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치졸한 제도다. 아마 인류역사상 가장 치졸한 제도일 것이다. 평생 같이 살아야만 되고, 잠자리도 같이해야 한다는 건 뭐 그렇다고 치더라도 - 거기에 동반하는 인간의 정서를 완벽하게 무시하는 게 참 볼썽사납다.
영원한 사랑이란 인류가 발명해 낸 최악의 사기극이다. 감정의 '불변성'도 믿지 못하겠는데다, '사랑'이란 건 아예 존재 자체도 믿을 수가 없으니까. 사랑은 착각이다. 물론 그 착각에서 자유로울 순 없겠지만, 착각이 꼭 영원해야 하는 법은 아니다.
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보편적 감성이다. 성적 욕구도 어느 특정한 대상에만 한정되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존의 질서는 애정이 날아간 두 사람도 억지로 같이 살도록 한다. 다른 인간과 성적 교류를 나누는 것도 방해한다. 동시에 정서적 교류를 나누는 것도 방해한다. 어기면 간통죄로 처벌한다.
결혼제도는 종교니 도덕이니 윤리질서니 하는 거창한 말로 포장되어 열렬하게 수호되어 왔다. 가족제도는 오직 하나의 모양새만 갖추어야 했다.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가 종교적인 방식으로 결합하는, 결혼이란 제도가 고안되었다. 그리고 결혼생활은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지루하게 계속된다. 이혼은 대단한 죄악이며, 절대로 별거도 해선 안 되고 바람도 피워선 안 된다. 이런 여러가지 '규칙'들은, 남자 편에서는 확실히 덜 엄격하게 적용되긴 했다.
지난 세기에 들어서며 이런 강박적인 획일성은 약해졌다. 여전히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지라도, 별거는 해도 되는 것이 되었고 이혼할 수 있는 권리도 법적으로 보장되었다. 이것은 분명히 발전이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은 법제 안에, 박물관에나 전시되어야 마땅할 전통의 유물을 간직하고 있다. 사형제도가 그러하고, 국가보안법이 그러하듯, 간통죄가 그러하고, 소위 이혼의 유책주의라고 하는 것이 그러하다. 공안검찰이나 물대포와 다름없는, 한국이 소유하는 야만성과 원시성의 상징이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01&newsid=20080922225918088&fid=20080922230103101&lid=20080922224118015
"제사 모시지 않는 것도 이혼 사유"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다. 판결문 내용이나 자세한 사실관계는 알 수 없으나, 기사 내용만 놓고 미루어 보아도 갖고 있는 문제가 꽤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은 여전히 이혼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이혼남, 이혼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만 그런 게 아니고, 법적인 부분에서도 그렇다. 합의이혼이 대세라곤 해도, 여전히 합의되지 않은 이혼을 국가는 쉽게 인정해 주려 하지 않는다. 반드시 부부 중 일방의 '잘못'이란 걸 요구하는데, 이게 참 결혼제도 못지않게 치졸하다.
절대 같이 살 수 없는 사이가 되었음에도, 오기나 미움 때문에 한쪽이 이혼은 해 주지 않으면, 상대방의 잘못을 찾아내야 한다. 배우자를 악당으로 만들어야 이혼할 수 있다니, 얼마나 괴상망측한가. 적어도 마지막엔 좋게 헤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 억지로 허물을 들추어내어 부부가 법정에서 싸움하여 이별하게 만든다.
이혼이 바람직한지 어떤지에 대해, 뭇 사람들은 의견이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설사 이혼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혼을 방해하는 제도야말로 최악의 부작용을 낳는다. 근년 들어 하급심을 중심으로 유책주의로부터 벗어나 이혼문제에 접근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어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기사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차분하게 감상해 보자. 수많은 과거의 유물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배회하는 게 보이는가? 어떻게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게, 시댁에 찾아가지 않은 게 파탄사유가 될 수 있을까. 제사와 시댁 방문은 며느리의 의무인가? 뭐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아니라고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논쟁은 아무래도 나중으로 미뤄두는 게 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