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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것들(논픽션)/요즘

NLL

  당신이 국가대표팀 감독이라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큰 경기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팀닥터가 말한다 : "박지성이 감기로 골골대고 있어요. 경기에 내보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당신, 팀의 핵심인 박지성을 경기에 출전시킬 것인가?

 

  위와 같은 상황에서, 선택은 팀닥터가 아닌 오로지 당신의 몫이다. 당신은 팀의 감독이니까. 

 

 

  만약 무리해서 박지성을 경기에 내보냈는데 삽을 펐다고 하자. 경기가 난장판으로 꼬일 것이다. 볼이 안 날아와 멀뚱멀뚱 서 있을 조재진, 혼자서 돌파해보려다 공 뺏기는 이천수, 공 줄 곳이 없어 역주행하는 설기현, 우주로 볼을 날려보내는 김두현, 어리버리한 포백은 뭐 보나마나고, 이운재는 골대 앞에서 죽어라 소리만 지를 것이다. 너무 쉽게 상상이 가서 더 무시무시하다. 선수들은 물론 욕을 먹을 것이고, 포탈의 게시판들은 아름다운 리플들로 장식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많이 까이고 지지고 볶이는 건 바로 감독인 당신이리라. 

 

  선수관리 소홀, 당장 성과를 내는 데만 급급, 감독 자질 의심스러워, 등의 헤드라인이 신문지상을 점령할 것이다. 당신의 이름은 "사퇴"라는 글자와 더불어 검색어 상위권에 오를 거구 말이다.

 

  하지만 만약 이긴다면 좀 대우가 달라진다. 투혼 불사른 한국 축구, 따위의 일면 기사가 등장할 것이고, 선수들이 찬사를 듣는 동시에 당신에 대한 평가도 높아질 것이다. 사람들은 다음 경기에 지는 순간 과거의 승리를 모두 망각하겠지만, 어쨌든 몇 번만 더 운좋게 이기면 당신, CF도 충분히 찍을 수 있다. 히딩크나 아드복처럼 말이다. 그냥 굴러다니는 잡광고가 아닌, 비싼 개런티의 A급 스폰서가 당신을 찾아올 거란 말이다.

 

 

 

  팀닥터 같은 코치와 감독은 분명 다르다. 역할이 다르고, 권한이 다르고, 책임이 다르고, 성공했을 때의 보상이 다르고, 실패했을 경우 비난받는 수위가 다르다.

 

  팀닥터의 견해는 팀의 건강문제라는 한정된 틀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선수들의 건강은 중요하다. 하지만 당신은 선수의 건강뿐만이 아닌 팀의모든 문제를 고려해야만한다. 당장 선수를 출전시켜 얻는 이득과, 쉬게 해서 얻을 이득을 치밀하게 저울질해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당신에게 팀닥터의 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고려해 보아야 할 의견에 불과하다. 팀의 조직구조 내에서, 코치와 감독은 분명 다른 차원의 사람이다.

 

 

 

  언론들의 조작과 왜곡으로 장식된, NLL에 대한 무의미한 논쟁에서도 비슷한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NLL이 '안보' 라는 것에 도움이 된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방부 관계자들이 "NLL은 안보에 도움이 되니 지켜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국가안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 안보라는 것이,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있어서 절대적인 요소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다. 마치 선수들의 건강문제처럼.

 

  국가안보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모든 정책이 안보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 국가안보만을 위한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시내의 지하는 모조리 방공호와 작전기지로 도배되어야 한다. 군대는 2년 6개월로는 턱없이 모자라다. 7년이나 10년 정도, 여자들까지 모조리 군대에 집어넣어 사격훈련을 시켜야 한다. 초등학생들도 유사시에 써먹을 수 있도록, 그리고 청년이 되어 더 나은 살인기계가 되도록 군사훈련을 실시해야 하겠다. 국방예산은 국가예산의 50%정도로 투자하고, 주요 중공업 시설을 징발하여 전투물자를 생산하는 데 최적화시키자. 몰래몰래 생물학 병기도 개발해 놓고, 힘이 닿는 대로 핵무기도 개발해 보자. 어떤가?

 

  '국가안보'에 최대한 적합하게 조직된 사회의 모습은 응당 그래야 할 것이다. 매우 적합한 예로 최근거리의 "North Korea"가 있겠다. 하지만 그런 짓거리를 하면 안된다는 걸, 그들이 너무도 잘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국방부는 국방의 임무를 갖고 있다. 그들의 역할은 국방이며 그들은 국방이란 분야에서만 일단 책임을 다하면 된다. 국방부 장관은 각료 중 하나로서, 국방이라는 한정된 틀 내에서 그가 갖고 있는 전문적인 견해를 피력하면 된다. 국방이란 한정된 틀 내에서.

 

  하지만 대통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대통령이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안보는 물론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될 요소겠지만, 다른 요소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장성들의 의견대로 국가정책을 결정할 것이면 귀찮게 뭐 하러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대통령을 뽑아 놓나. 그냥 옛날처럼 장군들이 국가원수부터 총리며 장관까지 다 해먹게 만들면 될 텐데.

 

  직업군인들은 분명히 전문가들일 것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그들의 '전문성'에 대해 여러가지로 의심이 들긴 하지만, 굳이 그들의 나와바리를 침범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에게 전문적인 분야에서나 전문가지 다른 분야에서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정의 전반을 담당하는 사람이고, 국가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한 부대의 일개 지휘자나, 국방이란 한정된 역할만을 전담하는 장관과는 다른 관점을 가져야만 한다.

 

 

   그렇다면 정부정책이 국방부의 높으신 분들의 의견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국방부 관계자들이 뭐라고 떠들든 그들의 견해를 (물론 진지하게 경청해야 하겠지만) 전적으로 따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곧이곧대로 따른다고 해도, 나중에 그 결정에 책임을 져야 되는 건조언자가 아니라결정권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