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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것들(논픽션)/요즘

변명

  요즘 들어 자주 이런 꿈같은 상상을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하철 역사에서 흔히 보는 것처럼,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백, 수천, 수만의 사람들. 그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은 모두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 양복을 입은 직장인, 머리가 우습게 벗겨진 사람, 휠체어를 탄 사람, 아이를 손에 잡은 사람, 그냥 보통 사람들...

 

  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곳의 끝을 알고 있습니다. 바닥이 보이지도 않는 낭떠러지가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무한의 심연이 어둡게 미소지으며, 종말로 치닫는 이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의 운명은 오로지 파멸만을 향해 치닫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지, 무기력하게 앞만을 향해 걸어갑니다.

 

  여기저기서 화려한 선전문구들이 전진을 독려합니다. 국가, 발전, 민족 따위의 간판이 사람들을 억지로 밀어당깁니다. 나는 이러한 광경을 당황스럽게 직시하고 있습니다. 계속 사람들이 내 등에, 어깨에 부딪치고, 나는 조금씩 앞으로 휩쓸립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들의 운명은 이미 종말을 맞이했다고요. 이제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사는 방법은, 출세를 하는 것, 대한민국을 떠나는 것, 오로지 두 가지 방법뿐, 너희들은 꼭 잘먹고 잘살길 바란다고요.

 

  이제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게 정말 힘겨운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모든 상황은 악화, 악화, 악화일로를 걷습니다. 아이 둘에 어른 둘의 평범한 가정, 열심히 일하면 보답을 받는 평범한 직장, 그리고 그 속의 그저 평범한 사람. 옛날에는 그저 '성실하기만' 하면, 그런 평범함은 전혀 사치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그 어느 것도 '보통 사람'에게 가능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때 우리들이 이야기하던 평범한 삶은, 현대 한국 사회에서 그 무엇보다도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대다수의 사람들을 기다리는 건 많은 노동시간과 적은 복지, 불안정한 고용환경과 치솟는 공공요금뿐입니다. 그러자 내일의 유력한 지도자분께서 이야기하십니다. '당신들을 위해' 경제를 살려 드리겠다고.

 

  길거리에 나붙은 현수막과 광고전단은 대단히도 경제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국가의 경제성장률은 경이적인 수준이고,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잘 나가고' 있다는 거 말입니다. (경제지표만 보면, 노무현은 정말 정말 위대한 대통령입니다!) 국민소득은 무려 2만불이 넘었고, 유수한 기업들은 더 많은 수익을 내고 있으며, 부자들은 어느 때보다도 많은 돈을 벌고, 외국 투자자들은 한국을 매력적으로 생각합니다. 걸개들과 찌라시들이 살리자는 바로 그경제는, 굳이 살리지 않아도 지금 매우 호화롭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숫자놀음이 아닙니다. 경제성장률이 몇 %가 되었든, 국민소득이 몇만 불이 되었건, 그것 자체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나에게는 사람들의 삶이, 사람들 각자의 인생 하나 하나가, 누구나 마음 속에 하나씩 품고 있을 5천만개의 꿈과 이상이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공식적으로 보잘것없는 것이 되어, 바람에 흩어져 사라져 버리려 합니다.

 

 

 

  나는 나의 어두운 상상을 되새겨봅니다. 절벽으로 돌진해 최후를 맞는 레밍처럼, 비극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표정 또한 상기해봅니다. 나는 그저 몰아치는 인파들을 헤치며 '안전한 곳'으로 도피해버리면 어떨까 잠시 고민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니까, 하고 중얼거리며.

 

 

 

  나는 자신있게 나의 무능함을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지옥의 문 앞에서 심판자에게 이렇게 소리칠 것입니다. 세상은 얼간이들로 가득 차 있고, 나라는 협잡꾼들의 손아귀에 놀아나는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요. 나를 1940년대의 식민지로 돌려 놓는대도, 나는 그저 어딘가에 처박혀 빌어먹을 세상만 조소하겠으려니 상상합니다. 제정신이 나간 세상에선 자신의 몸이나 잘 간수하는 게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다시금 내가 품고 있는 조그만 진실들을 세어봅니다. 그리고 나에게 남겨진 수많은 유산들을 상기해냅니다. 내 삶 속에는 만주 벌판에서 죽어간 어느 독립군이,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미싱을 돌리던 여공들이, 60년 혁명 당시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얼굴도, 이름도,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으로 국가의 독립이, 경제의 발전이, 사회의 민주화가 가능했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자유와 권리가 그들의 덕택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정작 그들 자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지 몰라도, 그들의 노력은 오늘날의 나에게는 숭고하다 하리만치 귀중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양심은 무책임한 나를 비난합니다. 그런 희생들 덕분에 잘 살아 왔으면서, 자신의 평온만을 위한 삶은 용서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나는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무엇이라도 해야, 아니면 무언가를 하는 시늉이라도 내야 좀 마음이 놓일 것 같습니다. 뭔가 변명거리라도 만들어 놔야, 심판관 앞에서 허황된 자기변호라도 늘어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불의인지를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절대 신이 아닐진대, 지나친 오만은 이라크 전쟁 같은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갖고 있는 소박한 희망이 무엇인지는 비교적 간단히 대변할 수 있습니다. 안정된 직장. 안전한 노후. 질병과 사고에 큰 걱정없는 생활.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고, 재능과 노력에 따라 보답받는 학교. 모든 사람이 인격적으로 평등하며 부당한 차별이 없는 사회. 이런 것들이리라 나는 확신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은 이런 바램들을 공유한다고 믿습니다. 또한 이것이 내가 수호해야 할 정의(正義)라고 감히 말하는 바입니다.

