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인터넷을 하다가 포스트 하나를 보았다. 어떤 교사가 쓴 글과 사진이다. 그는 학생들이 책상이며 어디에 새긴 낙서를 기록했다. 졸지 말자. 자지 말자. 성적을 올리자. 꼭 어느어느 대학에 가자... 선생님은 그것으로 무엇을 보았는가. 1
감탄했을까.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학생들, 그럼에도 열심히 노력하려는 학생들의 자세를, 교사는 대견해했을까? 아니,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모범적인 낙서에 모범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는 낙서에 깃든 폭력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자율학습 시간에 졸지 말자. 낙서는 아이가 그의 손으로 쓴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아이는 사실 자고 싶고, 잠시 쉬고 싶다.
졸면 안된다, 성적을 올려야 한다, 이것은 다른 누군가의 말이다. 아이는 그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받아적는다. 졸리고 피곤하지만.
아이의 의식으로, 아이의 손으로 썼다고 해서 그것이 곧 아이의 뜻이 되는가? 사람들은 그렇다고 주장한다. 간편하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이를 늦게까지 혹사시키는 것, 점수경쟁으로 내모는 것, 그런 모든 것이 편리하게 정당화되리라. 아니 정당화되고 있다.
아니, 아니, 아니다. 어린 아기들을 매질하면,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잘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사실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반성할 수도 없다. 아이는 어른들이 강요하는 '잘못했습니다'란 말을 되뇔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얻어맞지 않기 위해, 아프지 않기 위해, 아이들은 어른의 언어를 반복해야 한다.
아이들은 이런 가학행위를 끊임없이 경험한다. 나는 0교시가 싫어요, 나는 보충수업이 싫어요, 나는 왜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면 어떻게 되는지 안다. 반드시 뒤따르는 보복을 안다. 아이들은, 일탈자들에게 기성 사회가 얼마나 잔인한 선물들을 건네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쉽게 반항하지 못한다. 단지 어른의 언어를 스스로 되풀이하며, 자신의 인간적 욕구를 힙겹게 압살하는 것이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쉬운가. 아이들을 잡아끌어야 해. 때려서 가르쳐야 해. 경쟁이 우수한 학생을 만들어. 이런 말초적인 대사들을 내뱉는 건 얼마나 쉬운가, 아무 생각 없이. 이것은 너무도 간편한 폭력이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비법은, 그다지 어려운 장소에 숨겨져 있지 않다.
하지만 부디 '자발적'인 낙서 속에 숨겨진 권력의 강제를 보라. 억눌린 소망 위에 가해지는 무자비한 폭력을 보라. 이런 발상은 확실히 편리하지 않다. 이런 주장은 당신께 인기나 이득을 가져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덜 비참하게 만들 것이다. 오직 그런 세심함만이.
- 나중에 다시 찾으려 했는데 결국 못 찾았다. 따라서 작자와 출처를 밝히지 못하니 이해해주시라. [본문으로]