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다 이기적이다. 이기심에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타적인 인간은 희귀하기에 열렬하게 찬양받는다. 우리가 이타적인 인간을 찬양하는 것도, 타인의 이타적인 행동이 자신에게 이익이 될 거라는, 이기적인 계산속의 결과라는 의견도 있다.
개인의 감정이란 복잡한 것이라, 사람은 흔히 엉뚱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사람의 행동은 상대적으로 일관되지 못하다. 가령 '단체'의 행동에 비한다면. 우리는 잘 조직된 단체, 이를테면 재벌그룹이라던가, 대한의사협회 같은 단체가, 그들이 추구하는 '이익'에 대해 광적인 집념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는 걸 안다.
단체는 대단히 계산적이다. 설령 자선단체라 하더라도 성과주의적인 면을 지닌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조직은 움직인다. 모든 정치조직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권 탈취다.
신문을 펼쳐보면 정당의 '이기주의'에 대한 논설이 판을 친다. 정쟁은 모조리 그릇된 것이다. 반면 '이산'의 시대에나 등장하던 탕평책이 이상적인 정치행태로 국민들의 뇌리에 틀어박혀 있다. 국회에서 논쟁이 사라지고 모든 안건이 만장일치, 일사천리로 처리된다면, 사람들은 정치가 모범적으로 돌아간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기주의'를 비판하는 건 잘못이다. '정략적 태도'를 비판하는 건 위험하다. 무엇보다 '시장주의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민주주의적이지도 못하다.
정당의 목적을 위해, 다시 말하면 그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정치적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정당이 '이기적으로' 돌아가는 건 당연하다. 민주주의 정체에서, 그들의 목적을 현실화하기 위한 방법은 하나, 표를 많이 획득하는 것이다. 후보자가 의원이 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는 것은 그 자신의 안녕을 위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과 정당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도 되는 것이다. 위 두 가지는 그저 우연하게 겹치는 것이다. 그러니 후보자의 '노력'을 첫번째 것에만 집중하여 바라보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된다.
정당은 더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해 선전을 펼치고, 서로 경쟁을 벌이며 지지를 얻는 데 여념이 없어야 한다. 시장에서는 '경쟁'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대부분의 경우 공정한 경쟁은 공공복리에 부합한다고 여겨진다. 정당 사이에도 이념과 정책에 대한 확실한 대립각이 그어지고, 정당에 대한 '선택'이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강요되어야만, 정당의 내용물이 충실해진다. 이것이 곧 정치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념과 정책이 다른 정당이 존재하고, 그 정당 사이의 '대립'과 '충돌'의 상호작용으로 정치가 이루어지는 게,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모습이다. 정당 사이에 '정쟁'이 없다면, 그것은 정당 상호간의 '차이'가 없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선거'는 완전히 무의미해지고, 도저히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정당에게 이타성을 바라는 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이념과 정책에 분명히 차이가 있는데, 그것을 내팽개치고 국회에서 오로지 단일한 의견만 내란 말인가? 혹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한 목소리만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무엇'이 국가를 위한 것인지, 국민을 위한 것인지는 제각각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정당간의 '협력'을 주장하며 은근히 '하나의 의견'을 강요하는 태도는, 단적으로 말해 파시스트적이다. 정확히 '민주주의'의 정반대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가? 우리는 더 이상 '이기심'에만 과잉반응을 보여서는 안된다. 연단에서 연설하는 정치인에게 '자기 좋으려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경멸의 시선만을 보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들, 그 정치인 개인과 그의 정당의 '이기주의'가 무엇을'목적'하고 있는지, 무슨'결과'를 낳을 것인지에 대해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
오늘 과거사위 폐지에 대한 기사를 봤다. 과거사위는 한나라당과 극우세력에 겨누어진 칼이다. 그것의 존재는 특정 정당에 불리하며, 매우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극우성향의 주요 일간지들은 과거사위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비난하고, 예산만 낭비한다고 비난하고, 대체 누가 만들어냈는지도 의심스러운 '국가정신'에 반한다고 비난하고, 여러 '위원회'를 싸잡아 공격할 때 덤으로 끼워 맹렬히 비난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적 의도' 자체에 주목하면 안된다. 모든 '정치적 행위'는 비난받을 것이 아니며, 정치적 의도가 당연히 내재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도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고, 민주화운동도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고, '정치적 의도'를 비난하는 발언 역시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니까, 그런 모든 것들을 모조리 사악하다고 단정지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사위가 어떤 일을 하고, 그것이 국민에게 어떤 혜택을 가져다주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국가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받은 사람을 구제해주는 게 필요한지도 곰곰히 따져보아야 한다. 그와 같은 모든 경우를 따져보았을 때, 과거사위가 진정 필요하다면, 우리는 과거사위를 존속시켜야 한다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과거사위의 존속과 폐지를 주장하는 두 가지의 상반된 '정치적 의도' 중 하나를 '올바르다'고평가하고, 그쪽에지지를 보내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다음과 같이 행동해야 할 것이다. 개개의 정당의 이념과 수많은 정책들을 세세하게 검토하여, 당신의 요구에 가장 부합하는 정당에게 당신의 표를 던져야 한다. 그냥 생각 없이 아무데나 찍지 말고. 당신의 지지는 그 정당의 이득이 될 것이며, 그런 '이득'은 '공공복리'의 차원에서 당신에게 보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