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가 집권한 지 1주년이 되었다. 사실 1주년을 기념삼아 콩트를 한 편 써 볼까 했었다. "2월 25일, 만서절(萬鼠節)" 이라고. 그런데 괜히 남산 밑으로 끌려가 존나 얻어맞지 않을까 급(急) 불안해졌다. 아직은 날씨가 춥지 않은가. 삽도 딴딴하고 따라서 (그걸로) 얻어맞으면 너무 아프고, 땅에 묻히면 오들오들 떨리고, 물에 잠수하면 얼어 죽을지도 모르고.... 라는 등등의 변명을 늘어놓으며 펜을 꺾었다.
각설하고, 각하의 지난 1년을 돌아보자.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죽이신 각하, 사교육비를 반띵하겠다면서 되려 왕창 올리신 각하, 물가를 잡겠다며 초(超)인플레이션을 몰고 오신 각하, 말은 실용정부라면서 정부를 이념관철의 수단으로 만들어버리신 각하..... 각하의 지독한 역설은 너무도 예술적이다. 아 시발, 이제 3월 찬란한 슬픔의 봄이 찾아오고 있다...
신년을 맞아 '소통'위원들께선 글을 쓰셨다! 이 역시 지독한 역설로 치장된 작품이다. 이하 링크를 참고하라. http://blog.daum.net/hellopolicy/6977422
위원께서는 주장하신다. 학업성취도평가는, "학력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에 대한 실효성 있는 지원을 함으로써 공교육 내실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 이라고!
아, 시밤. 나도 찬성한다. 모름지기 찬성 일색이다. 나는 각하가 경제를 살리길 바라고, 사교육비를 반띵하기 바라고, 물가를 잡아 주시기를 오매불망 바란다. 요새 우유 한 깍 먹기가 왜 이리 힘든지! 여름철 물가에서 놀이하다 죽기 전에, 봄철 물가에 치여 내가 뒤질 지경이다.
한데, 경제를 살리겠다며, 강부자 감세에 근로자 임금은 팍팍 깎으신다. 소비가 추락할 테니 자영업자들도 이제 다 뒤진 목숨이다. 사교육비를 반띵하신다며 영어몰입교육, 각종 변태학교 만들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물가를 잡는다며 환율은 고환율... 정책을 인위적으로 쓰지 않았다고 강만수 장관님께서는 말씀하셨지. 내 눈이 삐었나 보다. 군대에서 사격할 때도 250m 표적은 안 보이더라.
이해할 수 없다!
관대하다면서 왜 밑에 애들은 두들겨 볶는 건데? 실용정부라면서, 왜 효율성은 쥐젖인가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나는 100% 찬성한다. '평가'에 찬성한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들에 대해 지원이 될 평가'에 찬성한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 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저학력 학생들에 대한 지원 부족'이라고. 이것은 자사고, 특목고, 대입자율화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이상하게 논의의 촛점에선 비껴난 문제다.
내 고등학교 때, 반마다 서울대에 지원하는 학생이 6~8명 가량 있었다. 나머지 학생은 30명을 넘는다. 그렇다면 학교는 이 서울대 : 비서울대 학생들에 대한 진학지도를 어느 정도 비율로 배분했을까?
수능이 끝난 다음, 올해 될성부른 : 안 될성부른 에게 선생들은 약 7:3의 시간을 할애했다고 기억한다. 대학이 한국인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데 서울대 쓰는 학생들은 어림잡아 10배의 특별한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게 다 빌어먹을 노무현 때문이다!(참고로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죽은 것도, 병아리가 죽은 것도, 엘비스가 죽은 것도 다 노무현 때문이다. 어쨌든 대다수의 학생들은 엘리트들을 위해 '소외'되는 이상한 현장을 경험한다. 굳이 대학에 원서 넣을 때만이 아니다.
학교 수업은 가끔씩 선생이 병신같든지 해서 '막 나갈' 때가 있다. 그럴 때 피해를 보는 건, 그냥 놔둬도 잘 할 놈들이 아니라 '지도가 필요한' 중간이나 저학력 학생이다. 수준미달학생은 누구보다도 많은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교사들은 공부 못 하는 아이에게는 '탈선에 대한 주의'이외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솔직히 공부 좀 한다는 명문교치고, 과학고나 외고치고 시설 안 좋은 학교 드물다. 목적이야 다 '명문대 진학' 이지만, 그 틀 안에서는 진로계획이 무진장 잘 짜여져 있다. 하지만 되는 대로 무시당하다, 좀 '수준낮은' 학교에 가는 애들에 대한 지원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좀 '질 낮은' 공고, 농고의 실태는 아주 형편무인지경이다. 안에서 교육이 제대로 안 되는 게 학교냐!
