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일의 베스트 개그.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code=NAA&seq=54233
"시계로 신종플루 판별하자"는 각하의 '실용적'인 제언보다, "좋은 아이디어"라는 주위의 추임새에 진정한 웃음의 포인트가 있다. 이승만 각하대의 그것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6281737501&code=990201 - 과 비견할 만한 업적이다.
이 조그만 해프닝에서 주목할 점은 무엇일까? 뭐 이런 것들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1. 시계에 온도계를 장착하는 게, 그리고 그 시계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게, 과연 경제적으로 합당한 일인지.
또는
2. 이런 발언으로 봤을 때, 각하는 과연 지적 수준이 얼마나 뛰어나셔서 꼭 대통령감이신지, 그냥 뭐 아닌지.
그러나 이런 질문들은 너무 뻔해서 별 쓰잘데기가 없다. 신종플루 예방목적으로 시계에 온도계를 달고 네트워킹을 시키는 건 낭비다. 대운하 못지않은 낭비다. 거기에 들일 돈으로 백신이나 사는 게 나을 거다. 그리고 각하의 '지적 수준'이란 건 '멜라민 파동' 때 충분히 증명되었으니, 굳이 따져 볼 필요도 없고 따져 보기조차 싫다. 괜히 피를 본 YTN기자들만 불쌍할 뿐이다.
하기야 어쩌면 각하께서 "전 국민에게 '전자팔찌'를 채우라"는 원대한 뜻을 에둘러 표현하신 걸 수도 있겠다. 이건 확실히 '좋은 아이디어'다. 어떤 의미에서는.
하지만 그런 거 말고, 이것을 눈여겨보자. 지금 한국이라는 국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손자는 그의 병법서에서 말한다. "전장에 나간 장수는 왕의 말도 들을 필요 없다." 왕은 전쟁에 있어선 아마추어다. 윗사람이라고 아마추어 말을 곧이곧대로 듣다가는 패가망신을 못 면한다. 또 왕도와 전장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고려해보자.
물론 전쟁은 정치의 일부다. 정치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국가권력, 즉 왕이지 군인이 아니다. 하지만 정치의 세세한 부분를 실현하는 것은 실무가다. 손자는 어떻게 큰 그림과 작은 실천을 조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히틀러는 정반대로, 베를린에 놓여진 지도 위에서 모든 전선을 총괄하려 했다. 각 부대의 위치까지 총통으로부터 일선으로 지시가 내려졌다. 지도로 병사의 피로와 러시아의 추위를 알 수 있었을까. 꼭 그래서만은 아니었겠지만 독일은 러시아에게 패했다.
히틀러가 어느 정도 유능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모든 사항에 대해 알고, 그것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까지 소유했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그것은 아무래도 인간의 영역보다는 신의 영역에 속하는 것일 테니까. 나치즘은 그런 면에서도 일종의 메시아주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북한을 보자. 북한의 선전에서 특징적으로 볼 수 있는 단어 하나를 꼽자면 바로 '교시'다. 핵개발, 천리마운동, 개성공단 같은 국가의 거대 프로젝트는 물론, 작게는 무슨 함경도에 비닐공장을 세우는 것에 이르기까지 수령, 또는 장군의 '교시'가 등장한다. 심지어는 축구판이나 영화연출에도 그런 '교시'가 등장한다던데, '천리마운동의 정신에 따른 축구전술' 쯤 되면 거의 믿거나말거나 수준이다. 그런 도청도설들을 듣노라면, 북한은 정말 일인의 '영도력'으로 모든 국가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동네 같다.
그런데 역시나 의심스럽다.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그런 초인적 능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거니와, 설령 그것을 어떻게 조금이나마 긍정한다고 해도, 그런 잘난 분이 다스리는 국가가 왜 그렇게 개판 오분전인지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실 개인의 능력이란 의외로 보잘것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북한도 나름의 구조를 갖고 돌아가는 국가일지도 모른다. '교시'란 건 대충 모양만 그럴듯하게 현실에 끼워맞추면서, 말단에서는 나름의 규범과 관습을 갖고 생활하고 있는 건 또 아닐까. 수령님께서 아무리 순방을 좋아하신다 해도, 그 분과 대면조차 제대로 못 해 본 인민이 절대다수일 테니 말이다.
