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닌 2010. 4. 29. 20:30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랬던가. 소위 '언론'들은 강자만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을 운운한다. 마치 그게 지금 시대의 보편적 진리라도 되는 양. 또한 우리가 응당 그렇게 살아야 하고, 그렇게 살아 왔었어야 한다는 양.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어느 정글도 강자에게 모든 이익을 몰아다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확히 그 반대다.

 천안함은 반으로 갈라졌고 반수의 승원이 사망했다. 그것을 이끌어낸 원인이 무엇이건, 중어뢰건, 버블제트건, 인간어뢰건, 부유형 기뢰건, 암초이건, 잠수함이건, 고래건, 꽃게와 까나리건, UFO건, 그 사실, 죽음이란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또한 그것은 침몰의 '배후'가 누구이건을 따지지도 묻지도 않는다.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그저 죽음 그뿐이다.

 그 소위 '언론'의 논리대로라면 어떠한가. 희생자들은 순전히 루저일 따름이다. 모든 일이 북한의 소행이라면, 그들은 실패자로 불려야 할 것이다. 경계는 허술했고 또 허술해서, 지금까지도 침몰의 원인이 확실하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그들은 함선마저 잃었다. 완벽한 패전이다. 설령 모든 일이 그들 나름의 문제였다 한들,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있을까. 어떻게 생각하든 그들은, 그 많은 잘나신 분들이 떠받들던 영웅의 전형은 아니요, 어쩌면, 그것이 진정 북한의 소행이라면, 오히려 죽어서도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할 열패자들일 따름이겠다.

 하지만, 뭐 다들, 심지어 소위 그런 '보수'라는 분들까지, 그들을 추모한다. 그 의도야 어찌되었든, 이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한때, 아니 소위 '건국'이래 줄곧 자칭 '보수'란 분들이 무분별하게 방기했던,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와 염치'를 차리는 행동인 것이다. 확실히 긍정적이다 - 그것이 설마 '쇼'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사실 누구의 죽음도 각별히 더 값질 것은 아니다. 어쩌면 딱히 더 슬퍼할 만한 일도 아니다. 용산참사도,노무현의 죽음도, 법정의 열반도, 실패한 가장의 자살도, 어쩌면 길거리를 떠돌던 고양이의 죽음도, 공정한 애도를 받을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