만 먹으러 다녔다'는 일부의 평가가 무색하게, 어디 나가면 목에 힘 좀 주고 다녔다. 박정희를 어디 머슴 취급하던 시절과는 판이하게, 노무현 때처럼 대미관계가 원활했던 적은 또 어디 없었다. 대만놈들은 공공연히 한국을 따라해야 한다고 외쳤고, 북한은 조금만 있으면 식민지로 들어올지도 모르는 판이었다.
그러니 현 정권의 '이상'은 노무현의 '현실' 이 되는 셈이다. 상처받은 그들이, 얼마나 '배신당한 이상'을 증오할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웃기는 건, 한국인들은 노무현 시즌2를 뽑은 주제에, 정작 노무현한테는 엄청난 욕설을 퍼붓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완벽한 허상에 기인한다. 노무현정부는 실상과 반대되는 이미지로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었던 셈이다. 허상은 아무래도 불가피했다. 왜냐면 사람들의 살에 와 맞부딪치는 삶의 진실을 완벽하게 왜곡할 순 없으니까 말이다. 노무현 때는, 물론 지금보다야 훨 나았지만, 솔직히 살기 좆같았으니까.
사람들이 느끼는, 본능적 감정을 왜곡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TV에서 지상 천국이네 요순시대가 열렸네 떠들어도, 불행은 쉽게 가시지 않는 법이다. 정권이 신문과 방송을 완벽하게 장악해도, 세상 살기 힘들다는 생각을 지우는 건 불가능하다. 단지 그 원인만 찾지 못하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걸로도 충분하다.
국민들은 몰랐어야 했다. 노무현이 실적만 중시하고, 수많은 인간적 가치를 경시한다는 걸.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걸. 참여정부의 이름으로 수많은 국민들을 배제시킨, 관료주의적 정부를 운영한다는 걸. 법의 기교로 상대적 약자들을 억압한다는 걸. 위대한 국가를 만든답시며, 민초들의 희생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한다는, 비인간적 감성을 갖고 있는 걸 몰랐어야 했다. 국민들이 대체 왜 그들의 삶이 더 불행해지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면, 체제는 유지될 수 없으니까.
노무현은 정말 대단했다. 그의 신자유주의는 정녕 위대했다. 국민들은 분배를 중시하는 좌파 정부 때문에 양극화가 생기는 줄 알았다. 국가안보에 소홀하기 때문에 세상이 불안해지는 줄 알았다. 국민들이 정부에 '참여'하기 때문에 정부와 시민의 간극이 생기고(예전에 지적했던 대로, 이 부분만큼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법질서가 널널해서 자신들이 피해를 보는 줄 알았다. 또한 노무현이 '인간적'이기 때문에 세상이 더 각박해지는 줄로만 알았다! 참 대단한 사기극이다.
노무현은 체제의 반대세력을 성공적으로 무력화시켰다. 민주노동당은 데모당 이미지를 만들어 추락시켰다. 농민들은 폭도로 만들었다. 경찰이 농민을 죽이고 대통령이 직접 사과까지 했는데 농민들이 욕을 먹는, 기묘한 시추에이션이 연출되었다(이것도 참 대단하다). 반발이 생길 만한 기반도 저절로 쓰러졌다. 노동의 가치는 금융으로 대체되었고, 인생의 목표는 '자아실현'따위가 아닌 돈에 맞춰졌다. 그 덕에 여러 전통적 공동체는 거의 붕괴되었으며, 좀 틀이 남아 있던 사회적 연대는 모조리 유명무실해졌다.
사람들은 일이 잘못되어간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원인을 모르고, 대항해나갈 공동의 수단조차 상실해 버렸으니 완전히 무력하다. 그러니 국민은 개인적 대처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그 '개인적 대처'란 데에도 최후의 함정이 파져 있어서, 끝에는 '부자 되세요!'라는 복음으로 대표되는 제살파먹기 경쟁만 남아 있다. 이런 완벽한 수완을 보았는가? 노무현은 원하는 걸 모두 얻었다. 국민들은 노예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런 걸 모두 알고 노무현을 지지하는 인간이야말로 정말 무시무시한 인간이다.
그러니 노무현에게 무능하다고 주절거리는 것은 엄청난 모욕이나 다름없다. 그의 정부는 지배층에게 과실을 안겨 주었고, 국민으로 하여금 허상을 좇게 만들었다. 그러니 그는 목적하던 것을 모두 이루었고, 실로 이것은 '반영구적'으로 유지될 강력한 체제다. 문제는 그 무능한 조선일보다.
어째서 노무현을 비판했는가? 그리고 왜 지금도 비판하는가? 이상돈 교수 같은 경우도 일찌감치 라인을 갈아타지 않았는가. 노무현 친정 시절엔, '우익의 틀 내에서 균형 잡힌' 정책을 펴 나가게 하는 밑거름이라도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 그를 비판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Nous revenons toujours'... 솔직히 각하께선 너무 위험하시다.
미국발 쇼크의 탓도 있지만, 이제 국민의 태반이 신자유주의가 일반인들에게 재앙을 몰고 오는 제도란 걸 명확하게 알고 있다. 국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하마 다시 일어나지 못해도, 국가경제가 정말 주저앉아 버리면 정말 큰일이다. 방글라데시나 부탄의 재벌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는가? 하긴 정말 몇몇이야 잘 산다더마는 말이다. 조선일보 평기자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무릇 너무 해먹으려고 하면 반작용을 낳고, 피를 보는 법이다. 무릇 역사를 통틀어, 속칭 보수에게 더없이 필요한 덕목은 다름아닌 중용이다.
우익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우익들은, '성공'하기 위해, '유능한' 우파가 되기 위해, 노무현의 신중함을 배워야 한다. 물론 수완은 기본이고. 그는 그 정도로 모범이 되는 인물이다. 이상으로 변명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