남한에서도 가끔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는데, 대기업의, 회장님들의 모습이 꼭 그렇다. 모 회장님은 사단장처럼 헬기를 타고 등장하여 도열한 임직원들을 사열하거나 하는 걸 좋아하신다고 한다. 북한과 스케일만 약간 차이나지 본질적으로 다른 건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애들 장난같은 일들뿐만 아니라, 그룹의 중대사도 '회장님의 의지'로 가끔 결정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긴 옛날에는 그런 일들이 종종 있었고 꽤 성공하기도 했다. 예전엔 세상이 그리 복잡하지 않아서, 기업에도 복잡한 걸 요구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른다. 하지만 성공은 어쨌든 성공이다. 운이든지 실력이든지간에. 그렇게 정주영은 수많은 '신화'를 낳았고, 박정희도(기업인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경부고속도로 신화' 따위를 낳았다.
요새는 확실히 좀 그런 '영도력'이 줄어든 것 같기도 하고, 영도력의 결과도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냥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좆ㅋ망ㅋ 하는 경우도 꽤 많다. 요 십년간 회장님들이 몸소 의욕적으로 추진하셨던 일치고 제대로 돼 가는 사업을 찾을 수가 없다. 개인의 영감만으로 뭘 할 수 있는 세상은 이제 지나간 셈이다. 1
하긴 요즘도 모 기업의 '브랜드가치제고 신화' 따위가 생산되기도 한다. '모년 모일 회의에서 회장님께서 브랜드가치 강화를 지시하셔서...' 따위로 시작하는데, '교시' 이후에 회장님이 뭘 또 직접 하신 건 아니고 '임직원들이 너무너무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회장님 만세' 라는 식이다. 이 정도 되면 그냥저냥 귀여운 수준이라고 해야겠다. 솔직히 회장님이 또 뭘 직접 하셨으면 분명히 싹 다 말아먹었을 거다.
거대조직의 운영은 맥주집에서 폭동을 선동한다거나,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축지법을 쓰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조직 안의 사람이 수십, 수백만이고, 구성원들 모두가 나름대로의 인격이란 게 있고 조직마다 규범과 특질이란 게 있다. 한 사람의 '영도'로 기계처럼 움직이는 조직은 대단한 로망이지만, 절대 실현할 수 없는 이상이다. 그렇다면 이제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큰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에 맞춰 어떻게 조직을 돌릴 것이냐다.
수많은 문제가 등장할 것이다. 조직 내 의사결정은 어떤 방식으로 이룰 것인지, 구성원들을 어떻게 통솔할 것인지, 피드백을 허용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에서 허용할 것인지, 이런 것들은 중요한 문제다.
말을 툭툭 던지는 경향이 있어서 '대통령감이 아니다'라는 되도 않는 비난을 받았던 노무현은, 의외로 이런 시스템적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조직을 수단으로 생각하기보다, 조직 자체에 주목했던 걸로 보인다. 전통적인 도식으로, 국가와 인민과 정부와 권력이 개념적으로 완전히 구분된다. 그러나 노무현은 이들을 어느 정도 통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었던 걸로 본다.
즉 이론상으로는 인민의 집단의사의 발현이 권력이고, 권력이 국가의 그림을 그리고, 정부가 그것을 실현한다. 실제로는 집단의사 같은 건 있으나마나고, 그냥 권력이란 게 있는데 그것이 정부를 장악하고 인민을 통제하는 사이 국가의 그림이 어떻게 그려지곤 한다. 그리고 노무현의 생각 속에서는 총체화된 정부가 직접 그림을 그린다.
여기서 인민의 '참여'가 있으면, 좀 이상한 방식이긴 하지만 민주주의라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정부에 '참여'했던 인간들은 전부 권력자들이어서 지극히 비민주적이었고, 종전의 세상과 크게 달라진 것도 없었다. 결국 한국은 관료주의적 성과에만 치중하는 괴상한 국가가 되었다.
