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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조직은 어떻게 유지될까요? 군대조직의 뼈대는 국가의 강제력으로 이루어집니다. 세금을 걷어 무기를 사고, '멀쩡한' 인간들을 징병해서 군인을 만듭니다. 그런 물적 토대에 기초해야만 장교집단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만약 군대를 없애버린다면? 혹시 군의 규모를 축소시킨다면? 사람은 밟고 디딜 땅이 있어야 설 수 있습니다. 기반을 없애버린다면, 장교집단의 설 자리는 사라집니다.
현행 군대조직은 필연적으로 개혁이 필요합니다. 이미 북한의 전력을 사실상 넘어선 상태에서, 과도한 군사비 지출을 피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규모를 양적으로 축소하는 것 역시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개선은 지나치게 더디고, 최근에는 오히려 거꾸로 구시대 군대로 회귀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의 군사력은 날로 한심해져 가지만, 군사비 지출은 더 많아집니다. 이미 전쟁에서 보병을 주력으로 할 단계는 지나갔지만, 2년에 가까운 강제징집제도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국방부장관의 ‘편한 군대’ 발언은,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던 어떤 노력들을 가로막고자 하는 소망을 함의합니다. 장성들의 ‘조직유지’에 대한 소원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수리되고 있습니다.
한국이 장교들의 뜻대로 움직이는 나라는 분명 아닙니다. 지금이 7, 80년대도 아니고, 권력은 민간의 손에 넘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시대착오적인 행각이 벌어질까요? 그것은 군대조직은 아직 ‘문민’ 정치권력에게도 유용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군대문화는 사회를 통제하는 데 대단히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단련된 전역자는 권력자에게 순순하게 따르는 양이 됩니다. 신입생 때 기억을 돌이켜 보면, 강의시간에 손을 들고 교수에게 ‘대담하게’ 항의성 질문을 내뱉던 학생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대에 다녀오면 다들 얌전해집니다. 지시도 잘 따르고, ‘예의’도 깍듯이 지킵니다. 교수님들도 복학생들을 참 좋아한다던데, 공부를 잘 하기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뭐 예절이야 지키면 좋은 거고 올바른 지시는 따라야 하는 거겠습니다. 하지만 군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판능력을 마비시킨다는 겁니다. ‘까라면 까라’는 상명하복의 군대조직에서, ‘시발 이거 아니잖아요’ 라고 말하는 인간은 바로 매장당합니다.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무엇이 합당한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지시에만 따르도록 훈련된 인간을, 오늘날의 군대가 만들어냅니다.
최근의 어처구니없는 사건들, 삼성 특검이라던가, 광우병 쇠고기 파문 같은 일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삼성의 임직원들이나 외교부, 농림수산부 공무원들이 윗선의 말을 기계적으로 따르지 않았더라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요. 삼성가의 비리나(특검은 친절하게도 ‘횡령’이 아니라 ‘탈세’로 ‘결론’지었지만), 졸속협상 같은 일은 애초에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영혼이 없는’ 조직문화는, 과연 군대문화와 전혀 무관한 존재일까요.
수많은 군대에서의 부적응자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이 과연 질 나쁜 인간들이고, 인내심이 형편없는 사람들일까요? 대부분은 멀쩡한 사회인이었고, 단지 감수성이 지나치게 예민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비난을 받습니다. 그들이 받는 피해를, 과연 공정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입니다. 사람은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역량을 타고났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정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군대는 명령을 기계적으로 따르게만 하도록 강요합니다. 또 지시에 불복종하거나, 통제에 잘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직의 이름으로 처단해 버립니다. 그릇된 군대문화는 사회에 전염되고, 사회도 결국 비슷한 길을 걷게 됩니다.
아직도 ‘거대한’ 군대는 권력에게 확실히 유용합니다. 군대문화는 권력에게 유용합니다. 국가를 외적으로부터 방위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람들을 통제에 순순히 따르게 하기 때문에 유용합니다. 사람들의 비판능력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유용합니다. 통제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탄압할 때, 국민들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유용합니다.
유용하기 때문에 거대한 군대는 존속할 수 있습니다. 행정가들은, 기업가들은 국민들이, 사원들이 순순히 명령에 복종하길 바랍니다. 정부나 기업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양순한 부하들을 두었을 경우 자기네들 뜻대로 할 수 있고, 부수적으로 ‘딴 마음’을 먹으면 쉽게 실행에 옮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권위주의적 군대가 존속할 때 장교들이 얻을 ‘이익’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렇기에 장교들의 조직보전의 소망이, 민간권력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정부는 군대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엄청난 행정력을 쏟아붓습니다. 언론은 자본의 나팔수로서, 지속적으로 북한의 위협을 확대포장하여 선전합니다. 북한이 너무 티나게 몰락해 버리면 또 다른 타겟을 찾겠지요. 소련 몰락 이후 미국이 ‘테러리스트’란 신흥강적을 창조해 낸 것처럼.