될성부른 나무에 물을 뿌린답시고, 다른 나무들은 말라죽어가는데 안중에도 없다. 헌법에서도 국민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는 국민 아닌 사람이 알고 보면 태반이다. 더 정교하게 얀 우카시비치의 논리학 이론을 적용하면, 한국인은 완전 국민, 6/7국민, 5/7국민, 4/7국민, 3/7국민, 2/7국민, 1/7국민, 비국민 따위로 나누어진다...
양질의 교육은 국민 모두를 위해 베풀어져야 한다. 국력은 국민 모두의 힘이며, 단지 SKY의 힘도, 포공보이의 힘도, 자사고의, 국제중의 힘도 아니다. 충분하게 교육재정을 떨구지도 않는 주제에, 그걸 또 차등분배해 아이들을 낙오하게 만들고, 낙오자들을 고사하게 만드는 현행 교육제도는 뜯어고쳐야 한다.
평가는 의외로 중요할 수 있다. 누가 어떤 부분에서, 얼마나 뒤떨어지는지를 알아야 체계적인 보완에 들어갈 수 있다.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한 시험에서 수학을 30점 맞은 아이가 둘 있다. 얘들의 실력은 똑같이 30, 30일까? 절대 아니다. 한 아이는 방정식은 전혀 못 푸는데 도형과 집합만 잘 할 수도 있다. 다른 아이는 수학실력에는 사실 큰 문제가 없는데, 공식을 대입하는 요령을 잘 몰라서 점수가 안 나올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단순히 찍은 게 많이 틀렸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점수는 다 똑같을지 몰라도, 그들의 개성은 다양하다. 시험 쪽지 하나로 아이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건 불가능이다. 그들의 현재 수준과 가능성은 점수로 절대 환산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그럼 어떻게 그 아이를 알 것인가? 바로 그 아이의 담당 교사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다. 그가 모르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일제고사를 거부했다 징계를 먹은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 "이 시험지는 제가 학생들과 함께 피드백을 하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사다!
아이를 알 수 있는 건 선생뿐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뭘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선생뿐이다. 공교육의 '정상화'는 바로 교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선생을 못 믿겠다고? 그럼 아무도 믿을 수 없으니 교육은 그냥 포기하자. 공정택을 믿느니 미네르바 여신의 존재를 믿겠다. 선생을 못 믿겠다고 아우성칠 게 아니라, 어떻게 믿게 만들지 방법부터 강구해야 한다. 교사의 직위를 보장하고, 그들에게 높은 윤리성을 요구하고, 민주적인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양질의 교육컨텐츠를 생산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이 정부는 무엇을 하는가? 일제고사 관련 교사 파면, 성추행 교사 봐주기, 점수내기식 학습 강요, 역사교과서 왜곡이다.
'소통위원'의 역설의 미학은 이제 찬란하게 드러난다.
이런 얼치기 조사로 학업을 평가할 수 없는 노릇. 그런데 '제대로 된 조사가 없어 충분한 학업 성취를 거둘 수 없었'다고? 어떤 애가 뭘 못하는지, 얼마나 지원이 필요한지 선생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미달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 시스템이 부재할 뿐이었다.
상식적으로 뒤떨어지는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지원'은 학력이 많이 미달되는 학교에 중점적으로 투입되어야 맞다. 그리고 관심은 뒤떨어지는 학교에 기울여져야 한다. 하지만 이 정권의 신조는, '몰아주기'다. 감세는 대기업과 부동산 재벌들에게 몰아주고, 고통은 서민에게 몰아준다. 마찬가지로 교육도 '엘리트'에게 몰아주기다. '인센티브'는 학력이 높은 학교에 지원된다. 그리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사기 쳐서 성적을 좋게 조작한 학교에 쏠린다.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책무성을 물을 계획' 덕택에, 모든 학교는 학생의 '개성'을 집어치우고 '점수내기'에 올인하게 된다. 학교가 다 똑같은 공립 학원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각 학교와 교원의 자율성을 존중함으로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이뤄나가겠다는 철학'이라니?
소통위원들은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위해 일제고사를 친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의 일거수일투족을 솜솜 뜯어보면, 기초학력을 '창조' 하고 미달을 '조장' 하고 미달학생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회피'하는 괴상야릇한 진실이 나타난다. 이 얼마나 찬란한 역설인가. 아, 눈부셔. 우리의 미래가 이렇게 밝을 줄이야! 핫핫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