극우세력은 노무현을 빨갱이라 욕했고, 좌파들은 노무현을 신자유주의자라 욕했다. 사실 노무현의 방식이 신자유주의였던 건 맞고, 정말 노무현이 하고 싶은 대로 놔뒀으면 한국은 영국 꼴이 됐을 거다. 하지만 노무현의 '발상'을 다른 리버럴들이나 사민주의자, 사회주의자들도 좀 참고해볼 필요는 있다. 정말 집권을 해볼 생각이 있으면, 정부조직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야 한다. 큰 그림만 그려 가지고는 선거에서 이겨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의지만으로는 조직을 움직여 정치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게 만들 수 없는 노릇이다.
의외로 '실용적'이었던 노무현정부와 현 정권은 그런, 정부운영의 면에서 나름의 차이를 보인다. '신종플루 대비용 온도측정 시계 네트워크'는 빙산의 일각이다. 여러 가지 꼽을 수 있고, 하기야 각하께서는 전봇대도 뽑을 수 있으시지만, 가깝게는 '입학사정관제로 100% 대학입학' 건을 들 수 있겠다.
지난 7월 27일 각하께서는 라디오연설에서, '입학사정관제로 100% 가깝게 대학 신입생을 뽑을 것'이라 말씀하셨다(링크). 이에 당황한 교과부는 '긴급진화'에 나섰고 교육계는 '술렁'거렸다(링크). 이렇게 청와대와 교과부의 엇박자가 이어지자 온갖 '설'들이 돌았고, 선진당은 '어차피 콩가루 정부'라는 논평을 냈다(링크).
어떻게 생각하면 그냥 웃기는 일이지만, 조직운영의 관점에서 보자. 이 '100%'는 교과부와는 아무런 교감도 가지지 않은 채 그냥 '튀어나온' 발언이란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물론 대통령이 어느 정도로 교육문제에 관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하지만 매우 구체적인 방법론 하나하나까지 파고드는 건 문자 그대로 실용적이지 못한 일이다. 그럴 거면 교과부는 뭐 하러 있는가?
대통령이 솔직히 까놓고 말해 교육문제의 전문가는 아니다. 느끼는 사람은 느끼겠지만, 조직이 맞는 최악의 불행 하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낙하산 총수다. 교육제도는 - 물론 개판이긴 하지만 -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고,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무가들은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가 발생할 경우의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6300959161&code=910100
곧 '까라면 까라'는 군대식 방법을 쓰는데, 이게 대체 무슨 실용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결국 이렇게 되면 정부조직은 '파행적으로 운영된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지 않을까. 소위 '4대강'도 비슷하지 않은가. 의원들을 채근해서라도, 실무자들을 닦달해서라도, 시민단체의 보조금을 짤라서라도, 내부고발자를 처단해서라도 어떻게든 하면 되는 것이다. 관료조직이 아무리 비효율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비교적 확실한 규준에 따라 움직인다. 곧 어느 정도 적당한 효율은 보장한다. 하지만 이런 불도저식 방식이 어느 정도의 효율을 보장해 줄지는 미지수다.
그렇다면 이런 기행들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것들은 신화에서 기인한 관습 같은 거다.
이명박 정권은 그 시작부터 신화적이었다. 정주영과 박정희는 한국을 발전시켜 국민들도 잘살게 해 주었던 위대한 메시아였다. 물론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여긴다는 것이 중요하다. 각하께서는 정과 박의 신화에 편승하여 인기를 끌었고, 결국 대통령까지 되었다.
국민들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 불가능한 걸 원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는 거대한 무당이다. 거대교회 목사들처럼 말이다. 그의 권능으로 길흉화복을 통제하여 인민에게 내려 주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 되어 버렸다. 이건 대체 무슨 고대의 망령인가. 국민들은 정작 중요한 체제, 그 자체에는 이상하게도 관심이 없다!
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고 권력을 유지하려면 무당일을 해야 한다. 아니면 무당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 정도는 심어 줘야 한다. 국민들을 반영구적으로 등쳐먹으며 권력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이렇게 원시적으로 돌아가는 공동체의 앞날은 암담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 경우는, 자기 자신도, '자신이 연극을 한다'는 자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어쩌면 김정일도, '자신이 엄청난 능력자인데 약간의 외부적 사정 때문에 그 권능을 다 펴지 못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관념이 현실을 지배하는, 진정 포스트모던한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하긴, 그들이 정말 '자각'을 갖고 행동한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무시무시한 일이겠지만.
- '아주 망하다' 라는 뜻의 인터넷 속어. 어원은 검색하면 찾을 수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