 

  세상은 위와 같은 이상과 반대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더욱 세상을 비참하게 만들려는 세력이 나날이 힘을 얻어갑니다.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각종 복지제도는 파탄을 맞을 것이며, 아이들은 부모의 재산에 따라 차별받고, 금전의 힘은 인간성을 말살해 버릴 것입니다. 게다가 솔직히 지금처럼 '경제지표'가 좋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개그 수준의 대운하 발언, '뛰기만 하면' 경제가 무조건 좋아질 것이라고 호도하는 수준낮은 선동은, 그들이 얼마나 '경제'에 대해 무지한지 역설적으로 증명합니다.

 

  '대안'들을 살펴봅시다. 하나는 진정한 극우를 표방합니다. 간신히 합의를 이끌어낸 평화를 박살내야 한다고 소리칩니다. 현 상태가 미국-북한-한국간의 컨센서스의 결과임을 고려해 볼 때, 미국과의 일명 '한미공조'는 쓰레기통으로 던져지는 셈입니다. 미국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고려해 보면 그의 사고방식은 매우 매우 부적절합니다. 그리고 '법과 원칙'을 강조하시지만, 96년 그 유명한 노동법 날치기 사건이라던가, 역시 유명한 '차떼기 사건'에서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 주었는지 생각하면, 그가 말하는 '법과 원칙'의 의미는 쉽게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의 '대안'을 봅시다. 그는 신당경선에서도 상당히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현 정부의 낮은 인기에 누구보다도 큰 역할을 담당한 사람입니다. 현 정부의 실정은 정확히 평가되어야 하며, 사람들의 생활을 절망적으로 만든 그 기본적인 노선이 바뀌었다는 걸 증명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또다른 하나의 '대안'으로 평가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는 이성적인 모습만으로도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그가 양심적인 경영자였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개인적으로 선택에 고민이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선거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에 적합한가라는 명제뿐만 아니라, 정당의 노선에 대한 지지, 정책의 합리성에 대한 평가가 복합적으로 고려돼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선거는 이번 대선만이 끝이 아니며, 앞으로도 많은 선택이 요구될 것입니다. 현재까지의 정책적 완성도와, 앞으로 얼마나 큰 역량을 보여 줄 수 있는가, 라는 문제에서 저에게 이 사람은 상대적으로 밀려난 셈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선거에서 나는 민주노동당과 권영길 씨를 지지할 생각입니다. 민주노총의 시위로 길이 막혔다는 사실은 좀 치워둬야 할 것입니다. 소위 '민족주의자' 들을 모조리 태평양에 쓸어넣는 일도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합시다. 나는 '대통령 탄핵사건'때 표가 줄어들 걸 뻔히 알면서도 탄핵을 반대했던 그들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미친 듯이 욕을 먹으면서도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거리시위를 하던 그들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국회에서 극소수이면서도, 언론의 냉대와 모욕을 받아가면서도 성실히 의정활동을 계속해 왔던 그들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어느 정치집단에서도 볼 수 없는 신실함과 굳은 의지가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충고와 성원이 더해진다면, 훨씬 좋은 사회를 만들 버팀목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12월 19일,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투표권을 행사하러 갈 것입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든, 벼락이 내리치든, 운석이 떨어지든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려고 합니다. 앞에서 말한 독립군이나 여공들의 공로에 비하면 하잘것없는 일이겠지만, 이런 일이라도 해야 자신에게 좀 덜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다시금 고백하건대, 이상의 문장들은 지극히 치졸한 의도로 쓰여진 것입니다. 이것은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적어도 완전히 무책임하지는 않았다' 는 증거를 남기자는 의도일 따름입니다. 이것은 비겁한 나에 대한 양심의 준엄한 비판에, 단지 졸렬하게 변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한심한 자기합리화가 부디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조그만 변명과 실천이, 앞으로 내가 조금 더 고민하고 노력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입니다. 어린 시절 나는 믿었습니다. 미래는 더 밝고 활기찰 것이며, 제도와 문물이 발전하여 사람들은 더 행복하리라고. 작금의 상황을 보면 틀려도 이렇게 틀린 생각이 있을지 좀 의아하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것만은 확신합니다. 사람들이 더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 좋은 세상이 열리리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