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포닌 2009. 2. 7. 06:49

 예전 발표수업에서 쓰려던 테마 중 하나는 '검열'이었다.

 옛날 옛날에, 신문은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발행할 수 있었다. 공권력은 온갖 추상적인 이유를 들어 - 이를테면 안보라든지, 공익이라든지, 치안유지라든지 - 출판물의 발행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었다. 이 시대의 신문엔 정부의 입맛에 맞는 기사만 실려진다. 정부가 조금이라도 불만을 갖는 부분은 잘려나간다.

 현행헌법하에서 검열은 완전금지되어 있다. 헌법재판소는 영화사전심의에 대한 대단히 고무적인 판결에서, 사전심의를 검열로 규정하고 위헌으로 판단했다.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는 어려워진다. 군사정권시절의 신문에는 군부의 검인이 찍혀야 '합법'적인 신문출판이 되었다. 일제시대 신문에선 맘에 안 든다 싶은 기사를 아예 삭제시켜 구멍이 뻥뻥 뚫린 지면도 흔히 볼 수 있다. 북한의 언론은 다 당 기관지다. 하지만 오늘날의 민주국가에서, 언로를 무력으로 틀어막는 건 상당히 힘들어졌다.

 물론 '미네르바'를 전기통신법으로 처벌하는 행위는 상당히 원시적인 통제에 해당한다. 검찰의 구속결정은 한국이 민주국가와는 영 거리가 멀다는 걸 전세계에 선전했다.

 어쨌든 직접강제가 힘든 경우, 권력은 어떻게 표현을 통제하는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흔히 쓰이는 수단은 광고주의 암시적인, 또는 노골적인 압력이다. 광고는 언론사의 경영을 가능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니, 자본권력의 의사에 언론은 굴복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굴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언론이 자본권력의 의사에 알아서 기게 될 공산도 크다. 기업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잘 쓰는 언론이, 잘 쓰는 기자가 아무래도 더 출세하기 쉽다. 기사는 무의식적으로 현실의 권력구조에 아부하는 성향을 띈다.


 자본의 힘은 한국에서도 언론에게 잘 통용된다. 또한 권위주의 사회이며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인 만큼, 구성원에게 획일적 사고를 강요하는 경향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그 밖에도 또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 특징적으로 사용되는 통제수단 중 하나를 꼽자면 유니크한 법제도다.

 강만수 전 장관은 "세계 어느 나라에 종부세가 있나"라고 외치며 종부세를 무력화시켰다. 그런데 세상 어느 나라에 모욕죄가 있고, 한국처럼 강력한 명예훼손죄가 있는지 살펴봐도 좋을 것 같다.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선진적이라고 불릴 만한 국가 중 모욕죄가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는 없다. 한국의 명예회손죄는 매우 강력하게 집행된다. 게다가 이번에 사이버모욕죄까지 만들면, 한국은 '피해자의 보호를 핑계로 한' 표현의 자유의 통제가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다.

 단순히 인터넷 악플이나 시정에서의 난동 같은 걸 넘어서, 이들 법제는 언론활동에도 여과 없이 적용된다. 이미 현 정권 들어 '법집행'의 공정성은 어느 집 개밥통에도 없으니 접어둔다고 해도, 이런 법제의 존재 자체가 과연 현 시점에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다름아닌 중앙대 이상돈 교수의 2007년 6월 25일자 동아일보 칼럼글을 인용하자면, "1986년 유럽인권법원은 정치인은 자기 자신을 언론과 대중의 검증대에 던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혹한 비판을 수용해야 하며, 언론인에 대해 명예훼손죄를 적용하면 언론의 비판 기능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판시했다. 오늘날 유럽에서 정치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는 나라는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뿐이다. 명예훼손죄는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나라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상돈 교수는 당시 대통령이던 노무현이 당시 의원이던 이명박 각하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을 두고 이 글을 썼다. 상황이 정반대로 바뀐 요즘엔 학생들에게 또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한국의 특이한 법제는, '피해자 보호'의 차원보다,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 경찰에 의해 제멋대로 법이 적용되는 지금에 와서는 더 위험성이 크다고 하겠다.

 이런 상황까지 이르면, 이런 모욕죄, 명예훼손죄, 사이버모욕죄(통과된다면)는 사실상의 '검열기능'을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에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쓰거나, 인터넷상에서 의견을 표명하면 형사처벌의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이 상황에서 용감하게 진실을 고발하는 사람들이야 용자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정도는 움츠러들지 않을 수가 없다. 언론은 자연스레 통제된다.

 어제 법원에서 또 명예훼손을 명목으로, '한겨레는 이명박 각하께 3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놓았다. 전원책이 말한 '사법부에 대한 존중'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갈 만한 판결을 내놓았을 때에 나올 존중이지, 이렇게 정당화시킬 만한 근거도 없고 논리도 없는 개념나간 판결에까지 존중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판결에 대한 비판은 둘째치고, 이런 판결이 앞으로 언론활동의 자유에 얼마나 지대한 악영향을 끼칠지 걱정부터 먼저 든다. 내가 기자라도 조류독감보다 법원의 정신나간 판단을 더 두려워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