군대의 주요한 목적은, 굴종하는 인간을 만들어내어, 권위주의적 문화를 전염시키는 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아마 주요한 목적이 아니라, 최대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하지만요.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군대 조직은 상식과는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비합리적이어야 하고, 비인간적이어야만 합니다. 몰상식한 명령들을 억지로 따르도록 장병들을 학습시켜야, 사회 또한 몰상식이 통하는 사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군대내의 공식적 제도가 합리적이고 인격을 존중하며, 또 상식에 걸맞는 명령만 군대내에 난무한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요. 병사들은 옳은 명령에 따르는 건 당연하게 여기는 동시에, 그릇된 명령에는 익숙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단 군대 내에서 장교들 뜻대로 하는 게 어려워집니다. 각종 비리와 속칭 ‘가라’를 저지를 틈도 동시에 사라지게 됩니다. 병들을 맘대로 부려먹는 쾌감도 사라집니다.
이런 군대에서 근무했던 병사들이 사회에 나온다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그들이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세태를 꼭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몰상식함에 동화되지 않는다면, 제2의 김용철이라던가, 제 2의 김이태가 탄생할 가능성이 매우 커집니다. 골치아픈 일이지요.
그러니 장교단에게, 그리고 국가를 뒤덮고 있는 권력에게, 훈련은 이유 없이 빡셀수록 좋습니다. 되도록 비인간적인 편이 낫습니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얻는 것도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명령에 따라 구르고 뛰어다니게 해야 사람들의 사고를 마비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놓고 볼 때 행군은 매우 좋은 훈련방법입니다. 유격은 베스트입니다. 그 중에서도 PT체조는 엄청나게 뛰어난 수단입니다.
우선 단순반복적입니다. 꼭 해야 할 이유랄 것도 없습니다. 완수해 봤자 국가나 민족이나 개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생각이 없어야 오히려 편합니다. 이런 불합리한 명령들은 지속적으로 내려지며, 끊임없이 그것에 따라야 합니다. 자의든 타의든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낙오자로 취급받습니다. 낙오자가 발생하는 소집단은 연대책임을 강요당합니다. 명령의 정당성을 따지기보다,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저절로 만들어집니다.
군에 대한 민간의 감시가 강화되고, 인권이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는 상황에서, 훈련은 비합리적이고 비인간적인 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욕하고 쥐어 패는 것과는 달리, 일단 훈련은 제도권 내에 편입되어 있는 수단이니까요. 단지 구체적인 모양새를 약간 바꾸는 것으로, 큰 티 안 내고 ‘권위주의적 조직 유지’라는 목표를 그럭저럭 달성할 수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은, 실로 오랜만에 집권한 극우파의 행정관료입니다. 그나마 효율성이란 걸 따졌던 전 정권과는 달리, 극우세력은 오로지 그들의 권력과 이익만을 생각하며 움직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국방부장관의 “편한 군대...” 발언이나, 그것에 발맞추어 기획된 행군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비열한 속내가 보인다고 할까요, 지난일을 추억하며 맘 편히 바라보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민주주의의 성과를 향유하고 살고 있습니다. 군대내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몰아닥쳐, 장병들의 생활환경이 향상되고 군대 조직의 폐쇄성이 약화되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얻고 있습니다. 일선 부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사적 폭력과 성추행 문제 가 공론화되고, 민간의 감시에 따라 군대내에서 개선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장병들의 복지에 많은 예산이 투여되고 있습니다. 군대내 사조직은 문민정부가 출범하며 혁파되었습니다. 그리고 장병들의 훈련도, 좀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바뀌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성과들에 브레이크를 걸어서는 안됩니다. 성과들은 현재진행형이며, 진보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것을 용인한다면 그나마 거뒀던 열매들도 모조리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예비역들의 ‘지난날의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야 할 것이지, 지금 장병들에게 무의미한 고통을 강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적어도 이제부터라도 군대조직을 반드시 국가와 사회, 시민들에게 보탬이 되게 운영하도록 감시의 눈을 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장해야 합니다. 군대는 더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비판정신을 마비시키는 억압된 구조가 절대로 부활되어선 안 된다고. 일부 장교들과 권력자들의 철밥통을 유지시키는 데, 20대 청년들의 귀중한 시간과 열정이 허비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렇기에 우리는, 시대역행적인 훈련방식을 부활시키려는 작금의 시도에, 무엇보다 호된 비판을 가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